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괴감 속에서 헤엄치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스스로의 한마디. ‘또, 또 건방진 생각한다. 맞다, 건방진 생각. 대체 내가 뭐라고, 이 글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이걸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나. 수많은 이들의 계급적 입장과 경험적 차이와 정치적 상황과 개별적욕망이 각각의 언어로 떠도는 거대한 공론장 안에서 한 마감노동자의 담론 기여라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강력한 논의를 발아할 만큼 좋은 글을 쓰지 못한 것도있겠지만, 사실 한 편의 글이 세상의 인식을 흔들고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허구다.
중요한 건, 내가 꾸준히 쓰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꾸준히문제제기를 할 것이며, 그 수많은 담론적인 기여와 다툼과 소란스러움이 모일 때 언어의 카오스처럼 보이던 공론장 안에서 작게나마 논의를위한 지평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뾰족한 마음>으로 지은 건 그래서다. 내가 생각하는 뾰족한 마음이란 세상에 뭔가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며전투적인 태세를 취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종종 그런 태도로 글을 쓰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다. 내가 뭘 해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회의와 냉소에 빠질 꽤 많은 이유들에 무기력하게 타협하지 않기 위해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며, 어차피 다들자기 편한 대로 받아들이리라는 핑계로 사유와 언어를 벼리지않고 뭉툭한 정념의 덩어리나 내뱉지 않기 위해서도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다. 대단한 사람이라 뾰족한 게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대단하지 않음이 모여 만들어낼 새로운 전망을 믿기 위해 뾰족해지려는 것이다. 이것이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 세상에 말 걸기위한 내 나름의 방식이다. 아마 나만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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