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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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누와르 / 나서영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서울에는 이렇게 큰 가게가 많아. 사람이 많으니까. 또 가게가 크니까 만물상이야. 없는게 없어. 작은 가게에 없는 것도 많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있단 말이야. 큰 가게는 주둥이가 큰 황소개구리야.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 황소개구리가 득실대는 저수지는 곧 씨가 마르게 돼. 송사리고 개구리고 붕어고 잉어고 전부 먹힌단 말이야. 아가리가 너무 크니깐 다 처먹어버린단 말이지. 아마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냥 흘려들어."

 

-P.71-

 

1.

 

제가 어릴적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맛 하나로 동네를 평정한 빵집 아저씨는, 인심도 후해 어린 학생들에게는 덤으로 왕슈 하나씩을 더 넣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는 프랜차이저 빵집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할인혜택을 통한 저렴한 가격은 물론 깨끗하고 정돈된 프랜차이저 빵집들은 처음엔 고전하나 싶더니 점점 자리를 잡아가며 기존의 빵집을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아저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빵집의 상호를 유명 프랜차이저의 메이커로 바꾸었습니다.

 

<이게 바로 누와르>는 지난번 포스팅한 <알로마노 달의 여행>의 작가 나서영의 작품입니다. 개성있는 주인공들이 장식한 표지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들었는데요. 부조리한 현실 세태를 풍자하며 한편의 멋진 누와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지금도 너무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들의 비극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은 뒤 다시 본 표지에서 그들의 모습은 처음과 달리 씁쓸함이 묻어나 보였습니다.



비정규직들은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업무 준비 시간이라는 명분이 제시되었지만 천 명을 웃도는 사람들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물론 '30분쯤이야,' 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꾹 눌러 삼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천 명의 30분은 하루 3만 분이었다. 용진마트가 하루에 3만 분을 착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큰 문제는 출근 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시간마저 늦춰졌는데 적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추가근무를 강요당했다.

 

-P.134-

2.

 

지역의 작은 도시 용주군에 벤츠를 모는 심씨형제가 발을 디딥니다. 형인 심상문은 군수선거에 출마하며 '용진마트'라는 거대한 비즈니스 공약을 내세우는데요.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대형마트가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하여 심상문을 지지하고, 자연스레 그는 용주군의 군수가 됩니다. 그리고 용진마트의 대표는 심상문의 동생인 심상만이 맡게 됩니다. 마을은 주민들의 기대처럼 번영해 나갑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용진마트'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용진마트'가 커질수록 피해자들은 늘어만 갑니다.

 

사실 과거 용주군의 상권을 잡고있던것은 마을의 번영회 역활을 하는 한우리회 였습니다. 한우리회의 대표 이권하와 그의 형제로 표현되는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다함께 잘살아 보자는 상생의 가치를 실현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상생이 일반적인 살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용진마트'가 들어선 뒤 부터인것 같습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는 심씨형제는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정당화 시킵니다. 정치와 경제가 만나며 법마저 자본에 예속되 버린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권하와 형제들은 용주군의 시민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싸움을 시작합니다.
 

 

경찰은 황당하게도 용역의 편이었다. 아무리 공정성을 상실했다고는 하지만 용주군의 경찰들이고 용주군의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 세력을 불법점거 농성자로 규정하고 일을 처리했다. 또 용역은 정당한 권리사업자로 용진마트 측에 용역 의뢰를 받은 것으로 정상 참작되었다. 경찰 스스로도 조금 황당한 처리였다. 누가 봐도 그렇게까지 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법은 자본의 편이었다.

 

-P.182-

 

3.

