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아줌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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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 산타 아줌마

 

 

"그런점에서 본다면 일본은 참 좋겠어요. 계속해서 아이들이 줄어든다고 하던데요."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일본의 산타클로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하지요. 더구나 요즘은 산타클로스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아이를 찾아볼 수 없어요. 그만큼 꿈이 사라진 거지요."

 

-P.16-

 

1.

 

 어릴적 제가 생각했던 산타의 인상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산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후한 외모에 흰색 턱수염을 잔뜩기른 노년의 백인 사내. 산타의 존재를 믿느냐 안믿느냐의 유치한 담론을 떠나 지금까지도 제게 남아있는 산타의 모습은 어릴적 생각한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왜 항상 산타클로스는 제가 묘사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걸까요. 분명히 제가 살고있는 한국은 아시아인데, 항상 산타는 백인의 할아버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산타 할머니도 있을수 있고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계, 혹은 아프리카계 산타도 존재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사실 책을 읽기전까지는 여기에 대한 의구심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성 니콜라스의 모습이 전래되어 오늘날 산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문화권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면 조금씩 이야기가 바뀔수도 있는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산타의 모습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을까요?

 

 

 

 

"왜 산타클로스는 남자가 아니면 안되나?"

 

-P.38-

 

2.

 

 <산타 아줌마>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화같은 이야기 입니다. 그동안 그의 작품들로 유추해봤을때 <산타 아줌마>라는 제목은 독자들로 하여금 산타 아주머니가 펼지는 붉은 피의 향연과 같은 내용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른 아이 함께 공감하며 생각할 수 있는 그림책 입니다.

 

 이야기는 필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각국의 산타들이 모인 산타회의장.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정년 퇴임을 앞둔 미국 산타의 후임이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과는 다르게 회장에 도착한 후임 후보는 여성인 '제시카'입니다. 각국의 산타들은 이런저런 산타의 규정과, 부성이 무시되는 현 상황을 이야기하며 산타는 남성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곳에서 제시카는 자신의 이야기로 각국의 산타들을 설득시킵니다.

 

 

 

"요즘 부모들은 돈만 벌어다주면 아이는 저절로 자란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부모의 애정을 기대하겠나? 요전에는 어느 유치원에서 편지가 왔는데,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돈을 달라고 썼더군.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정말 말세야, 말세"

 

-P.45- 

 

3.

 

 세상은 인종차별, 성차별을 주장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소한 일상속에서도 이러한 차별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책은 단순히 여성산타에 대한 차별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꿈이 사라진 아이들의 현실부터, 저출산 문제까지 현재 우리가 겪고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흘려놓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전환을 해볼 수 있는 책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미스터리물을 많이 내는 작가라고 동화같은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알록달록 예쁜 색깔로 꾸며진 귀여운 산타들의 이미지가 책의 재미를 한층 더해줬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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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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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뿔 / 조 힐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는 밤새 부어라 마셔라 들이켜고 온갖 추잡한 짓거리를 해댔다. 아침에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어나, 관자놀이에 손을 대보니 익숙하지 못한 무엇이 느껴졌다. 끝이 뾰족한 혹 같은 것. 속이 너무 쓰리고 눈도 침침한데다 기운도 하나 없어서 처음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숙취가 너무 심해서 아무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변기 앞에 흔들흔들 서서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순간, 자는 동안 머리에 뿔 두 개가 자라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놀라서 움찔했고 열두 시간 만에 두 번째로 다리에 오줌을 지렸다.

 

-P.11-

 

1.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꼬꼬마적 그림책으로 읽었지만 작품의 충격적인 내용이 인상적이여서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의 실존적 존재 이유 등과 같이 무거운 주제를 인식하진 못했지만, 내일 당장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어떻게하지 그래도 가족들과, 친구들은 날 이해하고 사랑해줄까라는 철학적 고민으로 한동안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내린 결론은 상당히 긍정적이였지만 '조 힐'이라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는 그 결론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나타납니다. 어쩌면 성인이 된 제가 인식하는 결론역시 조 힐의 상상을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저자 '조 힐'은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아들입니다. '스티븐 킹'의 팬임을 자처하지만 그에게 공포소설을 쓰는 아들이 있었다는건 처음 안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말이 듣기 싫어 고향인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작품을 출간했다는 '조 힐'은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빼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입니다. 섬찟한 호러와 짜릿한 판타지가 어우러진 작품은 조만간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벌써부터 영화가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이그의 인간성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건, 다른 상황이건. 메린이 죽던 날 이래로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되레 약점이었다. 이제 이그는 악마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자신에 익숙해졌다. 십자가는 보통 인간 조건의 상징이었다. 고통. 이그는 고통이라면 신물이 났다. 누군가 나무에 못 박혀야 한다면 이그는 망치를 든 사람 쪽이 되고 싶었다. 이그는 십자가를 풀어 조수석 물품함에 넣어두었다. 그러고는 운전석에 꼿꼿이 앉았다.

