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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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괴감 속에서 헤엄치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스스로의 한마디. ‘또, 또 건방진 생각한다. 맞다, 건방진 생각. 대체 내가 뭐라고, 이 글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이걸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나. 수많은 이들의 계급적 입장과 경험적 차이와 정치적 상황과 개별적욕망이 각각의 언어로 떠도는 거대한 공론장 안에서 한 마감노동자의 담론 기여라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강력한 논의를 발아할 만큼 좋은 글을 쓰지 못한 것도있겠지만, 사실 한 편의 글이 세상의 인식을 흔들고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허구다.
중요한 건, 내가 꾸준히 쓰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꾸준히문제제기를 할 것이며, 그 수많은 담론적인 기여와 다툼과 소란스러움이 모일 때 언어의 카오스처럼 보이던 공론장 안에서 작게나마 논의를위한 지평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뾰족한 마음>으로 지은 건 그래서다. 내가 생각하는 뾰족한 마음이란 세상에 뭔가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며전투적인 태세를 취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종종 그런 태도로 글을 쓰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다. 내가 뭘 해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회의와 냉소에 빠질 꽤 많은 이유들에 무기력하게 타협하지 않기 위해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며, 어차피 다들자기 편한 대로 받아들이리라는 핑계로 사유와 언어를 벼리지않고 뭉툭한 정념의 덩어리나 내뱉지 않기 위해서도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다. 대단한 사람이라 뾰족한 게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대단하지 않음이 모여 만들어낼 새로운 전망을 믿기 위해 뾰족해지려는 것이다. 이것이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 세상에 말 걸기위한 내 나름의 방식이다. 아마 나만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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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를 만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가족이란 사라지지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다‘ 그런 실감이 나를새로운 해방구로 이끈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는, 근원적인 ‘기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어머니가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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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믿는 것은 사람들이 갖가지 다양한 삶의 견해를 접할 기회를 추구하고 소중히 여기는 한편, 가능한 한 시야를 넓혀 그 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고서 가장 아름답고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풍경을 선택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몇몇 사람이 작디작은 현실 생활의 창을 통해 밖을 보고서 온 세상을 그 창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그 조그만 창 안에서 이게 좋다는 둥, 저게 좋다는 둥 저울질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애가 타서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아직 보지 못한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그게 가장 훌륭하고 당신에게맞는 거라 확신하는 거죠?"라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심지어 창문도 아닌, 왜곡되고 퇴색한 그림엽서를 보고서 어떤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적당하다며 고르는 시늉을 한다.
우리는 그런 이에게도 어이없어하며 "당신은 아예 진짜 풍경도 못 봤고 진짜 풍경과 그림엽서의 차이도 모르면서 뭘고른다는 거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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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어에는 과학적 진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진 종교적 신화적 레퍼런스가 담겨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당대를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생활의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때때로 거칠고 기존의 언어에 비해 비약적인 논리로 들릴 수 있지만, 다수의 공감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새로운 공간의 언어‘는 생각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무엇보다 생생하다. 그래서 이 책은 큰 범위에서는 디지털 언어를 다루지만,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언어‘다.

언어는 바뀐 시대를 나타내는 가장 선명한 표식이며, 디지털 언어는 세계를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새로운 언어를 생성하여 빠르게 확산시킨다. 가장 최신과 첨단의 세계가 언어에 반영되는 것이다. 어떤 국어학자도, 모국어 정책도 그토록 빠르게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고 유행시킬수는 없다. 오직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만이 그 역할을 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에 대한 부적응은, 우리가사는 ‘지금 이 세계‘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해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게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할 필요이자 당위다.

밈과 짤, 줄임말, 해시태그 등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지못하는 사람들은 쉽게 비난한다. 과격하다고, 가볍다고, 소통을 저해한다고 말이다. 고민 없이 비난하기는 너무나 쉽다. 일단 무언가를 비난의 대상으로 설정하면 ‘이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괴상한 신조어, 한글을 파괴하는 줄임말, 소통을단절시키는 인터넷 용어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내가 그것을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긴다.

애석하게도 그 믿음은 명백한 오만이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 강조해야 할 것>에서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세대가 아랫세대를 두려워하고 오해하며, 그들에게 생색을 낸다는 사실은 역사와 기억의 일치가 가져오는 하나의 기능이다.

신문의 언어, TV의 언어, 잡지의 언어, 논문의 언어, 유튜브의 언어가 모두 다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매체가 무엇이든, 이 시대 주요 매체에서 사용하는 어휘와 멀어져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가 수호해야 할 문학성, 언어의 역사성과 품격이 존재한다. 그런 언어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인격을 고양시키는 자양분이다. 그러나 ‘소통‘하는 언어,
즉 거리와 광장의 언어를 외면한 채 글자 속 세계에만 파묻힌다면 군중의 마음도 사회의 생생함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줄임말에 덧씌워진 또 한 가지 누명은 ‘소통의 단절‘이다. 사람들은 흔히 줄임말 때문에 신구 세대가 쉽게 소통할 수없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의 말은 외계어 같아서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말은 애초에 다른 세대와의 소통을 목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다.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뜻을 알아도 소통이 안 되는두 집단은 영원히 소통할 수 없고, 청소년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줄임말인 싸강(사이버강의)을 몰라도 말이 통할 사람들은 통한다. 소통에서 어휘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왜 줄여?‘가 아니라 ‘그걸 왜 줄였을까?‘ 하고 궁금해하는태도면 일단 소통할 자세는 준비된 것이다.

