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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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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그림에 조예가 깊거나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림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고,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한다.  다만, 한때 친했던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 친구는 나와는 사뭇 달랐고, 조금 특별했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으며, 세상의 편견과 오해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대학 시절, 그 친구가 다녔던 대학의 캠퍼스 안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그 친구는 옷을 모두 벗은 채 그 연못에서 수영을 했다.  단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친구는 그 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친구도 그 대학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했다.  갑작스레 결혼을 했고,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예정에도 없던 아이가 태어났다.  삶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아주 가끔씩 보았던 친구의 모습은 볼 때마다 여위어갔다.

 

제 멋대로 자란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으로도 그의 야윈 얼굴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깊이 패인 주름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가 살던 도시의 번화가 한 귀퉁이에 작은 화실을 내고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그림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띄엄띄엄 얼굴을 비치던 친구는 그때마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심하게 취하곤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친구는 그가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여 단독주택 반지하로 거처를 옮겼다.  집들이를 한다기에 겨우겨우 찾아갔던 그의 집.  그때 나는 빛도 잘 들지 않는 그의 집에 집들이 선물이라며 창문에 롤스크린을 달아주었다.  친구라고는 달랑 나 혼자였던 그날의 집들이에서 그의 아내는 구운 고등어와 김치 몇 가지를 올린 밥상을 내오며 그냥 가겠다는 나를 한사코 붙잡았었다.

 

IMF 금융 위기는 그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상과 한걸음 떨어져 살던 그 친구에게 'IMF'는 멀리 비껴가는 한 줄기 바람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렇게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결혼을 했고, 한동안 바쁘게 지냈고, 가까운 곳에 살던 친구들 몇몇만을 줄기차게 만났을 뿐이고, 그렇게 잊고 지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내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 우연히 방문했던 또 다른 친구의 사무실에서 들었던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은 한동안 나를 얼어붙게 했다.

 

살아서는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반지하의 단칸 셋방에서 그 친구는 끝내 목을 맨 채로 세상릉 떠났고, 그렇게 그는 빛도 잘 들지 않던 그 방을 스스로 벗어났다고 했다.  아이 둘과 아내를 남겨둔 채.  그 방에서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자화상을 나는 끝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로 인해 가끔씩 찾던 갤러리도 발길을 끊었다.

 

황경신 작가의 <눈을 감으면>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화가에게 그림은  숨겨진 삶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그것은 지나온 세월의 종지부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일 터였다.  황경신은 그 아픈 상처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끄집어내어 독자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와츠가 그린 <희망>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프롤로그를 대신하여')  이어 펠릭스 발로통의 <옷장을 뒤지는 여자>와 그녀가 선택한 다른 7점의 작품에서 보았던 이별 이야기, 앙리 팡탱라투르의 <밤>을 비롯한 8점의 작품에서는 슬픔을, 장-밥티스트 그뢰즈의 <깨진 거울>과 다른 11점의 작푼에서는 성장을, 그리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음악 수업>과 다른 7점의 작품에서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이인의 <자화상>과 <화색, 비움>을 배치하여 에필로그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책의 첫장부터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서성였다.  밤이면 내 숙소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마치 레퀴엠처럼 여겨지게 했던 이 얇은 한 권의 책이, '이별'부터 시작하던 감정의 이입이,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비가역성이 나를 슬프게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즉각적으로 '슬픔'을 떠올리게 했던 건, 그 시절의 운명이 나에게 혹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희망의 뿌리는 슬픔이며 슬픔에서 벗어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희망은 슬픔 그 자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따져보자 막막해졌다.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p.5)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이목구비가 없이 실루엣의 형체만 그린 이인의 <자화상>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친구를 만나지 못했던, 어둠에 묻힌 몇 해가 이인의 어두운 자화상 속에서 아픈 색깔로 채색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자화상> 속에 빗줄기처럼 녹아들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 당신을 본 적이 있다.  새벽이었다.  난폭한 꿈에서 밀려나온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  지하 세계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라온 것 같은 회색빛 안개가 낯선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습기를 잔뜩 품은 바람이 불어와 내 뺨과 머리카락이 금세 축축해졌다.  당신은 골목 모퉁이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자의 형체였다."    (p.22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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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예술의 도시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김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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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자신이 읽었던 책에 따라, 또는 그날 그날의 감정에 따라 자신의 글은 천차만별로 다르게 씌어진다는 것을.  간혹 본인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어떻게 이 작은 체구에 그렇게 많은 감정들이 숨어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감정들이 있으니 그때 그때마다 적당한 감정을 찾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에.  그럴라치면 누군가 내 감정의 지도를 그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게 된다.  배낭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론리 플래닛>을 참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를 읽었다.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책에 빼곡히 적힌 낯선 지명과 인명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는 것은 어차피 필요에 따라 읽히는 법이지만 동유럽의 낯선 지명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영어권의 지명에 비해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규진 한국외대 교수는 1990년 여름에 프라하를 방문한 이래 금년까지 25번 이상을 다녀왔다고 하니 그에게는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그 이름들이 낯설지는 않을 터이지만 말이다.

