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꼬리 치기 위해 탄생했다 - 아름다움이 욕망하는 것들
스티브 다얀 지음, 서영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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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라이너와 화장품 몇 가지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집어 든 책,<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외설스러운 책은 전혀 아니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공부하고 발견한 이야기. 읽다보니 나도 "외적인" 아름다움에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인용한다.

 

뉴욕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1,000명 이상의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먼저 실험 참가자들의 주머니와 은행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한 다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짝과 몸무게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 결과 재정적으로 형편이 안 좋은 편인 남자들은 몸이 더 뚱뚱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결과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가던 배고픈 남학생들 역시 배부르게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가던 남학생들과 비교할 때 몸이 더 뚱뚱한 여자를 선호했다. 남자들은 배고픈 정도와 재정 상태에 따라 매력적으로 느끼는 여성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사회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문화권과 가난한 나라에서 살찐 여자들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p.84

 

따라서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을 원하고 그런 사람과 짝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 남성들은 자원을 축적하면 자존감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미인에 대한 기준도 높아진다. 자원이 적었을 때는 객관적으로 덜 아름다운 여성에게 끌렸으면서 말이다. 과거에 그의 잠재의식은 자기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했었다. 자신을 거절할 것 같은 사람에게 자원(에너지)을 낭비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들은 6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에게는 8점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이 늘어나서 자존감이 높아지면 객관적으로 더 매력적인 상대를 원한다. 자신에게 최선의 짝은 8점이나 9점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전에 원했던 사람이 더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높아진 자존감 덕분에 전에는 8점으로 보였던 사람이 이제는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6점으로 보인다.  -p.156

 

여성이 자존감이 낮으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요인은 남편이 그녀의 외모를 비판하거나 모욕하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는 또래 집단의 다른 남자들에 비해 돈이나 사회적 지위같은 자원을 기대만큼 획득하지 못했을 때 자존감이 낮아진다.  -p301

 

자존감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타적 관심이 추가되면, 즉 자애로운 자존감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도 자신감이 있을 뿐 아니라 가족이나 이웃에서부터 먼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남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자애로운 자존감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끝내거나,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데, 이는 세상을 바꾸는 천재들이 가진 특징이다. p.302

 

덧붙임)

1. 나는 성장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은 상황이었으나 남편이 하도 칭찬을 해대서 자존감이 높아진 케이스.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근거가 있었군, 여보 고맙습니다.

2. 이타적 관심을 추가한 "자애로운 자존감". 두 딸에게 불어넣어주고 싶은 맹렬한 이 엄마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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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맨발
송수권 지음 / 고요아침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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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문학사출신으로 그냥 시를 너무 잘 써서 국립대 교수가 되신 특이한 이력이나 절창인 <산문에 기대어>같은 시들의 해설을 볼 수 있는, 송수권 시인의 소소한 뒷모습들을 알 수 있는 자전적 수필이다. 더불어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아내 수술비를 위해 쓴 책이기도 하다. 2003년도 책인데, 그 후로 사모님의 백혈병은 어찌되었는지 검색을 해도 알 길이 없다. 아마 언론에 사생활로 알려지고 싶지 않으신, 시인이라 시로만 알려지고 싶으신 선생님의 신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뛰어난 소설가나 뛰어난 시인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예전에 박범신선생님의 수필을 읽다가 본 모습과 송수권선생님의 모습이 왜 이렇게 닮았을까. 박선생님은 신혼시절 단칸방에서 글을 쓰면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서 물 한잔 가져다줘도 신경질을 벌컥 내서 아내가 한밤중까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다고 했는데, 송선생님도 단칸방에 길게 엎드려 시를 쓰면 아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밖으로 한참이나 나가있었다고.. 아니. 시인들은 이렇게 살아야 시가 나오는가? 참 이상하다. 송수권 선생님은 교사라 멀쩡히 교편을 잡다가도 방학만 되면 처자식 버려두고 광인이 되어 비렁뱅이처럼 이곳저곳 전전하며 시를 쓰셨단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 이러신가. 내가 사랑하고 행복해했던 시나 소설들은 다 이렇게 아내의 희생을 눌러 짜내서 쓰신 것들인가. 참. 같은 아내로서 입맛이 쓰다.--;;

 

 

뭐 그래도 송수권선생님의 시가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 2부에 실린 좋은 시들 중 하나를 옮겨본다. 중학시절 읽었던 <메밀꽃 필 무렵>이 다시한번 마음 속에 그려지는 허생원의 달랑달랑 나귀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한 시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청각적 심상"을 자극하는 서정시. 풍경묘사도 뛰어나 이런 시를 읽으면 나는 눈 앞에 장면이 펼쳐져서 그만 또 빨려들어가고 만다.

