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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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문득 생각했는데, 만약 아타미 온천 어딘가의 여관에서 '세계 슈퍼모델 워크숍'같은 것이 열리고 그 근방의 일반인 여성이 아무것도 모른 채 대형사우나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 주위에 있는 사람 전부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알몸의 슈퍼모델이라면 그건 꽤 무서운 체험이지 않을까? 분명 악몽 같을 거다. 만약 내가 여성이었다면 그런 경우만큼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뭐 슬쩍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겠지만.

 

-P.30-

 

1.

 

하루키의 에세이집이 새로 나왔습니다. 작년에 출간된 잡문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에세이 집인데요. 제목부터 무척이나 신선합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과연 채소의 기분은 어떻게 판단하며, 바다표범의 키스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출간 전부터 이 제목에 이끌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루키란 작가는 참 독특합니다. 결혼한 뒤에 일을 시작하고, 그 뒤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역순으로 청춘을 보냈죠. 그런 과정이 작가에게 독창적인 가치관을 형성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굴튀김을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좀 더 가볍고 일상적으로 변했습니다. 책은 일본의 주간 잡지 <앙앙>에 연재되었던 ‘무라카미 라디오’의 52가지 이야기를 한데 묶어놓은 에세이 집인데요. 하루키 특유의 사색과 위트가 잘 어우러진 유쾌한 책이였습니다.


 

비틀스와 비교하는 것은 쑥스럽지만, 회사란 '문제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것, 전례가 없는 것, 발상이 다른 것, 그런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배제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동요하지 않고 꿋꿋할' 사원이 얼마나 있는가로 회사의 기량 같은 것이 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일본 경제는 앞으로 대체 어떻게 될까요.

 

-P.103-

2.

 

제 친한 벗은 허세에 가까운 행동들을 일상처럼 즐기고, 있어보이게 고민하는 모습이 젊은 층에게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특권의식을 심어주기에 작가의 책이 잘 팔리는 것이라고 날 선 비난을 서슴지 않더군요. 하루키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그 특유의 감성 때문일 겁니다. 저 역시 소설을 읽고 그 향수에 젖은듯한 아련함에 푹 빠져 팬이 되었으니까요. 여기에 비추어 보면 친구의 비판 역시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에세이에서 만나는 하루키는 소설에서의 하루키와는 많이 다릅니다. 편집증에 날카로울것만 같은 소설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금은 모잘란듯한 사내로 이미지를 완벽하게 변신합니다. 특히 이번에세이는 그런 하루키의 매력이 너무나 잘 드러납니다. 그가 싸인을 왜 하지 않는지, 어느 산책로를 좋아하는지, 고양이가 까마귀를 쫓아 다니는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그의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세대와는 관계없이 세간 사람들에게 이십대가 어떤 것인지 나는 그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즐거운 청춘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켜가는 괴로운 과정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도 아니면 '세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당신의 이십대는 어떤 것인가? 혹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 이건 내가 상당히 진지하게 알고 싶은 문제이다.

 

-P.183-

 

3.

 

그는 절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행동해라 구체적인 방안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문학적으로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단,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의 이야기에 잔소리에 질린 젊은이들이 열광하는건 당연한 이치일 겁니다. 이번 책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언급이 담긴 내용은 거의 없지만 가끔 한번씩 따끔 경종을 울리는 부분들은 있습니다.(34P에 시사적인 화제는 피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종종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몇편의 에세이와, 소설들을 읽어봤지만 이번 작품처럼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책은 처음이였습니다. 감성터지는 판화와 더불어 정말이지 멋들어지는 책이였던것 같습니다.

 

몇편의 에세이와, 소설들을 읽어봤지만 이번 작품처럼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책은 처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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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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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김탁환, 강영호

 

 

나는 홍대 앞의 젊음과 열정, 타락과 술, 섹스와 눈물을 아낀다. 20대의 몇 년은 그 속에 파묻혀 절벽의 절벽까지, 꿈의 꿈까지, 경멸의 경멸까지 갔었다. 그러나 나는 함께 웃고 마시고 떠들면서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홍대 앞은 가끔 배회하며 기웃거릴 산책의 장소였고, 내겐 아득히 침작하여 밤낮 없이 전부를 쏟아부을 밀실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택한 것이 드라큘라 성이다. 홍대 앞을 떠나지는 않되, 더 두꺼운 벽에 갇혀 더 높은 꼭대기에서 젊음이 벌이는 축제의 밤들을 내려다보며 음미하기도 한 것이다.

