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택시 기사가 탑승을 거부할 때도, 직장을 찾을 때도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넥스트 원Next One!‘ 딱 한 사람. 내게 기회를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가능하리라는 말을 전해준 양궁 선생님을 만나기까지, 월가에서 자신을 받아줄 때까지, 다음 택시가 자신을 태워줄 때까지 용기를 내서 방법을 찾는 것. 실력도있고 운도 좋았겠지만, 무엇보다 기회를 찾아 끝없이부딪힌 용기가 지금의 그를 만든 가장 큰 동력 아니었을까. ‘이번에는 안 돼도 다음번!‘을 외치며 도전한 모든시도가 모여 지금에 이른 것일 터다.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갖추지 못한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괴롭히지말자고 다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활동 반경을 넓혀가야 한다고만 여겼는데, 정작 행복은 ‘우물을 벗어나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개구리임을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나, 하는 깨달음. 내가
‘나‘여도 괜찮아, 개구리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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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감나무 있어? 없어?"
"있어요
"나무 있어? 베야해!"
이렇게 말하면 돼요.
만약 다른경우는 뭐라고 하면 될까요?
"집에 감나무 있어? 없어?"
"없어요"
"심어야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있어? 없어?"
"어, 있었던가?"
"자기 주위에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러게 말이에요."
이때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든 빠져들게 됩니다. (웃음)

때로는 대책 없어 보이는 일들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기도 하잖아요. 공기놀이, 오징어게임, 고무줄 놀이, 고스톱, 민화투처럼지금까지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생각해요. 때로는 우리 인생에서 대책 없어 보이고 논리적 설명이안 되는 것들이 우리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대책없이
"수고하셨다" "애쓰셨다"하고 꼭 얘기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나도 사범님 같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른이 된 지금 새삼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 자리와 그 사람은함께 온다는 것을.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기억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저는 그렇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린 시절 사범님이 제게 주셨던 나무 그늘 같은 공간을 단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이 학원에 간다는건 무슨뜻일까요?
일상을 수행한다는 겁니다. 좋은 신호죠.
실연당해서 엄청 슬픈데도 학원을 간다는 건슬픔에서 좀 벗어났다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걱정하던 마음을 좀 내려놨던 기억이 나요.
그 학생이 6개월 있다가 새로운 남친 생겼다고저한테 자랑하더라고요.
"아이고,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때도 이런 얘기 안했어요.
그냥 함께 웃었어요.
자랑하면 그냥 들어주고, 울면 옆에 앉아있어 주고,
상대가 신경 쓰인다고 하면 조용히 일어나서 가면 돼요.

가장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말은
"너 그 사람 정말 좋아했구나"라는인정의 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이 가짜가 아니라진짜였으니까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라고,
누군가 제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때제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내 말을 고요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 주는 것만큼 큰 위로와 위안이 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 말 없이 밤새 내 이야기 다 들어주고 울다 지쳐 잠든 내 옆에 함께 잠들어 있는 친구를 보면 그 존재 자체로도 힘이 될 때가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 만나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아빠말, 그냥 들어주세요.
어른들이 외로워서 그래요.
내 딸, 내 아들 아니면 들어줄 사람이주위에 없는 거예요."(웃음)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오늘부터 집에 가거든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가 2시간 수학 공부해라‘라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예요. 엄마 아빠는 진짜 큰일이에요. 수학 2시간 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시험 얼마 안 남았어요. 국어까지 하고 잘 거라고요.
엄마 아빠, 제발 사태를 좀 파악하고 얘기하세요, 정말!"
이걸 예수님께서는 뭐라 그러셨습니까?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줘라!"

