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침묵의 봄.

 

 

 

 

 

 

  1955년의 어느 날, 당신이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에 있었다면 정말 진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양이들이 낙하산을 메고 마치 공수작전에 임하듯이 엄숙하게 하늘에서 뛰어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지금이라면 정말 저런 일이 상상도 안 되고, 누구나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겠지만, 저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보르네오 섬의 지나치게 늘어난 쥐를 없애기 위해서 그 천적인 고양이를 영국 공군의 도움을 받아서 공수해온 것이지요. 이를 우리는 ‘보르네오 섬 고양이 공수 작전’ 이라고 후에 일컫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공수작전이 시행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말라리아에 있습니다. 보르네오 섬은 아열대 기후로 기온이 높고, 습지가 많아서 모기가 들끓었는데, 아시다시피 말라리아는 모기를 숙주로 하는 전염병입니다. 모기가 많으니 자연스레 말라리아의 유병률도 늘어날 수밖에요.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서 그 숙주인 모기를 없애기로 마음을 먹고 마을에 DDT를 대량 살포합니다. 두 번에 걸친 대대적인 살포는 마을을 말라리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만, 그 대신 흑사병이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너무 놀란 세계보건기구는 바로 조사에 착수하는데, 흑사병이 찾아온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DDT에 바퀴벌레가 오염이 되고, 바퀴벌레를 도마뱀이 먹고 오염되어버리고, 오염된 도마뱀은 별로 행동이 민첩하지 않았기에 고양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었지요. 그 결과 고양이들은 마찬가지로 DDT에 오염되어버리고, 결국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마을에 고양이들이 씨가 마르자, 고양이들의 또 다른 먹잇감이었던, 그리고 상대적으로 DDT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던 쥐들이 날뛰게 되고, 쥐를 숙주로 하던 흑사병이 마을을 마치 사신처럼 그의 소매로 휘감았던 것이지요. 이 늘어난 쥐들을 없애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저 작전, ‘보르네오 섬 고양이 공수 작전’ 이 펼쳐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마을을 닥친 재앙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고양이들은 무난히 쥐들을 포식했지만, 그렇게 쥐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후에는 다시 도마뱀에게 그 이빨을 들이대었고, 도마뱀들마저 고양이의 배를 채우는데 희생이 되자, 이번에는 그 도마뱀들의 먹잇감이었던 나방의 애벌레가 집들의 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지붕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악의 연쇄반응은 바로 한 화학물질, DDT의 남용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요.

 

 

  환경학 분야에서 고전으로 일컫어지는 ‘침묵의 봄’은 바로 저런 DDT와 같은 화학물질들에게 그 포격을 정조준 합니다. 유기인산화계열의 살충제든 염화탄화수소계열의 살충제든 어느 화학물질이든지 나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화학물질의 나쁨은 여러 연구를 통하여 뒷받침되고 저자인 레이첼 카슨이 듣고 수집한 경험들로부터 증명됩니다. 정말 미량의 DDT를 페인트에 섞어서 피부에 노출시켰는데 각종 문제점이 일어났습니다. 뼈마디가 아프고 정신상태가 혼미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살충제를 살포하는 화학적 방제법이 아닌 다른 방식의 방제법을 이용한다면, 예를 들어서 천적을 이용한다거나, 곤충을 불임시키는 화학 처리를 한다거나, 특정 초음파를 이용한다거나 등의 방식으로, 우리가 위험에 처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DDT를 비롯한 화학적 살충제의 해악은 최근 연구들에서도 더욱 더 많이 밝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방세포에 잔류하여 차곡차곡 축적이 되던 화학물질들은 그 지방세포가 연소될 때, 마치 댐이 무너지듯이 우리의 혈류로 뿜어져 나옵니다.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이런 화학물질들은 생체를 교란시키고 이상 반응을 일으키게 하며 이윽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합니다. DDT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초등학생들도 학교에서 배워갑니다. 생체축적물질이라는 사실까지 덤으로 말이지요.

레이첼 카슨이 이 책을 쓰고 난 뒤, 미국 전역에서는 DDT의 해로움에 대해서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DDT 등의 살충제를 쓰지 않도록 하는 운동이 점화되었습니다. 이런 운동은 누구나 생각해보면 자명해보이지만, 이 책이 설파하기 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잠깐 다른 방향으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자 합니다. 과학자에 가까운 저로서는 여기서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화학물질이 상당히 나쁜 것들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밑줄 치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그녀가 가져온 모든 예시는 화학물질은 사악하고, 죽음의 비술에 쓰이는 물질이며, 고대의 악마를 불러낼만한 것이다, 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은 72악마를 부렸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악마들을 사역하여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고 그랬었다지요. 마찬가지로, 이런 화학물질들도 꼭 사악한 물질들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DDT를 가지고 단적인 예를 들자면, 물론 DDT를 농업에서 퇴출시킨 것은 옳은 결정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제 작업들, 앞서 보르네오 섬의 이야기에서도 나왔듯 말라리아를 방제하는 것에서까지 쫓아낸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DDT가 쫓겨난 뒤, 두 배 이상 비싼 살충제가 DDT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환경적으로 그나마 친화적인 살충제이겠지요. 그런데 이 살충제는 동일한 비용으로 이전의 DDT가 커버했던 지역의 반밖에는 커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을 생각해봅시다. 과연 그 곳에 있는 나라들이 두 배 이상 비싼 저 약들로 말라리아 방제를 쉽게 해나갈 수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DDT는 분명, 초기에 발견되었던 것처럼 기적의 약도 아니고, 이후 연구를 통하여 수많은 해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등의 질병을 통하여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살충제를 쓰면 앞으로 암이 걸릴 수 있으니 당신들에게 사용할 수 없겠습니다.’ 라고. 과연 그 사람들은 앞으로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는 암을 위해서 지금 당장의 말라리아를 그냥 참고 견딜까요?