 

-P.22-

 

1.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홍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문구와, 그로테스크한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사버렸다. 늦은밤 취기에 이끌리듯 읽어나간 이야기는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게 만들었다. 책을 덮은 시각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였고 왠지 모를 갈증에 집앞 편의점으로 발길을 향했다. 서울의 밤은 불야성이다. '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희미한 자신의 모습에 반하고, 모든걸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몸을 내맡긴다. 헐벗은 젊음이 내는 교성을 지나쳐 목적지인 편의점에 들어섰다. 금속의 차가운 맥주캔이 멍한 머리를 잠시 깨워준다. 밖을 바라본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로 뭔가가 보이는 듯 하다. 현실과 소설속 이야기의 경계가 사라진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이미지에 소름이 돋는다. 새벽 4시 왠지 뭔가가 일어날것 같은 시각이다.



 

서울은 밤에도 어두워지지 않는 불야성이 된 지 오래다. '심야'라는 접두사가 어색할 정도로, 24시간 내내 특별시민을 기다리는 가게가 즐비하다. 새벽 3시에도 머리를 매만질 수 있고, 새벽 4시에도 축구 시합이 가능하며, 새벽 5시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도시. 서울에선 총기류 휴대가 불법인 탓에 뉴욕이나 워싱턴 혹은 런던보다도 더 소란스럽고 더 밝다. 홍대 클럽을 애용하는 외국인들은 서울의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과 음악과 술과 춤과 다음 날 숙취를 각오해야 하는 다양한 폭탄주에 놀란다. 때때로 나는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 서울의 밤을 상상한다. 호롱불 정도 깜빡이는 은하수의 도시. 그 어둠들이 만들어내던 갖가지 몽상과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P.94-

2.

 

이야기꾼과 사진작가가 함께 만들어낸 기괴하고 흥미진진한 세계<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춤추는 사진작가 강영호와 역사 팩션을 선보여온 소설가 김탁환이 서로 이야기와 상상력을 주고받으며 완성한 장편연작소설이다. '드라큘라 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홍대 앞 상상사진관에 뱀파이어 같은 외모에 독특한 말투를 가진 건축가가 나타난다. 그때부터 홍대 주변에서는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기괴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사진관을 찾아온다. 상대성 인간, 반딧불이 인간, 웨딩 인간,끈적 인간, 아몬드 인간, 알바트로스 인간, 턱을 기르는 왕 등 서울의 여러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한 사진들과 함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흡혼의 사진술사와 영혼을 빌려주는 이야기꾼이 어느 날 '상상사진관'에서 조우했다. 마치 드라큘라의 성 같은 상상사진관 안의 사무실, 그림자가 많이 생기는 조명 불빛 아래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그 둘이 만났을 때, 흡혼의 사진술사가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이미지의 충격적인 사진들을 들이밀며 말했다.

 

내 속에서 끄집어내 프레임에 잡아 가둔 99마리의 괴물이 있어요. 어마 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혼을 빌려주는 이야기꾼이 화답했다.

 

그 괴물을 살려내어 서울 곳곳에, 홍대 주변에, 목동 근처에, 풀어놓으리다.

 

-P.264-

3.

 

장마철 찐득한 공기와 같은 이야기였다.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이 이야기들이 그저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의 취기와 밤의 묘한 몽롱함이 어우러져 나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99'라는 숫자도 참 이상한 숫자다. 100이라는 완벽에는 조금 모자란 수니까. 하지만 어찌보면 그 99는 100이 되지 않음으로 무한이라는 잠재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지 않을까? 99개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왠지 끝이 있을것 같지 않으니깐 말이다.

 

이적의 <지문 사냥꾼>이라는 책을 재밌게 봤다면 이 책 역시 즐겁게 읽을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느낌의 고딕적이면서 말도 안되게 환상적인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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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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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괴담 / 이재익

 

그대가 만진 모든 것. 그대가 본 모든 것. 그대가 맛본 모든 것. 그대가 느낀 모든 것.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대가 증오하는 모든 것. 그대가 불신하는 모든 것. 그대가 구한 모든 것. 그대가 준 모든 것. 그대가 거래한 모든 것. 그대가 사고, 구걸하고 혹은 훔친 모든 것. 그대가 창조한 모든 것. 그대가 파괴한 모든 것. 그대가 행한 모든 것. 그대가 말한 모든 것. 그대가 먹은 모든 것. 그대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대가 깔본 모든 것. 그대와 싸운 모든 사람들. 현재 있는 모든것. 사라진 모든 것. 다가올 모든 것. 태양 아래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지만. 태양은 달에 의해 가려진다.

