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4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는 게 실은 머리로 이해하는 이상으로 힘들다는 것을 나는 곧 통감하게 된다. 사람은 시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 느껴지는 기척에 아무래도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는 그쪽을 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작은 공포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 처음에는 불안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미미했던 느낌이 자꾸자꾸 쌓이면서 어느새 커다란 진짜 공포로 자라난다.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쓸쓸하고 꺼림칙한 느낌인지는 체험을 한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으리라.

 

-P.39-

 

1.

 

 아흐. 미쓰다 신조의 '도조겐야' 시리즈의 시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잘린머리처럼 불길한것>을 시작으로 <산마처럼 비웃는것>까지 어찌나 재밌었는지. 미쓰다 신조의 신간만을 좀비마냥 기다렸었는데 추석을 전으로 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추석때는 학교 과제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과제는 커녕 책만 주구장창 읽었습니다. 한순간도 눈을 뗄수없는 짜릿한 공포와, 반전은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싹다 접어두게 만들만큼 강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중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①가위 누르는 귀신

②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③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자 그 어떤 마물보다 가장 꺼림칙한 존재

[출처][김영사 공식 카페]|작성자 김영사

 염매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지식의 원천이라 불리는 지식인에도 나와있지 않더라구요. 궁금해 하던차에 김영사 카페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나중에 보니 책 뒤에도 나와있더군요..) 일본에서는 위와 같은 의미로 '염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나봅니다. 책을 읽고나서 판단해보자면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염매는 3번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자 그 어떤 마물보다 가장 꺼림직한 존재의 의미가 강한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신성시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허수아비님.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두 가문의 대립과 그 속에 담긴 전설의 이야기가 오싹하게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축축했다. 백의 너머로 뭔가가 싸늘하게 스며드는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굳어 있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의 젖은 손이 어깨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상상만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왼쪽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 사악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었다.

 

-P.149-

2.

 

 쇼와시대 아직 개발이 덜된 산골마을. 그곳에는 흑과 백을 상징하는 두개의 큰 가문이 있습니다. 마귀가계라 불리는 가가치가와, 그에반해 백으로 상징되는 가미구시가가 바로 이 두 가문입니다. 소작인들도 흑과 백 두 가문의 사람들로 양분되어 살아가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령시되는 허수아비님이지요. 그 외에도 마을에는 미신적인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불가해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신령납치와, 구구산의 나가보즈, 염매가 떠돌아 다니는 마주침 오솔길 등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실제로 마을에서는 그들을 봤다는 사람들도, 그들에 의해 사라진 아이들도 존재합니다.

 

 이렇듯 비밀을 간직한 마을에 '도조 겐야'가 등장합니다. 외지인을 꺼리는 사람들. 어렵사리 가가치가에 도착하지만 그의 도착과 동시에 첫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수행자라 불리던 남자 '오사노 젠토쿠' 발견된 시체는 기이합니다. 목을 메고 죽었다는 점에서는 별다를것이 없지만 그의 입에서 머리빗이 발견되었다는 점과, 미쳐버린 가가치가의 사기리가 목맨 시체를 흔들며 신벌을 받았다고 말하는 점은 그의 죽음이 이제 시작임을 암시하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행자의 죽음 이후 마을에는 더욱 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염매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며, 무녀 사기리의 손녀 사기리역시 기이한 현상을 경험합니다. 기리고 곧이어 두번째 살인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런 칭찬 뒤에 숨은 질투심은 당연히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거야. 이 가계 사람들만이 아니라고. 그런 걸 일부 사람들만 흑이라고 단정하고 자기들은 백이라고 큰소리치잖아? 자기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하고 무관하다는 양.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백이라는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그야말로 마물이지. 좋은 면만 가졌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엉 씨앗이란 생령은 인간 심리의 모순을 강렬하게 부각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워. 그게 차별로 이어진다는 게 마귀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만.

 

-P.265-

 

 

3.

 

 사실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를 비롯해 민담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들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뻔한 플롯일 겁니다. 마을의 전설에 따라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마을에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작가의 시리즈 두편 정도만 읽어도 충분히 다음 작품의 내용을 유추할수 있는 안목을 갖게 만들죠. 사실 '도조 겐야'시리즈 역시 이렇듯 뻔한 플롯의 단점은 극복하지 못한듯 합니다.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마을간의 대립과, 마을에 내려오는 괴담을 바탕으로 도조겐야가 나름의 추리를 펼지고 마지막 장에 다다라서는 아 이게 끝이 아니였구나 싶은 괴현상으로 끝을 마무리 하지요.