이유 없이 화를 낼 때는 그 화를 다 받아 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던지는 쓰레기 더미를 내가 받아서 간직할 필요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야, 이 개의 베이비야!" 이렇게 욕을 했다면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그 사람 사정이죠. 그 사람이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 빨리 알면 됩니다. 상대가 나를 ‘개의 베이비‘
라고 욕한다고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웃음)제가 뭐 하면 악플이 몇 천 개씩 달릴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견디느냐고요? 안 봅니다. 그러면 꼭 친한 친구들이 그걸 보내줘요. 걘 친구도 아니에요. (웃음) 그거 가지고 자꾸 곱씹으면서 살면 내 마음만 괴롭습니다. 우리 그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들의 말과 의견이 나를 규정지을 수 없다는 걸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전에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부족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대요.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갈 때 왼쪽 어깨를 세 번 털고요. 오른쪽 어깨를 세 번 털고요. 그리고 제자리에서 세 번 뛰고요. 그런 다음에 집에 들어간대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종교 의식입니까?"
그랬더니 그건 아니래요.
"왼쪽 어깨에 붙어 있던 내가 미워하던 사람을 털어내고, 오른쪽 어깨에 내가 죽이고 싶은 인간들을 털어내고, 내 몸에 붙어 있었던 모든 원망과 분노를 털어내고, 집에 들어갈 때는 나 혼자 들어가서 쉬겠다는 의미예요. 내가 만약 그 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들어가면 내가 그 인간들하고 함께 자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촌스럽다는 말이 변질된 것 같아요.
참아름다운 말인데, 우리가 그 단어를 함부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한번쯤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라도 ‘촌스럽다‘라는 말에 새롭게 빛나는 뜻을 더해 주고 싶습니다.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농촌, 어촌, 산촌에 사시는 분들을 칭하는촌스럽다는 뜻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친근하다‘ 하는새로운 뜻으로 사전에 등록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하는 생각으로 봐야하고,
그다음에 ‘이걸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하고자기 마음도 한번 돌아봐야하는것 같아요.
진짜뉴스,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것은그런 다음에 할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궁금해하며 적극적으로 읽는 순간 자기가 주인이 되고,
그때부터 ‘진짜 읽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같은 책을 세 번은 읽습니다. 한 번은 문장을 읽고, 두 번째는 그 책을 쓴저자의 시대와 역사와 배경을 알고 난 다음에 왜 이런 말을 했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읽습니다. 세 번째는 그 책을 읽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읽습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 대목이 좋을까?"
‘나는 왜 이 대목이 싫을까?

어느 병원에서 와 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어요. 들어가는 무대입구 게시판에 이런 질문들이 적혀 있더라고요.
"간호사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질문했으니 대답은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간호사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간호사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제 건강하고 직결돼서 그렇습니다.

무당의 작두, 택시 기사의 운전대,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수세미, 판사의 망치,
목수의 망치 안에는
모두 신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마이크입니다.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서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저밖에 없어요. (웃음)
"나는 사회자로서나 개그맨으로서 재능을 타고났다.
전 세계 아무도 나처럼 못한다."
그러면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전세계에 한두 명쯤은 있지 않을까?‘
‘그래도 미국이나 영국에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람이 많이 살지만 못합니다. 저만큼 못해요.
일단 우리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어요.유재석 형이 할수있을까요? 못 해요. 바빠요. 오고 싶어도 못옵니다.
지금 현생하는 인류 중에서 제가 제일 잘해요. (웃음)이걸 자존이라고 합니다. (웃음)

‘구름은 언제 비를 뿌릴지 정하지 않는다.
그저 물로 가득 채워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이걸 중국어로 ‘우웨이wúwèi‘라고 하고,
한자로 뭘까 찾아보니 ‘무입니다.
어떤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간섭하지 않고 두는 것,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우리 마음도 가끔은 고요해질 때까지 그저 가만히 바라봐주는 것,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MBC에서 라디오를 진행할 때 만난배철수 선배님이 하신 이야기가있습니다.
"한살이라도 어린 사람이 한 말이 맞아."

여러분은 진정한 성공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은자기에게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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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은 얘기입니다.
6·25전쟁 때,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밥을 지어 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계셨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저녁에 체할 만큼 급하게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내일 아침에또 밥을 해주겠다고 해도,
아이들은 불안과 허기로 인해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다음 날부터는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볼 수 있는 곳에서가마솥을 열고 밥과 국을 끓였다고 합니다.
그제야 아이들이 천천히,
딱 배부를 만큼만 먹었다고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게 내 마음이고 상대방 마음이다."
이렇게 알고 나면 그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물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마음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아침에 어떤 할아버지가 대파를 팔러 오셨길래너무 많이 사셨다며,
안그래도 손님들한테 그냥좀 드리려고 했다며,
거짓말이어도 좋고 참말이어도 좋은고운말과 눈길로대파 대여섯 대를 함께 넣어 주셨습니다.
잘 지내라고, 살뜰하게 쳐다보며다짐받는듯한 눈길도 함께.
이번 봄은
‘이 마음 덕분에 충분히 따뜻하게 나겠구나!‘
‘나도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탄이가 저에게 온지 4년 하고 반년이 지났는데요,
함께 살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어요.
여러분이 아이 키우시면서 알게 된천재견인가?
바로 그거요.
네, 우리 탄이 천재견입니다! (웃음)

얼마전 고등학교에 가서 인문학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제가 이렇게 시작했어요.
"내 첫사랑 미옥이가 전학을 갔어."
그때 학생들이 전부 다 이랬죠.
"오우~오, 힘들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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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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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일이 즐겁지 않았어."
학교를 졸업한 후 빨리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성급하게 그림을 그려냈고, 그것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외부 세계를 위한 ‘적당하고 착실한‘ 그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바로 활동을 접고 작업실에 틀어박혔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릴 다음 그림이 나 스스로도 궁금하지가 않았어. 이러다가는 작가로서의 수명이 곧 끝날 것 같았지."
자신만의 방식과 거기에 적합한 표현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증발‘할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방황과 실험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다시 세상에 나올 용기가 생겼다고, 그녀는 담담하게털어놓았습니다.