 

-P.48-

1.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노스트라 다무스'라는 위대한 예언가는 2000년이 오기 전 지구가 멸망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저 역시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동생들과 함께 작은 파티를 열며 기다렸습니다. 10.9.8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며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때까지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참으로 머릿속에 깊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지구 종말과, 새로운 시대 사이에서 십대 청소년이 느꼈던 벅차오름은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아쉬움 여러가지 생각의 공존은 아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였을 겁니다. 컬투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이재익 작가의 <심야버스괴담>은 이러한 시대말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그 세상속에 사는 사람들은 얼핏 정상처럼 보이나 비 상식적이고, 비 인간적인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끝없이 밀려드는 바퀴벌레로 가득 찬 준호의 배가 부풀어 오른다. 배안에서도 수많은 바퀴벌레가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터지고, 그 안에 있던 바퀴벌레들은 쾌활한 비상을 시작한다. 준호는 배에 구멍이 난 채로 죽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본다. 취객과 기사 옆에 나란히 누워 썩어가는 자신의 시체를.

 

-P.92-

2.

 

강남역과 분당을 연결하는 2002번 버스.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7명의 승객이 전부인 심야버스 평범한듯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정리해고를 당한 한 취객. 그는 만취한 채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심야버스에서 기사와 핸들을 놓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버스는 심하게 휘청거리며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필적 고의로 인해 모든 승객이 공범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상황. 서둘러 사건을 처리하고 은폐하려고 하지만 작은 출발점에서 시작된 일이 점점 커지는 눈덩이효과(Snowball Effect)가 그들의 앞날을 덮칩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여섯 명. 양심을 뒤로한 채 사건을 잊으려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살해 당하기 시작합니다. 추리소설보다는 고딕소설의 음산함과 더욱 잘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쉴새없이 넘어가는 페이지가 장점입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알수있는 범인과, 뒷 이야기는 흥을 깨버립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쉽게 쓰인만큼 쉽게 읽히고, 휘발성 또한 강합니다. 작품을 읽는 동안은 재밌었지만 읽고나서는 내가 무엇을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전형적인 비급 공포영화의 후기와 같았습니다.

 

 

 

 

"이 세상엔 커다란 성이 있어. 성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으로 나눠지지. 성 안은 풍요롭다 못해 삶이 무료하다는 얘기까지 나돌아. 성 밖에 버려진 자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게 살아가지. 성벽은 까마득히 높아. 성 밖의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에 들어가기 힘들어. 넌 그 절망감을 몰라. 지금 넌 내 곁에 있지만."

 

-P.128-

3.

 

하나의 사건의 숨겨진 뒷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심야의 버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곳에서 사람들은 안정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심에 양심을 져버립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신을 부르짓는 절실한 신자도 있고, 과외와 공부를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도 있습니다. 얼핏 너무나 '잘' 살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뒷 이야기는 구린내가 날정도로 추악합니다. 세기말 혼란스러운 시대를 핑계로 삼기에는 이런 추악한 현실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매체로 접하는 사건의 진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같은 커다란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흔히 접하는 사건 사고에는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그 뒤에는 썩어 문드러져 구린내 나는 인간의 양심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야의 버스에서 발생한 오싹한 사건이 과연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노스트라 다무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구 멸망이 사실 2000년이 아닌 2012년 12월 21일 이라고 말합니다. 세기말이 가까워져서 일까요. 인육을 먹는 미친놈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세상이 점점 무서워 집니다. 혼란스런 세상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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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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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사건의 상세한 경과는 나중에 기술하겠지만, 가장 섬뜩하고 이상한 부분은 수기대로 살해되어 일본 각지에서 띄엄띄엄 발견된 우메자와 가의 딸 여섯 명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수기에 있는 대로 시체의 일부분이 도려내졌으며, 시체에는 각각의 별자리를 의미하는 금속 원소가 곁들여져 있었다.