물론 DDT 등의 화학물질의 효과가 단순히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 중에는 즉각적으로 생명에 위협을 줄 수도 있는 효과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DDT와 같은 해악이 알려진 화학물질들을 다시 사용하자, 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사악한’ 물질들을 안 쓰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악한’ 힘이라도 빌려야 살아나갈 수 있는 곳들에게서까지 엄격하게 종교재판 하듯이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너무 신성하게 여기며 환경운동에 단편적으로 책 내용을 가져가는 자세는 위험하리라고 여겨집니다. 애초에 그런 태도는 저자 자신도 이 책에서 지양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충분한 연구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부분이 이 책 ‘침묵의 봄’ 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어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얼마나 ‘사악한’ 물질을 남용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앞서 저는 첫 문단을 ‘이 모든 것은 DDT의 남용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라고 마무리 지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남용’ 입니다. 어쩌면 세계보건기구는 DDT를 가지고 성공적인 말라리아 방제 작업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적절한 곳에 적절한 양을 가지고 이용했다면 말이지요.

 

 

  MSG라는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 이 화학물질은 우리가 상품명 ‘미원’ 이라고 일컫는 물질인데, 요리에 집어넣으면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다섯 가지 맛이 혀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 맛은 정말 만들어내기 어렵지요. 그런데 이 MSG는 요즘 우리 식품계에서 퇴출당한 상태입니다. MSG를 많이 먹으면 소위 말하는 ‘중국 음식 증후군’, 그러니깐 마구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울렁거리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며, 시력도 나빠진다고 하지요. 그런데 2010년에 우리나라 식약청에서 MSG를 평생 먹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라는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저 MSG는 토마토에도 들어있고, 다시마에도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토를 많이 쓰는 이탈리아 음식이 감칠맛이 있고,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로 육수를 쓰는 국수가 맛있는 것입니다. 천연의 MSG와 합성된 MSG가 과연 분자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동일한 탄소수에 동일한 결합구조일텐데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절한 양입니다. 그저 토마토에 들어있는 정도의 MSG를 요리에 쓴다면, 다시마로 우려낼 정도의 MSG를 쓴다면 크게 문제가 없고 동시에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저렴한 가격으로 맛을 내려고 하다 보니 음식점에서 MSG를 많이 쓰게 되고, 이윽고 이런 저런 증후군들이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이제 다시 DDT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DDT도 MSG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영웅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 영웅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인간이라는 말이 있던가요, 마찬가지로 사실 이런 화학물질은 ‘그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사악함을 부여하고, 선함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저 거기 있었던’ 물질을 찾아서 쓰는 것도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이 선한 용도에 맞게 소량을 쓰고 욕심을 버리며 깊은 연구를 한다면 이 책에서 순수한 악처럼 보이는 DDT도 선한 물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충분한 연구도 없이, 아니, 하다못해 충분한 고려도 없이 비용 절감 등과 같은 문제들을 위해서 적절하지 않은 양을 적절하지 않은 곳에 쓰게 만드는 인간의 욕심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욕심을 잘 줄일 수 있느냐에 우리 인간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것이 이 책 ‘침묵의 봄’ 이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p. s. 책 자체는 좋은 책이지만... 너무 제가 반항정신이 투철한 것이려나요..ㅎㅎ

       하지만 화학물질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라는 글들은 분명 많이 올라올테니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13-10-22 01:0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님의 리뷰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렇게 좋은 리뷰를 읽을 수 있다니, 오늘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연 2013-10-22 12:57   좋아요 0 | URL
헉.. 알라딘의 그 마태우스님이신가요? 이런 초 마이너블로그에 찾아와주셔서 순간 사칭이 아닌가, 잠깐 생각했습니다만.. 하하하하하... 그럴 리 없겠죠? 좋은 리뷰라고 칭찬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 아직도 눈이 초롱하네요, 쳇.

책 이야기나 좀 끄적거려야겠네요.

