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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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난 시체의 밤 / 사쿠라바 가즈키

 

 

살아있는 동안 꽤 뒤죽박죽인 이상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토막 시체가 된 것을 보니 묘하게도 비로소 사람다워 보이고 차분해진 것 같았다. 뭐랄까,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래, 이 사람은 예전부터 토막 나 있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토막 시체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토막을 내어 잘되었다,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한심하게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P.18-

1.

 

 요즘은 자극적인 제목의 소설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가족사냥>부터 소개할 <토막난 시체의 밤>까지 말이죠. 이렇듯 -살인사건 등과 같은 소설들은 사실 밖에서는 쉽게 읽기 힘들답니다. 다큰 성인남자가 담배를 뻐끔뻐끔 빨아대며 충혈된 눈으로 이런 제목의 책을 보고있으면 '변태', '미친놈', '싸이코' 소리 듣기 딱 좋으니까요. 제목이 자극적일수록 독자의 흥미가 높아지는건 사실일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매로 갈지는 미지수입니다. 빨간색 배경에, 징그러운 인형, 끔찍한 제목은 사실 들고 다니기 무척이나 민망하거든요. 이건 뭐 제가 표지와 제목에 보수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차에 버금가는 작품이라 광고해서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실망도 컸습니다. 먼저 위에 언급한 표지와 제목들이 아쉬웠고, 끝까지 반전없는 이야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순문학에 더 가까울법한 책이였습니다. 그렇지만 뭐랄까요 자극적인 소재를 다뤄나가는 작가의 문장이 무척이나 유연해서 주인공들의 시각을 따라가는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가독성도 뛰어났구요.


 

 

얼핏 모두 평범한 여자로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거리에 움푹 파인 구덩이에 빠져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모두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빌린다. 이 정도라면 갚을 수 있다고. 그렇게 고금리의 함정에 빠져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P.253-

2.

 

 허름한 헌책방 이층에 사는 시로이 사바쿠. 어느날 그녀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다는 번역가 요시노 사토루. 두 남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몸을 섞지만, 사바쿠가 사토루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사바쿠의 엄마는 정부와 드라이브를 하며 바람을 피던 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아버지 또한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혼자 남은 사바쿠는 우연히 금융 기관에 갔다가 너무나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돈을 빌려 얼굴 여기저기를 성형하기 시작하지요. 그런 사바쿠 주변으로는 멋진 남자들이 항상 따릅니다. 하지만 매달 대출 이자를 갚는 것이 버거워지면서, 사바쿠는 다중 채무자로 전략하고 폭력적인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회사도 그만두고, 어머니와 바람난 상대였던 헌책방 주인 사토를 찾아가게되는 사바쿠. 그녀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사토는 말없이 사바쿠를 받아줍니다

 한편 사토루는 부잣집 딸과 결혼해 예쁜 딸 하나를 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도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도쿄로 상경한 그는, 빈곤한 생활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부채가 상당했고, 이제서야 겨우 그 부채를 상환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사정을 모르는 사바쿠는 정사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무기로 그를 협박합니다.


 

 

누구나 평범한 인생을 견뎌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니, 얼마나 희비극인가. 그것에 짓눌릴 듯이, 잠자코, 오늘도 살아갈 것인가. 내일도 걸어갈 것인가

 

-P.301-

3.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감추고 있는 진실들은 욕망과, 돈에 얽힌 추악한 것들입니다. 책의 중반부 '돈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땀을 뿌리면 돈이 자란다는 돈나무. 과연 현대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돈을 손에 쥘 수 있는걸까요. 그렇다면 열심히 노력했지만 돈의 잔혹한 덫에 걸려버린 주인공들은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요?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헌책방 주인인 사토가 카페에 만나 자유롭게 웃고있는 젊은 여성들을 보며 '거리에 움푹 파인 구덩이에 빠져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신용에 맞게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쓸때는 좋겠지만 이 빌린돈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하지만 당장 내일 내가 사직을 당한다면 그 돈을 갚을 능력은 없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린돈은 이자가 붙어 점점 늘어나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져버립니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바쿠의 허영심을 욕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요. 어쩌면 그녀의 모습은 평범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흔한 모습일겁니다. 남들에게 좀 더 멋져보이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 그 욕망에 망가져 버린 그녀는 어쩌면 지나치기 순수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요. 괜한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 책의 표지는 무척이나 잔인할것 같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닥 무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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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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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켄지 요시노

 

 

"우리 관객들은 처음에는 복수를 꿈꾸는 자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성공하길 빌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복수에 무감해집니다. 생생하게 그려진 복수의 화신의 만행을 보며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거죠. 결국 복수 자체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공포를 체감하게 될 뿐입니다.