 

-P.54-

1.

 

(서평 전반적으로 스포 多)

 

지난주 '추.임.세'의 선정도서가 되었던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였습니다. 작가의 최근 출간작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가 미스터리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전작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요. 특급변소 누나의 제안으로 그중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등장 인물이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는 말에, 사실 읽기전부터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막상 읽어보니 주인공의 이름보다는 글씨체에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초반부와 중반부에 나오는 수기들의 글씨체가 왜그리 어지러운건지.. 혹시 새판이 나오게 된다면 이 글씨체는 꼭 좀 바꿔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과적으로 눈이아프고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거기다 반전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지만 재밌었습니다. 제가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기전에 그리고 영화 '텔미 썸 씽'을 보기전에 이 작품을 봤다면 정말 하트 뿅뿅을 날리며 시마다 소지 쨔응을 외쳤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육각촌 살인 사건'은 제가 김전일 소년의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사랑해 마지 않던 이야기였던 걸요.


 

 

네가 홈즈와 천문학에 정통한 것은 잘 알겠어. 그러면 누가 널 만족시킬 수 있을까? 브라운 신부는 읽었어?

"그게 누구야? 교회와는 인연이 없는데."

"파일로 반스는?"

"뭐? 무슨 반스?"

"제인 마플은?"

"맛있겠네,"

"메그레 경감은?"

"메구로 구의 경찰?"

"에리큘 포와로"

"숙취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이군."

"도버 경감."

"처음 들었어."

 

-P.274-

2

  

이야기는 한 예술가의 수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점성술에 사로잡힌 화가 '우메자와 헤이키치'. 그는 자신의 예술적 만족을 위해 여섯 딸을 이용한 완벽한 존재 '아조트'를 만들려합니다. 각기 다른 별자리를 타고난 여섯 딸의 몸에서 별자리의 축복을 받은 여섯 부분을 절단, 하나의 여인을 만들려 하는 것이죠이후 화가가 남긴 수기대로 훼손된 딸들의 시체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됩니다. 중요한건 이 딸들이 죽은 시점이 헤이키치가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후라는 점입니다. 아버지가 딸들을 죽인것이 아니라면 과연 살인자는 누구일까요. 일본 열도를 들썩이게 했던 이 사건은 40년이 지난 뒤에도 풀리지 않습니다.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미라타이 기요시'입니다. 여느 탐정소설속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이 '미라타이' 역시 재정신은 아닌듯 보입니다. 내노라 하는 탐정소설속 인물들을 희화화 하며, 약간의 우울증까지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홈즈를 연상시킵니다. 미라타이를 돕는 '이시오카 가즈미'의 시점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것 역시 홈즈의 짝궁 왓슨을 보는 듯 합니다. 이 두 인물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잘 짜여진 플롯 속에서 독자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써가며 범인을 추측해 봅니다.


 

 

첫 번째 도전장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완벽한 페어플레이를 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이라도 많은 독자에게 이 수수께끼를 풀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나는 이쯤에서 그 유명한 단어를 쓰겠다.

 

"독자에게 도전한다."

 

이제 와서 말할것도 없지만, 이미 독자는 완벽 그 이상의 자료를 얻었다. 또한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아주 노골적인 형태로 독자의 눈앞에 제시돼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길.

 

-P.412-

3.

 

모든 단서가 다 주어졌을 때 작가는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 신체훼손의 트릭이 한국에선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었는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합니다. 엥간히 둔한 사람도 책에 실려있는 그림들을 본다면 아 대충이런 내용이겠구나 짐작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중요한건 그 트릭들의 원조가 바로 이 작품 <점성술 살인사건>이라는 겁니다. 김전일이가 무단 도용한 이 트릭 때문에 작품의 고향인 일본에서도 난리가 났었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작위적이지만 비극적인 요소로 마음을 움직이는 김전일이가 더 좋기는 하다만, 뭔가 얄미워 지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모임에서도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찾아 읽는 멤버들은 쉽게 범인을 유추할 수 있어 재미가 반감되었다 말했지만, 이 트릭이 처음인 멤버는 무섭고 신선했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추리소설 입문용으로 트릭을 모르는 분들은 즐겁게 읽을수 있는 책일것 같았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 역시 아직 접하지 못했는데 부지런히 찾아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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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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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 미치오 슈스케

 

요시카와 이쓰오는 몹시 지루하고 따분한 인간 아닐까. 뭐랄까 너무나도 평범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텔레비전 학교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초점이 맞지 않는 곳에 비치는 학생처럼. 성적도 보통. 이름도 보통. 키도 보통. 얼굴도 보통. 반에서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존재 자체가 희박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누가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다. 부모님이 여관을 경영한다는 점도 외지 사람이 보면 특이할지도 모르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다.

