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왜 나 자신을 그렇게 비판해야 하지? 나는 그냥나야 그러니 사태를 내 마음대로 느낄 자유가 있는 게 아닐까? 평생 처음으로 ‘자아‘가 분열되는 듯했다. 나는 이런 이중적인 면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나는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찾아내 나 자신에게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그런 내가 진실한 나라고 설득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다른 ‘나’가 솟아올랐다. 그 다른 ‘나는 조금 전 나 자신의 논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겉으로는 모두 타당해 보이지만 사실은 착각이라고 외쳐댔다. 그런데 사실 나를 속인 것은 이이 다른 나가 아닐까? 그런 통찰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잘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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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은 무엇보다 책 읽는 인간이었다. 침대에서,카페에서,해변에서 , 별장에서, 안락의자에서, 소파에서, 대기실에서 비행기 에서, 호텔 방에서, 요리나 정원 가꾸기나 바느질이나 산책을 하는 대신에, 책을 읽었다. 그녀의 책장에는 셰익스피어,벵자멩콩스탕, 니체, 포크너, 콜레트, 스탕달, 플로베르, 헤밍웨이가 꽂혀있었다. 자신이 주최한 파티가 무르익고 요란해질 무렵 그녀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후미진 한구석에 틀어박혀 아이리스 머독, 솔 벨로, 윌리엄 스타이런, 카슨 매컬러스, 캐서린 맨스필드를 읽었다. 에세이집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에서 사강은 이렇게 쓴다. "나는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 존재를 이른바‘완벽하게 지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내 자리에 앉혀 나를대신해서 살도록 하고 나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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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가변적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굳어진 행동들처럼 뇌의 경로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뇌에 가해지는 모든 스트레스를 막을 수는 없으나 공감 능력이손상되지 않도록 학대와 트라우마, 알코올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일 수 있다.
예방이 가장 바람직한 이유는 예방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지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발달시킬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건강한 아동기를 보냈다고 해도 공감을 배우는 일은 일생 동안 계속된다. 때로 무감정 상태에 빠지거나, 고도로 이기적이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경우 공감이 가로막힌다.
공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배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어린 나이에 배울 수 있고,어떤 사람은 뒤늦게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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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불안이나 근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다양한 형태로 촉발되는 원초적 두려움은 이런 이유 때문에 공감하기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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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밀집된 생활 형태는 문화 교류를 유발했고 범세계적인 생활방식이 시작됐다.
새로운 접촉은 종종 갈등을 일으켰지만, 전에는 낯설고 나와
다르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을 열어줬다. 공감 의식은 이전 역사에서는 소규모의 가까운 친척이나 집단에 한정되었지만 갑자기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게 됐다. 낯선 이방인에게서 유사한 것을 발견하면서 공감적 표현이 강화되고 깊어졌으며 처음으로 혈연관계를 넘어 보편화됐다. (제러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물론 이 과정은 차질이 생기고 이탈이 있었다.
리프킨이 서술했듯이 지난 2천 년 동안 공감을 심화하는 문화 교류가 있었지만 공감의부재를 보여주는 수많은 폭력과 파멸적인 교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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