 

"오늘날 프라하 국립미술관은 체코와 중부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미술을 전시하는 성 아그네스 수녀원, 바로크와 고전주의 미술을 전시하는 슈테른베르크 궁전, 바로크 미술을 전시하는 슈바르첸베르크 궁전, 19세기 보헤미아 미술을 중점적으로 전시하는 성 게오르크 수도원, 근현대 미술 중에서도 체코 큐비즘을 전시하는 검은 성모마리아의 집인 입체주의 미술관, 20세기와 21세기 미술을 전시하는 킨스키 궁전 등 일곱 곳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진다."    (p.69)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음악과 문학의 숨결이 살아 있는 프라하', 2부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 보헤미아', 3부 '도시마다 색다른 매력을 감춘 모라바와 슬레스코'가 그것이다.  체코에 대해 내가 아는 상식은 극히 미약하다.  지금은 체코 시민권이 박탈된 밀란 쿤데라의 출생지라는 것, 일생 동안 프라하에 살면서 많은 작품을 썼던 카프카, 교향곡 <신세계>를 작곡한 드보르자크의 출생지라는 것, 그리고 영화 <프라하의 봄> 등 내가 아는 것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프라하의 속살은 더없이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이었다.  유럽 심장부의 보석, 모든 도시들의 어머니, 황금의 도시, 에로틱의 도시, 매혹의 도시 등 프라하를 이르는 수많은 수식어는 단지 먼 이국땅으로서의 한 나라로만 여겨지던 체코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마치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여인과 같은 체코는 방문객 누구나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듯 보였다.  일단 한번 체코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보존된 문화유산에 흠뻑 취해본 방문객이라면 그 마성의 매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브레츨라프를 벗어나 레드니체 발티체로 가는 길에 붉은 벽돌로 된 네오고딕 양식의 아담한 교회가 눈길을 끈다.  성모마리아 방문 교회로,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세운 것이다.  다양한 채색 유리창이 화려한데, 원래 고딕 양식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200여 가지의 다양한 벽돌로 19세기 말에 만든 것이다."    (p.264)

 

체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무한한 사랑을 품은 작가는 독자들에게 소개할 것들이 넘쳐나는 듯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이 발간되기 전에 작가가 썼던 초고는 이 책의 분량에 두 배 이상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작가는 부족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체코의 역사와 문화, 그 속에 감추어진 전설과 다양한 먹거리,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갖가지 풍습과 내력 등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체코 현지인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머리는 조금 어지러워도.

 

그나저나 요즘 그곳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이라는데 블타바 강이 넘쳐 프라하는 지금 황토빛 흙탕물에 잠기지나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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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뭐 딱히 형식을 정해놓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소서'하는 기도를 빙자한 바람이다.  그 전날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혹시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과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속죄와 용서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것은 내게 마음으로만 하는 일종의 적선이자 보시인 셈이다.  그 일에는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니 나는 베풀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기원하며 한껏 선심을 쓰곤 한다.

 

이따금 너무 바쁘게 서두르는 날은 이것마저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하루 중 아주 잠깐의 짬을 내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천지개벽할 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제부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눈길이 가곤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들이 견디며 겪어왔을 크고 작은 일들과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동병상련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나의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삶 전체가 하나의 학습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행위는 학습을 통한 깨달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깨달음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순간에서 얻는 것은 그닥 많지 않다.  어떨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흘려보내기도 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어느 나이에 이르게 되면 행복이라는 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인생의 무임승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히 미안하고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일지도 모르는 먼 미래에 누군가로부터 그 대가를 요구받을 것만 같아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행복을 비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불행을 빌어야 옳을지...  

