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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가족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딴에는 학창시절의 자취 경험도 있고 하니 무에 그리 힘들겠는가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게 생각처럼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군것질이나 분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그때와는 식성도 많이 달라졌고, 교복과 츄리닝만 있으면 못 갈 데가 없었던 학생 신분과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회사원의 신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에 비해(인정하기는 싫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졌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요, 그 누군가의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줍잖게 사업이랍시고 시작했을 때, 직원들과 영업을 나갈 기회가 많았었다.  블라인드 제조업을 했던지라 소비자는 가정주부가 태반이었고, 내가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블라인드가 뭔지도 모르는 주부들도 많았다.  어렵게 설명을 하여 간신히 이해를 시키는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만 졸업한 직원들은 너무도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일단 얘기를 트고 나면 대뜸 너나들이를 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마치 우연히 만난 십년지기인 줄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에서 쓴 맛을 본 후 나는 뒤늦은 나이에 평범한 회사원으로 복귀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일종의 특권의식, 또는 시쳇말로 먹물근성에 물들어 있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지방 발령을 받고 혼자 떨어져 생활하면서 숙소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게 된 것도 사업을 하던 당시와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숫기가 없는 나는 처음부터 너나들이를 하며 친한 척하는 사람들에겐 왠지 거리감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느꼈었다.  그만큼 친한 사이가 못 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자기 자신을 발가벗겨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그것이 진정 그 사람의 속마음인지 아닌지 믿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 자리, 어떤 경우에서건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물없이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못 하도록 의도적으로 차단했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부터 그들의 넋두리도 싫은 표정 하나없이 들어줄 수 있고, 늦은 시각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도 웃으며 문을 열어줄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볼품없이 담아온 방울 토마토도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입에 넣을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와 나는 생면부지의 남남이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그렇고, 전공과 다르게 비경제적으로 사는 것도 그렇고, 평범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공부로 세월을 대충 뭉개는 것도 그랬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려했던 이력을 뒤로 하고 99% 비주류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저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이 어쩌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빼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줄 수 없게 만든 현 상황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순간 부딪쳐야 하는 산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실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산을 넘을 방법만이라도 찾아보자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할 것도 많고, 보살필 것도 많다.  마흔을 넘어선 나의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는 슬슬 내려놓을 준비를 하면서 비우는 것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래야 진짜로 사랑할 것들이 보이게 될 것 같다."  (P.357)

 

내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만 있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시퍼렇게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듣기도 싫고 보면 볼수록 신물이 난다.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정치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들은 그렇게 편을 갈라 무슨 득이 있다고 그렇게 하는 것인지...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다채롭고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백 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해야 옳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직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 내게 정색을 하며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런 얘기를 또 한다면 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겠다.  큰 걸 보다가 우리는 너무 쉽게 작은 것의 함정에 빠진다.  마케팅사회, 자기계발서의 덫에 걸리면 '원하는 것'에 영혼을 파는 아주 이상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악마가 바쁠 때 대신 보내는, '자기계발서'라는 악마의 대리인이 내뱉는 첫 번째 속삭임이 아닐까 싶다."  (P.318)

 

나는 이 책을 가스통을 들고 설쳐대는 극단적 우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된 후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 솔제니친을 존경한다면 우리는 한번쯤 그의 말을 음미해야 한다.  1978년 미 하버드대학 연설에서도 그는 "러시아는 서구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도 화합할 수 없는 독특한 문명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고려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정한 우파라면, 그리고 사기꾼이 아닌 진정한 애국자라면 솔제니친과 같은 소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좌파든, 우파든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지 않겠나.  나의 바람은 그런 조국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주류사회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비주류의 저잣거리로 내려온 저자의 선택은, 그것이 그의 자발적 의사결정이었든, 등 떠밀려서였든, 그의 가치관에 비춰 보았을 때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취해진 일련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의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념의 색안경은 벗어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파이면서 좌파 인사의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자신의 신념이 더럽혀지고, 파랭이가 갑자기 빨갱이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야만 최소한 좌,우의 균형을 갖춘 1인분의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우리는 지금과 같은 정치 괴물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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