 

어두운 골목길, 이슬 비가 내리는 인적이 거의 없는 스산한 거리, 가로 등 밑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남자, 그가 피워대는 자욱한 담배 연기. 누와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먼저 떠오르는 요소들입니다. 여기에 '부패' '배반' '냉소주의' '환멸' 등이 버무려지면 하나의 멋진 누와르 영화가 만들어지지요. 누와르의 끝은 대체로 비극적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관객은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뒤 관객은 곧 주인공을 잊고, 자신의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갑니다.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 동갑내기 작가는 열가지 궁금증을 내세웠습니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게 돌아가고 있다는것은 분명합니다. 책을 읽은 나는 과연 저가상품과,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세 상인들에게 발길을 돌릴수 있을까요. 쉽게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를 또 쉽게 잊어먹을까 걱정이 됩니다. 작가의 마지막 궁금증 나는 천국에 갈수있을까. 이말이 자꾸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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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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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를 신봉하던 연매출 100억 엔대의 귀금속 브랜드 사장이 살해당하며 시작된다. 주말을 보내려 찾은 별장에서는 사장의 시체가 ‘프로트 캡슐’이라는 명상 기계 안에 알몸으로 방치돼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달리 수염은 잘려나간 상태고, 살해 현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가득하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비서, 여비서와 애인관계였던 주얼리 디자이너, 회사의 임원이자 사장의 동생, 거래처 광고 대행사 직원이자 사장의 이복동생 등 여러 인물등 다양하다.

‘일본의 엘러리 퀸’으로 불리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신작으로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콤비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이른바 일본의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라 할 수 있는 이들 콤비는 작가의 전작 ‘46번째 밀실’을 뒤이어 활약한다.

작가는 재산을 둘러싼 사건인지, 치정 사건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특이한 캐릭터를 열거하며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범인을 맞추려 해도 모두 알리바이가 있는데다, 다잉메시지가 각기 다른 범인을 지목해 도전이 쉽지 않다. 이처럼 난해한 과제는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지루함 없이 숨 가쁘게 읽어내려가도록 흥미를 자극 한다. 히무라, 아리스 콤비와 추리하며 용의자를 하나씩 소거해가다 보면 새 고전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 재밌다는 말은 못하겠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뻔하디 뻔한 치정에의한 살인은 이제 진부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고르는 일은 앞으로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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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도 : 연옥의 교실
모로즈미 다케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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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도 / 모로즈미 다케히코

 

"그래요. 전원이. 전원이 범인입니다. 서로 입을 맞춘 거예요. 학대는 없었다고. 그래서 다들 속는 거죠. 세상도 경찰도. 아무도 믿어주질 않아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경찰도 법정도. 그래서 제가 직접 한 겁니다. 형사님, 저는 형사님한테 그리고 세상 사람들한테 묻고 싶습니다. 제 딸아이의 원통함을 풀려면, 그것 말고 또 어떤 방법이있었나요?"

 

-P.68-

 

1.

 

(스포 有)

 

요즘 학생들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또한 뉴스에서 나오는 기사들도 불과 얼마전이였던 나의 학창시절과는 많이 다르구나 라는 걸 실감하게 합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교사는 학생을 추행하고. 믿을수 없는 사실들이 현실속에서 벌어집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학생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체벌을 없앴지만 이후 좀 더 많은 범죄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체벌이 필요하다의 논란을 떠나서, 좀 더 효율적인 교육체제가 필요한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중요한 사항인가봅니다. 민감할수 있는 소재를 다룬 이야기가 미스터리 문학 대상을 수상한것을 보면 말이죠. 소설 <라가도>는 바로 이런 상황속에서 일어난 한 학급의 비극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당신의 행동은 최고였어. 후지무라 아야가 그 똥통 같은 반에서 유일하다고 해도 좋은 선량한 학생이었다는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어. 똥통이라고 해버렸네. 그 반은 똥 같아. 지금의 일본 중학교 대부분이 똥이듯이 말이지. 그 똥통 속 천사 같은 존재였던 후리무라를 '악역'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사건을 수습하려 한 경찰은 능구렁이 같은 게 고단수라면 고단수지만 말이야.

 

-P.94-

 

2.