 

-P.413-

 

2.

 

 성인 이그나티우스의 이름을 가진 평범하고 선량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애인 '메린'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지적이며 이해심많은 여자 '메린'.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를 사랑한 '이그'에게 범인이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음에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의심을 쉬이 떨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과 친구들마져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메린'의 묘지를 찾고난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그의 머리에는 뾰족한 뿔이 솟아 있습니다. 이그가 악마가 된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되어버린 이그에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진심을 꺼내놓습니다.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던 경찰들은 사실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 안달난 게이들이였으며, 성당의 신부역시 누군가의 고해를 들어줄만큼 결백한 인간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 마저 이그로 인해 떨어진 가문의 명예를 이야기하며 이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는 악마가 된 이상 '메린'을 죽인 진범을 찾아 복수하겠다 다짐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범인이 이야기의 초반부에 미리 밝혀진다는 점입니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그가 범죄를 저지르게된 이유와 이그와 메린 그리고 진범과의 관계등에 초점을 맞추며 사건을 진행시키는데요. 그럼에도 어색하다거나 지루한점이 없다는것이, 그래서 끝까지 손을 떼지 못하게 못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나도 그녀를 사랑했어. 너도 알겠지만." 리가 말했다. "사랑이 우리 둘 다 악마로 만든 모양이군."

 

-P.467-

 

3.

 

 악에 대한 복수를 결국 똑같은 '악마'가 되어 한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짜릿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왜 천사가 아닌 악마가 되어 복수를 할수밖에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이해가 갑니다. 만약 주인공이 날개달린 천사가 되었다면 이야기는 복수가 아닌 용서로 끝이 났겠죠. 그를 악마로 만든건 '사랑'일수도 있겠지만, 그를 악마라고 생각한 사람들일 겁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평범한 남자가 할수있는 일이라곤 결국 초인적인 힘을지닌 악마가 되는길밖에 없었을테니까요.

 

 마지막 엔딩은 끔찍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웠습니다. 불의 탑. 불꽃의 왕좌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의 결혼 축하파티가 한창입니다. 함께 타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모순적으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보다 더욱 순결해 보였습니다. 그는 악마가 되어버렸지만 남은 몇몇은 여전히 '이그'를 선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어찌보면 진정한 선도, 진정한 악도 없다는게 작가가 내리고 싶은 결론은 아니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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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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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 김영하

 

 

"너는 우선 어른이 돼야 한다. 그럼 자연히 알게 돼.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 판단하지 못한다면 어른이 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는 제 판단으로 행동한 거고, 그러니까 아무 후회가 없어요."

"너는 세상에 원한을 품고 있어. 그래서 네 알량한 정의의 이름으로 그걸 심판하고 싶은 거야. 그건 위험해."

제이는 마치 전자제품 사용에 대한 안내를 들은 소비자처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험하죠. 저도 알고 있어요."

 

-P.73-

 