 

 

사실은.. 완역된 로마제국 쇠망사를 사고 싶었지만 6권에 12만원을 넘는 가격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주춤거릴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았는데, 기번의 책의 편집본이라는게 상당히 걸려서 안보던 책이었지만 자그만치 50퍼센트 할인이란다. 오십퍼센트 할인이라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는데... 요기 알라딘에서 그런 할인을 하는거 있지, 도저히 안살수가 없어서 그냥 사버렸다네...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지. 진짜 반값에 이런 책을 구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 값 다주고 사기에는 약간 아쉬운 책이긴 하다. 이런.. 역자분들과 출판사분들께는 죄송하네요. 언제까지 반값할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제국 쇠망사의 맛을 보고 싶은 분은 이 책을 구매하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점에서 살짝 들쳐본 책인데 생각보다 매우 괜찮은 책 같다.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랄까. 드라마 ROME과 함께 시청한다면 매우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뭐, 드라마 로마는 사실 옥타비아누스 쪽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증이 제법 잘 된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아마 로마에 대한 이해가 배가 되지 않을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대인기를 끌었지만, 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은 엄밀성이 좀 부족할 때가 있다. 그건 시오노 나나미 본인의 개인적 취향과도 관련이 있고.. 물론 입문서로는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로마인들에 대해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흥미를 가졌었으니깐.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 더 궁금함들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런 책들도 괜찮은 선택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이 책은 로마의 역사가 아닌, 로마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물리에 대해서 아는 척 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으면 된다. 반 정도만 기억하고 있어도 석세스! 저자가 상당히 글을 쉽게 쓰는 편이다. 수식도 별로 없고.. 특히 그림이랑 도표가 많아서 눈에 잘 들어온단것이 좋은 점. 물론 한 권으로 충분할리가 없다.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면 깊이가 있어서... 이 책이랑 최근에 나온 '블랙홀 전쟁' 이라는 책을 엮어 읽으면 제법 괜찮은 효과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물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만, 수식도 뭐고 다 머리아프고 싫다 그러면 이 책과 저 책은 모두 안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데, 앨러건트 유니버스 이런 책을 읽는 것 보다는 이 책을 대충 읽는게 좀 더 머릿속에 남는게 많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전적인 내 생각이다.. 아닐 수 있다. 게다가 다루는 분야도 좀 다르고 말이다)

 

 

 

뜬금없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냐면.. 그냥 최근에 또 읽고 있는 책이라서 그냥 넣어봤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정말 사랑한다. 지금도 하는 TV 프로그램중 신비한 티비 써XX이즈~라는 게 있는데, 그 때 그 프로그램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이 이 책을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중학교때.. 그 후에 또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 그 후에 또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교양강좌때..... 오우...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고 어쩌면 나를 이렇게 반항적인 성격을 가지게[...] 만든 것은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때는, 그리고 고등학교때는 제인 갤러허를 좋아했지만, 대학교에서는 주인공 여동생인 피비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교양강좌의 주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서 영어로 써오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고르고 한참을 피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피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피비가 얼마나 귀여운가.. 주인공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리라 결심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말 옛날 책인데 그냥 심심해서 읽은 책이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나는 감동도 받지 않았고.. 약간 지겹기까지 했지만... 사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셰의 반복이다. (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꽤 신선했으리라) 물론 내 생각이다. 하지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라는 말은 마음에 와닿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읽으면, 가장 마지막에 테레사와 토마스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토마스는 테레사가 시골의 이 농부 저 농부와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짓는데, 저 제목은 꼭 그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는 결국 토마스와 테레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얻고 그 후에 죽게 되지만(사랑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마지막 댄스 상대는 서로였으니깐, 행복하게 죽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러고보면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던가, 아침에 사랑을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가?

 

 

 

사실 저 띠지가 맘에 안들어서.. 저자의 사진이 붙어있는 띠지가 이상하게 넘겨볼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들어서[...나만 그런 거겠지] 출간 당시에는 안읽어보다가 한 두달 뒤에 읽어보았었는데, 역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진리인 것 처럼 책도 표지에 낚이면 안된다, 라는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만들었다. 괜찮은 책이다. 사실 리뷰도 한 번 쓸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리뷰쓰기에는 또 다른 분들이 많은 글들을 남겨서 굳이 더 보탤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서 그냥 놓아두었던 책이다. 트랜드를 잘 잡은 책이다. 인문+문학+감성. 하지만 맘에 안드는 점이 있다면, '인문'은 빼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냥 문학 강독집이라고 하는게 더 옳은 제목이었을 것 같지 않았나??? 그런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에는 거의 문학 작품 위주로 이야기가 나오거든. 문학에다가 인문이라는 향신료를 뿌리려고 하지만 감성이라는 향신료를 매우 많이 뿌려서 인문 맛은 별로 안난다.