 

명문 사립중학교 교실에서 학생 2명이사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건의 범인은 몇 달 전 자살한 학급의 일원 리나의 아버지. 만취상태로 현장 체포된 범인은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학급의 아이들 또한 공포에 질려 증언이 엇나갑니다. 경찰은 모형세트를 지어 사건 현장을 재현하지만 그 역시도 내부 고발로 인해 중단되지요. 이에 방송 제작자 고다가 진상을 밝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담임교사와 학생들 학부모와 학교 재단까지 모두를 조사합니다. 하지만  조사할수록 진실은 멀어지는것 같습니다. 집단 따돌림의 문제인줄만 알았던 문제가, 학교의 재단과도 연결된 큰 문제로 이어집니다. 선한 희생양인줄로만 알았던 학생은 아이를 따돌린 주동자로 몰리고, 반의 보스라 일컬어지던 학생은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엇갈리는 진술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요.

 

 

 

왜 아무도 아무 말도 않는 걸까요. 이건 이상하다, 어디가 이상하다, 어떻게 해야 된다고 왜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걸까요. 혹시 제가 이상한 건가요. 저를 포함해 학생이란, 압도돼야 할 때는 압도돼야만 합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입을 딱 다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이는 힘을 누군가가 가져야만 합니다. 누군가가.

 

-P.298-

 

3.

 

책은 본문에 93개의 그림을 함께 배치하여 독자가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표는 소름끼치는 진실을 좀 더 인상적으로 접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가독성도 탁월하지만 책은 엉성하다는 느낌이 상당히 많이듭니다.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SF적인 요소도 들어있고, 답답하기만 한 주인공들의 성격도 그렇고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문제점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는데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실종, 집단 따돌림, 은둔형 외톨이, 재단 비리와 학부모 거래 등 충격적이고 시사적인 소재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실이니까요. 지금 내 주변의 공기는 어떨까요. 나는 과연 주변의 공기에 섞이지 않은 사람인걸까요. 묘한 의구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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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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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귀천 정사 / 렌조 미키히코

 

둘이서 관을 가라앉히려고,물이 통할 수 있도록 관에 구멍을 뚫어 바다에 던지자 거친 파도로 인해 관은 한순간 바다로 빨려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다에 던질 때 밧줄로 견고하게 묶어 꼭 닫아두었던 뚜껑이 열린 모양입니다. 바다 저 밑에서 관에 넣어두었던 꽃들이 차례차례 떠오르며 순식간에 해수면 한가득 퍼지나 싶더니 그것도 잠시, 어느래 파도 틈으로 정처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P.40-

1.

 

(스포 有)

 

블로그 이웃분들과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임들의 세상'(이하 '추.임.세') 라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웃들과 만나 책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공통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 무척이나 즐거운 모임입니다. 모임에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서로에게 선물해주는 '마니또' 제도가 있는데요. 이번에 리뷰할 <회귀천 정사>는 이웃 토실여왕님(http://blog.naver.com/aim_dream)이 선물해주신 책입니다. 잔잔하고 담백하게 감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진한 울림을 주는 책은 사랑에 대한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정사(情死).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의 동반자살이라는 뜻을 담고있는 단어입니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러한 소동들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모양입니다. 이 단어는 왠지 오싹한 동시에 낭만적이며 안타깝습니다. 사랑했지만 세상이 허락하지 않기에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겐 비난보단 동정이 먼저 쏟아집니다. 하지만 이 정사 뒷면에 추악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낭만적으로 비춰졌던 행동이 한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면 그 정사는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게 연극 속 오시치와는 달리 쇼와 3년(1928)이라는 어두운 시대, 한 빈곤한 소녀에게 허락된 사랑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네. 절망의 바닥에서 몸도 마음도 말라비틀어지기 직전, 쇼와 3년의 오시치는 처음으로 가슴에 핀 불꽃에서, 연극의 화려한 감정과는 다른 어두운 불꽃에 자신을 태웠어. 붉은 등불에 온몸이 젖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새하얀 꽃잎으로 조루리를 빌어 자신의 사랑을 걸었던 걸세.

