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돌파하라 - 변화의 시대, 불안을 기대로 바꿔줄 43가지 지혜의 도구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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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따르면, 자유인과 노예의 차이는 스콜레schole, 즉 여가시간에서 나타납니다. 일을할 때는 자유인과 노예가 별반 다르지 않아요. 주어진 시간에 맡은 업무를 마쳐야 하니까요. 하지만 일에서 놓여난 순간, 자유인은 자기다움을 가꾸는 활동들에 매달립니다. 감성을 키우려 시나 예술에 빠져들고, 고귀한 영혼을 갖추기위해 사상을 연구하며, 건강을 위해 몸을 관리하는 식으로말이지요. 노예들은 어떨까요? 그들에게 여가란 ‘노동하지않아도 되는 시간‘일 뿐입니다. 때문에 한없이 늘어져 무료하게 지내거나, 술이나 노름 같은 중독거리에 빠져 괴로운현실을 잊으려 하지요.

1782년, 현악 4중주 제14번 G장조 K.387을 작곡한 모차르트에게는 연주자 네 명이 있어야 했다. 2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을 연주하려면 연주자 네 명이 필요하다. 이는 바이올린의 생산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삶의 어떤 요소들은 효율성을 높이려는 온갖 시도에 저항한다. 냉장고나 자동차와는 달리, 역사 수업이나 의사가 면 대면으로 실시하는건강검진은 효율성을 마냥 높일 수 없다. (뤼트허르 브레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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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 속에서 진화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다. 자연 속에서 20초만 머물러도 심박수가 떨어진다.
5분이면 혈압마저 내려간다. 놀랍게도, 병실 창에서보이는 나무는 환자의 수술 회복을 촉진한다.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나무를 볼 수 있는 환자는 돌담만 보는 환자보다 평균적으로 하루 더 빨리 퇴원한다고 한다. 게다가 진통제 복용량을 측정한 결과통증을 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간호사들로부터 정서적으로 더 회복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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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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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혹은 그보다 더 전, 건물의 외부는 장소의 특성을 담고 있었다.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때의 건물은자기가 속한 곳과 자기가 속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늘날, 건물은 말이 없다.
100년 재앙은 문화 혁명이었다. 새 건물에게서 고유한 성격과 장소성을 가차없이 빼앗았다.
너무 익명적인 건물은 따분하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진실은 따분함이 ‘아무 것도 아님‘보다 나쁘다는 것이다.
그것도 훨씬.
따분함은 심리적 박탈 상태이다. 음식이 부족할 때 신체가 고통받는 것처럼, 감각 정보가 부족할 때 뇌는 고통받게 된다.
따분함은 마음의 굶주림이다.
신경과학자 콜린 엘라드 Collin Ellard는 이런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했다. 2012년, 엘라드는 뉴욕에서 사람들이 따분한장소를 걷다가 곧이어 흥미로운 장소를 통과할 때 어떤 느낌을받는지 분석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짧은 시간 머무르는 일이사람의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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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갇힌 채 현재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자신이 속한 귀족 계층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뿌리를 거부할 수 없는, 뼛속까지 귀족인 자신의한계를 잘 알고 있는 공작은 담담히 고백한다. "우리는 표범이었고사자였소. 이제 자칼과 하이에나가 우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소."
"현재 상태가 있는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이바뀌어야합니다. We want everything to remain as it is, then everything has to change ".

영화 초반에 나오는 파브리치오 공작의 조카 탄크레디의 이유명한 대사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시칠리아 귀족들의 심중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사가 유독 진하게 남는 이유는 모든 귀족이 탄크레디 같지 않으면서 탄크레디였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수많은 귀족은 변화를 거북해하고 경멸했다. 그래서 역사의 전환기에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 시대의 종말이 낳은 퇴폐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태에 한탄하며 불평을 늘어놓아도 결국 그들은 변화하는세상에 적응하려고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귀족에게도 적자생존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유럽 귀족의 역사를 다룬 이 책에서 키워드를 단 하나 뿐이야한다면 그것은 남다름이다. 변화를 거부한 채 과거의 노스캔들에빠진 자들은 남다름의 물질적·정치적·경제적 토대를 무너뜨리게 하는 달라진 세상을 경멸한다. "무엇도 잃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의 존재 방식까지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이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새로운 차별화 수단을 고민할 뿐이다. 지배집단으로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귀족은그 모습이 바뀌고 심지어 이름까지 바뀌어 더는 귀족으로 불리지 않을지언정, 특권층으로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며 집단의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환경이 변화하고 세상이 바뀌니 차별화 방식도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때로는 해괴한 방식으로. 왜냐하면 "당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당신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민족이나 인종 또는 계급에 근거해 인간의 우월함을주장하는 것이 크나큰 환상이라고 폭로한다. 감독의 바람대로 이 환상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릇되며 근거 없는 그리고 정치적으로올바르지 않은 이념으로 그 위상이 확립되었다.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는 유럽 귀족 집단의 오랜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개인주의와 귀족의 집단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개인도 과거의 귀족도 모두 남다름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차별화는 다르다. 귀족의 집단주의는 집단의 기본 음률을변주할지언정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거부는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야‘라는 원칙에 충실한현대의 개인주의는 사회적·집단적 기준에 순종하는 것을 언제든 거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 개인주의야말로 귀족의 사회적 존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최종병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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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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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처음으로 진리와 시대를 연결한 철학자입니다. 이전에그 어떤 철학자도 진리를 시대와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란 시대를 초월한다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그러니 밤을 새워 아버지가 남진진리를 습득하는 것이 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헤겔은 이제 진리가시대-특징적epoche-specific 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시대를 사상의 이름으로 포착하라고 말합니다. 철학이 사상의 이름으로포착해서 해석이나 해명 또는 비판해야 할 대상이 바로 사건입니다.
따라서 헤겔은 사건이 끝날 때를 기다리라고 주문합니다. 헤겔에 따르면 진리는 더 이상 철학자가 책상 위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진리는 정의와 불의가 충돌하는 거리의 교차로에서, 폭력과사랑이 폭발하는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구성하는 것입니

이 땅에서<자유의 폭력》에서 나는 ‘늑대의 자유는 사슴에게는 죽음일 수있다‘라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늑대인가요, 사슴인가요? 늑대나 사슴은 물론 은유적 표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사회에서 늑대이면서 동시에 사슴입니다. 영역에 따라 늑대였던 사람이 사슴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은 늑대지만 언젠가 사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악한 늑대와선한 사슴이 다른 몸이 아니라 한 몸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늑대이면서 사슴입니다

물론 사회 속에서 늑대인간은 강•자를 가리킵니다. 반면 사슴인간은 사회적 약자의 은유입니다. <자유의 폭력》에서 나는 늑대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사슴에게도 자유가 주어져야만 좋은 사회, 좋은 국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늑대에게만 자유를 주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죽음의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많은 철학자들은 현재를 이른바 권력 공백의 시기, 곧 인터레그넘intertegnum 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최고 권력의 부재 혹은 공백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기 전의 시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시대정신이 사라졌는데, 새로운 시대정신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상태라고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시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춘추전국시대처럼 모든 가치가 경쟁하거나 혹은 모든 가치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다원주의 시대라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다원주의는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영역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원주의를 하나의 가치로 보면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가치도 다원주의의 가치에 의해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화된 입헌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원주의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누구도 거부할 수없는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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