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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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랑이 오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알게 될 거다." 브림스톤이 약속했고, 그녀도 아주 간절하게 그의 말을 미고 싶었다. 브림스톤은 수백 년 동안 살지 않았나? 카루는 전에는 브림스톤과 사랑을 관련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 사랑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백 년 살아왔으니 어느 정도 지혜도 쌓였을 것이고, 그녀에 대한 예언도 맞기를 바랐다.

 

-P.36, 연기와 뼈의 딸 1권-

 

1.

 

 판타지 소설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갑니다. 과거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최근의 '트와일라잇 시리즈'까지. 완결이 나오기 전에 읽어 버리면 뒷 내용이 궁금해 견딜수 없기에 왠만하면 미완결 작품은 완결까지 기다렸다 몰아 읽는데 우연히 새로운 판타지 시리즈를 (그것도 미완결 시리즈를 !!) 접하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경제 신문조차 재미있게 읽힌다는 시험기간이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버렸습니다.

 

 레이니 테일러의 '연기와 뼈의 딸'은 기존의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물입니다. 마법사가 등장하는것도 아니고, 최근 유행하는 뱀파이어나 좀비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작품은 천사와 키메라라는 조금은 낯선 종족들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다른 종족간의 금지된 사랑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건 위시본이에요." 그녀는 그것을 잡아서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런식으로 쑥 튀어나온 부분에 손가락을 걸고, 소원을 빈 다음에 잡아당기면 돼요. 좀 더 큰쪽을 잡은 쪽의 소원이 이뤄지는 거죠."

 "마법인가요?" 아키바가 물었다. "무슨 새의 뼈인데 이 뼈로 마법을 행할 수 있다는 거죠?"

 "아, 이건 마법이 아니에요. 그 소원들이 정말로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럼 왜 이런걸 하는 거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희망이죠. 희망은 아주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어요. 여기에 진짜 마법은 없지만, 자신이 뭘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지 알고 그 희망을 자신 속의 빛처럼 간직하고 있으면, 마법처럼 그런 일들이 이뤄진답니다."

 

-P.349, 연기와 뼈의 딸 1권-

 

2.

 

 파란색 머리카락의 17세 소녀 카루는 천재적 환상화가의 재능을 지닌 프라하 예술학교 학생입니다. 낮에는 평범한 학생으로 생활하지만 밤에는 포털을 통해 전 세계를 넘나들며 암시장에서 ‘이빨’을 사들이는 악마의 조수 카루. 반은 인간, 반은 괴물의 세계에 속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카루에게 어느 날 천사의 대습격이 시작되고, 천사들의 공격으로 포털이 파괴되어 그녀는 자신에게 가족이나 다름 없던 키메라들과 헤어지게 됩니다.  한편 카루를 공격한 천사 아키바는 카루에게서 과거 사랑했던 여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 하는데요. 종족간의 전쟁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나고만 둘의 사랑은, 카루와 아키바의 만남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중 하나는 새로운 크리쳐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는데 있는데요. 동물과 인간을 섞어놓은 키메라들의 생생한 묘사는 상상력을 극도로 발휘하게 되는 판타지 소설에 당위성을 더해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플롯을 빌려써 그 끝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2부에서 어정쩡하게 끝이나 마지막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 졌는데요. 점점 대담하게 변해가는 카루의 모습을 보는것도 책의 또다른 묘미입니다.

 


 

 

 

 아주 먼 옛날 천사와 악마가 사랑에 빠져서 대담하게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꿈꾸었다. 학살과 찢긴 목과 죽은 자를 불태우는 모닥불 없는 세상, 레브넌트나 서자들의 군대나 살육과 죽음에 동참하기 위해 엄마 품에서 끌려 나오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때 그 연인들은 달의 은밀한 신전에서 서로를 껴안고 누워서 보석이 없는 보석상자-그들이 와서 발견해 행복으로 채워주길 기다리는 천국 같은 세상을 꿈꾸었다.

 

-P.92,연기와 뼈의 딸 2권-

 

3.