‘증발‘ 이후 열리는 그녀의 두 번째 개인전 작품들을 보고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속 소녀와 풍경들이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림에서는 작업의 고단함보다는 작가가 느꼈을 창작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전시의 타이틀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서툰 행복‘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그 일이 더 이상 개인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의하는 ‘직업‘이란, 좋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무수한 평가 속에서 납득 가능하고 타당한 책임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인정받는 것, 직업인으로서 예술가의 딜레마는 꽤나 복잡합니다.

"보는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해."
저는 그 서툰 대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얼핏 상투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그 짧은 문장에는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친절함과 따스함이 담겨있었습니다. 비로소 밝은 햇살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을 사람들과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술 행위란 어차피 처음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존재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표출되어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을 솜씨 좋게 처리해내는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바로 작가입니다."
다시 말해, ‘독소‘가 내재되지 않고는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루키는 그 ‘독소‘에대항할 수 있는 행위로 달리기를 포함한 철저한 루틴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방법론보다 쉬우면서 동시에 어렵고,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적어도 하루키본인에게만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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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순수함‘에 대한 정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대해 어떤 답을 내리거나, 맞다, 틀리다를 다투는 일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치열한 논쟁이 오간다 한들, 결국 창작물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오롯이 창작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예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삶을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비율을 필사적으로 줄여나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일‘과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책임을 담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직업적 순수성‘의 척도란, 자신의 일을 대하는책임감의 크기와 그 정교함의 정도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일‘
이 ‘업‘이 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작품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동시에 지극히 사회적인 산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얻고, 때로는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라는 강력한 연대의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명‘이라는 광막한공백의 영역에 자신의 이름을 존재하게 만들었을 때 예술가는비로소 유명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예술가가 번듯한 이름을얻는 일의 의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
그렇게 살아남는 일이 이름이 없는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왔던 저를,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저를 지탱해주는 신념입니다.

오래전부터 동물 중에서도 새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날개가상징하는 자유로움을 언제나 갈망해 왔습니다. 학창 시절 제가가장 공감했던 단 하나의 문장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신의자유의지로 자기의 자유의지를 포기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
이었습니다.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저는 갑갑한 현실을, 자유로운 새가 날개를 잃고 인간의 몸속에 갇힌 ‘새 인간‘의 형상으로표현했습니다. 그 작품들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의 전시제목은 <새상>이었습니다.

당시 공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우연히 도도새에 대해알게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인근 모리셔스라는 작고 아름다운섬에 살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날아야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날지 못하는 새로 퇴화해 버렸습니다. 때문에 포르투갈 선원들이 그 낙원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포르투갈인은 그들에게 ‘도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도도‘는 ‘바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681년, 최후의 도도새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건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도도새의 뼈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분명한 과정과 목적이 있는 길을권하고 때로는 강요합니다. 하지만 모리셔스에서의 모험은 ‘유익한 방식의 방황‘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새로운 가능성을찾는 좋은 방법이 될 거라는 확신을 제게 갖게 했습니다. 이 세상을 정글에 비유한다면,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또한 셀 수 없이 많지 않을까요?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우리는 길 위의 인간이며,
언제나 길 위에서 떠나고 돌아오는 동안 성장과 변화의 기쁨을맛보아 온 존재이니까요.

"사람은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고독을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금언처럼, 수다스럽지 않은 시간들은 우리에게 종종 더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입니다. 때문에 자발적인 고독은 분주하고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던 일상의 시간에서 한 발 뒤로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의 차이는 거기에서 옵니다. 자발적인 고독속에서 잠시나마 은자가 되는 경험은 우리의 삶에 어떤 화두를

어쩌면 살아간다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수많은 선택들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씩 의연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의연해지되 무뎌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하고 성의 없는 위로나 툭툭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택의 번민 속에서 선뜻 제게귀를 열어주고, 손을 잡아준 이들과 함께 삶을 발견해 나가는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확신이라는 말이 좀처럼 어려운 이 세상 속에서 저는 그런 방식으로 믿어보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를, 그리고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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