 

 

 

 이 책, 읽을 만한 책이다. 사실 고전이라고 이름 붙은 책들은 왠만하면 별로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뒤에는 유미주의의 극한 어쩌고 하고 광고글이 적혀있지만... 그런 것은 모두 무시해도 좋다. 다만 이 어구만은 기억하길.. '진실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행동만으로 보답을 받기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깐 선한 행위자체가 일종의 목적이 되는 거다. 이 어구를 이 좁은 문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편지로 적어보낸다. 그리고 그 것을 읽고 한참 멍하니 서있었었다. 조선 시대 정도전은 자신의 저서에서 왜 선한 사람이 보답을 못받는가? 에 대해서 한참 생각을 하다가 이런 대답을 내놓았었다. '선한사람은 어떻게든지 하늘에서라도 보답을 받고, 나쁜 사람은 어떤식으로든 불이익을 당한다' 라고 말이지. 정도전의 천리는 나쁜 사람은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라지망이었다. 왜, 하늘의 그물은 성기나 악인은 절대 못 빠져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믿고 싶은 것은 후자이지만 옳다고 여기는 것은 전자다. 선이 그 목적이 되어야지, 보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왜 분노하지 않는가.

 

 

 

 

 

1.

 

 

  2012년의 초입에 서서 2011년을 되돌아보면, 2011년 한 해는 무언가 ‘분노’로 가득 찬 한 해 같습니다. 나는 꼼수다, 라는 방송이 촉발한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가장 많았었던 것 같고, 특히 2011년 마지막에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오던 김근태 전 의원이 사망하기도 했었는데, 그 사망의 원인에는 이근안씨가 한 고문의 후유증이 크게 차지하고 있으리라는 기사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던 한 해였었지요. 그런데 분노라는 감정은 사실 바람직하다고는 보기 어렵겠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면 동시에 복수심도 느끼게 되고, 치욕도 느끼게 되는데, 스피노자의 말에 따르면 치욕은 자신이 타인에게 비난받는다고 상상하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고, 복수심은 타인의 슬픔을 통해서만 자신이 스스로의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슬픔이라고 합니다. 모두 슬픔과 관련되어 있는 감정들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힘들겠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분노도 '슬픔' 이라는 감정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분노할까요? 네, 우리는 우리 뜻대로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좌절과 함께 분노를 느낍니다. 퀴블러 로스가 제시하는 사망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보면, 어떤 사람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 먼저 난 걸리지 않았어, 라고 부정합니다.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이 바로 분노입니다. '왜 내가 이런 것에 걸리지?' 라고 말입니다. 나는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내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런 일이 찾아오다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는 분노를 피상적으로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분노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런 일이 가능하지요.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에 내가 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 '무엇인가' 의 구성원들과 내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다시 말하면, 그 '무엇인가' 에 유리되지 않고 '나' 라는 존재가 있는 경우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무엇인가' 는 사회도 될 수 있겠고, 사람도 될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이든 '나'가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나' 라는 존재가 지향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분노는 그 '무엇인가' 에서 우리가 유리되는 경우, 떨어져나가는 경우에 느끼는 슬픔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요. 이 문장을 조금 더 다듬으면 다음과 같이 진술 할 수 있겠습니다. 배제되어짐으로부터 오는 슬픔이 바로 분노다, 라고 말이지요.

 

 

2.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라는 책은 러시아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혹자는 그 책에서 '어머니의 사랑' 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은 '단순히 아들 하나만을 사랑하는 존재에서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대모(大母)로의 변모' 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이는 '어머니에서 동지로의' 사회주의 동지 의식의 확산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여기서 언급하면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배제' 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살짝 훑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인 닐로브나 부인은 망나니였던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과 자신 단 둘 뿐으로 하루하루 생을 영위해나갑니다. 그런데 아들 파벨 블라소프는 다른 젊은이들이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수염도 얌전히 깎고 책을 읽는 등 모범적은 모습을 보이지요. 그런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던 어머니 닐로브나 부인은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아, 내 아들이 사회주의자구나' 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부인은 위험하다며 아들을 말리는 것보다도 아들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들을 위해서 위험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사회주의에 대해서, 인민의 권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지요. 그런데 이들 모자(母子)외에도 또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으니, 바로 아들의 동료인 우크라이나 인, 안드레이입니다. 안드레이는 닐로브나 부인에게 말합니다. 주위를 보면 으스스하고 더러우며 모두가 지쳐있고, 싸우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이상으로 인간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인간적으로 대한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그들은 야수처럼 덤벼들어서 살아있는 마음도 인정하지 않고 인간다운 얼굴을 발로 밟아버립니다. 그런 모욕을 참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한 층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려 들지요. 그래서 안드레이는 이야기합니다. 적과 친구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안드레이의 얼굴은 매우 슬픕니다. 왜일까요? 당연합니다. 앞서 정의한 개념인 배제되어짐으로부터 느끼는 슬픔인 '분노' 때문입니다. 안드레이는 그의 지향점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는 현실과는 갈수록 멀어져만 가고, 현실에서는 그 이상은 결핍되어있으며 그 자신은 다른 계급들에 의해서 강제로 현실로부터 분리되어버린 상태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두가 화합하는 사회를 그리는 그 자신마저도 그 화합하는 사회를 위해서 자신을 가로막는 이들을 격리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제가 격리를 가져오고 격리가 결핍을 가져오는 현장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현실, 그 결핍은 끊임없이 그를 꿈꾸게 만들고, 동시에 현실의 높은 벽을 절감하게 하여 좌절을 가져오고, 그 좌절을 통해 분노를 키우며, 이윽고 그 분노로 그들의 적에게 복수를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적의 슬픔으로는 자신의 슬픔을 가실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 그러니깐 안드레이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원했던 세상은 그들의 적마저도 슬픔이 없는,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3.

