(눈이 동그래지며)저 배짱 없어요. 70년 살아보니 인생이 평탄하고 싶어도 평탄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 ‘오케이, 이 골짜기 넘으면 또 어떤 벼랑이 올까, 올 테면 와라, 내가 넘어줄게‘가 되는 거죠. 사는 게 다 그래요. 망하고 싶은사람이 어딨어요? 자식 아픈 거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그런데 어느 날 멀쩡하던 제 자식이 중환자실에 들어가 뇌수술을 받았어요. 이듬해엔 출근하던 삼풍백화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동료를 잃고 직장을 잃었죠. 그런 일 겪으면 인생관이 바뀌어요. 그래도 벌어진 일은 받아들여야 해요. 아무 일 없이 평탄했으면 내 인생 콘텐츠도없었겠죠.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경이롭고 안쓰러워. 어쩌면 저렇게 유능할까, 막 존경하다가 ‘앞으로 나이의 첩첩산중을 어떻게 넘어갈꼬‘ 생각하면 애처로워서…
인생에서 일어난 일은 어떻게든 끌어안아야 되잖아요. 걸림돌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디딤돌이 되더라고요.
그런데도 ‘나 치매 걸리면 싼 요양원에 넣어달라‘고 하셨다죠. 치매 걸리면 알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비싼 데 가요. 비싼 요양원도 다 자식들 허영이죠. 대신 이런 당부는 해요. "너희들 욕 안 먹으려면 자주 찾아 와." 부모 임종 앞두고 수의가지고, 관 가지고 싸우는 자식들을 많이 봤어요. 왜 그런 거고민시켜요? 저는 이미 시신 기증 서약도 했으니 몸에서 쓸만한 건 다 빼내고 가루만 주겠죠. 애들은 엄마가 죽어도 각막은 살아서 누군가 볼 수 있으니 또 얼마나 좋아. 어차피 우리가 사는 게 죽으러 가는 거예요. 배고픈 애들 밥먹이다 가면 황천길이 편하잖아요. 죽으러 가는 길에 골짜기도 건너고 강도 건너고 평야도 건너는 거예요. 누구는 금수저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수저도 없이 태어난다고들 불평하죠. 그런데 나무젓가락 들고 막노동판에서 먹어도 동료들과 웃으며 식사하면 그게 행복이에요.
무슨 말이든 경쾌하게 하는 편이죠? 내 모토가 삶에 찌들지 않은 상큼한 할머니잖아요. 겁주지않아도 어차피 삶은 무거워요. 젊은이들은 더 무겁죠. 그러니 말이라도 경쾌하게 해줘야죠. 자존감 없으면 더 고단한사회니까요.
." 기도하고 산책하면서 루틴을 다져요. 스트레칭, 신문 읽기, 독서도 빼놓지 않죠. 루틴은 나를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거예요. 몸의 뼈대 같아서 루틴이 튼튼하면 일상이 무너지지 않아요. 젊을 때와 다른 건 해야 할 일을 억지로 하진 않는다는 거. 집이 좀 더러워도 내키지 않으면 "먼지야, 내일 치워줄게" 그러죠(웃음).
(미소 지으며)"하고 싶은 일을 해. 단 네 생활과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 사회에 폐 끼치지 말고." 사는 게 별거 아니에요. 그래서 남에게 폐 끼치는 거 아니면 제 성질대로 살아야해요. 패션도 마찬가지예요. 필요에 따라 조언해 주지만, 근본적으로는 ‘입고 싶은 거 입으라‘가 답이에요. 어릴 적 엄한 부모 밑에서 레이스 달린 거 못 입어본 사람은 커서 공주옷 입어야 욕구가 풀려요. 억압이 해결되는 거죠. 꼰대가 별 게 아니에요. 무조건 ‘나한테 맞추라‘고 억압하는꼰대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어요. 조너선 스위프트라고《걸리버 여행기》 쓴 작가가 그랬어요. 젊은이한테 참견하지말고, 그들이 같이 놀자고 하기 전에 끼어들지 말라고요. 이태리에서도 집안의 어르신은 점잖게 앉아 있어요. 그래도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꼭 젊은이가 어른의 의견을 묻죠.
야망과 열정은 다릅니다. 야망은 역경에 맞서 애써 위로 올라가려는 것이에요. 반대로 열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눈사태처럼자신을 붙들고 가속도를 내서 그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것이든가요. 실제로 자연선택은 무작정 속도를 폭발시키는 대신 에너지를 아껴 써서 지구력을 증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타오르는 열정을 식히는 것 자체가 노화의 일반적인 과정이 아닐까요.
‘검은머리솔새는 바람에 맞서는 대신 바람을 타고 날고 싶어 한다. 바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후회에 관한 유의미한 발견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하게 많은 것을 후회하더군요. 연애, 재정, 가족, 교육 등등. 그 심층구조를 들여다보니 후회는4가지로 정리됐어요. 첫째, 삶의 안정적 인프라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기반성후회. 둘째, 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대담성 후회․셋째, 양심적이지 못한 일에 대한 도덕성 후회. 넷째, 더 사랑하고 손 내밀지 못한 관계성 후회입니다.
괴롭혔던 사람에게 사과할 수도 있고, 흉한 문신은 지울 수도 있죠. 차선책으로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어요. 가령 "그사람이랑 결혼한 건 후회하지만 ‘적어도‘ 예쁜 두 아이를 얻었잖아"처럼요. 하지만 무행동에 대한 후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나이 들수록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대부분 무행동에 대한 후회는 후회의 심층구조에서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담성 후회‘와 ‘관계성 후회’로나타났습니다.
훌훌 털고 간 게 아니라슬픔과 함께 나아간 거예요. 모든 상처가 다치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슬픔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웃고 나아갈 뿐이지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잃게 되지만 사랑은 결국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수전 케인-
보통의 아이들도 눈부신 지평선을 보면 슬퍼해요. 떠나고헤어지는 것을 힘겨워하죠. 그럴 때 ‘언젠가 다시 보게 될것‘이라는 말보다 더 위안을 주는 가르침은 작별의 고통이삶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우는 이유는 우리가 기만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고 문제없는 게 정상이며 낙담, 병, 이별, 피크닉의 파리떼는 비정상이라는 강박을 버리세요. 덧없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위안이 돼요. 시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봄과 가을>이라는 시에서 소녀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인간이 태어난 것은 시들기 위해서란다.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거릿, 너 자신인 거야.‘
끓어오르는 감정을 단번에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일단 물러서면 많은 일은 저절로 조정됩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심호흡을 하세요. 적나라한 분노를 쏟아내면 주목은받겠지만 탁월함과는 거리가 멀어져요. 최악의 상황을 그려본 후 서서히 압력을 낮추세요. 제 생각에 그런 정서적 주권을 쥔 대표적인 사람은 버락 오바마입니다. 그는 자부심과 기쁨은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트럼프 시대에조차) 좌절과 분노는 적절하게 제어했어요. 반응의 적정 온도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따뜻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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