 

 책은 천사라는 익숙한 선의 이미지를 인간과 다름없는 권력관계의 추악함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그리고 있습니다. 키메라 종족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지배하고자하는 추악한 인물들로 말이죠. 여기에 대응하는 키메라 종족 역시 잔인하긴 매한가지 입니다. 천사족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그들의 시체를 훼손합니다. 이 두 종족 사이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결국 지배 계급만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인간사의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2부에서는 지배층의 부조리한 지시에 대응하는 두 새력의 새로운 지도자들 (카루와 아키바) 이야기로 끝이 났는데요. 마지막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입니다. 새로운 세계관의 판타지이기에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였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될텐데. 서로 다른 두 종족의 평화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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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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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을 사실처럼 잘 꾸며 내려면 사실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섞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색깔을 입히는 쪽이 얘기하기가 쉽다. 상대를 믿게 하려면, 자잘한 사실을 쌓아 올려 목적지인 거짓으로 유도해야 한다. 해자를 건넌 후에는 단숨에 본진을 공격한다.

 거짓말은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들은 과연 무엇을 은폐하려는 것일까.

 

-P.48-

 

1.

 

 오래간만에 '온다 리쿠'의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낼 때마다 그 고유한 느낌이 묻어나는 작가는 많지 않은데 '온다 리쿠'는 본인이 가진 장점을 작품속에 참 잘 살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몽환과 고딕 미소녀 등의 이미지가 어우러진 작품들은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번에 읽은 <여름의 마지막 장미>역시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우아하고 고급진 동시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고급 호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한편의 변주곡을 닮아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변주곡’은 '짤막한 주제를 바탕으로 리듬, 멜로디, 화성 등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즉 변주의 본질은 바로 ‘변화’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변주곡에서의 ‘변화’는 ‘한정된 틀 속에서의 변화’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소설속 인물들은 각각 자신만의 '장(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사실을 본인들의 악의에 맞추어 조금씩 왜곡시켜 나갑니다. 아름다운 공간 속 유복한 배우들의 검은 속내는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 따위는 소용없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이죠."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류스케가 왠지 모를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은 시시껄렁한 진실보다는 재미있는 픽션에 돈을 지불한다, 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진실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사람들을 즐겁게 하라, 자신을 신비롭게 보이도록 하라, 수수께끼로 가득한 인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존경심도 얻는다, 그렇게요."

 

-P.230-

 

2.

 

 국립공원의 산 정상에 있는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호텔. 매년 늦가을 이곳에서는 재벌가 사와타리 그룹의 세 자매가 주최하는 파티가 열립니다. 올해도 수십 명의 손님이 초대받아 모여든 가운데, 어두운 비밀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 자매의 친척과 관계자들도 이곳을 찾게됩니다. 첫째 이츠코, 둘째 니카코, 그리고 셋째 미즈코. 만찬 석상에서 주빈인 세 자매는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사건들에해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 이야기 속에서 초대된 인물들은 그녀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찾고 싶어 합니다.

 

 위에 언급한 세 자매 외에도 자매의 조카인 류스케, 그녀의 부인 사쿠라코, 사쿠라코의 동생 아키라, 니카코의 딸 미즈호, 미즈호의 매니저 사키, 아마키 교수 등이 등장하는데요. 모두 겉으로는 웃고 있는 반면 속으로 자신들의 비밀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각 장에서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결말로 말이죠.

 

 

 "우리 모두가 기억을 날조하고, 자신에게 생겼던 일, 과거에 있었을 일을 날마다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있었을지도 모르는 밀회, 만났을지도 모르는 연인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해 이곳에 와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일어날 일, 혹은 나 자신이 저지를 뻔한 일을. 어쩌면 그 일들은 현실에서 이미 일어났는지도 모르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모두가 그걸 회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믿게 될 것만 같아요. 여러분은 현실을, 기억을, 그런 식으로 느껴본 적 없나요?"

 

-P.372-

 

3.

 

 온다 리쿠의 몽환적인 세계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난해한 구성을(책의 중간 중간 영화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시나리오가 녹아들어 있다던지, 변주식 구조를 통해 주제를 확장시켜가는 과정이라던지) 띈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지만 이런 미적인 구조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는건 '온다 리쿠'이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독특한 구조와 특유의 몽환적 문체를 사용하여 인간의 잠재된 악의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 작품은 비현실 적이지만 왠지 모르게 두렵습니다. 그 끝에 있어 새로운 세 자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자들의 모습이 특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진실'을 찾기보다 '진실같은 거짓'에 마음을 놓곤 합니다. 대부분 그편이 더욱 마음 편하기 때문이죠. 거짓속에 묻어둔 진실은 스스로도 모를만큼 묻혀버려 결국 진실을 기억 못할때. 어쩌면 그때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다 리쿠'의 색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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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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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아버지에게 나는 결코 아내 미와코와의 사이에서 얻은 사랑의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아내의 마음을 빼앗고 아내의 생명을 좀먹으며 성장하는 정체 모를 괴물에 불과했으리라.