 

-P.52-

 

1.

 

 출간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인문서적중에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에 등극시키는 기염을 뽐냈더랬죠. 이 '정의'라는 개념을 상당히 철학적으로 담아낸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거고, 오늘날에도 사랑받고 있는걸까요?

 

 사람들은 대체로 결핍된것을 갈망합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것. 그렇지만 그 '정의'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것.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필요로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이런 '정의'를 영미문학의 최고봉이라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찾아나섭니다. 법학과 교수가 문학과 법이라는상이한 학문들 속에서 어떤 키워드로 '정의'를 설명할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판관이 법의 언명에만 충실할 수도, 한쪽에 대한 감정이입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한 규율의 '일반화'인 법을 '특정한' 사안에 적용해야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씨름해 온 법의 엄정한 집행과 감정이입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가치는, 이 어려운 임무를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만들어 버렸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에스컬러스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중용의 도, 고대인들이 닦은 진리의 길을 다시 한번 거닐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P.163-

 

2.

 

 성인이 되었건만 인문학서적은 저에게 아직도 낯섭니다. 한장 한잔 넘길때마다 앞에서 무슨말을 했는지 금방 까먹고, 심할경우 방금 읽은 문장도 잘 기억이 안납니다. 때문에 처음 읽기 전에도 겁이 먼저 들었습니다. 축축 늘어지는듯한 책의 재질과, 빽빽한 활자가 인문학 알레르기를 동반한다는 생각에 오랜시간 읽지 않았는데요 막상 손에 잡으니 술술 읽혀나갔습니다. 다른 인문학 서적들과는 다르게 이야기와 함께해 나갔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을수 있었습니다.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현대판 실례를 함께 보여주며 '정의'의 여러가지 측면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복수가 정도가 아니라는 교훈부터, 중세시대부터 있어온 '중도'의 이야기까지말입니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어느정도 확립된 국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는점과, 조금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진 번역투 정도랄까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배우는 정의. 경이로운 천재의 감미로운 유혹을 이보다 더 쓸 수 있을까? 오늘날 예술과 정의에 대한 담론은 주로 책이란 매개를 통해 일반에 전해진다. 나도 비슷한 의도에서 이 책을 썼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 언젠가는 더 심오한 지혜를 찾아 헤매는 정치학계의 난리법석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나는 여러분의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P.442-

3.

 

 각각의 챕터가 모두 나름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파고 들었다지만 가장인상적이였던 이야기는 첫번째 챕터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와 미국의 아프간전쟁을 연결시킨 장이였습니다. 폭력과 복수의 끊이지 않는 굴레. 정의에 관한 언급은 직접적으로 없었지만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것이 정의였을까 쉽게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정의에 관한 잣대가 생긴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고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성현들의 옛말이 틀린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들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딱딱한 구조에 질린 사람들에게 좀더 재밌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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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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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그건 아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종이학이나 공룡 알을 접지 않는다. 대신 지갑을 열어 카드나 현찰을 꺼낸다. 그게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건 없다. 그런 세상이다.

 

-P.44-

1.

