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수레바퀴 -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총선이 있던 엊그제는 봄비가 촉촉히 내렸다.  잎샘추위도 꽃샘추위도 다 지난 듯한 이맘때쯤에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야말로 단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자서전<생의 수레바퀴>를 읽으며 '죽음'을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언제나 담담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그저 허상일 뿐, 실제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새 생명을 키우는 봄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 그것이 '죽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근원에서 왔고 같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모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모든 악몽, 신이 내린 벌처럼 보이는 모든 시련은 실제로는 신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P.384)

 

<인생수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스위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세 쌍둥이의 맏이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900그램의 미숙아로 인생을 시작한 그녀가 인류에게 가장 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려 했던 '죽음'이라는 주제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던 저자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문구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뛰쳐나갔던 당찬 소녀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폴란드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나치스의 마이다네크 수용소를 방문한다.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날 밤을 보낸 막사의 벽마다 가득 그려진 나비 그림을 보며 품었던 강한 의문은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였다.

 

"우리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 오를 번데기를 품은 고치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고통도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한 마리의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사랑에 둘러싸인다."  (P.382)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자서전을 쏟아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행태에 신물이 난 나는 자서전이라면 지레 피하고 본다.  읽히지도 않는 쓰레기와 같은 책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출판회를 갖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오래 남는 자서전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떠돌이 철학자로 유명한 에릭 호퍼의 자서전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눈에 띈 이 책을 나는 순간의 갈등도 없이 대출을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때의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내가 읽은 자서전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에 도르프만의 자서전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와 <스콧 니어링 자서전>, <간디 자서전>, 그리고 이 책 <생의 수레바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책들 상호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만 같다.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이자 죽음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저자가 말년에 이르러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와 침대를 오가며 생활하는 악조건 속에서 생을 되돌아보며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이 책에서 의학자와 영성가로 평생을 살았던 저자의 분투와 노력이 가슴 깊이 느껴진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분야에 있어 왜 스위스 출신들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그것인데, 칼 구스타프 융이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삶을 살펴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깊은 사색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과의 친숙함이 원숙한 삶을 살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성장하는 데 특별한 스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삶의 스승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이로, 말기 환자로, 청소부로......, 세상의 그 어떤 학설과 과학도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P.189)

 

저자의 또 다른 책<상실수업>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놓여있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우리는 그럴 때 비로소 평화를 얻는다.  며칠 전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한 여배우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극심한 고난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살았던 그녀의 얼굴에서 한줄기 햇살처럼 따뜻한 평화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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