 

-P.117-

 

2.

 

<등나무 향기>
유곽 근처에 살고 있는 ‘나’와 동거녀. 옆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대필가 한 사람이 유흥가의 글 모르는 여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고향으로 편지를 써 보내준다. 어느 날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가 발견되고, 목격자의 증언으로 대필가는 체포된다. 나와 동거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위증을 하려 하지만 결국 대필가는 자살하고 만다. 이후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도라지꽃 피는 집>
손에 도라지꽃을 꼭 쥔 채 발견된 시체. 형사인 나와 선배는 시체 발견 장소에서 가까운 유곽에 도착해 탐문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피해자가 죽은 날, 후쿠무라라는 한 손님이 그 유곽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단골 상대였던 한 창기를 조사한다. 그녀의 방 앞 노대에는 하얀 도라지꽃이 한 가득 피어 있었는데…….

<오동나무 관(棺)>
‘나’는 작은 폭력 조직 가야바구미에서 과묵하고 네 손가락이 없는 한 사내 누키타의 수발을 들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부탁으로 매주 한 여자와 밤을 보내게 된다. 인근한 조직과 세력을 다투던 중, 누키타는 ‘나’에게 가야바구미의 두목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왜 내가 속한 조직의 두목을 죽여야 했을까? 누키타 형님과 내가 밤을 함께하던 그 여자는 어떤 사이였을까?

<흰 연꽃 사찰>
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한 남자를 죽이는 섬뜩한 영상이다. 어머니는 누구를 죽였을까. 그리고 왜 죽여야만 했는가.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수수께끼가 풀린 순간 내 눈앞에는 놀라운 진실이 떠오른다.

<회귀천 정사>
1920년대 일본, 천재 가인으로 불렸던 소노다 가쿠요는 두 번에 걸친 정사(情死) 미수 사건으로, 두 명의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소노다는 그 여정을 두 권의 가집으로 남기고는 목을 그어 서른넷 짧은 생을 마쳤다. 찬란한 명성을 얻은 두 권의 가집. 그 시구를 통해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과연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자리하고 있을까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각각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였지만, 가장 가슴에 남았던 이야기는 <도라지꽃 피는 집>이였는데요. 유곽에 사는 어린 소녀의 사랑. 그 순수함이 불러온 참혹한 살인과, 오시치극의 대사가 무척이나 잘 어우러져서 마지막까지 깊은 여운을 불러왔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았다라 평하는 표제작 <회귀천 정사>는 글쎄요. 공감도 가지 않았을 뿐더러. 예상 가능한 이야기에 조금은 실망했습니다.


 

 

나는 하염없이 흘러가는 꽃을 향해 가슴속에서나마 두손 모아 기도하고 싶었다. 후미오의 생명이, 아야코와 미네의 생명이 그리고 소노다와 단 하룻밤의 정을 나눈 홍등가 여인들의 생명이, 아름다운 꽃의 색깔을 발하며 사후에 마주할 구원의 어둠 속에 떠 있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359-

 

3.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각각의 꽃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꽃으로 장사 지내다’라는 의미인 ‘화장(花葬) 시리즈’라 불리는 단편들인데요. 남녀간의 치정을 다룬 각각의 작품들에선 꽃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또한 모든 작품의 배경은 1차 세계 대전, 간토대지진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다이쇼 시대'입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작가는 꽃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요? 아마 화사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지고 버려지고 짓이겨지고 스며든 꽃의 또 다른 이면을 통해 시대의 어두움과 인간의 마음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곽에서, 절에서, 야쿠자의 세계에서 꽃들의 이미지는 슬프게 다가옵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정당성을 위해 피해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합니다. 여기서 피해자는 증오심과 사랑을 위한 대상이 아닌 도구일뿐입니다. 이야기는 잔인하지만 서정적입니다.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애달파 어느새 살인에 동조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꽃과 사랑. 표지의 선명한 이미지와 내용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였습니다. 화장시리즈의 나머지 3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저녁싸리 정사>역시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동안 기억에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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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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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 미쓰다 신조

 

"왜냐하면 넌 조주로 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치가미 가에서 살 게 틀림없으니까. 그러니까 너한테 이야기해두기로 한 거야. 알겠니? 표면만 보면 안 돼. 사물에는 반드시 이면이 있는 거야. 특히 거창하고 성가신 관습이 대대로 내려오는 이런 구가는 어느 날 갑자기 그것들이 붕괴해서...."