1.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건 라디오를 통해서였습니다. 평소 듣지 않던 라디오가 그날따라 듣고 싶었고, 하필 맞춰져있던 주파수가 음악방송이 아닌 교육방송이였던건, 그리고 그 시각 책을 읽어주는 방송이 들렸다는건 우연치고는 상당히 잘 끼워 맞춰졌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읽어주는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는 담담하게 여동생의 시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단편집중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은게 아니라 듣게된건 '김영하'라는 젊은 작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새로운 감각이였습니다. 아마 기말고사를 앞둔 즘이였을 겁니다. 한창 공부해야할 시기 저도모르게 서점에 들어가 문제집 대신 그의 책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웃픈(웃기고도 슬픈)이야기들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가벼운듯 툭툭 던지는 문체에 담긴 차가운 시선은 때론 풍자적으로, 때론 비극적으로 독자의 희비를 농락했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고른건 문학동네 특유의 감각적인 표지와, 느낌있는 제목도 한몫했지만. 아마 그때 느꼈던 작가의 젊은 감각이 그리워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그의 문학적 학풍에 대해 논할수는 없겠지만 귀걸이를 하고 문학상 시상대에 오른 남자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젊음을 대표하듯이 보였습니다. 어쩌면 고루한 문학세계에서 새롭다는건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 반역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작품을 내보이는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그런면에서 젊은 감각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이 더욱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은 원래 그런 존재야. 신은 비대칭의 사디스트야. 성욕은 무한히 주고 해결은 어렵도록 만들었지. 죽음을 주고 그걸 피해갈 방법은 주지 않았지. 왜 태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게 만들었고."

 

-P.134-

 

2.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동명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메아리치듯 머리속에 남아있는 몽환적인 목소리.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노래에서 목소리는 과연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면서도 같은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제이와 동규가 그토록 말하고 싶어했던 목소리는 무었이였을까,더나가 목란과 길위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을 비참하고 잔혹하게 만드는 소리는 무엇이였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슬픔이라고 얘기하던데 제가 느낀 이 책은 슬픔보다는 절망에 가까웠습니다.

 

 글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제이 입니다. 누군가의 원치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 비극적인 출생은 아이의 인생 절반에 거쳐 참으로 불공평하게 이어집니다. 그가 평범할 수 있었던 시간은 돼지엄마의 품 속에서 동규와 함께 지낸 시간 뿐입니다. 돼지엄마의 가출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제이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따뜻했던 다방의 레지는 살해당하고, 불쌍한 개들을 도와주려 개장수의 차에 구멍을 냈을때 고아원의 원장은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어른이 되어야 한다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면 그런 부조리함을 자연스럽게 이해할수 있게 되는걸까요?

 

 이런 세상에서 제이는 변해갑니다. 고아원을 나온뒤 흡사 노숙자와 같은 모습으로 동규를 찾은 제이. 그는 지옥도와 같은 세상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남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가출 소년 소녀들의 관계는 마치 동물들의 사회와 같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폭력으로 다스리고 그 속에서 난교는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윤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그런 관계를 눈치채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어른들은 그들의 부조리함을 껄끄럽지만 쉬쉬 넘어가려 합니다.

 

 제이는 폭주족의 우두머리격이 되어 '고아'들의 이야기를 폭력으로 분출합니다. 배달이 늦으면 오만가지 짜증을 내면서, 밤에 폭주를 뛰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잣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이들 역시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의미없는 목소리만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우리를 이해해줄까? 사람들 잠 다 깨우고 길 막고 다 때려부순다고?"

...

 

"내가 보육원에서 배운 게 있어. 거긴 애들이 아주 많아. 보살피는 사람은 적고. 거기서 누구 하나를 때리면 어른이 나타나서 물어. 왜 그랬냐고. 나는 그게 대화이고 관심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냥 묻기만 해. 그러고는 벌을 줘. 하지만 적어도 혼자 삭일 필요는 없는거지. 어차피 세상은 우리에게 벌을 줘. 나를 따라다니는 애들 사는 꼴을 봐. 저게 벌이 아니면 뭐야?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정까지 일하고, 욕먹고,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숨을 걸고 배달하고, 명절도 휴가도 없이 일하고."

 

-P.164-

3.

 

 동규는 어쩌면 제이의 또다른 자아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출판사 서문에 의하면 이 인묻들의 관계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우리 모두는 '고아'이고 슬픔을 가지고 있다. 라고 설명하지만 아쉽게도 제게 그 슬픔은 전달되지 않은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슬프기보다는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의 묘사가 지나치게 생생해 아프기만 했습니다.

 

4.

 

 이야기는 완벽한 결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중요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끊기고, 현실인지 허구인지 불확실한 작가의 고백이 시작되거든요. 그 후분은 '페이크다큐'처럼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동시에 제이가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는건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은 저로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들의 목소리를 끝끝내 들어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그리고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목소리만은 똑똑히 기억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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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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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 마이클 커닝

 

 

그를 조금만 더 알게 되면, 그에게 그대란 존재는 그 자신이 비극과 희극을 엮어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능력으로 창조해낸, 본질적으로 허구인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도 그 허구의 인물은 그대의 진정한 본질이 아니라, 리처드 자신이 극단적이고 당당한 인물들이 사는 세상에 살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낸 그런 인물이다.