 

 중요한건 그럼에도 재미있다는 겁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화술이 좋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더욱 재미있게 들리는 것처럼 작가는 뻔한 이야기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만들어 갑니다. 특히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같은 경우에는 한편에 담기 아까울만큼 많은 트릭들과 반전이 존재합니다. 본격 추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화술에 푹빠져 무척이나 재미있게 즐길수 있었습니다. 방대한 분량과, 사기리로 통일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때문에 읽어가는 과정은 조금 더디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도조겐야 시리즈인 <물귀신처럼 달라붙는 것(?)>이 내년 상반기에 출간 예정이던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Ps. 작가도 작가지만 번역해주신 권영주 선생님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반전을 보고 앞을 다시 뒤져보니 정말 헉소리가 나더군요. 좋은 번역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쪽 섬 티오 - 제41회 소학관 문학상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6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남쪽섬 티오 / 이케자와 나쓰키

 

 

"이 사진도 그림엽서로 만들어줄게. 그 엽서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널 만나러 올 거야. 이건 1년 한정이 아닌 무기한으로 해두자. 네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 생기거든 그때써. 언젠가 도움이 될 날이 올 거야."

 

-P.29-

 

1.

 

 청소년 소설을 좋아합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젠척하며 쓴 이야기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으며, 끝에는 여운까지 남겨주기 떄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남쪽 섬 티오>는 이러한 청소년을 위한 소설입니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신기합니다. 현실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마법과 같은 이야기도 나오며, 아름다운 남국의 섬이 주는 자연의 경외로운 이야기도 속해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일본정서에 잘 맞는 책인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자체는 남국의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들처럼 신비롭습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정령과, 신들의 모습은 근엄하지만 인간과 다를바없이 속좁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자연을 신과같은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 자연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생활 곳곳에서 신을 모시는 일본인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문뜩 해봤습니다. 아마 그런 정서상의 이유 때문에 일본의 교과서에도 실릴수 있었던 거겠죠.



 

 

아마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 이 섬에서 신들이 인간에게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초호에 모터보트가 달리고, 도로가 뚫려 차량이 늘고, 커다란 비행기까지 다니게 되자 섬이 너무 시끄러워졌다고 생각한 신들이 어딘가 다른 섬으로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건 모두가 카누를 타지 않게 된 것처럼 쓸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51-

2.

 

 200페이지 남짓한 얇막한 책에 11개의 옴니버스식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장편인줄 알고 뒷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했는데 조금은 허무하게 끝이나버려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운을 남기며 끝냈기에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남을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만 그런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야기가 명확하게 끝이 난다기 보다는, 그 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여운속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들의 뒷 이야기를 만들어 갈테죠.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에밀리오의 출항>이였습니다. 태풍으로 모든 시설이 파괴된 쿠쿠루이리쿠섬. 그곳의 주민들은 티오네 섬으로 피난을 오게 되며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사람들 속에는 주인공 티오 나이 또래의 소년 에밀리오가 있습니다. 티오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는 소년은 참으로 어른스럽습니다. 잊혀져가는 전통의 방식으로 고기를 잡으며, 카누를 만들어 갑니다. 반면 마을의 어른들은 정부의 지원에 나태해져 본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지요. 이러한 상황속에서 에밀리오는 혼자 자신의 고향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티오는 그의 굳은 결심을 남몰래 도와주지요.

 

 자신을 도와준 보답이라며 티오에게 아름다운 세계의 소리를 들려주는 에밀리오.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냐는 티오의 질문에 에밀리오는 어른스럽게 대답합니다. "너희들, 그러니까 이섬의 사람들도 옛날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외국에서 물건이 들어오고 그런 것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모두 잊어버리고 만 거지."라고 말이죠. 아마 기계를 통해 만들어진 외국의 물건들은, 수작업으로 일일히 작업해야 했던 과거의 물건들보다 편리하게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점점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결국 전통적인 자신들의 문화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죠. 어쩌면 에밀리오는 그런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은 전통의 마지막 파수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인생에서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 했을 때, 사람들은 되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열네 살 소년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단지 사람들에겐 제각각의 다양한 인생이 있고, 모두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이었다. 내가 아는 엘레나 할머니의 모습에서 젊은 마리아 씨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지프를 몰았다.

 

-P.166-

3.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떨리는 신비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섬의 풍경을 직접 본것이 아니지만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이국의 아름다운 섬을 쉬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느 섬과는 다른 신비한 힘이 숨쉬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섬을 말이죠. 언젠가 제게도 그 섬에서 보낸 엽서가 한장 날라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짐을 꾸릴수 밖에 없는 그 마법의 엽서를 말이죠.

