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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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가 들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떤 사물이든 넋이 빠져 바라보곤 했었다.  급한 게 없었으니까.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언제나 바빴다.  그래서 보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이런 습관이 한동안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더 바빠졌는지도 모른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은 아주 잠깐씩 스쳐갔을 뿐 삶에는 도통 아는 게 없었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것이다'하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잖은가.  차를 운전할 줄은 알아도 막상 차가 멈추었을 때 왜 멈추었는지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딱 그런 식이었다.

 

몇 년 전 여름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참으로 묘한 경험을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편으로는 소나무가 나란히 심어진 짧은 산책로가 있는데 그 초입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잠깐 쉬었다 가는 작은 바위가 있다.  그날 아침에 몸이 가냘프고 등이 활처럼 휜 할머니 한 분이 그 바위 위에 앉아 먼 시선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안개 탓이었는지 내 눈에 비친 할머니는 정형외과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해골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나는 그때 '아, 그렇구나.'하고 느꼈다.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뭉클한 느낌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뒤로 사물을 볼 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현재의 모습보다는 그 대상의 오래 전 모습과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면 다음 순간 내가 집착했던 모든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깨닫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로 깊은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전보다 욕심이 1/3쯤 줄었다고나 할까.    『On the Road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는데 문득 그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2005년 EBS <열린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던『On the Road』는 이후 장기 배낭여행자들에 관한 인터뷰 형식의 책으로 엮여졌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있어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는 '카오산 로드',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여행자들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이라는 찬사를 듣는 카오산에서 작가는 여행자들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난 듯하다.

 

"카오산에는 독특한 패션이 있다.  삼륜차 택시인 '툭툭'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손님 한 사람에 네 사람이 달라붙어 여러 색깔의 실과 머리카락을 섞어 땋는 레게 머리가 그것이다.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거리인 탓에 마오쩌뚱이나 체 게바라, 짐 모리슨이나 지미 핸드릭스의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는 것도 카오산의 변치 않는 유행이다.  짧고 검은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늘씬한 태국 여대생을 쳐다보는 것도 눈이 즐겁다.  황색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를 태우고 휭하니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p.20)
  

젊을수록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을 좋아한다.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이는 한여름의 해수욕장이나 인기 가수의 대규모 공연이 펼쳐지는 광장, 그에 더하여 누구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 외국의 어느 지역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 체면과 의무로부터 멀어진 곳에서 오히려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삶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인 동시에 여행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낯선 길 위에서 느끼는 일탈의 자유와 해방감, 행복했던 순간들, 전에는 감히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 사랑, 그리고 긴 여행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자들만이 얻는 자기 발견의 시간.  저자가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은 그래서 더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어?

여행은 아침 기도를 빼면 내 삶에 가장 커다란 충만감을 주고 있어.  나의 교만을 버리게 만들었고 내가 누구인지도 생각하게 했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  특히 자기 삶,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많은 사람을 보는 건 정말 좋아.  라오스나 중국, 베트남, 태국은 자메이카의 시골을 떠오르게 해.  그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  작은 방에서 침대 하나, 부엌, 몸을 씻을 공간, 그 뿐이야.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해.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가?"    (p.260) 

저자가 만났던 많은 배낭여행자들.  그들이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여행지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의 일부분일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아까운 시간쯤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삶을 운전하는 초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삶이라는 거대한 틀을 수선하고 정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부딪히는 일상에서가 아닌 여행의 짧은 시간 속에서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물을 바라 보는 올바른 방식을 나는 조금 늦은 나이에 배운 듯하다.  '카오산 로드'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인데 그렇게 성숙할 수 있다니...  지금 내 눈에 비친 모든 사물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아주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요 신기루와 같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경과를 통하여 사물의 과거와 먼 미래를 바라 보는 시각은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순간순간의 긴장감 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듯한 여행지의 낯선 곳에서 다른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은 동시에 나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삶을 정비하고 수선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여행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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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권의 책 -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
이해욱.김성심 지음 / 두베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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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이지만, 어떤 일은 시작애 앞서 자신이 예측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끝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흐지부지 되는 수도 있고, 도저히 끝을 볼 수 없는 일인 듯 싶어 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일을 끝내게 되었을 때의 어리둥절함이란...

 

이럴 때 우리는 '내 그럴 줄 알았지'하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고, '와!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의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평가가 다소 억울할 수도 있고 '이게 이렇게까지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인가?'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보통사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라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예컨대 내가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것이라던가, 틈만 나면 책을 읽는 것이라던가 하는 일들은 괜한 칭찬을 듣는가 하면 담배를 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고는 쏟아지는 비아냥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누군가의 성취에 대해 크게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패에 대해 크게 비난하지도 않는다.(내가 너무 인색한가?  아니면 무덤덤하거나)  가령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에베레스트 14좌 완등릉 했을 때에도 그저 무덤덤했었다.  어쩌면 그도 처음에는 다 오를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저 다 올랐을 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가 이룬 엄청난 성취가 저평가되거나 가치 절하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해욱, 김성심 부부가 쓴세계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약간의 부러움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 이들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엄청난 일을 해냈겠구나'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부부는 은퇴 하면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약속을 했고, 은퇴한 지 3개월 만에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별것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그럴 수도...)  유럽에 이어 중남미 지역의 모든 나라를 돌았고, 해외여행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부부는 전 세계를 돌아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태평양의 많은 섬국가를 부부가 함께 여행하였고,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해욱(남편)은 단신으로 아프리카의 오지 국가와 중남미의 가이아나를 다녀옴으로써 전 세계 모든 독립국가 여행을 마쳤다고 한다. 