 

 지난학기 국문과 마지막 수업 중 교수님 한분이 자신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이였던 제자는 매일같이 수십장의 원고를 교수님께 들고와 소설의 결함을 물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상투적인 이야기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의 원고는 무척이나 읽기 곤욕이였지만, 제자의 열정과 끈기에 교수님은 매번 최선을 다해 학생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같은 꿈을 가진 후배와 결혼한 그는 소설을 위해 강원도로 내려갔고, 부인은 그녀보다 먼저 등단해 꿈을 이뤘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뤘을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는 더욱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을 도서관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부단히 노력한 남자는 몇년 뒤 고료 5천만원의 한겨례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아마 교수님은 끈임없이 자신의 꿈을향해 달려간 제자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아직 풀어져있는 철부지 1학년들에개 꿈을 향해 노력하면 안될 일이 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본인이 직접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지요. 당시 들떠있던 저 역시 이 이야기를 흘려넘겼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서문을 늘려나간건 작품의 작가가 위에 언급한 제 선배, 즉 교수님의 제자기 때문입니다. 책을 넘기기 전까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프로필을 보고, 책을 읽고,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서평을 읽으며 문뜩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책을 넘기니 좀 더 많은 것이 보였습니다. 실직 후 부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계속해서 부업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 역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건 아닌가 추측하게 되어 더욱 재미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메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그리고 마늘을 깐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P.159-

2.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접어두더라도, 책은 정말 재밌습니다. 문장은 짧고, 쉽게 쓰여졌으며, 한문장 한문장은 무척이나 유쾌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은 무척이나 아리게 다가옵니다. 신나게 웃다가, 주인공이 처한 웃지못할 상황이 남일같지 않아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3.

 

 이야기는 '울고싶은 날에는 마늘을깐다'는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빨간 대야 가득찬 마늘을 까는 주인공 '김영수'. 서울의 평범한 4년제 대학을 좁업하고, 평범한 직장에 근무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그는 대한민국의 표준이라 할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직 명령이 전달되며 평범했던 일상엔 먹구름이니다. 젊지않은 나이에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답게 살기위해 하루종일 마늘을 까고, 인형 눈알을 붙입니다.

 

 그러던 중 일거리를 알선해주는 브로커 돼지엄마가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공무원과 대우가 같은 동물원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입니다. 그는 동물원에서 일하기 위해 치열한(나름대로) 경쟁을 하고 첫 출근을 합니다. 고생끝에 들어갔건만 그곳은 그가 생각했던 동물원과는 많이 다릅니다. 동물을 사육 하는 역할이 아닌, 동물이 되어 사육 당하는 역할. 그것이 '영수'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비인간적인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 어쩔수없이 인정해야하는. 그렇지 않으면 살수없는 세상. 그 더러운 공간에서 그들은 차라리 진짜 동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자, 한잔해. 어때, 여기 죽여주지?

 

-P.214-

 

4.

 

 마르크스는 저서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성이 아닌 노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상에 있어 노동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질곡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신을 실현하는 창조적 능력이였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다합니다.

 

  당시에는 긍정했던 마르크스의 문장들이 오늘날에는 참으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마 그 역시도 이토록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나 봅니다. 산업은 더욱 발달했고,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곳에 기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노동'이라고 보았을때, '노동'을 대신 해주는 기계(로봇)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기계들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닌것을까요?

 

  이야기가 조금 새어 나갔지만 오늘 읽은 <굿바이 동물원>은 인간의 가치가 동물원의 희귀 동물보다 낮아진 세상, 아니 오히려 동물이 부러운 사람들의 세상의 이야기 이므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과연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을 영위받고 살고 있는걸까요. 어쩌면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동물원이고, 우리는 이미 한마리 마운틴고릴라나, 바다코끼리로 전락해 버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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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걷다 - 몽블랑 트레킹
나두리 지음, 박현호 사진 / 책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알프스를 걷다 / 나두리

 

우리는 지천에 흐르는 빙하수를 마셨다. 그리고 이 물로 밥을 짓고 몸을 씻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우리 같은 트레커들이 하천 물을 마신다는 상상을 하면 세제나 샴푸를 쓴다는 것은 끔찍하게 여겨졌다. 세제나 샴푸를 쓰지 않고 지내는 고작 2주,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이런 일상적인 습관과 상식에서 벗어나 보기 위해 알프스 트레킹을 떠나오지 않았던가.