 

 아름답고 특별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남국의 섬과, 그 섬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남쪽섬 티오> 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
이시이 신지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 / 이시이 신지

 

 

"뭔가에 진심으로 사로잡히는 건 말야, 다들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석기만 한 짓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

 

"물론, 그렇게 해서 하는 일들이 대부분은 시간 낭비에 우스운 짓들이지. 그래도 네가 진심으로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예기치 못한 데서 보람을 느낄지도 모르잖아?"

 

-P.27-

 

1.

 

 무언가에 쉽게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구요. 그동안 제가 사로잡혔던 것들을 살펴보자면 사진, 기타, 우표수집, 도서수집, 화폐수집 등등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겨우겨우 하고있는 도서수집이 그나마 가장 오래된 취미생활이니까요. 혹자는 돈지랄이다라고 격하게 표현하곤 하지만 (대표적으로 저희 어머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뿌듯해 지는걸 어떻게 합니까.

 

 무언가에 사로잡혀 본 사람들은 알겁니다. 그 달콤한 유혹에 말이죠. 어떤사람은 음식에 사로잡힐것이고, 멀리뛰기, 안경수집등과 같이 특이한 취미로 이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듯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과연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살면서 무언가에 사로잡혀본적 없는 사람들이 되려 정말 소중한 무언가가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넌 바보야,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야!"

새앙쥐는 유리알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쥬제페는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조용히 웃었다.

"어쩔 수 없어. 난 어리석은, 사로잡힌 남자니까."

 

-P.85-

2.

 

 책의 주인공 주제페는 시도 때도없이 아무것에나 사로잡혀 버리는 조금은 특이한 남자입니다. 뭔가 한가지에 몰입하면 다른 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게 그의 특징이지요. 그가 사로잡혔던 것들은 오페라, 삼단뛰기, 탐정놀이, 외국어로 말하기, 수수께끼, 카메라수집, 조개줍기, 조개껍질이랑 자갈에 광내는 일, 외줄타기, 복근운동, 선글라스 수집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남들과는 많이 다른 이 특이한 남자가 이번에는 한 소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소녀를 돕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쥬제페는 바보같아 보일만큼 열정적이고, 맹목적입니다. 과거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습관들이 후에 쥬제페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소녀와의 사랑을 키워가는데 말이죠. 여러가지 장애를 헤쳐나가는 쥬제페와, 그를 도와주는 새앙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어리석은 사로잡힌 남자와, 어리석은 사로잡힌 여자가 잘도 만났군!"

 

-P.133-

3.

 

 얇은 책이지만, 그 깊이는 절대 얇지 않습니다. 무언가에 사로잡힐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행복한 사내 쥬제페. 일본 작가의 책이지만 유럽의 동화책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주인공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 정서마저도 서양인의 그것과 닮아 있었거든요. 얼마전 읽은 <산타 아줌마>와 함께 마음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동화책 이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 / 아리카와 히로

 

 

일하는 보람이 있다며 일을 즐기는 듯 말하는 직원들. 일하는 보람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힘도 들겠지. 그래도 그 보람을 얻을 수 있는게 특권인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회사에 들어갔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엘리트인 셈이다. 그런 획기적인 회사에도 세이지 같은 어중간한 인간은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을 것이다.

 

-P.140-

1.

 

 시기에 따라서 큰 힘이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보통 힘이 됐다고 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등과 같은 자기계발(?) 서적을 생각하지만, 제게 힘을 준 책은 재미있는 소설책 한권이였습니다. 이번 와우북 행사때 책을 몇권 집어왔다고 지난 서평에 말씀드렸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 역시 비채 부스에서 저렴한 가격(3,000원)에 가져온 책입니다. 가격만 보고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인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 속 주인공의 과거가, 지금 내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개적인 블로그에서 얘기할수 없는 이야기지만 요즘 이것 저것 신경쓰이는 문제가 많습니다. 순간 울컥울컥 화가 날때도 있고, 답답함에 짜증도 많이 부립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그런 화풀이를 대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저만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주변의 친구들과 이야기 해봐도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들로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깨져버리거나 오히려 깨지는 게 행복한 가정에 비하면 우리 집안은 얼마나 혜택 받은 가정인가. 비뚤어지고 어리광만 부렸던 무렵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그런 태도로 지금보다 나은 뭔가를 얻지 못하는데 대한 반항적인 태도였을까.

 

-P.229-

2.