 어쩌면 아버지는 내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를 또 다른 자신이 빼앗아간다. 그런 구원할길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핏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 다케나가의 모습을 내게서 찾아낸 것은 아닐까?

 

-P.41-

 

1.

 

 얼마전 와우북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놓쳤던 구간 도서들을 구입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갔는데 재작년에 비해 참가한 출판사가 많지 않더군요. 아마 같은 시기 파주에서 북소리축제가 진행되기 때문에 메이저 출판사들이 다수 빠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애정하는 장르소설 출판사 북스피어와, 한스미디어가 나와있어 한가득 책을 사들고 왔는데요. 취향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수집욕을 불러 일으키는 '관 시리즈'와 미미여사의 최근 작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란 표지가 매력적인 <인형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중 네번째 작품인데요.

 

 

[ 십각관 - 수차관 - 미로관 - 인형관 - 시계관  - 흑묘관 - 암흑관 - 깜짝관 - 기면관 ] 

 

 

 출간 순서는 위와같습니다. 시리즈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인형관'에서 '십각관'을 언급한다던지 하는 부분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출간순으로 읽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흑묘관'까지가 1부 이후 작품들은 2부로 구분된다는데 사실 몇 작품 안읽은지라 1부와 2부의 구분 기준 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분들 중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좀 부탁드릴께요.) '깜짝관'을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는 모두 국내 출간이 된 상태지만 '암흑관'의 경우 절판되어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할수가 없어요. 때문에 일찍이 전권 수집은 포기했었는데,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고 나니 괜시리 수집 욕심이 생깁니다.

 

 

 

 

 방구석에 모아둔 인형들이 모조리 한가운데로 끌려나와 있었다. 어떤 것은 팔이 하나 없고, 어떤 것은 다리가 하나 없고 …… 두 팔이 없는 것, 하반신이 없는 것, 머리가 없는 것, 번번한 얼굴만 있는 것 …… 그런 그녀들이 위를 보거나 엎드리거나 포개어진 상태로 쓰러져 있다. 너무나도 난잡한 그 모습에서는 완성한 나무 블록 집을 자기 손으로 허물어뜨리는 어린아이의 흉포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쓰러진 인형들의 몸을 물들인 강렬한 색! 빨간 그림물감이 또 그녀들의 하얀 살갗에 마구 처발라져 있었다.

 그것은 흡사 인형들로 만든 아비규환의 지옥 풍경이었다. '피'에 젖어 괴로워하는 그녀들의 비명과 신음이 어둑어둑한 아틀리에를 가득 채웠다.

 

-P.120-

 

2.

 

 아버지가 죽은 뒤, 교토의 한 저택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히류 소이치. 그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 사와코와 아버지의 유산인 '인형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신체의 일부가 없는 마네킹이 저택 곳곳에 서 있는 ‘인형관’. 그곳에서 소이치는 정체를 알수없는 존재로부터 협박을 받게 됩니다. 우편함에 유리조각을 넣고, 집앞에 커다란 돌을 올려 놓는 등 장난처럼 시작된 악의는 어느새 어머니와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합니다. 한편 소이치가 살고있는 교토의 긴카쿠지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무차별 살인이 잇달아 발생하는데요. 소이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이 어릴적 저지른 작은 죄에서 시작된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인형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더라도 그 분위기 때문에 구입해서 보곤 합니다. 구입한 관 시리즈 중 '인형관'을 제일 먼저 펼쳐 본 이유도 왠지 '인형'이라는 소재가 작품 전반을 아우르며 분위기를 조성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였는데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작품 전반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소품 이용적 측면에서는 훌륭했지만, 사실 인형이 없어도 되지 않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건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심야의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며 솟아 오르는 화염. 나무가 터져서 쩍 벌어지는 소리. 건물이 삐걱대는듯한 소리. 일그러진 모양의 소용돌이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연기.

 툇마루에 놓인, 하반신이 없는 마네킹이 보였다. 마네킹은 불길에 삼켜져 덧없이 걸쭉하게 녹아내렸다.

