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본질이다. 이 앎과 함께 인간의 길이 시작된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길‘ 찾기다.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 한다. 앎이 바로 지도다. 앎이 없으면 정처없이 방황할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깜깜한 밤에 낯선 곳에 툭! 던져진 것과같은 상태다. 그때 온몸은 공포에 휩싸이고 만다. 위험한 곳이라서두려운 게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렇듯이, 무지는 그 자체로 고통이요 괴로움이다. 그렇게 헤매다 마침내 길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 온 존재는 환희로 넘쳐난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마침내 삶의 길을 찾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가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그 희열은 평온함으로, 평온함은 오롯한 집중력으로 변주된다. 이제 다시는 길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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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발견의 기회는자주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자신의 특권을 눈치채지 못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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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한번쯤 시외버스를 타보았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거나 그것도 비즈니스석을 타지않는 이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통수단 탑승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외버스 좌석에 앉아서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있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누군가가 시외버스 탑승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외버스에는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표를 사도 버스를 탈 수가 없다. 타인은 갖지 못하고 나는 가진 어떤것, 여기서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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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착각과 신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도 자신이 차별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향해 "사랑하니까반대한다"고 외치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그것을 사랑의 표현이자 정의라고 믿는다. 당신이 하는 행동이 동료 시민의 존재를 부정하는인격적 모욕이며 폭력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듣지 못한다.
이 끝도 없는 평행선을 어찌하면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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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당하는 차별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예전 직장 사무실에 있던 명패 같은 것 말이다.
다시 나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의 사무실 문에는보라색 종이를 코팅한 명패가 붙어 있었다. 정규직 직원 사무실 문에 붙어 있던 명패는 나무색 판에 흰색 글씨였다. 2년 반쯤 지나 정규직이었던 한 동료에게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는 명패가 다르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보이지않는 이 사소한 차이가 나에게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문을 열고들락거리는 매 순간 나의 신분을 각인시켜주는 주홍글씨 같았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때도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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