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내리쬐는 유월의 태양을 피해 잎이 무성한 감나무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은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파랗게 부서진다.  휴일의 오후.  나른한 일상이 무겁게 가라앉고 시간은 마치 더위에 지친 개의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진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잎사귀 무성한 잔가지를 슬며시 들었다 놓을 뿐 어느 곳에서도 바쁜 움직임은 없었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아바(ABBA)의 음악을 조용히 음미하며 영화 <맘마미아>를 생각했다.  음악은 까마득히 오래된 기억들의 세계로 한순간에 되돌려 놓는다.  움찔움찔 움직일 줄 모르는 고장난 시계의 초침처럼 시간은 그 시절의 기억 속에서 한동안 배회한다.

 

"균질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기억되지 않는다.  아주 느리게 가거나 그와 정반대로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시간, 혹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시간만이 기억된다.  이를테면 소피를 가질 무렵의 수십 년 전 여름날들은 도나에게 종탑의 10시 10분이나 내 손목시계의 12시 50분 같은 시간일 것이다.  그 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여름날의 남자들이 갑작스레 다시 나타났어도 도나가 그 시절의 감정을 되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 마음속의 어떤 시곗바늘이 그 순간 이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p.146)

 

이동진의 영화 에세이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는 글로써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감성과 독자의 향수가 만나는 그 주변부에서 스파크처럼 강한 불꽃이 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긴 시간 동안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등을 두들겨주는 부드러운 손길인 양 아련함이 밀려들게 한다.  영화 속의 장소를 찾아 떠났던 그의 발걸음에는 몇 살의 그가 동행했던 것일까?  불혹을 넘긴 현재의 그와 오래 전 영화 속을 떠도는 과거의 그는 얼마만큼 멀어진 것일까?  또는 변하지 않고 또 얼마만큼 닮아있는 것일까?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주말의 명화'가 떠오르곤 한다.  올망졸망한 형제들이 땟국에 전 이부자리를 껴안고 졸린 눈을 부비며 보았던 '주말의 명화'.  깜박 졸다 일어나면 못 보고 지나친 장면들에 대한 궁금증이 물처럼 밀려오고,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뚫어져라 영화에만 몰입하던 형에게 내가 못 보고 지나쳤던 영화의 줄거리를 재쳐 묻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형은 귀찮다는 듯 그냥 자라고만 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나와 영화에 푹 빠져 있던 나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형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서 영화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제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보았던 캐서린 역의 줄리엣 비노쉬와 <맘마미아>에서 도나 역의 메릴 스트립, 그리고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프랜시스 역의 다이안 레인 등 그 시절에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여배우들이 내 기억 속의 작은 공간에서 또 다른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현실의 남녀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구의 슬픔을 자신들의 삶에 접종함으로써 면역을 얻으려는 걸까.  이럭저럭 만나서 고만고만하게 헤어지는 현실의 사랑은 미쳐 날뛰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신화적 사랑의 파편 속에서라도 기필코 에너지를 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p.210)

 

그러나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를 돌이켜 보면 전체적인 스토리보다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떤 특정한 장면과 그 장면에서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처럼 깊은 주름을 지으며 흐르던 음악.  이 둘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내 피부를 감싸던 솜이불처럼 음악은 마치 정지한 화면을 휘감고 도는 따뜻한 솜이불이자 부드러운 연인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그 짧았던 오후의 번잡스러움 속에 이렇게 긴 낭만이 숨죽이고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상영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하철을 타고 때로는 그에 더하여 혼잡한 버스를 타는 수고를 감내했을 그날의 오후와 미리 도착한 관객들의 부산스러움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주된 이유는 먼 훗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매끈하게 각색된 새로운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균질하게 흐르는 현재의 시간과 그 시간이 일상의 익숙함에 더해져 천만 근의 무게로 내 어깨를 짓눌러 올 때, 긴 곡선 위를 유연하게 흐르는 기억 저편의 시간은 얼마나 가벼운가.  우리는 기억 저편의 시간에 깊은 허기를 느끼면서 종말을 향해 늙어가는지도 모른다.  종래 가능하지 않은 영원을 꿈꾸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