 

-P.155-

 

3.

 

 '인형'이라는 소품을 단순히 분위기 용으로만 사용했다는데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였습니다. 아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싶은 순간 뒷통수를 치는 반전은 오래간만에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소설 중반즘 등장하는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은(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아조트의 이야기를  '가케바'가 '소이치'에게 들려주는 장면) 미스터리 팬을위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팬 서비스이자 본격을 함께 이끈 '시마다 소지'에 대한 예우의 표현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전 교토지역 그중에서도 작품의 배경이 된 긴카쿠지 지역을 다녀왔기에 책이 더욱 인상적으로 와닿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흑묘관'을 읽으려 하는데 '인형관'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여준 탓에 더욱 기대가 되네요. 예상외의 반전과 인형이 만들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책 <인형관의 살인>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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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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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왕이라는 건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아무래도 상관업다고 생각해. 자기 삶을 위한 지지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공물만 바치면 된다고 말이야. 그래서 아이가 1년 넘게 걸려 만든 돌탑을 허물었을 때도, 웃으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헛수고가 되어 버렸구나. 인생이라는게 녹록한 게 아니지?'하고 놀리듯이 말한 게 전부였어."

 

-P.142-

 

1.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 경우엔 너무 어려운 책이 그렇고, 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 그렇습니다.

 

 <밤의 나라 쿠파>는 재밌게 읽었지만 그 느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할지 참으로 애매한 책입니다. 아마 후자의 경우에 가깝기 때문일텐데요. 우화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은 고양이 톰의 시각으로 진행되고 그가 바라보는 세계로 우리의 세계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속 지배구조를 다양한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은 '이사카 코타로'의 전작들과 어느정도 맥을 함께하는데요. 쉬운 문장으로 환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모르겠지만 이 나라 바깥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어쩌면." 나는 거기서 번뜩인 생각을 머리로 곱씹어 보기 전에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 '멀리서 온 쥐'가 있던 장소에서는 고양이와 쥐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스스로 말해 놓고, 그래, 그럴거야, 하고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쥐들에게 고양이와 이야기를 해 보라고 권했을 가능성이 있어. 자기들이 성골한 일이니까 남에게도 권했다. 이런 거 아닐까."

 

-P.203-

 

2.

 

  센다이 시의 공무원인 ‘나’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 충격으로 바다낚시를 떠났다가 거센 파도에 표류하고 맙니다. 낯선 풀숲에서 정신을 차린 ‘나’의 앞에는 말하는 고양이 ‘톰’이 나타나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밤의 나라’ 그리고 그들과 오랜기간 전쟁 중이었던 강대한 나라 ‘철국’. 전쟁은 철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곧이어 철국의 병사들이 '밤의 나라'로 찾아오게 됩니다. 고양이 톰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들 사회는 자신이 속한 고양이들의 사회와 쥐들의 사회를 닮아 있습니다. 희생양을 보내고 그 조건으로 계약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국군주의 시대의 일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데요. 이러한 일들은 비단 일본의 과거사뿐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과 비 기득권의 모습과도 맞물려 있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강자와 약자와의 모습들 입니다.

 


 

 

 

 "이 나라는 쭉 같은 집안이 국왕이 되어 왔어. 뒤집어보면 국왕이라는 근거는 '대대로 이어져 왔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거야. 능력은 상관이 없지. 따라서 국왕인 자기들이 철국에 굽실거리는 한심한 인간인 줄 안 순간,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거라는 불안을 안게 됐더라도 이상할게 없어. 자기들 입장이 위태로워질 거라고 생각하고. 중요한 것은 진실을 전하는 것보다 위엄을 지키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

 

-P.448-

 

3.

 

 이 불온한 은유의 세계 속에는 많은 사회 문제가 녹아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강자와 약자의 문제 외에도, 인간의 자유의지라던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의지라던지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건 이런 메타포 외에도 다른 명작들의 오마주가 표현되어 나타난다는 점이였는데요. '걸리버 여행기'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요소들이 녹아들어 있다는걸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겁니다.

 쉽게 읽히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이였습니다. 말하는 고양이 톰의 갸르릉 소리와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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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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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그렇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나는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월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그 도형을, 그 담겨진 뜻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목도하고는, 아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참 신기하네, 라고 화들짝 놀라죠. 사실은 전혀 신기한 일도 아닌데. 나는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가요?"