 

-P.79-

1.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고모에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를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고모는 모든 여행지가 좋았지만 설산으로 덮인 스위스의 융프라우가 가장 좋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추가적인 코멘트와 함께요. 아마 그때부터 내 나름대로의 로망이 생겼던것 같습니다. 온갖 들꽃과 설산이 어우러진 알프스에서 요들송을 부르고 있을 하이디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관련된 사진을 스크랩하고,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한구석에 품었습니다. 

 

2.

 

 사실 알프스를 스위스에 있는 봉우리 정도로 생각했었는데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는 유럽 중남부의 큰 산계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알프스를 걷다>는 이 알프스를 트레킹한 저자의 솔찍 담백한 기행문입니다. 흔히 유럽을 생각할때 트레킹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낯선 이국의 산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거기에 드는 비용과 체력 그리고 시간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트레킹을 통해 얻은것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유럽의 중남부에 있는 큰 산계로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다.
[출처] 알프스 | 두산백과
유럽의 중남부에 있는 큰 산계로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다.
[출처] 알프스 | 두산백과


 

정사각형의 물웅덩이에는 투명한 피래미들이 물속에 까만 그림자를 찍으며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는 누군가 기거했던 집터가 허물어진 채 폐허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집터는 사방을 조망하기 쉽게 꼭짓점에 위치하였으나 사계절 내내 바람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나는 이곳에 살았던 누군가와 교감이라도 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폐허를 응시하였다.

 

-P.129-

 

3.

 

 40, 50대의 중년으로 구성된 멤버들.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인 5명의 사람들이 알프스 트레킹에 도전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산과 등산을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과도한 스트레스'라는 말을 실감나게 이해하는 나이라는 것뿐. 그 중에서도 저자는 등산용품을 구하는 기준조차 없는 초짜중에 쌩 초짜 입니다. 어찌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멤버들의 트레킹 여정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인물들의 색깔이 너무나 뚜렷하기에 발생하는 갈등들은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한 기분을 주었습니다.

 

4.

 

 하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이도 저도 아닌 여행 정보들은 조금 쌩뚱맞다는 생각이였는데요. 차라리 마지막 부분에 부록으로 묶어 놓았으면 더욱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맹맹한 문장 역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였습니다. 여행 에세이라 하면 여행에서 보고 느낀점들이 함께 녹아들어가 독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시켜줘야 하는데, 사건 중심의 이야기들만 나와 있으니 공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탑승구 근처에는 곱게 화장한 내 또래의 여자들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뿌듯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나는 큼직한 배낭과 투박한 등산화를 신은 차림이었다. 왠지 자유롭고 거침없는 삶을 살다 온 사람처럼, 때가 꼬질꼬질 묻은 남루한 나의 복장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P.251-

5.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알프스 트레킹이라는 주제로 중년의 여성이 써내려간 독특함에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함께 새로운것에 대한 시도를 과감하게 한 작가의 이야기는 어머니 세대의 도전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무거운 베낭을 메고 힘들어 할때는 함께 힘들었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을 볼때는 함께 즐거웠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탁 트인 알프스의 사진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줬는데요. 언젠가 알프스의 로망을 이루는 날 저자처럼 멋진 모습으로 사진속 땅들을 밟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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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스 롯 - 하 스티븐 킹 걸작선 12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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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스 롯 / 스티븐 킹

 

 

 

예루살렘스 롯은 컴벌랜드 동쪽, 포클랜드 시에서 약 3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 마을은 미국 역사상 황폐해져서 사라져 버린 첫 번째 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막도 아닐 테지만 아마도 가장 기이한 마을에 속할 것이다. 유령 마을은 미국 남서부에 흔히 있는데, 거기에서는 풍부한 금과 은 광맥 주변에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마을이 생겨 났다가 광석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했으며 텅 빈 점포, 호텔, 술집들이 사막의 정적 속에서 공허하게 썩어 가고 있었다.

 

-살렘스롯 상권 P.18-

 

1.

