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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지독한 독서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 문득, 내가 여태까지 역사라는 것을 어딘가 근본적인 데서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식으로서의 역사는 윤색된 것이다.  학교 강단에서 배운 역사, 교과서 속의 역사, 역사가가 말하는 역사, 기록이나 자료로 남는 역사, 그런 것들은 전부 윤색된 것이다.  가장 정통적인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언급되지 않은 역사, 후세인이 전혀 모르는 역사가 아닐까.  기록된 역사를 기록되지 못한 현실의 총체에 비한다면, 우주 속의 바늘끝만큼이나 미소한 것이리라.  우주의 대부분이 허무 속으로 삼켜지는 것처럼, 역사의 대부분도 허무 속으로 삼켜지고 있다.  " 

  

타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다치바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다.  호주의 노던 테리토리의 울루루를 보았을 때 그랬고, 일본의 야쿠섬을 방문했을 때 그랬다.  9억 년 전에 생겼다는 울루루와 천 년 이상의 고목이 자라는 야쿠섬의 원시림이 주는 느낌은 서로 달랐지만, 나는 두 곳 모두에서 시간의 영속성과 숨이 멈출 것만 같은 서늘한 경외감을 느꼈다.  4차원의 세계에서 시간의 좌표축을 제거한 온전한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 역사의 저편에 흐르는 도도한 숨결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일본 열도 최남단 가고시마현에서 뱃길로 130㎞, 오래된 삼나무가 있는 야쿠시마(屋久島)를 방문했던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일본에서의 업무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우연처럼 찾아간 그곳엔 해발 2000m에 가까운 미야노우라산이 있다.  그 산을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길을 나선다.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었던 우리 일행은 결국 72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조몬스기(繩文衫)’는 보지 못했지만 이끼에 뒤덮힌 수천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역사는 읽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화로 전해지는 고시대의 현실이 내 몸 곳곳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1952년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태어난 저자는 19세 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알래스카 풍경을 담은 ‘조지 모블리’의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실린 에스키모 마을의 모습에 푹 빠져 촌장에게 방문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쓴 그는 촌장으로부터 방문 환영 답신을 받고 그곳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함께 여름 한철을 보낸 이후 알래스카 풍광을 담는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다.  곰을 좋아하던 그는 알래스카를 누비며 사진을 찍었고,1996년 8월 취재차 방문한 캄차카반도 쿠릴 호수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곰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여정이다.

 

"갖가지 동물, 한 그루 나무, 숲, 심지어 바람마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이 그들을 바라보듯 그들도 인간을 응시한다......  인디언의 신화는 신화의 자리를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나직이 말을 건다.  밤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생명이 품은 헤아릴 길 없는 신비를 전하는 것처럼.  나는 곰이 다니는 길이 사라져 간 숲속 세상의 오묘함을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함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과 어떤 지점에서 분명히 얽혀 있을 것이다."  (P.162)

 

저자는 큰까마귀 전설을 따라 남동알래스카에서 시베리아로 이동한다.  그 길이 마지막 여정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자신의 짐을 챙겨 돌아섰을까?  기원전 1만 8천 년 전쯤 물밖으로 드러난 베링 평원을 건너 몽골로이드는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로 이주했다.  알래스카의 역사를 되짚는 저자의 시간 여행은 하얀 베일에 가려 영원 속으로 회귀하고 있다.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전설의 세계.  작가의 사진에는 곰의 발자국을 따라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고독한 사진가의 시선이 있다.  유화와 같은 그의 사진에서는 원시의 울림이 끝없이 전해진다. 

 

"촬영이 끝난 뒤, 머리뼈를 나무상자에 고이 넣어 품에 안은 채 어둑어둑한 고생물학 연구소의 복도를 걸었다.  죽은 이가 든 유골함처럼 다루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무상자가 흔들릴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그 투명한 소리마저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동굴에서 나온 뒤에도 뼈에는 천천히 시간이 새겨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뼈의 소리에서 나는 3만5천 년 전 남동알래스카 숲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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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핑계로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점심을 먹자마자 외출을 하잔다.  마트에 들러 장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화원에 들러 화분도 몇 개 사자고 했다.  게으름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깥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험할수록 집안의 포근함에 끝없이 녹아들게 마련이다.  마치 킹 목사의 연설문에 나오는 cocoonish feeling을 날씨를 핑계삼아 느껴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위험신호다.  나와 아들녀석은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럴 때 조금이라도 밍기적거리면 아내의 잔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한마디로 몸을 사려야 하는 순간이다.

