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핑계로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점심을 먹자마자 외출을 하잔다.  마트에 들러 장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화원에 들러 화분도 몇 개 사자고 했다.  게으름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깥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험할수록 집안의 포근함에 끝없이 녹아들게 마련이다.  마치 킹 목사의 연설문에 나오는 cocoonish feeling을 날씨를 핑계삼아 느껴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위험신호다.  나와 아들녀석은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럴 때 조금이라도 밍기적거리면 아내의 잔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한마디로 몸을 사려야 하는 순간이다.

 

시험을 코앞에 둔 아들녀석은 지겨운 시험공부에서 해방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지 들뜬 기분이었지만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빼앗긴 나는 영 마뜩지 않은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봄비가 오락가락 하고 바람도 거센데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두 마트로 몰렸는지 마트 안은 인파로 왁자하다.  카트를 끌고 아내의 느린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자니 내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다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살 때는 그렇지 않았다.  휴일이면 으레 마트에 가야 하는 줄 알았고, 아내가 서두르기 전에 벌써 채비를 마치고 대기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주말부부로 사는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다 보니 장보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는 더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마트에 들를 때면 필요한 물건만 후다닥 집어들고는 서둘러 마트를 벗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갖가지 화초와 관엽식물들이 즐비한 화원에는 의외로 한가했다.

하기야 이런 날씨에 하릴없이 화원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드물겠다.  내가 주중에 머무는 숙소에 있던 군자란 화분을 지난 겨울에 부주의로 얼려 죽인 일이 떠올라 괜히 뜨끔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았다.  학창시절부터 농사라곤 손도 대지 않았던 나는 이제 다른 생명을 돌보는 일에는 반거들충이가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봄날, 화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에서 기르는 화초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만회하고자 필기도구를 갖추어 들고 제법 큰 화원에 갔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거리에서, 또는 어떤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화초의 이름을 척척 알아맞추는 것만으로도 교양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느꼈던 듯하다.  어쩌면 그때 풋사랑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먹한 여인 앞에서 낯선 꽃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화원에서 나는 생경한 화초 이름을 수첩 가득 빼곡히 적어놓고는 각각의 이름과 모양새를 머릿속에 기억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시험공부를 하듯 이름을 외우는 내가 신기했던지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차를 한 잔 얻어 먹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그때 외웠던 꽃이름도 모두 잊었을 뿐 아니라 그때는 보지 못했던 꽃들이 너무 많았다.  나리꽃을 닮은 자마이카, 잎이 탐스러운 자바, 무느가 독특한 무늬 고무나무, 잎이 시원한 콩고, 키가 웃자란 듯한 대엽홍콩, 큰 붓으로 선을 그은 듯한 맛상, 신생아의 머리털처럼 하늘로 쭉쭉 뻗은 드라코 등등.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 눈에 들었던 것은 이름도 친숙한 떡갈나무였지만 아내는 그것을 고르지 않았다.  산세베리아와 서황금을 하나씩 사서 화원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그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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