 

 

  이제 이 책 '왜 분노하지 않는가' 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이 실현된 궁극적인 이상사회는 바로 윗 문단에서 이야기했던 저 우크라이나인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리라고 여겨집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고 이상이 결핍되지 않은 상태에 놓인 사회겠지요. 책에서 소개하는 인권선언이 바로 그 사회의 초석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책에서는 루스벨트가 말한 4가지 자유를 언급합니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경제적 결핍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저자는 환경의 자유를 더하여 5가지 자유를 이야기하고, 그 자유를 이루게 되면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권에 대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언론의 자유만 해도 그렇습니다. 당장 우리 사회만 생각해봐도,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 폐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훨씬 나은 나라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이러한 자유는 ‘훨씬 더 나은’ 국가들과 비교를 해서 성취되어야 될 것이지, 절대 ‘지금 보다 못한’ 국가들과 비교를 해서 머무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자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의 자유?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도 박해가 일어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국가 내 소수종교들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경제적 결핍의 자유겠지요. 제가 이렇게 글을 컴퓨터에서 두드리는 동안 편의점에서 알바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20대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며, 또한 제가 힘들게 일을 할 때 큰 의자에 등을 대고 앉아 비서의 보고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요. 물론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것이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고 앉아서 비서의 보고를 받으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사실은 실제로 정말 열심히 일을 해서 그 자리에 편하게 앉아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게으른 사람들에게까지 부가 돌아가는 것은 사실 일에 대한 모욕일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정말 게으른 사람들은 그리 자주 눈에 띄지는 않으며, 사회의 벽에 부딪혀 쓰러지고 좌절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 열심히 일을 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어’ 라고 속삭이는 것은 마치 마약을 투여하면서 불치병이 낫는다고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는 출발점이 다른 경우가, 주어지는 기회가 다른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이런 자유를 신장시키고 인권선언을 세계 어디에서든 존중받는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바로 2048운동이지요. 이 책에서 주장하는 2048운동은 1948년 인권 선언 초안을 만들었던 해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2048년까지 ‘인류가 미래의 전쟁을 방지하고, 가난을 사라지게 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을 창조할 수 있는’ 합의로 나아가는 운동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책에서 세계 모든 사람들을 인권에 대해서 교육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언급합니다.

 

 

4.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의 실망스러운 부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2048운동의 핵심이 되는 것으로 2048운동 웹사이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www.2048.berkeley.edu가 바로 그것인데, 이 사이트로 들어가 보시면 버클리 법대의 홈페이지가 나올 뿐, 다른 사이트가 나오지 않습니다. 앞의 월드 와이드 웹(www)을 빼면 더 가관입니다. 백지 상태로 ‘no real content for now' 라는 문장만 나오고 있지요. 책에서는 이 홈페이지가 운동의 핵심이며 이를 이용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의견을 집적하겠다고 말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장밋빛 미래는커녕 운동 자체도 흐지부지되었다고 보는 게 옳은 이야기겠지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책에서 또 언급하는 것으로는 비영리기업과 영리기업의 합작이 있습니다. 영리기업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것이 아니며, 비영리기업과 마찬가지로 인권 신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가 이 책의 주장인데, 사실 이 문장자체로는 옳은 문장입니다. 비영리기업이라고 해서 꼭 좋은 기업은 아닐 것이며, 영리기업이라고 해서 꼭 나쁜 기업은 아니겠지요. 이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정말 그런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영리기업이 항상 좋은 기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인간이 타락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돈, 자본일 테고, 그 자본과 항상 상호작용하는 영리기업이 항구적으로 인권 신장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영리기업의 목표는 그 단어에도 들어있듯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니깐 말입니다. 저자는 국가에서 영리기업이 인권 신장 운동에 참여하는 만큼 금전적 이익을 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렇다면 그 나라의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국민의 세금이 국가의 주 수입원이라는 것을 알며,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돈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일자리가 많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도 알 것이며,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역에서 이익을 보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무역에서의 흑자가 국가의 수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흑자를 만드는 것은 단순하게 이야기해서 지출보다 수입이 많으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타락한 영리기업들이 채찍을 들고 정리해고를 해가며 국가의 수입을 올리는 동안, 소위 말하는 양심적 영리기업들은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의 ‘책임감 있는’ 갑부들과 다보스 포럼의 이야기도 이 책의 문제점이라고 들 수 있겠습니다. 다보스 포럼은 정, 재계 수뇌들이 모여서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포럼인데, 이 책에서는 다보스 포럼을 마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고위 관료들이 머리를 짜내는’ 그런 모임이 될 수 있으리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들을 강제력을 가지는 인권을 지향하는 운동의 잠재적 협력자로만 생각해야 할 것’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책 외에 경제에 대한 다른 책을 보면 다보스 포럼을 악의 소굴이라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비싼 사교클럽에 지나지 않고, 구체적인 의결은 아무것도 내리지 않는 그런 포럼이라고 말이지요. 사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지금껏 구체적 의결을 내린 적도 없는, 그리고 미국의 입김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그런 다보스 포럼이 잠재적 협력자라도 될 수 있을까요? 이미 한 국가의 영향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크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인권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것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도 잠재적 협력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며 그저 흐지부지하게 웹사이트에서, 그것도 지금은 운영도 안 되고 있는 곳에 의견을 올려 달라, 라고만 이야기하고 있지요.