 

시험을 코앞에 둔 아들녀석은 지겨운 시험공부에서 해방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지 들뜬 기분이었지만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빼앗긴 나는 영 마뜩지 않은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봄비가 오락가락 하고 바람도 거센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두 마트로 몰렸는지 마트 안은 인파로 왁자하다.  카트를 끌고 아내의 느린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자니 내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다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살 때는 그렇지 않았다.  휴일이면 으레 마트에 가야 하는 줄 알았고, 아내가 서두르기 전에 벌써 채비를 마치고 대기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주말부부로 사는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다 보니 장보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는 더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마트에 들를 때면 필요한 물건만 후다닥 집어들고는 서둘러 마트를 벗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갖가지 화초와 관엽식물들이 즐비한 화원에는 의외로 한가했다.

하기야 이런 날씨에 하릴없이 화원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드물겠다.  내가 주중에 머무는 숙소에 있던 군자란 화분을 지난 겨울에 부주의로 얼려 죽인 일이 떠올라 괜히 뜨끔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았다.  학창시절부터 농사라곤 손도 대지 않았던 나는 이제 다른 생명을 돌보는 일에는 반거들충이가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봄날, 화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에서 기르는 화초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만회하고자 필기도구를 갖추어 들고 제법 큰 화원에 갔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거리에서, 또는 어떤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화초의 이름을 척척 알아맞추는 것만으로도 교양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느꼈던 듯하다.  어쩌면 그때 풋사랑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먹한 여인 앞에서 낯선 꽃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화원에서 나는 생경한 화초 이름을 수첩 가득 빼곡히 적어놓고는 각각의 이름과 모양새를 머릿속에 기억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시험공부를 하듯 이름을 외우는 내가 신기했던지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차를 한 잔 얻어 먹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그때 외웠던 꽃이름도 모두 잊었을 뿐 아니라 그때는 보지 못했던 꽃들이 너무 많았다.  나리꽃을 닮은 자마이카, 잎이 탐스러운 자바, 무느가 독특한 무늬 고무나무, 잎이 시원한 콩고, 키가 웃자란 듯한 대엽홍콩, 큰 붓으로 선을 그은 듯한 맛상, 신생아의 머리털처럼 하늘로 쭉쭉 뻗은 드라코 등등.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 눈에 들었던 것은 이름도 친숙한 떡갈나무였지만 아내는 그것을 고르지 않았다.  산세베리아와 서황금을 하나씩 사서 화원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그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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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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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족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딴에는 학창시절의 자취 경험도 있고 하니 무에 그리 힘들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게 생각처럼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군것질이나 분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그때와는 식성도 많이 달라졌고, 교복과 츄리닝만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었던 학생 신분과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회사원의 신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에 비해(인정하기는 싫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졌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요, 그 누군가의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줍잖게 사업이랍시고 시작했을 때, 직원들과 영업을 나갈 기회가 많았었다.  블라인드 제조업을 했던지라 소비자는 가정주부가 태반이었고, 내가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블라인드가 뭔지도 모르는 주부들도 많았다.  어렵게 설명을 하여 간신히 이해를 시키는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만 졸업한 직원들은 너무도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일단 얘기를 트고 나면 대뜸 너나들이를 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마치 우연히 만난 십년지기인 줄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에서 쓴 맛을 본 후 나는 뒤늦은 나이에 평범한 회사원으로 복귀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일종의 특권의식, 또는 시쳇말로 먹물근성에 물들어 있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지방 발령을 받고 혼자 떨어져 생활하면서 숙소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게 된 것도 사업을 하던 당시와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숫기가 없는 나는 처음부터 너나들이를 하며 친한 척하는 사람들에겐 왠지 거리감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느꼈었다.  그만큼 친한 사이가 못 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자기 자신을 발가벗겨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그것이 진정 그 사람의 속마음인지 아닌지 믿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 자리, 어떤 경우에서건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물없이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못 하도록 의도적으로 차단했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부터 그들의 넋두리도 싫은 표정 하나없이 들어줄 수 있고, 늦은 시각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도 웃으며 문을 열어줄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볼품없이 담아온 방울 토마토도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입에 넣을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와 나는 생면부지의 남남이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그렇고, 전공과 다르게 비경제적으로 사는 것도 그렇고, 평범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공부로 세월을 대충 뭉개는 것도 그랬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려했던 이력을 뒤로 하고 99% 비주류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저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이 어쩌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빼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줄 수 없게 만든 현 상황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순간 부딪쳐야 하는 산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실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산을 넘을 방법만이라도 찾아보자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할 것도 많고, 보살필 것도 많다.  마흔을 넘어선 나의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는 슬슬 내려놓을 준비를 하면서 비우는 것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래야 진짜로 사랑할 것들이 보이게 될 것 같다."  (P.357)