 

 최근 화제에 올랐던 신간 중 '시귀'가 있습니다. 변소누나의 끊임없는 격찬과 빵빵한 이벤트가 말초신경을 자극했지요. 그럼에도 쉬이 지갑을 열지 못한건 신간이라는 그것도 세트라는 부담감 때문이였습니다. 하 여름에는 피빠는 얘기가 최고인데. 고민고민 하던 저에게 네이버는 대안책으로 스티븐킹의 '살렘스 롯'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오노 후유미'의 <시귀>는 '스티븐킹의' <살렘스 롯>을 오마주한 책입니다. 동양과 서양 그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닮아 있다고 하더라구요.

 

2.

 

 인터넷 헌책방에서 주문을 했는데 배송이 느린데다 책 상태도 좋지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표지를 벗겨보니 검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심지어 가운데 살짝 빈공간에는 거미줄이 쳐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악스러웠던건 거미줄 사이에 말라 비틀어진 벌레였는데요. 장갑끼고 깨끗하게 닦아냈습니다. 충격이 커서였을까요. 책을 다 읽고나서도 가장 소름돋았던건 바스러진 벌레의 형상과 촉감이였습니다. 으.....



 

저택은 흡사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앞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보였다.

 

...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유치하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그저 널빤지와 경첩과 못과 창턱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집에 불과했다. 갈라진 벽틈마다 집이 내뿜는 하얀 숨결이 나오고 있다고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다. 귀신이라고? 그는 귀신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어쨌든 베트남 전에 참전한 뒤로는 그랬다.

 

-살렘스롯 상권 P.171-

3.

 

 책은 전형적인 드라큘라의 성질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티븐킹의 장편답게 묘사들이 굉장히 디테일 하다는것이 특징인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세세한 묘사들이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기도 하겠지만, 짜증이 나있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디테일한 묘사는 지루함을 불러왔습니다. 그렇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상권에서 지나치게 배경의 도입이 길었다면, 하권에서는 막판 스파트로 정신없이 사건이 진행됩니다. 앞부분만 잘 극복한다면 뒷부분에서는 분명 흥미가 동하실 겁니다.

 

4.

 

 메인주 살렘스 롯. 이야기는 작가 벤자민 미어스가 그곳으로 이사를 오며 시작됩니다. 어릴적 잊지못할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벤. 그 일은 마스튼 저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쳐버린 남자가 부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곳. 어린시절의 객기로 찾아간 저택에서 그는 끔찍한 관경을 목격합니다. 이후 어른이 된 그는 그 저택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저주받은 저택은 이미 다른사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발로우와 그의 대리인 스트레이커가 그곳에 골동품 가게를 차린겁니다. 마을의 분위기는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그 평화는 깨져버립니다.

 

 어느날 친구네 집에 놀러가던 형제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형은 곧 돌아왔지만 병으로 죽고, 동생은 계속해서 행방불명입니다. 아버지는 관 속의 아들을 보고 오열합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죽은 아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서 말이죠. 그 후로 마을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점점 이상하게 변해갑니다.


 

 

"캄보디아 폭격이나 아일랜드 및 중동전쟁, 경찰 살해, 빈민가 폭동 같은 무수한 소악들이 매일같이 성가신 각다귀 떼처럼 온 세상을 활개치고 있소. 교회는 주술사의 구태를 벗고 사회적으로 좀 더 적극적이고 의식을 가진 실체로 재부상하는 과정에 있소. 따라서 고해실이라기보다는 도심의 범죄 박멸 센터 역할을 떠맡는 셈이오. 영송체송은 시민권 운동과 도시 재배발의 제2 바이올린이고 말이오. 이제 교회는 세상 깊숙이 두 발을 담근거요."

"마녀나 몽마, 흡혈귀 따위가 없고 아동구타, 근친상간, 환경 침해만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거죠?"

 

-살렘스롯 하P.178-

5.

 

 뻔할수 있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은 타고났습니다. 선악의 대립과, 한치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릴 만점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드라큘라 이야기와는 닮은듯 다릅니다. 약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킹만이 보여줄수 있는 묘사력 때문일겁니다.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한여름 밤을 서늘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귀>역시 평이 좋던데 <살렘스 롯>과는 어떤점이 닮아 있는지, 또 어떤점이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해 집니다. 아마 조만간 시귀를 질렀다는 포스팅이 올라올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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