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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뿔 / 조 힐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는 밤새 부어라 마셔라 들이켜고 온갖 추잡한 짓거리를 해댔다. 아침에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어나, 관자놀이에 손을 대보니 익숙하지 못한 무엇이 느껴졌다. 끝이 뾰족한 혹 같은 것. 속이 너무 쓰리고 눈도 침침한데다 기운도 하나 없어서 처음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숙취가 너무 심해서 아무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변기 앞에 흔들흔들 서서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순간, 자는 동안 머리에 뿔 두 개가 자라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놀라서 움찔했고 열두 시간 만에 두 번째로 다리에 오줌을 지렸다.
-P.11-
1.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꼬꼬마적 그림책으로 읽었지만 작품의 충격적인 내용이 인상적이여서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의 실존적 존재 이유 등과 같이 무거운 주제를 인식하진 못했지만, 내일 당장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어떻게하지 그래도 가족들과, 친구들은 날 이해하고 사랑해줄까라는 철학적 고민으로 한동안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내린 결론은 상당히 긍정적이였지만 '조 힐'이라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는 그 결론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나타납니다. 어쩌면 성인이 된 제가 인식하는 결론역시 조 힐의 상상을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저자 '조 힐'은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아들입니다. '스티븐 킹'의 팬임을 자처하지만 그에게 공포소설을 쓰는 아들이 있었다는건 처음 안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말이 듣기 싫어 고향인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작품을 출간했다는 '조 힐'은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빼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입니다. 섬찟한 호러와 짜릿한 판타지가 어우러진 작품은 조만간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벌써부터 영화가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이그의 인간성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건, 다른 상황이건. 메린이 죽던 날 이래로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되레 약점이었다. 이제 이그는 악마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자신에 익숙해졌다. 십자가는 보통 인간 조건의 상징이었다. 고통. 이그는 고통이라면 신물이 났다. 누군가 나무에 못 박혀야 한다면 이그는 망치를 든 사람 쪽이 되고 싶었다. 이그는 십자가를 풀어 조수석 물품함에 넣어두었다. 그러고는 운전석에 꼿꼿이 앉았다.
-P.413-
2.
성인 이그나티우스의 이름을 가진 평범하고 선량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애인 '메린'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지적이며 이해심많은 여자 '메린'.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를 사랑한 '이그'에게 범인이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음에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의심을 쉬이 떨치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과 친구들마져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메린'의 묘지를 찾고난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그의 머리에는 뾰족한 뿔이 솟아 있습니다. 이그가 악마가 된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되어버린 이그에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진심을 꺼내놓습니다.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던 경찰들은 사실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 안달난 게이들이였으며, 성당의 신부역시 누군가의 고해를 들어줄만큼 결백한 인간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 마저 이그로 인해 떨어진 가문의 명예를 이야기하며 이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는 악마가 된 이상 '메린'을 죽인 진범을 찾아 복수하겠다 다짐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범인이 이야기의 초반부에 미리 밝혀진다는 점입니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그가 범죄를 저지르게된 이유와 이그와 메린 그리고 진범과의 관계등에 초점을 맞추며 사건을 진행시키는데요. 그럼에도 어색하다거나 지루한점이 없다는것이, 그래서 끝까지 손을 떼지 못하게 못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나도 그녀를 사랑했어. 너도 알겠지만." 리가 말했다. "사랑이 우리 둘 다 악마로 만든 모양이군."
-P.467-
3.
악에 대한 복수를 결국 똑같은 '악마'가 되어 한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짜릿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왜 천사가 아닌 악마가 되어 복수를 할수밖에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이해가 갑니다. 만약 주인공이 날개달린 천사가 되었다면 이야기는 복수가 아닌 용서로 끝이 났겠죠. 그를 악마로 만든건 '사랑'일수도 있겠지만, 그를 악마라고 생각한 사람들일 겁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평범한 남자가 할수있는 일이라곤 결국 초인적인 힘을지닌 악마가 되는길밖에 없었을테니까요.
마지막 엔딩은 끔찍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웠습니다. 불의 탑. 불꽃의 왕좌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의 결혼 축하파티가 한창입니다. 함께 타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모순적으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보다 더욱 순결해 보였습니다. 그는 악마가 되어버렸지만 남은 몇몇은 여전히 '이그'를 선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어찌보면 진정한 선도, 진정한 악도 없다는게 작가가 내리고 싶은 결론은 아니였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