 

내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시퍼렇게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듣기도 싫고 보면 볼수록 신물이 난다.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정치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들은 그렇게 편을 갈라 무슨 득이 있다고 그렇게 하는 것인지...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다채롭고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백 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해야 옳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직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 내게 정색을 하며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런 얘기를 또 한다면 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겠다.  큰 걸 보다가 우리는 너무 쉽게 작은 것의 함정에 빠진다.  마케팅사회, 자기계발서의 덫에 걸리면 '원하는 것'에 영혼을 파는 아주 이상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악마가 바쁠 때 대신 보내는, '자기계발서'라는 악마의 대리인이 내뱉는 첫 번째 속삭임이 아닐까 싶다."  (P.318)

 

나는 이 책을 가스통을 들고 설쳐대는 극단적 우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된 후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 솔제니친을 존경한다면 우리는 한번쯤 그의 말을 음미해야 한다.  1978년 미 하버드대학 연설에서도 그는 "러시아는 서구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도 화합할 수 없는 독특한 문명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고려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정한 우파라면, 그리고 사기꾼이 아닌 진정한 애국자라면 솔제니친과 같은 소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좌파든, 우파든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지 않겠나.  나의 바람은 그런 조국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주류사회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비주류의 저잣거리로 내려온 저자의 선택은, 그것이 그의 자발적 의사결정이었든, 등 떠밀려서였든, 그의 가치관에 비춰 보았을 때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취해진 일련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의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념의 색안경은 벗어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파이면서 좌파 인사의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자신의 신념이 더럽혀지고, 파랭이가 갑자기 빨갱이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야만 최소한 좌,우의 균형을 갖춘 1인분의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우리는 지금과 같은 정치 괴물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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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은 찬란한 만큼 그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어느 작가의 글귀처럼 좋은 일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쁜 일들(또는 놓친 일들)이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저께 밤 늦은 시각에 고등학생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양 쭈볏거리며 주변을 서성이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빨리 정리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하여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며 초조해 하던 아이를 재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는 자신으로 인해 내 수면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몹시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며 괜찮다며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 아이는 내가 알기로는 중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그동안 지켜본 바로도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뜸을 들이던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는 것만 같아서 늘 불안하고, 그래서 잠도 잘 자지 못하는 까닭에 학교 수업 시간에도 졸기 일쑤이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주에 내게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겨우 털어놓는 것이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중학교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학습 환경과 친구들.  반협박에 가까운 선생님들의 독려.  그럼에도 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자신의 형편.  이 모든 것들이 그 아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으리라.  한동안 가슴을 졸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 학생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속 이야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들려준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재미, 오기, 그리고 자존감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 공부를 재밌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미'는 분명 공부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원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재밌어 하는 일에서 실패하거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생들 중에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공부에 있어 내가 생각하는 '오기'는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보겠다는 '경쟁의식' 또는 '시기나 질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동기로 공부를 시작하지 않나 싶은데 이런 '오기'는 그나마 공부를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드러나게 하고 언젠가는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방법으로 경쟁을 할 경우 본인의 능력보다는 언제부터 그 방법을 사용했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임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친구도 똑 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자신만 성적이 나쁘다는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가 언제부터 그렇게 공부했는지는 따져보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방법을 제공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승부를 겨뤄야만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만을 탓하고 결국은 좌절하게 된다.