어떤 세대, 어떤 집단에든 그들끼리 자주 쓰는 줄임말이존재한다. 별걸 다 줄인다는 의미의 별다줄 역시 줄일 만한 이유가 있어 줄인 말이다. 별게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별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말을 쓰는 집단에게는 그만큼 자주 쓰는 말이고 누구나 쉽게 인용할 수 있게끔 하는 단축키 같은 존재다.
누군가는 컨트롤+C가 없는 문서 작업을 상상할 수 없듯, 누군가는 버스 카드를 빼카라고 부르지 않는 생활을 고단하게 느낄수있다

무배(무료 배송), 무나(무료 나눔), 택포(택배비 포함), 착샷(착용샷)과 같은 줄임말이 친숙하지 않다면 온라인 물물교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매일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고등학생에게 편도와 삼김은 일상적이고 친숙한 단어이므로 줄여 부르는 것이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렇듯 어떤 줄임말이 익숙하지 않다면그것이 당신의 일상에 바짝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일상생활의 반영이다. 우리 일상의 변화를 보여주며,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다면 사전 속에서 밝기 쉽다. 줄임말은 오늘날 우리가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개념과 용어의 상징이다. 오늘의 일상성이 줄임말의 생성과 변화에 촘촘히스며 있다.

이런 관점에서 줄임말을 이해한다면 줄임말은 별걸 다 줄이는 말이 아니라, 사회의 전형성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흥미로운 도구가 될 것이다.

만약 줄임말로 말미암아 세대간의 소통이 단절된다면,
줄임말이라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언어가 줄여지고 함축된 배경과 서사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줄임말은 ‘애정‘의 정도를 반영한다. 박상륭 소설가는 몸과 마음을 합쳐 ‘맘‘이라 부른다. . 몸과 마음이라는 말보다 맘으로 줄여 말하면 그 뜻이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게 중요한 것, 친숙한 것들을 합치고줄여 부르는 행위는 애정에 기반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와일상을 담은 언어는 ‘빈번하게 쓰니까‘ 줄여 말하고 싶고, 이렇게 바뀐 언어는 애정을 환기한다.
스타벅스를 스벅으로, 올리브영을 올영으로 부르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침투한 브랜드는 줄임말로 불린다.
어떤 브랜드에 애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그만큼 애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줄임말은 일상 언어의 애칭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내게 언어로 트렌드를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접두사와접미사를 살펴보라고 답할 것이다. 유튜브 댓글에 유난히 많이쓰이는 접두사가 있는지, 쿠팡 후기에 유난히 자주 달리는 접미사가 무엇인지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람들의 어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드립의 원천인 그 단어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는 그 언어들이야말로 트렌드를 보여주는 훌륭한 재료들이다.

육아 퇴근, 햇살 맛집, 얼굴 천재는 ‘하이브리드 언어‘다. 우리일상 속 다양한 영역의 속성들을 모아서 새롭게 조합하고 조립하여 완성된 언어다. 이 언어들은 블록과 같아서 자신의 기호와 상황에 맞추어 자유롭게 골라 쓸 수 있고, 누구나 자신만의버전으로 재조립할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언어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스며 있다.
‘육아는 퇴근이 필요한 과업‘이라는 합의, ‘맛있는 음식점뿐만아니라 무엇이든 자신만의 주특기를 발휘하는 곳이 맛집‘이라는 합의가 언어로 발현된 것이다. 하이브리드 언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언어 세계를 확장한다. ‘천재‘는 지식의 영역에서만 가능할까? ‘퇴근‘은 회사에서만 가능할까? 얼굴 천재와 육아 퇴근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해묵은 언어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만의 아카이브 관련 해시태그는 내 관심사로부터 시작한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 레시피, #○○집밥처럼 이름이나 닉네임을 내세워 자신의 활동을 추적 및 검색가능한 하나의 기록으로 만든다. 나만의 해시태그지만 누구든검색할 수 있으며, 그것이 축적되면 내 관심사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다. 즉 나만의 오픈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라라의맛집 홍대 #라라의맛집_서면처럼 해시태그 안에서 분류를 추가하는 것도 최신 트렌드다.

시대상을 읽기 위해 활용하는 텍스트가 있다. 이전까진공익광고 선전 문구, 상업광고 카피, 대중매체 유행어 등이 그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 역할은 해시태그에 넘어왔다. 이 시대의 생활 풍경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재료는 단연 해시태그다. 어떤 언어가 해시태그로 활발하게 사용되는지, 의식주 분야에서가장 최근의 해시태그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즐겨 하는 경험이어떤 해시태그로 표현되는지, 최근 유행하는 해시태그 챌린지는 무엇인지를 의식하고 눈여겨보자. 패션, 음식, 리빙 분야의최신 잡지 몇 권을 읽는 것보다 지금 뜨는 의식주 해시태그를 하루에 10분씩 훑는 편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훨씬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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