 

 

5.

 

 

  위와 같은 이유로 사실 이 책은 그리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하나의 시사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지요, 분노는 배제됨으로부터 오는 슬픔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감정, 맹자의 말을 조금 빌려오자면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슬픔의 원인이 타인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들어맞겠지만, 설령 본인에 기인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물론 분노는 말씀드렸다시피 바람직한 감정은 아니겠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도리어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타인과 함께 되고자 하는 욕구, 배제됨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앞으로의 사회에 있어서 인권 신장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다섯 가지 자유를 떠올리게 하고,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의 사례를 떠올리게 하며, 그것으로부터 분노를 느끼게 하고, 그 근원이 되는 슬픔을 느끼게 하며, 이윽고 다른 사람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 세우는 그런 일련의 일들의 초석을 쌓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공자의 말을 빌리자면,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가 되겠군요.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일은 많겠습니다만, 할 일이 많다고 그저 던져두기만 한다면, 천릿길이 멀다고 한 걸음조차 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분노하라, 분노가 우리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p. s. 으아.. 힘들다... 사실 이 책은 0.5권 정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가 1.5권이니깐 합쳐서 두 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 최근엔, 최근 2주가량은 책을 거의 못읽었지만..

못읽은건지 안읽은건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다른 드라마들이나 애니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ㅎㅎ

그것도 그렇고 너무 추워서 그렇다.

자고 일어나면 코에서 자꾸 피가 난다.. 이런...

그 먼 옛날 고등학교때 공부할때도 코피한번 나본적 없거늘...

추워서 코의 실핏줄이 터지는 건 너무 웃기지 않은가.

나는 최근에 정말 읽기라는 작업이 능동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드라마는 그냥 누워서 베개를 높인 후 시청하면 되거든.

머리를 텅 비울 수 있는데 책은 그렇게 잘 안된다.

외부가 추우면 영향을 받게 되는 거 있지.

그렇다고 카페에서 책 읽기에는 커피값이 너무 많이 들고..

최근 미드중에 빅뱅이론을 제대로 보고 있는데 미친듯 웃고 있다.

아, 난 이런 양키 센스가 좋은가 보다.

가장 좋아하는 미드는 닥터 하우스.. 전 시즌을 다 본 팬 중의 팬이다.

하우스 이야기로만 하루를 꼬박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나저나 조금 머리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여기가다 끄적거려놓아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이 책 읽다가 저 책 생각나고 그러는 것 같아.

 

 

 

어머니.

다시 읽고 있는 책인데..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게 안나간다. 사실 머리속에서 너무 다른 생각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책에 집중이 잘 안되고 있는 편이니깐. 줄거리를 조금 끄적거리면, 망나니와 결혼한 한 여인의 이야기에다가 자식 농사를 힘들게 짓고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섞으면 이 책이 된다. 사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아들의 이론, 그러니깐 사회주의 이론에 동화되게 될지라도 아들이 힘든 일에 연루되지 않기를 기대하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아들 파벨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말하기에는.. 아니, 아니구나. 적어도 아들이 술마시고 행패부리며 살지는 않으니 잘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위대함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책이 설령 아들의 '어머니'에서 아들의 '동지'가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하더라도, 그런 것보다도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들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깐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부모님께 전화해서 당장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세요.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주의 등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을 테니 패스.

 

 

 

왜 분노하지 않는가.

솔직히 대실망인 책이다. 아무래도 신간평가단 리뷰에서는 이렇게 불평부분을 많이 안끄적거릴 것 같으니 미리 여기다가 불만과 불평을 잔뜩 이야기하겠다. 생각같아서는 2점 주고 싶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 3점 줘야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48프로젝트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1948년 인권선언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2048년까지 인권을 증진시키겠다가 그 목표인 운동이란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를 공개했는데 2048.버클리법대.. 대충 이런 도메인이었는데 당장 기억이 안난다. 사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게, 그 웹사이트를 일종의 공론장 비슷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책이 나온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니 예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것 처럼 써놓고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러니깐, 빈페이지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버클리법대의 학사운영페이지로 이동하거나. 물론 웹페이지가 접속안된다고 이 책의 진정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책을 읽어보면 웹에서 자신의 의견을 열심히 개진하고 글로 써서 올려라 등을 계속 진짜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책 한 페이지에 2048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아는가? 심심해서 한번 세어보았는데 앞부분에서는 평균 3번을 언급하는 것 있지. 그래서 읽다가 화가 나서 무슨 2048 프로젝트 홍보하려고 책 쓴건가? 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좀 더 보다가.. 네, 정말 홍보하려고 글을 썼더군요, 쳇. 게다가 제목도 맘에 안든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의 인기를 등에 업으려고 저런 제목을 택한 건 아니겠지? 원제는 'You can make global rights a reality' 초등학생도 저 문장을 해석할 때 분노라는 단어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몰라, 솔직히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그나마 의의가 있을 수 있다면.. 교수가 쓴 책이라고 했을 때 상당히 쉬운 글로 쓰여졌다는 것, 그래서 인권에 대해서 정말 쉽게 접근해서 한번 쯤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거다. 아니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깊이가 없다, 라는 뜻도 되겠다, 오우.

