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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웨터
황희 지음 / 손안의책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빨간 스웨터 / 황희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아인 그아이 운명대로 갈 것이다. 유정일 잃고 발버둥 친 15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P.63-
1.
바로 어제 국회에서 집으로 편지 한통이 왔습니다. 벌금 고지서인가 싶어 덜덜 떨며 편지를 열었는데, 주변에 살고있는 아동 섬범죄자의 신상이 담긴 내용물이였습니다. 얼굴과 주소까지 나와있는 내용물이 주홍글씨처럼 느껴져 너무한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가 저질렀을 끔찍한 범죄와 최근의 뉴스기사들을 떠올려보면 화학적 거세가 정답이 아닐까 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와, 고통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성폭행 이후 더욱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우리내 사회가 갑자기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가까운 조카들부터 미래에 생길 내 아이들까지. 가만 생각해보면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는 성인들보다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더욱 많습니다. 성인에 비해 반항할 힘도 적고, 대처 능력도 떨어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어쩌면 살인보다 더 큰 죄질일지 모르겠습니다.

토끼나 강아지는 방할할 수 없는 상대에게 잡혔을 땐 죽음을 직감한 채 움직이지 않아. 주인한테 멱살이 잡힌 애완동물의 눈을 봐. 동그랗게 겁을 집어먹은 눈에,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지. 굴속의 애들처럼 말이야. 독이 빠져 버린 순한 눈을 보면 불쌍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두들겨 패고 싶어진다니까. 나보다 훨씬 약한 것들, 벌벌 떨기부터 하는 것들은 쓰러뜨리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켜.
-P.181-
2.
갑자기 왜 흥분해서 이 이야기를 했냐면 이번에 읽은 <빨간 스웨터>라는 작품이 이러한 소재를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인 특급변소님이 괜찮은 신간이 나왔다며 선물해 주셨는데요. 역시나 미녀작가의 안목은 탁월합니다. 개인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읽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앉은 자리에서 오줌까지 참아가며 다 읽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소설의 흡입력은 강렬합니다.
이야기는 시체 안치소에서 시작됩니다. 실종되었던 자신의 딸 유정이 끔찍한 모습의 시체로 돌아오며 고미자는 깊은 상실감에 빠집니다. 사실 유정이 가출한 날 미자와 유정 사이에는 심하다 싶을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녀에게 딸은 늘 일 다음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춘기 소녀인 유정에게는 그런 엄마의 무관심이 서운했을테구요. 그런 연유로 유정은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때는 이미 되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습니다.
유정의 죽음은 미자에게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선물합니다. 결국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유정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낳은 딸을 지켜달라는 목소리를요. 그렇게 두번째 삶을 살게된 그녀는 자신의 딸의 죽음에대해 파헤쳐갑니다. 정신병원, 소아성애자, 납치, 살인 등 이야기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이용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짜임에 있어 '우연'이 지나치게 빈번히 반복됩니다.

약소국의 이민자, 떠돌이, 술집 작부, 노래방 도우미, 노숙자, 가출 소녀들, 실종된 어린이들, 혼자 사는 노인들. 이들의 나약함과 고립성은 언제나 살인마들의 폭력성을 도발한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언제나 나약함과 겁에 질린 눈, 그리고 고립이다.
-P.292-
3.
책을 읽어나가는 것과, 영화를 보는것은 동사부터가 다른 행동입니다. 책은 영화보다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가야 하는반면, 영화는 이미지의 나열이기 때문에 개연성이 떨어져도 내용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책은 소설보다는 영화 시나리오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였습니다. 내용도 흥미롭고, 쉼없이 읽혀나가지만 뭔가 인과관계에 있어 개연성이 떨어지고 우연이라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이 개입된다는 생각이였습니다. 고루리의 미친여자가 번호를 뒤적이다 우연히 고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설정도. 꿈속에 죽은 딸이 등장해 사건의 실마리를 준다는점도.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였습니다.
책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상으로 제작되면 더욱 재미있을것 같은 이야기 <빨간 스웨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