 

-P.19-

 

1.

 

저는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고 하지만, 제가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달과 게>를 읽고 난 뒤였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않는 여름>과 같이 충격적인 반전도 없었고,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는 순문학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소년들의 섬세한 감정과, 순수해서 잔인한 그 속마음을 너무나 마음 저리게 표현해서 읽는 내내 공감하고 또 함께 아파했던 기억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이야기 대부분은 어른과 아이 사이의 미성숙한 학생들이 주인공입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는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겪어왔고 방황도 많이 했었기에 그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북폴리오에서 출간한 <물의 관>의 주인공들 역시 사춘기 성장통을 겪는 소년과 소녀입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소녀 아쓰코는 폭력의 기억을 지우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평범한 여관집 아들 이쓰오는 평범하지 않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책은 이 두 아이들의 이야기와, 이쓰오의 할머니 이쿠의 닮은듯 다른 이야기를 일본소설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풀어나갑니다.

 

 

 

"몇 십년 동안 계속 거짓말을 하면..... 어느덧 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법이지."

 

...

"이쓰오가 말을 알아듣게 되어 걔한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 후로는 어쩐지 나 자신도 그게 진짜라고 믿게 됐어. 하지만 죽을 때까지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죽어갈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더구나."

 

-P.176~177-

2.

 

평범한 집안, 평범한 성적, 평범한 외모를 가진 자신은 '평범함의 막'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못내 답답하고 괴로운 소년 이쓰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무관심, 전학 온 이후 집단 괴롭힘을 당하며 오로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소녀 아쓰코.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소년과 소녀는 학교 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됩니다. 재료를 사러 들른 잡화점에서 이쓰오는 아쓰코가 동생을 휘해 인형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서로간의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아쓰코는 이쓰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합니다. 땅에 묻은 타임캡슐에 내용을 바꾸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말이죠. 아쓰코는 타임캡슐 속에 자신이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시간이 흐른뒤 아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편지를 썼고, 이쓰오는 아무런 생각없이 대충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쓰코는 자신이 괴롭힘 당한 과거를 잊기 위해 이 편지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이쓰오는 이 평범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아쓰코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둘은 이 편지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 운동장을 몰래 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쓰오의 할머니인 '이쿠' 그녀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면서 모든게 갖추어진 풍족함이 싫어져 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할머니의 친구라는 손님이 와서 하는 얘기는 할머니의 얘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마을의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소녀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소녀는 그 사건을 잊기위해 몇십년간 거짓말을 했고, 세월이지나 그 거짓말은 진실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오랜시간 묻어온 할머니의 진실은 극복하기 힘든 하나의 커다란 짐 입니다. 손자 이쓰오는 아쓰코와 할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세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구원하게 됩니다. '물'을 통해서 말이죠.


 

에미코가 이쓰오에게 기운을 복돋아주기 위해 한 그 말. 에미코가 말하고 싶었던 '잊는다'는 것은 정말로 기억에서 지우거나 떠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다'라는 의미였을까. 이쓰오는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아쓰코는 극복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극복하기 전에 잊어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할머니의 증상은 극복할 힘 대신에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P.349-

 

3.

 

원형적 상징으로 물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신화를 바탕으로한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물'은 죽음과 동시에 모든것을 되살리는 재생과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이쓰오와 아쓰코 그리고 할머니 이쿠는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담은 인형을 댐안에 던져버립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쓰오와 아쓰코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극복의 의미로,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가진 할머니 이쿠에게는 망각과 동시에 새로운 재생을 의미하는 동작으로 이해됩니다. 조금은 상징적인 이미지들에 뒤에 해설이 달려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 시중에 유통이 안된 책이여서 그런지 인터넷상에 올라온 리뷰도 없어 제가 생각한 끝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군요. 미스터리적 요소는 거의 없지만 담담한 문체로 절제되게 표현한 이야기가 <달과 게>만큼이나 좋았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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