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삶을 제삼자의 위치에서 보는 게 아닙니다. 그들 삶 속에 투영된 내 삶을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내 삶에서 풀리지않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풀 길이 없는 문제를 내려놓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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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란 있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아름다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거든. 어떤 사람은 둥글고부드러운 선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날카로운 선과 단단한 근육을좋아하니까. 어떤 사람은 사자 갈기처럼 굵은 머리카락이 좋다고하고, 어떤 사람은 잉크를 쏟아부은 듯 차르르 흘러내리는 가는머리카락이 좋다고 해.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파란 대모 요정이 문을 열어 주며 즐거웠냐고 물었어. 신데렐라는 "네."라고 대답했다가 또 "아니요." 라고도 했어.
"화려한 옷과 호화로운 접시와 다채로운 케이크와 눈부신거울과 찬란한 불빛을 구경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런데 도마뱀이말구종이 되고 생쥐가 말이 되는 걸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대모 요정은 모두가 자유롭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게돕는 것이 진짜 마법이라고 했어. 그러더니 말들한테 말이 되고

"다른 애들 돕느라 나도 엄청 바빴거든. 그러다가 너희 집이 어디에있는지 잊어버렸어. 또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그러려면 일단 그사람이 도움을 청해야 돼. 너는 무도회 날 밤 전에는 도와 달라고 한적이 없잖아."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는 건정말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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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열린책들)

언젠가는 꽃이 지겠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겠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사실 우리가 오늘 죽을 리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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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은 ‘바라봄visio‘에서 시작됩니다. 개인의 고통도, 사회의 아픔과 괴로움도 그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가 모든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국적, 성별, 나이, 종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이기에 분명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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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 어떤 공동체를 판단하기 위한 기초적인 기준은 제가 축성생활자들과의 만남에서 언급했던 "세 개의 "예요. 제가 말하는 것은, 가난poverta의 P, 기도preghiera의P, 인내parienza의 P입니다.

기도로 말하자면, 기도는 참된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를 잘하지 못하면 나아갈 수가 없어요. 기도할 줄 아는 것, 기도하기를배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축성생활에는 진지한 기도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공동기도, 전례 등이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축성생활자 각자의 기도도 필요해요. 기도를 잘한다는것은 하느님 앞에 잘 자리한다는 것, 그분을 흠숭한다는 것,

저는 사제들에게 항상 사람들의 한계를 억지로 밀어붙이지않도록 부탁합니다. 누가 고해성사를 보러 오면 원하는 대로고백하도록 두는 거예요.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가 지닌 상처의 한계를 자신의 판단으로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고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그리고 그가 받아들일만한 조언을 주고요. 그에게 맞는 정도로요. 단 하나라도 적절한 조언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그가 돌아올 수 있게 항상 문을 열어둘 필요가 있지요. 그가 이렇게 말하게 하세요. "이 신부님은 참 대단하구나! 나는다시 이분에게 와야겠다."

세속성은 기준의 문제이지요. 행동의 기준, 삶의 기준, 관상의 기준에 대한 문제입니다. 주님께 속하기보다는 세상에 더속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세속성은 선善으로 가장합니다. 하지만주의하세요!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 관심을 가지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드 뤼박은 이 영적 세속성을 철저히인간중심적 태도라고 말합니다. 다른 세속성을 멸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주님의 영광을 찾는 대신 인간적 영광을 찾는 것입니다.

가난의 이념화化(이데올로기화)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종종 가난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고 많이 살지는 않는 사실을 저는 말하는 것입니다. 가난을 이론화하지만 우리의 기준들과 행동은 진정으로 가난을 동반하지 않아요. 삶에서 가난을 살아내야 합니다. 기쁨으로 살아가야 해요. 가난은 기쁨으로 살고 축제로 살아가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유심히 보면 축제를 벌이는 능력이 인상적이에요. 가장 힘든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잃지 않지요. 이것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저는 우리가 가난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연스럽게, 단순하게 삶에서 행운을 덜 누리는 사람들을 진실하게 염려하면서요. 가난은 실제로 형제들을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임무를 떠맡는 것을, 섬기는 것을의미합니다. 인위적으로 필요한 것들 없이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고, 또 정의가 결핍된 상황에서 살아가는, 아니 생존하는 수많은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면서요.

축성생활이 걸어가지 않으면 길을 잃은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걸어가지 않으면 길을 잃은 것이에요. 만약 걸어가면, 그러나 완덕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곧 흠 없이‘가 아닌 상태로 걸어가면 그때도 역시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 선택을 할 것입니다. 이 선택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걷는 것,
그분의 약속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두면서 그분이 우리를 데려가시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모든 선택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바를 행하면서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걸어가기, 항상 걸어가기예요.

제 생각에 이 점을 우리는 그 동안 상당히 소홀히 해왔습니다. 축성생활의 이 종말론적 차원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마치…처럼‘ ‘이미, 그러나 아직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평으로삼아 살아가야 하는 게 바로 이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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