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이러한 맛집 투어와 먹방을 즐기는 새로운 세대들의 기본적인 욕구가 자아실현 욕구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세대들은 특히 카메라 앞에서 누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고 대리만족을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이렇게 먹는 행위‘를 단순히 배를 채우는행위를 넘어선 일종의 유희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90년대생들의 의식은 기본적인 자아실현의 충족을 위해 힘쓰는 ‘유희 정신‘에 기울어져 있다. 이념적 세계보다 연극적 세계가 더 중요하다. 물론 이들도 앞선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전 세대들과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유희를 추구라며 살아간다는 점은 이들의 세계를 다르게 만든다.
이들은 스스로를 어떤 세대보다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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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트렌드는 90년대생들의 읽기 패턴과 콘텐츠 소비 형태를 바꿔놓았다. 우선 F 자 형태의 웹사이트 읽기 패턴이 강한되었다. 제이콥 닐슨Jakob Nielsen은 2006년 자신의 홈페이지에232명의 사용자에 대한 아이트래킹 조사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빠르게 웹사이트를 훑어보는 데 일정한 F 자 형태를 보였다.
필요한 정보만 얻기 위해 머리 부분만 제대로 읽고 중간은 듬성듬성 내려 읽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읽기는 온라인상의 넘쳐나는정보에 익숙해지고, 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뇌가 선택한 적응 방식 중에 하나이다. 가장 급진적인 방식은 인터넷 기사 등을읽을 때, 오로지 상단의 제목만으로 내용을 추측하고 최하단의댓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훑어보는 것이다. 많은 90년대생들은 이처럼 수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에 습득하는 방식으로콘텐츠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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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들이 경험하고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줄임말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카테고리를 넘어서 기업의 고유 브랜드까지 모든 것은 이미 모조리 줄여서 불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파리바게뜨를 빠바‘라고 부르고, 미스터피자를 미피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고기뷔페와 초밥뷔 페의 경우도 ‘고부’, ‘초부‘로 부르고 있으며, 문화상품권도 ‘문상‘
으로 부른다. 이미 모든 카테고리와 브랜드는 조금이라도 부르기 쉬운 단어로 불리고, 만약 이를 모르고 있다고 해도 몇 번 카톡이 오가는 순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대의 줄임말들은 그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되면서, 기존의 모든 단어에 급속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줄임말은 단순히 그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를 넘어 전체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국어 줄임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대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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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그 특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기성세대와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함에 따라 생각도 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곳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각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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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늘 바람을 담는다. 숲은 바람에 대책 없이 흔들린다.바람은 끊임없이 산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산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내가, 내 삶이 산처럼 의연한가. 의연하게 산다는 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의연함조차도 지루할 것이다. 미약한 존재인 내가 어찌 바람에 흔들리지 않겠는가. 적당히 흔들리며 산다. 하지만 바람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바람을 읽어낼 심안(心眼)이면 이겨낼수 있다. 맞서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의연하게 살아야 한다. 내면에 뜨거운 열정과 염원이 사위지 않은 채 담기고 가열해야 제대로 의연할 수 있다.
의연함은 역동적이고 농밀하다. 시시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바람 하나 시시하지 않은데,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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