 

나의 이런 생각이 바보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다.  고통을 피하려고 아등바등하거나 잔꾀를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힘든 고통의 순간도 그저 지나갈 뿐이고 그 뒤에는 반드시 어떤 깨달음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들곤 한다.  삶이라는 학습장에는 무임승차가 있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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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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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쬐는 유월의 태양을 피해 잎이 무성한 감나무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은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파랗게 부서진다.  휴일의 오후.  나른한 일상이 무겁게 가라앉고 시간은 마치 더위에 지친 개의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진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잎사귀 무성한 잔가지를 슬며시 들었다 놓을 뿐 어느 곳에서도 바쁜 움직임은 없었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아바(ABBA)의 음악을 조용히 음미하며 영화 <맘마미아>를 생각했다.  음악은 까마득히 오래된 기억들의 세계로 한순간에 되돌려 놓는다.  움찔움찔 움직일 줄 모르는 고장난 시계의 초침처럼 시간은 그 시절의 기억 속에서 한동안 배회한다.

 

"균질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기억되지 않는다.  아주 느리게 가거나 그와 정반대로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시간, 혹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시간만이 기억된다.  이를테면 소피를 가질 무렵의 수십 년 전 여름날들은 도나에게 종탑의 10시 10분이나 내 손목시계의 12시 50분 같은 시간일 것이다.  그 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여름날의 남자들이 갑작스레 다시 나타났어도 도나가 그 시절의 감정을 되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 마음속의 어떤 시곗바늘이 그 순간 이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p.146)

 

이동진의 영화 에세이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는 글로써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감성과 독자의 향수가 만나는 그 주변부에서 스파크처럼 강한 불꽃이 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긴 시간 동안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등을 두들겨주는 부드러운 손길인 양 아련함이 밀려들게 한다.  영화 속의 장소를 찾아 떠났던 그의 발걸음에는 몇 살의 그가 동행했던 것일까?  불혹을 넘긴 현재의 그와 오래 전 영화 속을 떠도는 과거의 그는 얼마만큼 멀어진 것일까?  또는 변하지 않고 또 얼마만큼 닮아있는 것일까?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주말의 명화'가 떠오르곤 한다.  올망졸망한 형제들이 땟국에 전 이부자리를 껴안고 졸린 눈을 부비며 보았던 '주말의 명화'.  깜박 졸다 일어나면 못 보고 지나친 장면들에 대한 궁금증이 물처럼 밀려오고,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뚫어져라 영화에만 몰입하던 형에게 내가 못 보고 지나쳤던 영화의 줄거리를 재쳐 묻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형은 귀찮다는 듯 그냥 자라고만 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나와 영화에 푹 빠져 있던 나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형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서 영화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제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보았던 캐서린 역의 줄리엣 비노쉬와 <맘마미아>에서 도나 역의 메릴 스트립, 그리고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프랜시스 역의 다이안 레인 등 그 시절에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여배우들이 내 기억 속의 작은 공간에서 또 다른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현실의 남녀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구의 슬픔을 자신들의 삶에 접종함으로써 면역을 얻으려는 걸까.  이럭저럭 만나서 고만고만하게 헤어지는 현실의 사랑은 미쳐 날뛰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신화적 사랑의 파편 속에서라도 기필코 에너지를 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p.210)

 