 

 책의 주인공 '다케 세이지' 역시 이런저런 문제들로 방황하는 청춘입니다. 이류대학 문과를 졸업해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증이 전부지만, 처음 취직한 회사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달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그에게 세상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년간 인생을 낭비하던 세이지에게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항상 한자리에 서있을것 같던 어머니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병들어 버렸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단절된 가족과, 이웃들의 괴롭힘이 원인이였을 겁니다. 목표없이 살아가던 세이지에게 어머니의 병은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지를 복돋아 줍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꿈은 어머니를 위한 집을 마련하는것 입니다. 낮에는 어머니 간병을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세이지. 그가 마음의 문을 열어갈수록 무뚝뚝했던 아버지도, 자신에게 차갑기만 했던 세상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그 등에 대고 마나미가 말을 건냈다.

"곤란하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지금은 노카운트 할게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다케 선배는 늦지 않아요. 어머님 일, 절대 늦지 않았어요!"

 

-P.321-

3.

 

 다행스럽게도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배의 잔을 들이키며, 안쓰러울 정도로 고생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비뚤어진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동시에 책을 읽는 나 자신도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내게 없는것만을 보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세이지처럼 말이죠. 책을 통해 조금 더 일찍 그것을 깨닫게 된것이 제게는 큰 선물일겁니다. 무언가를 잃기전에 깨달았으니 말이죠.

 

 책은 청년실업 문제를 비롯해, 가족간의 단절, 우울증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습니다.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까지 만들어져 흥행했다고 하니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거겠죠. 그 끝이 희망적이여서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친 청춘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오리의 집
야베 타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사오리의 집 / 야베 타카시

 

 

지금 이렇게 있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고 있듯이, 그때 그 순간 나와 친했던 할머니가 이 나라 어디에도 없게 돼 버린 것이다.

 

-P.37-

1.

 

 작년 이맘때 와우북에 갔다가 한달치 월급을 송두리째 탕진하고온 기억이 납니다. 올해는 자제하자 자제하자 스스로를 다짐했건만, 베트남 여행 후 자금난으로 자동적으로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신용카드가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뭐 그래도 싸게 나온 책들이 많아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몇권 집어들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사오리의 집>도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꼭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책이였는데요. 북홀릭 부스에서 40% 세일을 하고 있기에 고민없이 집어왔습니다. 

 

 일본호러소설대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매번 속아 책을 구매하지만 만족스러웠던 책은 <야시>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정서가 맞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기괴함으로 가득한 책이였습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남기고 있지만서도 내가 무슨이야기를 써내려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차라리 내가 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게 훨씬 우리내 정서에는 잘 맞겠다라는 생각도 들구요.



 

"응. 가족이 없으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신기하지. 정말 신기해. 가족이란 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꿈에도. 그런데 이 무거운 기분은 뭘까?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체 이 무거움은 뭘까? 신경이 쓰이다니, 이런. 이럴줄은 생각도 못했어. 뭘까? 혹시 가족이라는 건 소중한 사람이었던 건가? 그래서 이렇게 없어지고 나니 신경이 쓰이는 걸까?"

 

-P.95-

2.

 

 책은 평범한 듯 보이는 아이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할머니의 죽음이후 처음으로 방문하는 고모댁. 그곳에는 자신의 또래인 '사오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모와, 고모부에게 물어도 사오리가 없어졌다는 말만 할뿐 사오리의 행방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우연히 누군가의 손가락을 발견합니다. 이후 집안 곳곳에서 그로테스크하게 조각난 신체의 일부를 발견하지만 소년은 담담합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괴하고 음습합니다. 사오리의 행방에 집착하는 소년과, 그런 소년을 방광하는 아버지, 그리고 집의 주인인 고모와 고모부. 모두가 재정신이 아닌듯 보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의 그림을 잡아내는 과정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할머니 머리가 놓여 있었다.

뒤집혀서 놓여 있었다. 뭐야, 똑바로 놓으면 잘린 부분에서 피가 흘러 냉장고가 더러워질까봐 그랬나? 그런데 수박은 보통 야채실에 넣지 않나?

입이 희미하게 벌어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상당히 짧아서 남자아이 같았지만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귀는 없었고 눈구멍은 비어 있었다. 피부는 값비싼 멜론 색 같았다.

 

-P.165-

 

3.

 

 비슷한 분위기의 책이 있다 생각했는데 온다리쿠의 <우리집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이였습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겁니다. 물론 <사오리의 집>이 좀 더 충격적이긴 하지만요. 천천히 책을 음미하며 읽으면 더욱 무서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