 

-P.88-

 

1.

 

 쉽게 읽혀나간 책보다는 문장 하나 하나를 탐미하며 오랜기간 읽은 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집중력이 부족한 제게는 수사가 조금만 길어지고, 묘사가 치밀해지는 책들은 뇌속의 산소부족을 일으킵니다. 때문에 이런책들은 몇장 읽다 책장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아직 책읽는 내공이 부촉한 저에게 고전이라는 딱지를 붙은 녀석들은 무척이나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비채에서 출간한 모던클래식 시리즈는 알려지지 않은 고전문학부터, 문학적 가치가 뛰어난 현대의 작품들까지 독자에게 폭넓은 세상을 보여줍니다. 개중에는 저와는 맞지 않았던(나쓰메 소세키의 문) 작품도 있었고, 책을 넘기기가 아까워 한편 한편 조금씩 읽어나간 작품(오헨리 단편선)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은 후자쪽에 속하는 책이였는데요. 등장인물 개개인의 아프리만큼 세세한 감정의 묘사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로라가 후회하는 것은, 참아내기 힘든 것은 바로 케이크다. 케이크가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건 단지 설탕과 밀가루와 계란에 지나지 않아. 케이크의 맭은 오히려 그 불완전함에 있어.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보다 더 훌륭한 무엇인가를, 좀 더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적어도 겉이 매끈하고 축하 메시지 글씨가 반듯하기를 희망했다.

 

-P.199-

 

2.

 

  책이 상당히 어려울것 같다는 판단에 읽기전 동명의 영화를(The Hours) 먼저 봤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바로 책을 봤다면 아마 책은 책장 장식용 서적 중 하나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제게 준 임팩트는 강렬했습니다. 각기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명의 여인들. 얼핏 완벽할게 보이는 겉모습 속에서 그녀들의 자아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델러웨이 부인>의 저자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시간을 살고싶어합니다. 현실과, 자신의 작품속 두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시골에서의 생활은 삶을 억압하는 갑갑한 코르셋입니다. 런던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희망하지만 그녀의 남편 레너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가두어 두려 합니다. 그녀 역시 남편의 사랑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잡아보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딱딱한 원칙주의자 남편과,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 그 답답함 속에서 그녀가 선택할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죽음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을 읽고있는 브라운 부인 역시 겉보기에는 아무런 불화도 없을것같은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구성원입니다. 그녀에게는 참전용사로 추앙받는 남편이 있고, 똑똑하고 귀여운 아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 완벽한 이상에 있어 자신이 이물과 같이 느껴집니다. 완벽한 케이크를 만들어 남편을 기쁘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러한 그녀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겁니다. 세상의 이목은 그녀에게 완벽한 이상을 요구합니다. 그 완벽한 옷은 그녀에겐 맞지않는 옷임에도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러했듯이요.

 

 마지막으로 '델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래리사가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와, 브라운 부인이 90년대 여성상을 상징했다면 클래리사는 21세기 현대의 여성상을 상징합니다. 동성애가 인정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일반화 되며 얼핏 그녀의 삶은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결국은 리차드라는 남성에게 속박당해 있습니다. 그가 그녀를 델러웨이 부인이라고 말한 순간 그녀는 델러웨이 부인처럼 살아갑니다. 아니 그녀의 삶을 '델러웨이 부인'에 투영해 살아가려 노력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해보이려는 모습. 그 모습은 클래리사 본인뿐 아니라, 리차드도 슬픔 속에 침식시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여인은 이제 댈러웨이 부인이 아닌, 클래리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있다. 이제 이 세상에는 그녀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 앞에는 또 다른 시간이 놓여 있다.

 

-P.307-

 

3.