 

     봉평 장날 

 

짧은 겨울해

장꾼들도 돌아가고 날은 어둑신하게 저물었다

가산의 빗돌만이 장터 마당에 

을씬하니 서 있다

한 마장쯤 길을 따라 올라가니

구색을 맞추려고 차려놓은 물방아간과 말집

그 말집 속의 허생원이 타고 다녔던 나귀

옹색하니 저 혼자서 방울을 흔들었다

국밥 대신 충주 댁에 들러 올챙이 묵

한 그릇을 먹고 나오는데

기다렸다는 듯 

흰 눈발이 촐싹였다

마방 앞에 놓인 여물 써는 빈 작두

내일 날씨라도 걱정해서일까

어디선가 자꾸만 기침 끝에 곰방대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 p.198, <아내의 맨발>

 

 

사실 이 시집은 아내의 맨발이라는 이름으로 된 연작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아마 사연을 잘 모르고 읽기 시작했던 나같은 사람은 더 뭉클할 듯하다. 1부 하늘돌에 "띄우는 편지"에 이런 부분이 있다.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연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 없이 놀던 때 있었다

...(중략)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으로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p.16,<아내의 맨발>  

 

아픈 아내에게 당신의 피를 먹고 자란 시인이 피 한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이 시를 쓴다고 탄식하는 늙은 시인의 모습이 애처롭다. 아내가 죽으면 결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외치는 마음이 뭉클하다. 사모님 어서 회복하셔서 송선생님과 행복하셔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 선생님이 젊어서 잘하셨어야죠! 하는 얄미운 생각도 드는 게 사실--;;)

 

절필하지 않으셨길. 사모님은 회복되셨길. 좋은 결과를 감추고 계신 것이길 바래본다.

 

(서평 제목을 '아내의 피를 먹고 쓴 시'라고 썼더니 쓰고보니 너무 무섭네. 요새 흡혈귀이야기가 인기라던데. 사실 본 책 18쪽 '아내의 맨발 1- 연엽에게'에 나오는 표현을 둘러 쓴 것. "너의 피를 먹고 자란 시인"이란 표현인데 역시 시인과 범인의 차이. 시인이 쓰면 아련한 죄책감이고 나같은 범인이 비슷하게 쓰면 매우 흡혈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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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여섯살 딸과 둘이서 이촌역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에 다녀왔어요. 방학을 맞아 자녀 동반 관람하실 분들께 혹 도움이 될까 해서 씁니다. 

 

경의중앙선이나 4호선 이촌역에서 내리셔서 2번 출구로 나오면 지하 에스컬레이터로 쭉 이어지는 박물관 가는 길이 잘 표시되어 있어요. 가는 길도 아주 잘 되어 있어요.

 

지하길에서 지상으로 벗어나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1층에 어린이 박물관 입구가 있고 가는 길에 편의점과 매점도 하나씩 있어요. 또 박물관 안에 푸드코트도 있고,100원 넣고 사용 후 돌려받는 사물함도 잘 되어 있습니다. 곳곳에 의자도 많고 도시락을 먹는 곳도 있어요. 무료로 휴대폰을 충전하는 부스도 있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아이폰도 충전되는 칸(2번)이 있어서 저도 활용했네요.

 

어린이 박물관은 무료이지만 원활한 관람을 위해 회차별로 미리 티켓을 준비해야하는데 인터넷으로는 방학이라 아마 매진일 거예요. 저희는 위층 극장 용에서 뮤지컬을 보고 나오는 바람에 고맙게도 현장표를 기다려서 받았어요. 인터넷 예매를 못하신 분들은 포기하지 말고 저희처럼 기다려서 표를 받으면 될 것 같아요. 저희는 4회차 13:30 입장으로 보았습니다. 운 좋게도 저희 앞에 세분이 줄서서 기다리셔서 오분도 못되어 아슬아슬하게 매진직전에 받았어요.

