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4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는 게 실은 머리로 이해하는 이상으로 힘들다는 것을 나는 곧 통감하게 된다. 사람은 시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 느껴지는 기척에 아무래도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는 그쪽을 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작은 공포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 처음에는 불안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미미했던 느낌이 자꾸자꾸 쌓이면서 어느새 커다란 진짜 공포로 자라난다.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쓸쓸하고 꺼림칙한 느낌인지는 체험을 한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으리라.

 

-P.39-

 

1.

 

 아흐. 미쓰다 신조의 '도조겐야' 시리즈의 시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잘린머리처럼 불길한것>을 시작으로 <산마처럼 비웃는것>까지 어찌나 재밌었는지. 미쓰다 신조의 신간만을 좀비마냥 기다렸었는데 추석을 전으로 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추석때는 학교 과제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과제는 커녕 책만 주구장창 읽었습니다. 한순간도 눈을 뗄수없는 짜릿한 공포와, 반전은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싹다 접어두게 만들만큼 강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중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①가위 누르는 귀신

②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③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자 그 어떤 마물보다 가장 꺼림칙한 존재

[출처][김영사 공식 카페]|작성자 김영사

 염매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지식의 원천이라 불리는 지식인에도 나와있지 않더라구요. 궁금해 하던차에 김영사 카페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나중에 보니 책 뒤에도 나와있더군요..) 일본에서는 위와 같은 의미로 '염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나봅니다. 책을 읽고나서 판단해보자면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염매는 3번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자 그 어떤 마물보다 가장 꺼림직한 존재의 의미가 강한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신성시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허수아비님.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두 가문의 대립과 그 속에 담긴 전설의 이야기가 오싹하게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축축했다. 백의 너머로 뭔가가 싸늘하게 스며드는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굳어 있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의 젖은 손이 어깨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상상만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왼쪽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 사악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었다.

 

-P.149-

2.

 

 쇼와시대 아직 개발이 덜된 산골마을. 그곳에는 흑과 백을 상징하는 두개의 큰 가문이 있습니다. 마귀가계라 불리는 가가치가와, 그에반해 백으로 상징되는 가미구시가가 바로 이 두 가문입니다. 소작인들도 흑과 백 두 가문의 사람들로 양분되어 살아가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령시되는 허수아비님이지요. 그 외에도 마을에는 미신적인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불가해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신령납치와, 구구산의 나가보즈, 염매가 떠돌아 다니는 마주침 오솔길 등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실제로 마을에서는 그들을 봤다는 사람들도, 그들에 의해 사라진 아이들도 존재합니다.

 

 이렇듯 비밀을 간직한 마을에 '도조 겐야'가 등장합니다. 외지인을 꺼리는 사람들. 어렵사리 가가치가에 도착하지만 그의 도착과 동시에 첫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수행자라 불리던 남자 '오사노 젠토쿠' 발견된 시체는 기이합니다. 목을 메고 죽었다는 점에서는 별다를것이 없지만 그의 입에서 머리빗이 발견되었다는 점과, 미쳐버린 가가치가의 사기리가 목맨 시체를 흔들며 신벌을 받았다고 말하는 점은 그의 죽음이 이제 시작임을 암시하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행자의 죽음 이후 마을에는 더욱 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염매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며, 무녀 사기리의 손녀 사기리역시 기이한 현상을 경험합니다. 기리고 곧이어 두번째 살인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런 칭찬 뒤에 숨은 질투심은 당연히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거야. 이 가계 사람들만이 아니라고. 그런 걸 일부 사람들만 흑이라고 단정하고 자기들은 백이라고 큰소리치잖아? 자기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하고 무관하다는 양.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백이라는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그야말로 마물이지. 좋은 면만 가졌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엉 씨앗이란 생령은 인간 심리의 모순을 강렬하게 부각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워. 그게 차별로 이어진다는 게 마귀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만.

 

-P.265-

 

 

3.

 

 사실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를 비롯해 민담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들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뻔한 플롯일 겁니다. 마을의 전설에 따라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마을에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작가의 시리즈 두편 정도만 읽어도 충분히 다음 작품의 내용을 유추할수 있는 안목을 갖게 만들죠. 사실 '도조 겐야'시리즈 역시 이렇듯 뻔한 플롯의 단점은 극복하지 못한듯 합니다.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마을간의 대립과, 마을에 내려오는 괴담을 바탕으로 도조겐야가 나름의 추리를 펼지고 마지막 장에 다다라서는 아 이게 끝이 아니였구나 싶은 괴현상으로 끝을 마무리 하지요.

 

 중요한건 그럼에도 재미있다는 겁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화술이 좋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더욱 재미있게 들리는 것처럼 작가는 뻔한 이야기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만들어 갑니다. 특히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같은 경우에는 한편에 담기 아까울만큼 많은 트릭들과 반전이 존재합니다. 본격 추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화술에 푹빠져 무척이나 재미있게 즐길수 있었습니다. 방대한 분량과, 사기리로 통일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때문에 읽어가는 과정은 조금 더디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도조겐야 시리즈인 <물귀신처럼 달라붙는 것(?)>이 내년 상반기에 출간 예정이던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Ps. 작가도 작가지만 번역해주신 권영주 선생님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반전을 보고 앞을 다시 뒤져보니 정말 헉소리가 나더군요. 좋은 번역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