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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녀자 - 나 만큼 우리를 사랑한 멋진 여자들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 17
고미숙 외 지음, 우석훈 해제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하늘의 신을 섬기는 그 종교들은 말 그대로 가부장적이므로(하늘은 전지전능한 아버지다) 해당 지역의 여성들은 하늘의 신과 그 지상의 남성 대리자들에게 2000년 동안 멸시를 받아왔다.'는 미국 작가 고어 바이댈의 말로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유교라고는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서양도 이럴진대 온 몸으로 유교주의를 겪어온 우리나라의 여성들이야 말해 무었할까. 그나마 기독교가 늦게 들어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소한 유교도, 기독교도 유입되기 전의 우리나라 여성들은 비이성적인 성차별은 받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비록 남자이기는 하지만 '배운 여자라서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말 그대로의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비아냥이 섞인 안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아왔다. 그 말 속에는 '그래. 너 잘났다'는 식의 비꼼과 아니꼬운 속내가 배어있는 것이다. 특별히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냉소의 이면에는 권력구조의 비열함이 숨어있다고 보여진다. 처음으로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에 급급하겠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현상쯤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러나 그들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차별을 받는 다수의 사람들 간의 '연대'이다. 그러므로 소위 권력을 득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연대만 막으면 되는 셈이다. 멀지 않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이 땅에 상식과 정의와 연대가 뿌리내리길 희망했던 그들에게, 이름을 기억해 주고, 친구를 만들어 주고,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 주려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직업인으로 사회인으로 제 맡은바 몫을 해내려 애쓰고 있는 언니, 친구, 동생 17인의 이야기를 모았다. 하는 일과 생각하는 것, 지향점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자신이 배우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다." (p.6 '들어가는 글'중에서)
그렇다. 이 책에는 17인의 여성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어쩌면 남성인 나와는 어떤 연관도 없을 듯한 이 책을 굳이 읽고 리뷰를 쓰고자 한 데에는 어떤 계획이나 구상도 없었다. 아주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리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뿐이다. MBC [피디수첩]의 프로듀서였던 김보슬, 배우 김여진, 무료 치과 진료를 하는 이웃린치과 홍수연, 인권활동가 류은숙, '한경희 생활 과학' 대표 한경희, 고전 평론가 고미숙 등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과 생각에 나도 모르게 리뷰를 쓰게 되었을 뿐이다.
"다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 거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러지 마라'고 협박해도 소용없다. 나는 내 맘대로 살 거다. 내 인생이다. 한 번 사는 내 인생이다.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인생들과 교류하고, 구경하고, 같이 놀고, 배우며 그렇게 살 거다. 그래서 나는 배우는, 배우, 여자, 사람이다." (p.43-44 '김여진'편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고, 아파하는 방법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따로 있을까. 여성의 취업률이 젊은 증에서는 남자와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그닥 부족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불만에 가득한 자와 미소를 띠는 자로 양분되어 삐그덕 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어쩌면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 진정성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가식과 눈가림이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 가면을 벗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순전히 우리 사회 구성원의 '앎과 실천'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나는 노동자들이 물적 토대를 확보하면 당연히 삶의 비전을 위한 고매한 지성을 탐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차별과 억압을 벗어나면 자유롭고 당당한 사랑의 주체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인간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부자건 노동자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삶의 가치는 오직 자본의 증식이고, 그걸 투여하는 욕망의 대상은 오로지 가족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던 세상인가?" (p.263 고전평론가 '고미숙'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