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따른 인명 사고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임을 알게 된시카고에서는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쿨링 센터‘를 비롯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이 생겨났다. ‘일 년에 사용하는날이 며칠 안 된다‘는 이유로 세금 낭비라고 여겨졌던 시설이었다. 일정 기온 이상이 되면 냉난방이 갖춰진 공공시설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정책도 마련되었다. 포퓰리즘급을 받던 제도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폭염에 따른 온열 질환 사망자 수가 감소했다.
후손을 생각하자‘는 식의 거창한 접근은 역설적이게도당장 시급한 과제는 아니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폭염 문제에대한 접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지구가 더워졌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프레임은,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으면큰일 난다는 여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참는 걸 미덕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에어컨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야속한결론이다. 즉, 환경문제는 더워도 죽지 않는 사람만의 추상적인구호로 그치게 된다. 넷째,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폭염을 극복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뉴스는 더위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지않고, 땀범벅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조망하며 열정과 성실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바쁘다. 이런 것조차 삐딱하게 바라보느냐고할지도 모르겠지만, 육체 노동자라면 더위 정도는 감당하는 게도리인 것처럼 포장되면 역설적으로 더위를 감당하지 못하는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매년 더위에 지쳐 죽는노동자가 등장하지만, 사람들의 감정이 안쓰러움 딱 거기까지만머무르는 이유다. 앞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나라마다 불평등을 어떻게다루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노동의 지위에 따른 차이가 지나치게 크게 벌어지면 자연스레 직업의 귀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 잡는다. > 대기업 정규직만이희망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는 어떤 대학의 졸업장을 얻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 그러니 모두 각자도생하겠다며 경쟁 속으로 뛰어들게 되고, 실패를 자기 책임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진다. > 이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바라보기 쉽다. >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진다. 나는 정규직 전환이 절대적인 답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면서, 생산적인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충분히 설득했다고 생각했지만, 강의를 듣던 누군가의 흥분한 목소리가 예외 없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부자와 빈자의 엄청난 소득 차이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소득을 직업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하자는 발상은 참으로 유치하지만, 소득 격차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양극과 현상을 내버려 두자는 태도는 참으로 잔인하다.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받아들인 나라의 학교에서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시험을 통해 사람을 평가한다. 하지만 결과를 대하는 태도는 결코 같지 않다.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은 위험한 상상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더욱 공정해진다. 왜그럴까?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부모가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떤 이의 담임교사가 폭력적이었다면? 어떤 사람이 살았던 마을에 제대로 된 학원 하나 없었다. 면? 우리는 개인의 일생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샅샅이 알 수없다. 즉, 개인의 차이를 전부 고려해서 동일한 출발선을 만드는 시험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과‘만을 신성하게 여기는 풍토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빈곤을 개인의 잘못으로만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변화가 생기고, 나아가 성공한 이들의 사회적 책무도 엄격해진다.
반대로 차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어떨까? 서울의 한 학원에서는 ‘치킨을 시킬지(1·2·3등급), 치킨을 배달할지(7·8·9등급)는 이번 겨울이 좌우한다‘라고 적힌 광고 현수막을버젓이 걸어 놓기도 했다. 공부를 성실히 해야 고소득 전문직이될 수 있고, 게을러서 형편없는 성적을 받으면 저임금 노동자로살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약자를위한 사회정책을 제대로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불평등을 줄이기위한 여러 제도들을 두고 ‘학교 다닐 때 놀았던 사람을 왜 도와줘? 역차별 아니야?‘라는 여론이 정의로 포장되어 일상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와 과정에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건 중요하지만, 시험은 공정하다고못 박아 버리면 시험 결과에 따른 불평등이 개선되기 어렵다.
각자의 출발점은 다 다르다. 영국의 교육사회학자 바질 번스타인 Basil Bernstein 은 부모의 직업에 따라 학생들의 언어 습관이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했다. 부모가 안정적인 중산층인 경우, 자녀의 언어는 굉장히 정교했다. 이들은 교실에서 궁금한 점을 정확히 질문할 줄 알았고, 토론에도 능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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