그러나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를 돌이켜 보면 전체적인 스토리보다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떤 특정한 장면과 그 장면에서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처럼 깊은 주름을 지으며 흐르던 음악.  이 둘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내 피부를 감싸던 솜이불처럼 음악은 마치 정지한 화면을 휘감고 도는 따뜻한 솜이불이자 부드러운 연인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그 짧았던 오후의 번잡스러움 속에 이렇게 긴 낭만이 숨죽이고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상영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하철을 타고 때로는 그에 더하여 혼잡한 버스를 타는 수고를 감내했을 그날의 오후와 미리 도착한 관객들의 부산스러움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주된 이유는 먼 훗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매끈하게 각색된 새로운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균질하게 흐르는 현재의 시간과 그 시간이 일상의 익숙함에 더해져 천만 근의 무게로 내 어깨를 짓눌러 올 때, 긴 곡선 위를 유연하게 흐르는 기억 저편의 시간은 얼마나 가벼운가.  우리는 기억 저편의 시간에 깊은 허기를 느끼면서 종말을 향해 늙어가는지도 모른다.  종래 가능하지 않은 영원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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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소박한 삶 - 아미쉬로부터 배운다 타산지석 12
임세근 지음 / 리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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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교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한 것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종교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임병이다.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했던 나는 부대 밖으로의 외출이 잦았다.  반면에 군수과의 서기 겸 잡다한 일을 처리하던 그 후임병은 본부중대 소속이 아닌 일반 전투중대에서 차출된 사병으로서 늘 군수과 사무실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임병은 챠트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차출된 것이기에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언제나 넘쳐났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의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붙박이로 사무실을 지켜야만 했다.

 

올림픽 준비로 한창이던 1987년의 여름, 공병부대였던 우리 부대의 부대원 대부분은 국군의 날 행사 시설을 짓기 위해 봄부터 여의도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전 군의 숙소로 사용될 24인용 천막을 세우고, 화장실을 짓고, 사열대를 비롯한 제반 시설을 짓는 것은 많은 인력과 자재가 소요되는 큰 공사였다.  눈만 뜨면 작업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반 전투중대원들과는 달리 나는 필요한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군지사(군수지원사령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이 있어 부대로 복귀했는데 당시 일병이었던 후임병은 사무실에서 여전히 파견 나간 다른 사람들의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나는 그에게 여의도로 문서수발을 보냈다.  모처럼 바람도 쐬고 업무에서 벗어나 짧은 휴식시간이라도 주고자 했던 게 나의 의도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문서수발을 다녀온 후임병의 얼굴이 내내 어두웠다.  이유를 묻자 후임병의 대답인 즉 버스에 탄 어떤 여자 승객을 보고 음심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에 그리 큰 죄라고.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판단이었지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후임병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당시 후임병은 부천에 있는 모 신학대학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하다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한 상황이었고, 그의 종교적 신념에 비춰볼 때 자신의 행위는 결코 용서될 범주 안에 있지 않은 듯했다.  후임병은 그 일로 한동안 괴로워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후임병의 믿음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었다.  지금은 대구의 한 교회에서 목사로 있는 그 후임병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트로트를 잘 부르고 재주가 많은 친구였는데...

 

이 책 <단순하고 소박한 삶=아미쉬로부터 배운다>를 읽으며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100년 전 방식으로 오늘을 사는 아미쉬 공동체의 삶은 그 친구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저자는 펜실배니아 주 랭카스터 지역의 아미쉬 공동체와 이웃하며 살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엄격한 율법 아래 겸허한 삶을 영위하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 많다.  용모, 복장, 행동, 의례 등 일상의 생활양식에서부터 종교 의식과 신앙 생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일원으로서 지키며 실천에 옮겨야 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모두가 이를 철저하게 지키고 따른다."    (p.108)

 

교회도 짓지 않고 십자가를 비롯한 모든 우상을 섬기지 않으며,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거부하고, 사회보장 보험을 비롯한 일체의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며,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등 오직 성경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려는 아미쉬 공동체의 사람들.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그것도 전 세계의 물질 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미쉬 공동체의 모습은 놀랍다 못해 신기하다.

 

2006년 초가을 어느 날, 아미쉬 공동체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조건없는 용서'였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명복을 빌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유가족에게 먼저 할애해달라는 간청과 범인의 미망인과 어린 세 유자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는 아미쉬 공동체의 관용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유럽의 종교개혁 당시 개혁파 중에서도 강경보수주의자들이었던 '재세례파'의 후예인 아미쉬 공동체는 그 당시 이단으로 몰려 갖은 박해와 고난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폭력을 거부하고 소송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악한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들의 삶을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보여주려고도 했다고 한다.  더구나 랭카스터 지역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와 산업시설의 증가로 아미쉬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며 사적 이익에 눈 먼 현대인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방식은 영원히 존채해야 하는데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미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풍요나 삶의 질을 높이는 그 어떠한 변화나 개혁이 아니고, 그들의 전통적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터전, 흙먼지 묻히며 땀을 뿌릴 수 있는 약간의 문전옥답門前沃畓이 필요할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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