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성숙의 잣대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느냐의 여부, 나아가 얼마나 많은 타인의 고통을 느끼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타인, 나아가 타자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성숙해지고, 겉만 어른이던 사람도 진짜 어른이 된다. 성숙의 과정을거치면서 인간은 자신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작아지는것을, 혹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고통을 중심으로 타인이 돌아간다는 감정적 천동설에서 벗어나 자기만큼이나 타인도 고통에 아파한다는 감정적 지동설로 이행하기 때문이다. 나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타인을 비롯해 모든 생명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인간은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성숙한어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 길을 가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길고양이와 마주칠 때가 있다. 그렇게 고통을 직면하면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다. 고양이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이미 느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양이가느끼는 추위와 배고픔에 대한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자발적 감정이자 의지, 혹은 노력은 이렇게 탄생한다. 고양이를 외면할 수도 있다. 고양이의 고통보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옴으로 인해 생길 나의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하거나, 결국 고양이의 고통이 사무치게 전달되지 않은 탓이다. 내 넓적다리에 느끼는 고통만큼 고양이의 고통이 다가와야 고양이의 고통을 완화해주려는 감정과 행동이 나온다. 바로 이것이 ‘일체개고‘ 라는 명제로 싯다르타가 절규했던 가르침의 핵심이 아닌가. 타인의 고통이 사무치면 우리 마음에 자비가 차오르게 된다. 자비, 혹은 그냥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 새겨두자, ‘사랑의 핵심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그렇게 느낀 고통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면 우리는 그 고통을 완화하려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시작한다.‘ 사랑이 연민과 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민은 행동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기반한 실질적인 사랑은 항상 상대방에게적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가 고프면 그에게 밥을 해준다. 그가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외로우면 나도 외롭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를 업고 병원에 간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프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걷기 힘들면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다. 그가 거동이 힘들면 나도 힘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하면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떨어준다. 그가 우울하면나도 우울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추우면 그에게 옷을 벗어준다. 그가 추우면 나도 춥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이 열정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노동을 낳는 것도 이런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배부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지인과 행복한 담소를 나누면,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힘차게 잘 걸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명랑하면, 우리는고맙기만 하다. 진짜 사랑할 때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 완화되었는지 여부뿐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질투심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배고픔의 고통을 완화하는 것은 사랑이자 동시에 선한 일이다. 그렇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한 공기의 밥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고통에도, 그리고 고통의 감수성에도 중도가 필요한 이유다. 두 공기의 밥은 배고픔의 고통 대신 배부름의 고통을 선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통은 잠시완화시킬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대화가 사랑의 행위라면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무거움을 나에게로 고스란히 가지고 와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내와, 나는 남편과, 나는 딸과, 나는 아들과, 나는 후배와 규칙적으로 소통하고 있으니 돈독한 관계라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되물어야 한다. 대화를 나눈 뒤 상대방의 무거움을 자신이 충분히감당해서 무거워졌는지. 만약 충분히 무거워졌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홀가분해졌을 것이다. 당신은 마침내 제대로사랑을 한 것이다. 상대방의 고통을 잠시나마 완화시켜주는 데 성공한 셈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