 

참, 티켓 받고 입장 전에 박물관 안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에서 꼭 사가셔야 할 것이 있어요. 1200원짜리 파일인데, 그 안에 화선지와 색지, 엽전 탁본할 종이가 들어 있어요.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라면 안 사셔도 되겠지만, 유치원생이거나 저학년이라면 꼭 사가실 것을 권합니다. 다른 아이들 중에 그냥 들어와서 관람하면서 그거 어디서 사냐고 묻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어요.  

 

어린이 박물관 안에도 유아실처럼 큰 방이 있어서 아기들 데리고 가신 분들 쉬실 수 있겠더라구요. 안에 화장실도 또 있었구요. 무료인 것 치고는 참 괜찮은 방문이었어요. (너무 어리지 않은) 아이 데리고 한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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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완전개정판 다빈치 art 3
J.M.G. 르 클레지오 지음, 백선희 옮김 / 다빈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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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이 분명한 걸 좋아한다. 독선적이고 오만해보인다고해도. 그게 내가 프리다 칼로에게 빠져드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냥 이 여자의 삶과 작품을 자꾸만 보게 된다.

"내가 되고 싶은 여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프리다는 같은 일기장에 쓴다. "광기의 장막 너머에서 난 온종일 꽃다발을 만들것이다. 고통을, 사랑을, 애정을 그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소리 따윈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 모두들 말하겠지. 불쌍한 미친 여자라고"  - p.258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의외였던 것은 그녀도 정숙한 아내는 아니었다는 것. 여자를 너무 좋아했던 디에고 리베라만 리베르하게 산 게 아니라 결혼 생활 동안 프리다도 숱하게 많은 애인들이 있었던 것. 물론 동기가 다를 수 있겠지. 책에서는 디에고 리베라를 "식인귀"라고 할 정도로 여자를 잡아먹는 남자라고 하는데, 그런 남편과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어쩌면 내키지도 않는 연애를 끊임없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랄까. 자신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했다가 우울증이 극심해져 결국 재혼하게 되었을 때 재혼의 조건이 '부부관계를 갖지 않을 것, 프리다의 생활비는 프리다가 댈 것' 이었다는 것이 친구 말마따나 정말 알량한 자존심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참 많은데, 그 이유는 너무 외롭기 때문이라던 말이 서글펐다. 사진으로는 정말 예쁘고 젊은데, 자기 얼굴을 왜 이렇게 안 예쁘게 그렸을까 그러면서도 늙고 못생긴 디에고는 왜 이렇게 잘 생기게 그렸을까. 자아존중감이 바닥인가, 디에고에 대한 사랑은 맹목적인 동경에 가까운가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디에고를 "나의 아이, 나의 우주"라고 했는데, 세번이나 그의 아이를 유산하고도 이럴 수 있을까. 아이에 대한 풀 수 없는 갈망을 디에고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해 버린 걸까. 뭔가 사랑이라기 보다는 강박이나 자기최면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디에고에 대해 나는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우스운 얘기지요. 디에고는 누구의 '남편'이 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연인이라고도 하지 않겠어요. 그는 성(性)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있으니까요. 내가 그를 아들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감정을 묘사하거나 그릴 뿐입니다.

-p.255

 

칼로의 삶은 책으로 봐도 작품으로 봐도 극적이고, 불편하고 충격적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조차도 칼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이 그녀의 삶을 참 잘 표현한 말같아 인용한다.

"...너도 잘 알겠지...넌 하늘 없는 밤이 짓밟은 정원같았어. 넌 태풍이 후려친 창문 같았어. 넌 핏 속에 나뒹구는 손수건 같았어. 눈물 잔뜩 머금은 나비같았고, 짓밟히고 부러진 하루 같았고, 눈물의 바다 위에 떨어진 눈물 같았지. 의기양양하게 노래하는 삼나무 같았고, 모든 사람의 길 위로 비추는 햇살 같았지..." -p.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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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전시 찾으시는 분들께 프리다칼로 전 정말 추천하고 싶네요.