 

-P.137-

1.

 

(스포 有)

 

전 무서운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온 마을의 괴담과 같은 전설들을 좋아하는데요. 이러한 이야기들이 서늘함을 주는 오락성과 동시에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교시의 효과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한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기초로 만든 본격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오래전 선물받고 읽지 못했던 이책을 읽게된건 더운 날씨 탓이였을겁니다. 서늘한 이야기가 읽고싶어져 집어든 책은 술술 읽혀나갔고 책을 덮을 즈음에는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책의 작가인 '미쓰다 신조'는 본격 미스터리와 민속적 호러를 결합시킨 '도조 겐야 시리즈'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인데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요코미조 세이지'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국내에 출간된 '도조 겐야 시리즈'는 아직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렇게 두권 뿐인데요 곧 출판사 '비채'에서 <마지모노처럼 달라붙는 것>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기둥과 목의 절단면 사이가 딱머리 하나의 길이만큼 떨어져 있었다. 또 베인 목 밑 다다미에는 큼직한 날붙이로 여러 번 찍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다미 겉면의 골풀이 찢어져 속에 든 지푸라기가 드러나 있고, 보풀이 인 곳에 끈끈한피가 튄 것이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P.238-

2.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이 책은 '도조 겐야' 시리즈 이면서도 주인공 '도조 겐야'의 비중이 무척이나 미비한 작품입니다. 기껏해야 중간에 잠깐나와 들러리 역할을 하고,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얍 범인은 너야 추리하는게 다였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도입부분의 일본의 역사 이야기가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져 힘들었었는데요, 고비를 넘어 주인공들의 이름을 조금씩 외우고 나니 정말이지 술술 넘어갔습니다.

 

이야기는 히메카미촌이라는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이치가미, 후타가미, 미카미로 구분되는 히가미가는 히메카미 촌을 대대로 다스려온 마을의 대지주 인데요. 이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가 있습니다. 히가미 일족의 장이 되는 사내아이. 즉 이치가미 가의 후계자가 되는 아이가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부정을 막기위해 가문에서는 아이들을 산으로 보내는 참배의식을 거행합니다. 그리고 십삼야 참배의 날. 장남인 조주로와 쌍둥이 여동생 히메코가 길을 나서고, 밀실 상태인 산 속에서 히메코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가문의 요구로 어영부영 사건은 가려지고 잊혀집니다. 하지만 몇 년 뒤 조주로의 혼인 의식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대체 누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이런 밤중에 목욕을 할 사람이 이치가미 가에 있을 성싶지 않았다. 단숨에 정점에 달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요키다카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머리가 없었다.

 

-P.257-

3.

 

일본의 부유하지만 폐쇄된 가문의 이야기가, 마을의 전설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음산한 이야기를 뿜어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로 짜맞추는듯한 느낌의 본격 미스터리를 선호하지 않는데요. 책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뒷 반전을 이용해 하나의 완벽한 그림으로 그려나갑니다. 잘린 머리의 전설이 책의 분위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꼭 잘린 머리여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의 예일겁니다. 때문에 책의 마지막장을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됩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다시한번 되짚어 보면, 작가가 정말 고생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치가 완벽합니다. 특히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은 온몸에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서웠습니다.

 

'도조겐야 시리즈' 외에도 한스미디어에서 출간중인 '미쓰다 신조 월드'역시 평이 좋던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무더운 여름철 서늘하게 더위를 식혀줄 공포 미스터리 소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강력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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