 

학창시절,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자취를 했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도시로 나온 그때, 남들처럼 공부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밤 늦은 시각까지 공부한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거니와 다른 학생들이 몇 시까지 공부하는지 가늠할 수 없기에 공부를 하면서도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집중력을 요하는 공부에서 불안감은 최대의 적이다.  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밤 11시에 자고 새벽 2시에 기상하는 것이었다.  그 이른 새벽의 고요와 마주하며 나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점차 중독되었다.  공부든, 일이든 정말로 잘하고 싶다면 자존감에 중독되어야 한다.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자존감임을 나는 그때 배웠다.  자존감은 타인과의 비교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나만의 방식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의욕이 꺾이고 무기력해진다면 혹시 내가 사는 방식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배워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이기려면,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그 방식을 적용한 절대 시간으로 누군가를 앞서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모두 미래에 있다.  영원 같기도 하고, 금세 손에 잡힐 듯하기도 한 모호한 기준의 시간은 모두 미래다.  그러나 그 '미래'라는 시간은 희망이 아닌 함정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점검하고 살펴야 하는 것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녘에 학생을 보냈다.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알람이 울리고 습관처럼 산을 올랐다.  직장에서 오후에 잠시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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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수레바퀴 -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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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있던 엊그제는 봄비가 촉촉히 내렸다.  잎샘추위도 꽃샘추위도 다 지난 듯한 이맘때쯤에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야말로 단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자서전<생의 수레바퀴>를 읽으며 '죽음'을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언제나 담담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그저 허상일 뿐, 실제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새 생명을 키우는 봄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 그것이 '죽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근원에서 왔고 같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모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모든 악몽, 신이 내린 벌처럼 보이는 모든 시련은 실제로는 신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P.384)

 

<인생수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스위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세 쌍둥이의 맏이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900그램의 미숙아로 인생을 시작한 그녀가 인류에게 가장 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려 했던 '죽음'이라는 주제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던 저자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문구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뛰쳐나갔던 당찬 소녀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폴란드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나치스의 마이다네크 수용소를 방문한다.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날 밤을 보낸 막사의 벽마다 가득 그려진 나비 그림을 보며 품었던 강한 의문은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였다.

 

"우리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 오를 번데기를 품은 고치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고통도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한 마리의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사랑에 둘러싸인다."  (P.382)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자서전을 쏟아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행태에 신물이 난 나는 자서전이라면 지레 피하고 본다.  읽히지도 않는 쓰레기와 같은 책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출판회를 갖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오래 남는 자서전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떠돌이 철학자로 유명한 에릭 호퍼의 자서전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눈에 띈 이 책을 나는 순간의 갈등도 없이 대출을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때의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내가 읽은 자서전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에 도르프만의 자서전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와 <스콧 니어링 자서전>, <간디 자서전>, 그리고 이 책 <생의 수레바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책들 상호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만 같다.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이자 죽음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저자가 말년에 이르러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와 침대를 오가며 생활하는 악조건 속에서 생을 되돌아보며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이 책에서 의학자와 영성가로 평생을 살았던 저자의 분투와 노력이 가슴 깊이 느껴진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분야에 있어 왜 스위스 출신들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그것인데, 칼 구스타프 융이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삶을 살펴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깊은 사색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과의 친숙함이 원숙한 삶을 살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성장하는 데 특별한 스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삶의 스승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이로, 말기 환자로, 청소부로......, 세상의 그 어떤 학설과 과학도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P.189)

 

저자의 또 다른 책<상실수업>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놓여있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우리는 그럴 때 비로소 평화를 얻는다.  며칠 전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한 여배우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극심한 고난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살았던 그녀의 얼굴에서 한줄기 햇살처럼 따뜻한 평화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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