저는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어디서 티켓을 제공받은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그냥 제가  *팡에서 11000원 티켓으로 구매해서 보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이게 이렇게 좋게 느껴진 것은 사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디에고 리베라 전이 상대적으로 빈약했기 때문이예요. --;;  한 주 차이로 두 전시 모두 관람했는데 프리다 칼로전이 혹시 먼저 기획되어 중요 작품들이 소마미술관으로 다 빠지고 남은 것만 세종문화회관으로 갔나 싶을만큼 차이가 났답니다. (저만 이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디에고 리베라 전은 다 보고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같은 입장료인 프리다 칼로 전은 그 세 배를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당연히 디에고 리베라 전에 그의 작품이 더 많았는데 디에고는 벽화로 유명해서 벽화를 멕시코에서 뜯어올 수는 없기에 사진으로 재구성한 것이죠. 프리다 칼로는 진짜 작품들이 온 거구요.)

 

총 다섯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작품들이 실물로 눈 앞에 있을 때의 감격은 정말 차원이 다르더군요. 방학기간이라 초등학생도 심지어 유치원 생도 있던데,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기에는 그래도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도슨트도 시간에 맞춰 들을 수 있는데 저는 오디오 가이드로 빌려 들었어요. 정말 좋아서 각 전시실을 한 번 다 보고도 또 한 번, 특히 2,3전시실은 세 번이나 더 가서 다시 보았어요. 1949년작 <우주,지구,나,디에고,그리고 솔로틀이 벌이는 사랑의 포옹> 앞에서는 정말 한참 서 있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도 연속해서 두번, 총 세번 들었다는...

 

시간에 맞춰 영화도 상영하고 다큐멘터리도 틀어줘서 원래는 저도 보려고 했는데, 작품들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일단 영화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냥 너무 벅차고 작품들과 오디오 가이드 해설이 마음에 너무 꽉 차올라서 혹시라도 이 마음이 망가질까봐 일단 영화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 아마도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 영화화 되었을 때 조심스러운 마음 같은 -이었지요. 그런데 퇴장하면서 옆에 분이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들으니 영화도 그렇게 감동적이었다네요.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요. 전시 가기 전에 저도 이 영화를 미리 보고 가고 싶어 찾아봤는데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저도 보고 올 것을 그랬나 살짝 후회도 됩니다. 

 

저는 프리다 칼로에 관한 책들을 미리 두어 권 읽고 갔고 아마 그게 작품을 보면서 좀 더 그녀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게끔 도와줬던 것 같습니다. 혹시 프리다 칼로를 잘 모르시는 분은 미리 책을 통해서나 검색을 통해 충분히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가시길 권합니다.  

 

좋았던 것 중 또 하나는 멕시코 근대 미술을 정리해놓은  제5전시실이었어요. 프리다칼로 전을 통해 오히려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디에고 리베라는 부인이 총 4명이었는데 프리다 칼로는 세번째 부인이었어요.) 이전까지는 젊고 예쁜 프리다 칼로가 대체 왜 늙고 뚱뚱한 디에고 리베라를 그렇게 사랑했는지가 이해가 안 갔는데, 멕시코 혁명과 연결지어 보니 그가 대단한 사람이긴 했더군요. 멋있었을 법도 했어요. 300년간의 스페인의 식민지배 후 문맹률이 높던 때 민중의 교화를 위해 예술가들로 하여금 정치적,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벽화를 그리게 했는데 이 때 디에고 리베라가 빛났던 거죠. 그 벽화를 그리던 사십세의 혁명가를 스무살의 프리다가 동경한 거구요. 그러나 프리다 칼로를 먼저 알았던 제게는 사실 디에고 리베라는 혁명가이자 천재 벽화가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난봉꾼, 아내의 여동생과 바람난 개망나니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었기에 -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서 자꾸 프리다 칼로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 아무튼 멕시코 근대 미술을 정리해 놓은 부분도 참 좋았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1910년을 자신의 탄생해로 정했다는 사실은 참 의미심장하죠. 그녀는 혁명가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또 디에고를 사랑한 나머지 Diego 와 운을 맞추기 위해 원래 이름 Frieda를 Frida로 바꾼 것도 참 그렇죠. 디에고를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했으니까요. 삶을 선택한 여자랄까. 끔찍한 사고와 사건들을 겪었음에도 꽃처럼 피어났던 그녀. "나는 아픈 게 아니다. 나는 부서졌다"고 썼던 그 말도 잊혀지지 않고 여운이 내내 남네요. 정말 좋은 전시였습니다. 저는 친구나 아이 동반 없이 혼자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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