 

 아마 마지막에 인용한 저 문장이 아니였으면 저역시 무척이나 우울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 앞에는 또 다른 시간이 놓여 있다." 리차드의 죽음과 동시에 클래리사는 '델러웨이 부인'이 아닌 '클래리사' 본인의 시간을 되찾았습니다. 아마 그녀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 그녀가 아닌 누군가의 시간을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는 각기 다른 시대의 각기 다른 주인공을 배경으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델러웨이 부인'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완성되는 이야기는 세 여자의 일생보다 농밀한 하루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소설이였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마지막 문장이 한동안 가슴속에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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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웨터
황희 지음 / 손안의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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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웨터 / 황희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아인 그아이 운명대로 갈 것이다. 유정일 잃고 발버둥 친 15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P.63-

 

1.

 

 바로 어제 국회에서 집으로 편지 한통이 왔습니다. 벌금 고지서인가 싶어 덜덜 떨며 편지를 열었는데, 주변에 살고있는 아동 섬범죄자의 신상이 담긴 내용물이였습니다. 얼굴과 주소까지 나와있는 내용물이 주홍글씨처럼 느껴져 너무한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가 저질렀을 끔찍한 범죄와 최근의 뉴스기사들을 떠올려보면 화학적 거세가 정답이 아닐까 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와, 고통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성폭행 이후 더욱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우리내 사회가 갑자기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가까운 조카들부터 미래에 생길 내 아이들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는 성인들보다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더욱 많습니다. 성인에 비해 반항할 힘도 적고, 대처 능력도 떨어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어쩌면 살인보다 더 큰 죄질일지 모르겠습니다.



 

토끼나 강아지는 방할할 수 없는 상대에게 잡혔을 땐 죽음을 직감한 채 움직이지 않아. 주인한테 멱살이 잡힌 애완동물의 눈을 봐. 동그랗게 겁을 집어먹은 눈에,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지. 굴속의 애들처럼 말이야. 독이 빠져 버린 순한 눈을 보면 불쌍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두들겨 패고 싶어진다니까. 나보다 훨씬 약한 것들, 벌벌 떨기부터 하는 것들은 쓰러뜨리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켜.

 

-P.181-

2.

 

 갑자기 왜 흥분해서 이 이야기를 했냐면 이번에 읽은 <빨간 스웨터>라는 작품이 이러한 소재를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인 특급변소님이 괜찮은 신간이 나왔다며 선물해 주셨는데요. 역시나 미녀작가의 안목은 탁월합니다. 개인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읽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앉은 자리에서 오줌까지 참아가며 다 읽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소설의 흡입력은 강렬합니다. 

 

 이야기는 시체 안치소에서 시작됩니다. 실종되었던 자신의 딸 유정이 끔찍한 모습의 시체로 돌아오며 고미자는 깊은 상실감에 빠집니다. 사실 유정이 가출한 날 미자와 유정 사이에는 심하다 싶을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녀에게 딸은 늘 일 다음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춘기 소녀인 유정에게는 그런 엄마의 무관심이 서운했을테구요. 그런 연유로 유정은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때는 이미 되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습니다.

 

 유정의 죽음은 미자에게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선물합니다. 결국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유정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낳은 딸을 지켜달라는 목소리를요. 그렇게 두번째 삶을 살게된 그녀는 자신의 딸의 죽음에대해 파헤쳐갑니다. 정신병원, 소아성애자, 납치, 살인 등 이야기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이용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짜임에 있어 '우연'이 지나치게 빈번히 반복됩니다.


 

약소국의 이민자, 떠돌이, 술집 작부, 노래방 도우미, 노숙자, 가출 소녀들, 실종된 어린이들, 혼자 사는 노인들. 이들의 나약함과 고립성은 언제나 살인마들의 폭력성을 도발한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언제나 나약함과 겁에 질린 눈, 그리고 고립이다.

 

-P.292-

3.

 

 책을 읽어나가는 것과, 영화를 보는것은 동사부터가 다른 행동입니다. 책은 영화보다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가야 하는반면, 영화는 이미지의 나열이기 때문에 개연성이 떨어져도 내용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책은 소설보다는 영화 시나리오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였습니다. 내용도 흥미롭고, 쉼없이 읽혀나가지만 뭔가 인과관계에 있어 개연성이 떨어지고 우연이라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이 개입된다는 생각이였습니다. 고루리의 미친여자가 번호를 뒤적이다 우연히 고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설정도. 꿈속에 죽은 딸이 등장해 사건의 실마리를 준다는점도.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였습니다.

 

 책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상으로 제작되면 더욱 재미있을것 같은 이야기 <빨간 스웨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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