 

- P.41, 우연 여행자中-

 

1.

 

 하루키의 간결하면서 담담한, 동시에 상실의 아픔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좋아라 합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에 주저없이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텐데요.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오랜시간 그의 여러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나오는 족족 베스트 셀러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죠.

 

 사실 <도쿄 기담집>이라는 제목에 끌렸던 것은 '기담'의 용어에서 '괴담'의 오싹함을 기대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기담'과 '괴담'의 차이를 지금에야 분명히 알지만 책을 읽었던 당시에는 구분하지 못했기에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소름돋는 이야기가 아닌 아리송한 이야기들이 했는데요. 나이를 먹고 다시 펼쳐본 책에 더 많은 내용들이 숨어있었다는걸. 그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었다는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치는 매일 밤, 상아색과 검은색의 건반 여든여덟 개 앞에 앉아서 대부분 자동적으로 손가락을 놀린다. 그동안에 다른 일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소리의 울림만 의식을 타고 흘러간다. 이쪽 문으로 들어와 반대편 문으로 나간다.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는 가을이 끝나갈 무렵의 삼 주일 동안 하나레이에서 지낼일을 생각한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아이언트리의 술렁임을 생각한다. 무역풍에 휘날려가는 구름, 크게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가는 앨버트로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인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에게 현재 그것 말고는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레이 해변.

 

-P.81, 하나레이 해변中-

 

 

2.

 

 '기담'의 사전상 의미는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정의되어 있는데요. <도쿄 기담집>이라는 제목을 풀어보자면 '도쿄의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우연 여행자>, <하나레이 해변>,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시나가와 원숭이> 제목만 들어도 뭔가 기이한 느낌을 주는 다섯개의 단편들은 일상적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느끼는 우연과, 섬뜩함등 비현실적 감정들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한 대가로 누이와 멀어지게 된 한 사내의 이야기, 상어에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 고층 맨션의 24층과 26승 사이에서 실종된 남편의 이야기 등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기이한 기담으로 가득차있다는 하루키의 상상력에서 시작됐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때로 의도치 않게 내게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첫번째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우연이 사실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눈에 띄지 않은 우연들이 나의 간절함과 만나 눈에 띄게 될 때 그때가 우리가 신기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모든 단편속 주인공들은 이런 우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이하지만 어쩌면 본인이 원했을지 모르는 우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레이 해변>이라는 단편이 참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자신의 아들을 바다에서 잃고 매년 그곳을 찾는 어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딱히 별다른 내용이 있는건 아니지만 짧은 단편속에 이처럼 짜임새있는 구성을 집어 넣을 수 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주인공 사치는 서핑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하와이의 하나레이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는 사치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이라기엔 지나치게 담담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사랑하지만 혈육이 아닌 이유로는 상종하기 싫다는 사치의 모습은 조금은 어긋난 어머니상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곳을 찾는 아들 또래의 두 사내를 만나고 덜떨어져 보이는 그들이 서핑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죽은 아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들역시 그들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서핑을 탔을 것이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멋져 보였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죠.

 

 

 

 

 

 "무엇보다 멋진 것은 그곳에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변화한다는거예요." 그녀는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아니, 그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높은 곳에 올라서면 그곳에 있는 것은 단지 나와 바람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바람이 나를 감싸고, 나를 뒤흔들어요. 그렇게 바람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나는 바람을 이해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거예요. 나와 바람뿐, 그밖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이죠. 아뇨, 공포감은 없어요. 일단 높은 곳에 발을 내딛고 그 집중 속에 빠져버리면 공포감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친밀한 공백 속에 함께 존재해요. 나는 그런 순간이 세상 무엇보다 좋은 거예요"

 

-P.154,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中-

 

 

 

 

3.

 

 ​하루키의 책을 20대가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0대에 읽었던 책은 사실 난해하고 어려워 단순히 그 쿨함과 가벼움을 뽐내기 위해 읽었던 반면. 지금에 읽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그 쿨함과 가벼움 속에 묵직한 무게감을 찾아가며 읽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많은 감정들을 나이가 들어가며 배우게 됐기 때문일수도 있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이 빛을 발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하루키의 책들이 제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30대가 되어 다시 읽을 하루키의 이야기는 어떤 느낌일까요. 그때의 감성이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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