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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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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아버지에게 나는 결코 아내 미와코와의
사이에서 얻은 사랑의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아내의 마음을 빼앗고 아내의 생명을 좀먹으며 성장하는 정체 모를 괴물에 불과했으리라.
어쩌면 아버지는 내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를 또 다른 자신이 빼앗아간다. 그런 구원할길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핏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 다케나가의 모습을 내게서 찾아낸 것은 아닐까?
-P.41-
1.
얼마전 와우북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놓쳤던 구간 도서들을 구입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갔는데 재작년에 비해 참가한 출판사가 많지 않더군요. 아마 같은 시기
파주에서 북소리축제가 진행되기 때문에 메이저 출판사들이 다수 빠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애정하는 장르소설 출판사 북스피어와, 한스미디어가
나와있어 한가득 책을 사들고 왔는데요. 취향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수집욕을 불러 일으키는 '관 시리즈'와 미미여사의 최근 작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란 표지가 매력적인 <인형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중 네번째
작품인데요.
[ 십각관 - 수차관 -
미로관 - 인형관 - 시계관 - 흑묘관 - 암흑관 - 깜짝관 - 기면관 ]
출간 순서는
위와같습니다. 시리즈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인형관'에서 '십각관'을 언급한다던지 하는 부분이 있으니 되도록이면 출간순으로 읽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흑묘관'까지가 1부 이후 작품들은 2부로 구분된다는데 사실 몇 작품 안읽은지라 1부와 2부의 구분 기준 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분들 중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좀 부탁드릴께요.) '깜짝관'을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는 모두 국내 출간이 된
상태지만 '암흑관'의 경우 절판되어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할수가 없어요. 때문에 일찍이 전권 수집은 포기했었는데,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고
나니 괜시리 수집 욕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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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모아둔 인형들이 모조리
한가운데로 끌려나와 있었다. 어떤 것은 팔이 하나 없고, 어떤 것은 다리가 하나 없고 …… 두 팔이 없는 것, 하반신이 없는 것, 머리가 없는
것, 번번한 얼굴만 있는 것 …… 그런 그녀들이 위를 보거나 엎드리거나 포개어진 상태로 쓰러져 있다. 너무나도 난잡한 그 모습에서는 완성한 나무
블록 집을 자기 손으로 허물어뜨리는 어린아이의 흉포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쓰러진 인형들의 몸을 물들인 강렬한 색!
빨간 그림물감이 또 그녀들의 하얀 살갗에 마구 처발라져 있었다.
그것은 흡사 인형들로 만든 아비규환의
지옥 풍경이었다. '피'에 젖어 괴로워하는 그녀들의 비명과 신음이 어둑어둑한 아틀리에를 가득 채웠다.
-P.120-
2.
아버지가 죽은 뒤, 교토의 한 저택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히류 소이치. 그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 사와코와 아버지의 유산인 '인형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신체의 일부가
없는 마네킹이 저택
곳곳에 서 있는 ‘인형관’. 그곳에서 소이치는 정체를 알수없는 존재로부터 협박을 받게 됩니다. 우편함에
유리조각을 넣고, 집앞에 커다란 돌을 올려 놓는 등
장난처럼 시작된
악의는 어느새 어머니와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합니다. 한편 소이치가 살고있는 교토의 긴카쿠지
지역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무차별 살인이 잇달아 발생하는데요.
소이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이 어릴적 저지른 작은 죄에서 시작된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인형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더라도 그 분위기 때문에 구입해서 보곤 합니다. 구입한 관 시리즈 중 '인형관'을 제일 먼저 펼쳐 본 이유도 왠지 '인형'이라는 소재가
작품 전반을 아우르며 분위기를 조성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였는데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작품 전반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소품 이용적 측면에서는 훌륭했지만, 사실 인형이 없어도 되지 않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건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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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심야의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며 솟아 오르는 화염. 나무가 터져서 쩍 벌어지는 소리. 건물이 삐걱대는듯한 소리. 일그러진 모양의 소용돌이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연기.
툇마루에 놓인, 하반신이 없는 마네킹이
보였다. 마네킹은 불길에 삼켜져 덧없이 걸쭉하게 녹아내렸다.
-P.155-
3.
'인형'이라는 소품을 단순히 분위기
용으로만 사용했다는데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였습니다. 아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싶은 순간 뒷통수를 치는
반전은 오래간만에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소설 중반즘 등장하는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은(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아조트의
이야기를 '가케바'가 '소이치'에게 들려주는 장면) 미스터리 팬을위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팬 서비스이자 본격을 함께 이끈 '시마다 소지'에 대한 예우의 표현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전 교토지역 그중에서도 작품의 배경이
된 긴카쿠지 지역을 다녀왔기에 책이 더욱 인상적으로 와닿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흑묘관'을 읽으려 하는데 '인형관'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여준 탓에 더욱
기대가 되네요. 예상외의 반전과 인형이 만들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책
<인형관의 살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