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그릇, 도자기 보림한국미술관 13
방병선 지음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릇 정리를 좀 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그릇들은 플라스틱과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은 그릇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엔 포장도 뜯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편리함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요즘의 그릇들은 이렇게 한두 번 쓰고 버려도 서운하지가 않다. 애정을 줄 새도 없이 새로운 그릇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을 닮은 그릇, 도자기>는 사람들의 애정이 가득 들어 있는 우리네 민족의 그릇 이야기이다.  이미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한 번쯤 본 적이 있어 반가운 도자기가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저자는 그 도자기들이 품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곁에서 설명해주듯 하나하나 들려준다. 글씨가 작아 성인용 책 같지만 박물관에 다니면서 도자기를 눈에 익혀둔 6학년 정도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

잡지보다도 큰 판형에 시원시원한 편집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책 자체가 예술품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만 보다가 궁금하면 글을 찾아 읽어도 될 것 같다. 그릇은 어디서 구웠을까?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가마 안의 온도는 어떻게 쟀을까? 미술품에 물고기가 등장하는 것은? 등의 물음에 답해주는 코너가 있어 도자기 제작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도 덤으로 배울 수 있다.

강진에 있는 청자 미술관에 가면 상감 기법으로 무늬를 새기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도 있는 모양이다. 조각칼로 무늬를 새기고 흑색 또는 백색 상감토로 조각한 부분을 메운 뒤 그릇 표면의 상감토를 긁어내는 과정이 사진으로 나와 있어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이사 가는 곳이 강진과 가까우니 꼭 한 번 들러보아야겠다.

이 책에는 우리 그릇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우리 그릇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용도로 쓰였으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가다 보면 선조들의 삶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살아 있는 그릇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이 없는 그릇은 그릇이 아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어야 살아 있는 그릇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청동기의 제작비 때문에 발달한 삼국 시대의 토기는 가야를 거쳐 일본까지 전파된다. 중국 청자를 부러워하다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낸 고려의 청자는 결국 세계 최고의 상감 청자를 탄생시켰다. 고려 말 청자가 쇠퇴하면서 생산된 분청사기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단순미가 돋보이는 조선의 백자에는 사대부들의 근검과 절약 정신은 물론 인간미까지 깃들어 있다.

작품의 생김새나 장식, 그림 등에 깃든 세세한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박물관에 와 있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어도 그 시대 사람들을 느낄 수 있고,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이 책이야말로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역사 공부가 저절로 된다.

박물관에 갔을 때 우리 아이들이 가장 발길을 오래 머무는 곳이 바로 화려하고 예쁜 도자기 전시관이다. 미리 이런 책을 읽고 갔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는 높아진 안목으로 그릇 속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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