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 문인화 2 보림한국미술관 11
김현권 지음 / 보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 전시회에 가서 그들의 작품 중 과연 몇 점이나 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이 없었던 전시회는 몇 달 지나면 거의 생각나는 작품이 없습니다. 간송미술관이나 경기도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모두 한두 번씩은 들러보았네요. 하지만 아주 유명한 서너 작품을 빼고는 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요. 

희미한 미술관 불빛 아래에서는 내 눈길을 잡아두지 못했던 작품들이 비로소 내 눈길은 물론 마음까지 잡아끕니다. 그래서 나는 보림한국미술관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환한 거실에 앉아 천천히 앞뒤 사람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봅니다.

어느새 나는 물을 바라보는 <고사관수>의 선비가 되었다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장대한 폭포를 바라보는 <관폭>의 선비가 되기도 합니다. 자연을 그린 작품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했던 옛 선비들의 소원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한 여인네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네요.

<계산포무>는 설렁설렁 대충, 하지만 거침없이 휙휙 그렸습니다. 그 대충과 설렁설렁이 바로 작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에 그저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작가 전기가 아파 누워 있으면서 수풀이 우거진 산과 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풍경이라서 쓸쓸할 수밖에 없었다니 말입니다. 작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참 성의 없이 그렸다며 책장을 넘겼을 법하지만 이젠 작가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옛사람들은 그림도 아무나 그리지 못했습니다. 훌륭한 인품이 어우러진 선비의 그림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비들은 자신의 그림에 마음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사실 표현이 아닌 느낌이나 감정이 담긴 선비의 정신 세계 말입니다.

중국 선비 예찬의 뜻을 본받고자 한 심사정의 <방운림필의>에서는 초라한 정자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가지만 앙상한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해서 쓸쓸하고 스산한 느낌까지 듭니다. 작가가 졸지에 역적 집안의 자손이 된 후 은거하면서 그린 그림이라는 한마디에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습니다.

첫눈 내린 날 늦은 오후의 선비 마음을 그린 신위의 <강촌초설>은 우리집 거실에 걸어두고 싶어지는 작품입니다. 보면 볼수록 욕심이 나는군요. 간단한 붓질로 듬성듬성 작은 집과 나무와 배 한 척을 그린 쓸쓸한 강촌의 모습입니다. 한가로워 보이는 그 모습 속에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니 제 마음이 끌린 이유가 있구나 싶어집니다. 요즘 제가 친구들이 많이 그립거든요.

자꾸 그림을 들여다보고 설명을 읽어보니 그림이 보이고 작가의 마음이 보입니다. 이 책이 많은 아이들의 책장에 꽂혀 작품을 외우지 않고 그린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갔을 때 우리 선비들의 그림 앞에서도 오래오래 멈춰서서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줄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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