 

 

 

집단 기억의 파괴.

이 책은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고, 신문을 읽다가 책 광고가 제법 흥미로워서 여기다가 살짝 담아둔다. 음.. 이 책의 제목으로만 추측하자면.. 반달리즘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문화재를 훼손하는 반달리즘 말고, 정말 원래 의미로의 반달리즘, 그러니깐 게르만 민족의 한 분파인 반달족들이 로마에 쳐들어가서 문화재들을 열심히 때려부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있다. 사실 반달족이 로마를 부순 것 보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의 고위 귀족이 문화재를 훼손한 것이 더 많다고 말야. 반달족은 단순히 재물만 열심히 빼돌렸다던가. 또 다른 이야기로 숭례문 방화사건도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지.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썼다면 분명 숭례문 방화사건도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서점에 가서 언제 한번 살펴보아야겠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 책은 개인적으로 매우매우매우 강추하는 책이다. 저자가 정말 전문적으로 중국사를 연구하기도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책의 서술방식이 정말 멋지다. 기억의 궁전은 사실 기억법 이름인데, 머릿속 궁전에다가 자료를 정렬하는 그런 기억술이다. 엄밀한 방법은 지금은 다큐멘터리나 기억술책을 참고하면 되겠지만.. 이 책이 나왔던 1999년도에는 별로 그런 기억술책이 많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기억술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의 궁전을 안쓴다.) 어쨌든,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쓴 '기법' 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기억술 이야기를 하다가, 그 기억술을 이용하여 그의 삶을 추적해나간다. 흠, 갑자기 이 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 '기억의 궁전' 이라는 기억법이 사실 훈족의 약탈에 대비하여 수도사들이 그들의 자료를 기억하는데 쓰였던 기억법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훈족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의 원인이 되는 무서운 사람들이기도 했고 말이지. 위의 집단 기억의 파괴, 라는 책과 함께 묶어서 읽어보면, 물론 기억의 궁전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관련은 없지만, 집단 기억의 파괴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라는 화두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여담인데,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이 소설 속에서 쓰이는 장면이 있는가, 라는 게 궁금한 사람은 '한니발 1, 2'(양들의 침묵 속편)를 읽어볼 수도 있겠다. 물론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잔인하다.

 

 

 

요재지이

 예전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다가(이 표지는 아니었다) 정말 흥미롭게 집중했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 포송령은 이를테면, 관리 시험에 낙방을 많이 한 선비였는데, 이 책 한방으로 인생을 역전한 케이스란다. 뭐, 그당시 중국이 얼마나 막장이었는가,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정말 특이한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최근 책들 중에 무라키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과 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훨씬 더 자극적이고, 훨씬 더 기이하다. 어느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는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한 번 쯤 읽어볼만도 하다, 라고. 나는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특이한 이야기들에 매혹되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아, 주의사항이 있다. 여성 권리의 신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읽지 않기를 권한다. 그 옛날 중국이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이 춥다 추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날씨가 추워서 그대로 얼어죽는줄 알았습니다.

여담을 조금 끄적거리자면, 오늘 서점서 김영하가 쓴 이상문학상 작품을 봤는데
읽는 내내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풋.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유쾌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텐데

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씁쓸함이 없었더라면 아마 상을 타지 못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이상문학상의 표지가 정말 많이 변했네요.

바로 1년 전만 해도 늘 보던 표지아니었던가요, 저는 오늘 책 표지를 보고

헐, 이것이 이상문학상 표지인가?? 다른 책 집어든 거 아닌가, 생각했었답니다.

 

그나저나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은, 특히 물리학자들은 좀 특이한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공유하는, 아니 과학자 집단에서 대개 공유하는 특질이 있다면 바로 '대칭'에 대한 비이성적일정도의 집착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과학에 발가락을 살짝 담근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사람 몸만 해도 왼쪽이 떨리면 오른쪽도 그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지 살펴보아야만 하고, 화학적인 구조물을 발견하면 그 구조물의 거울이성질체가 없는지도 알아낼 수 있으며, 물리학에서는 늘 중력과 수직항력이 정 반대 방향에 균형을 이루고 있어 우리가 정지해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대칭에 대한 믿음은, 좀 더 일반화하여 이야기하자면 '짝' 에 대한 믿음은 이윽고 양자역학과 입자 물리에 이르러 초대칭이론을 낳습니다. 그 이론을 통하면 그동안 입자물리에 있어서 표준모형이 가졌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고 이윽고 우리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쓰여진 책으로 보이며, 물론 군데 군데 나오는 수식과 그림들은 어쩌면 이해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칭이 가지는 완전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그 단편만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다한 셈이겠지요.

