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무엇이든 해보라고 격려해 주는 손길 같다. 눈부시게 자라난 올해의 신록과 활동량이 부쩍 늘어난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1년 중 가장 씩씩해져서맘때를 보낸다.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적마다,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오늘 같은 날은 접어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1년을 담은 책이 있다면 아마 초여름 부분은 접힌 페이지가 가장 많아서 책의 오른쪽 모서리가 불룩해졌을 것이다.
습도 역시 마찬가지다. 잘 마른 볕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쾌적한 계절에서, 뜨거운 볕에 습한 바람이 부는 꿉꿉한 계절로 넘어가는 고개가 바로 장마다. 무더위가 ‘물더위‘에서 ‘ㄹ‘끝소리가 탈락한 말이란 걸 아는지. 습도와 온도가 높아 찌는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무더위라 부른다. 짝을 이루는 ‘불더위‘는 불볕더위. 그러니까 몹시 더운데 ‘찜통‘ 안에 갇힌 것 같은 날은 무더위, ‘불가마‘ 속에 갇힌 것 같은 날은 불볕더위란소리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습도 낮고 모기 없는 망종 무렵엔 무얼 해야 할까? 부지런히 바깥을 즐겨두면 된다. 할 일이라곤그게 전부다. 실내에 있기보다 이왕이면 바깥을 누리기. 이 시기가 금방 끝난다는 걸 아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산책하기, 자전거 타기, 카페테라스 앉기 등 혼자 할 수 있는것은 혼자서 하고 함께하면 더 즐거운 것은 함께한다. "이번주에 야장 가자" "주말에 캠핑 가자" 말하면 처음엔 시큰둥한반응들이다. 그럴 땐 불안 마케팅을 한다.습도 98% 여름이 오고 있어 꿉꿉해 지기 전에 움직여야돼.
집에서 소파에 누워 있다가도 누구 한 명이 "산책?" 하면 거절 없이 일어난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나가보면 반드시 좋은 계절이니까. 1년 중 가장 부지런하게 ‘바깥양반이 되어 움직이는 망종.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온 마음을 한군데다 와르르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좋아하는 바깥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즐기고 그게 곧 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주말엔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밤늦도록 야외 상영 해주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6월에 무주에 가는 건 강과 내가 손꼽아 기다리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두어서 좋은 점 중하나는 그날이 오기까지 틈틈이 설렐 수 있다는 것. 앞일은대체로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6월에 일어날 좋은 일 하나는알지, 그 사실이 고단한 일상을 건너는 힘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좋은 순간에, 좋은 풍경에 데려가는 건 일부러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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