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자신과 친구가 되도록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까지 나를 화나게 만드는 말씀을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친구가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다음에야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인격체인 나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이런 다양한 이해를 하나의 공통된 지평 안에 융합합니다. 이 새로운 지평 안에서 다른 시각으로 저의 삶을 바라보게됩니다. 저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개인의삶과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은 항상 주관적인 과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은 결코 본문을 객관적으로 정의하거나 단순하게 역사적인 맥락만을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포함된 대화입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역시 이 질문으로 성경 본문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1.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2. 나는 누구인가? 3.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정신과 의사인 알베르트 괴레스(Albert Görtes)에 따르면,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읽을 능력이 없기에 성숙하지 못한 하느님상像을 가졌는지도모릅니다. 우리는 질투, 비관주의, 방관, 벌, 권력과 같은 인간의 모든 특징을 하느님께 투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미지에 따라 하느님을 묘사합니다. 괴레스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그것이 크건 작건 빈약하건, 또는 순수한 지성에만 머무는것이든 아니면 모든 신화와 관련된 미신적인 요소를 거부하는 것이든, 우리가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신성 역시 성장해가는 특징을 지닙니다."
드레베르만(Eugen Drewermann)은 이 역사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유혹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은 낙원에서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드레베르만은 악의 실제적인 원인을 두려움으로 보는데, 그 두려움은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하느님처럼 자기 자신의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생겨납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죄를 짓도록 이끄는 모든 힘으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을 낯설게 느끼게 하며, 왜곡되고 병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게합니다. 두려움은 우리 인간 존재의 이유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절망이 생겨납니다. 하느님처럼되고 싶은 것과 한계, 비천함, 불완전함과 같은 모든 인간적인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시작부터 실패하게 될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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