 

 

 

지난번에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를 추천한 페이퍼가 있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책과 마찬가지로 천병희선생의 번역본인데, 개인적으로 천병희 선생의 번역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고, 책을 조금 넘겨보았을때 문장이 대부분 매끄러워보였기에 이렇게 여기에 추천해봅니다. 갈리아 원정기는 카이사르가 말 그대로 갈리아 지역을 정복한 후에 그 전쟁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카이사르가 이 책을 쓰고 나서 로마에서는 이 책을 읽고 감탄이 그칠 날이 없었다던가요. 천병희 선생의 노고가 담긴 이 책에서는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카이사르의 아름다운 문체를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됩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갈리아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대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 기반하고 있기에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 사랑은 잘 알려져 있지요) 객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안그래도 주관적인 '원정기' 를 한 번더 필터를 거쳐서 쓰여진 책이 '로마인 이야기'일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원전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사실 이 책을 처음 보면서 떠올린 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였습니다. 제작년에 6권 완간으로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 그 책은 많은 명사들이 읽으면서 영감을 떠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나 잘 알려진 애독자로는 윈스턴 처칠을 들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와 같은 일반 독자들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다 읽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글은 유려하고 잘 읽힙니다만,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분량은 결국 우리를 질리게 만들지요. 저와 같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무한히 퍼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생업에 종사하다보면, 학문에 열중하다보면, 또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놀다보면(사실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국에는 다 읽지 못하고 앞부분만 읽다가 놓아두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우리를 타겟으로 수많은 축약본들이 출판되어나왔습니다만, 아무래도 수많은 내용을 한 권에 집약해서 쓰이다보니 문장도 어색하고 앞 뒤가 엇나가보이는 경우도 종종 보이게 되지요. 그런데 이 책은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오랜 로마의 역사를 큰 틀에 맞춰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6권짜리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것이겠지만,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면 난무하는 축약본들말고 이 책을 읽는게 옳은 선택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오늘 서점 나들이에서 건진 수확이라면 이 책 '찰스와 엠마'를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전혀 알려지지도 않은 저자였고, 역자도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린아이들의 책같은 표지를 한 장 넘기자 놀랍게도 저는 이 책의 내용에 빠져들아갔었지요. 여기서 찰스는 '찰스 다윈'이며 엠마는 '엠마 웨지우드' 그러니깐 찰스 다윈의 아내입니다. 그러고보면 지금껏 나온 다윈 평전은 하나같이 두꺼운 두께(기본이 1000페이지)를 자랑했으며, 다윈의 생활에 대해서 정말 편집증과도 같은 집착으로 하나하나 다 주워모았지만 정작 찰스의 사랑에 대해서는 딱딱한 문장들로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결혼을 하면 좋은 점' 과 '결혼을 하면 나쁜 점'을 꼼꼼히 따졌던 찰스 다윈의 성격 그대로 말입니다. 아, 어쩌면 좋은 평전이라는 것은 그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성격마저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무어의 다윈 평전은 정말로 대단한 책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살짝 삐딱하게 찰스 다윈의 삶을 바라봅니다. 특히나 그동안 학자들이 등한시했던 부분인 사랑, 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신론자인 다윈과 종교를 신실히 믿던 엠마. 그런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결혼, 결혼, 결혼, 그리고 증명은 종료되었다.'

 

 

 

사실 이 책은 제 개인적인 흥미로 담아두는 책입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괜히 무언가 집적된 것 처럼 보이는 책들이 좋더군요. 이 책은 표지에서 광고하고 있는 그대로 동서양의 40권이나 되는 책들을 모두 묶어서 내용의 엑기스를 뽑아낸 책이라 보여집니다. 잠깐만 살펴보아도 목록들이 정말 대단합니다. 방법서설, 고백론,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이름 그 자체로 유명한 책들에서부터(이름은 유명하지만 직접 읽기에는 왠지 힘든 책들) 과학자들이 쓴 부분과 전체와 같은 책들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도 매우 다양합니다. 제목에 식사, 라는 단어를 붙인다면 그야말로 왕의 식사가 되겠지요. 체할 것에 대비해 포도주까지 함께 곁들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포도주는 우리가 직접 준비해야 할 듯 합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우리는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2-02-04 02:11   좋아요 0 | URL
갈리아 원정기라. 이미 가진 책이 있어서 주저하고 있는 책입니다. 아마도 조만간 내전기도 번역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연 2012-02-04 21:25   좋아요 0 | URL
아.. 이전에 다른 분이 번역하셨던 것 같던데. 그 판본을 가지고 계시나보군요. 그러게요, 이전에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살펴보면서 인터뷰같은 걸 본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인터뷰에서 내전기도 작업에 들어갈거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네요.

bawbee 2012-02-09 18:23   좋아요 0 | URL
<찰스와 엠마> 땡스투^^

가연 2012-02-11 23: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