 

정부가 여행을 금지했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를 제외한 189개국과 UN 가입국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한 3개국(바티칸시국, 코소보, 팔레스타인)을 여행함으로써 192개국의 여행을 마쳤고 그는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세계 모든 나라 땅 밟은 첫 한국인'으로 인증도 받았다고 한다.  '은퇴 생활의 롤 모델' 1위에 뽑히기도 했다는 이해욱,김성심 부부의 여행기가 바로 이 책 <세계는 한 권의 책-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이다.

 

"외국을 이웃집 드나들 듯하는 오늘날이지만 그럼에도 세계여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간혹 장기 계획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젊고 진취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일선에서 물러선 은퇴자들에게 세계여행은 정말 꿈같은 일일 수밖에 없다.  은퇴 3개월 후 나는 아내와 함께 생애 첫 배낭여행에 나섰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독립국가 여행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이것은 평생 간직하고 살았던 여행의 꿈 그리고 나와 같은 꿈을 꾸며 평생 함께한 아내 덕분이다."    (p.9)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더러 있다.  구체적인 게획을 세워 끝까지 밀어부쳐야만 이뤄지는 일들도 있고, 운이 좋아서(정말로 운이 좋아서) 생각지도 않게 이뤄지는 일들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나저나 이제 휴가철도 멀지 않았는데 환율이 올라 해외여행은 비용이 많이 들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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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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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으레 '그럴듯한 거짓말을 씀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거짓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직업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듯한'이 조금 더 발전되면 '진짜'로 착각하는 독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소설가야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지만 '진짜'라고 굳게 믿는 독자는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렇게 믿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그러니까 소설가에게는 땡전 한 푼의 책임도 없다?)  아무튼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의 글솜씨라면 그런 걱정을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를 읽은 것은 얼마 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 이어 두번째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타이틀로 출간된 3부작의 에세이 중 제2권부터 읽은 셈인데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 -[앙앙]에 쓴 연재 에세이를 모은 것이니 만큼 일상의 가벼운 주제를 감각적이고도 트렌디한 문체로 쓰고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외수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두 분 모두 소설가라는 것과 요즘 들어 젊은이의 취향에 맞는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무척이나 많아 보인다. 

 

사실 이런 에세이를 읽고 리뷰를 쓸 때에는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다.  만화처럼 별 고민 없이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다 읽고난 후가 문제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이렇다 저렇다 하고 써야 할 말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에세이는 소설처럼 한 권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어떠어떠한 면이 매력이 있다던가 어떤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리뷰를 길게 풀어 쓸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소설 속에 감추어진 소설가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인데 현란한 글솜씨 때문인지 포인트를 정확히 잡아 리뷰를 쓴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하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들었던 한 부분을 빼놓지 않고 다시 옮겨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독수리 타법의 내가 그만한 인내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날마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회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은 대폭 절약된다.  세상에는 통근과 회의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당신도 아마 그렇지 않죠?

한 가지 더 소설가가 된 기쁨을 절실히 느낄 때는 솔직하게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다.  예를 들면 "장래 일본 산업 구조를 세련화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정신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하고 누군가 질문해도, "죄송합니다.  그런 건 난 모릅니다"한마디로 끝낸다.

만약 내가 텔레비전 방송 패널이나 대학교수였다면, 그렇게 간단히 "모릅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물어도 일단은 그럴듯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러나 소설가에게 - 뭐, 나같은 소설가에게라는 말이지만 - 무지는 특별히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소설만 재미있게 쓰면 그걸로 그만이다.  심지어 "그런 것 하아아나도 몰라요"하고 자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자세가 통하는 직업은 아마 좀처럼 없지 않을까?

이건 뭐랄까, 정말로 좋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까놓고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큼 편한 일도 없다.  그것만으로 수명이 오 년 반 정도 늘어날 것 같다.

---------------중략(내 인내력의 한계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중에서)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를 십여 편 읽었었다.(혹시 베낄 만한 내용이 있을까 해서 -저작권법에 걸릴려나?)  놀라운 것은 긍정적인 리뷰의 대부분이 그 이유로 하루키의 대화체 문장과 솔직함을 꼽았다.  더구나 공감했던 내용 또한 서로 비슷비슷했다.  이럴수가.  각기 다른 리뷰어들이 비슷한 리뷰를 쓰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하루키 신드롬을 넘어 '하루키류(流)'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루키의 책은 왜 이토록 인기가 많은 걸까?(물론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글은 솔직함을 넘어 도발적이라고 해야 옳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가감없이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그가 소설가로서 얻은 명성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싫은 것은 싫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의 고집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그의 인생관이 천편일률적으로 닮아 있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아, 이런 놈(?)도 있구나'하고 말이다.

 

'어떤 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고집과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비슷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다름'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다름'이 시대를 잘 만나서 대접받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그렇다면 그는 분명 운이 좋은 사람이다)  동물원의 원숭이꼴이 되기 싫어서 텔레비전 인터뷰에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는 그의 고집은 유명세를 좋아하는 일반인들과 분명 달라 보인다.  그의 인기는 그의 인생관을 팔기 때문이다.  남과는 구별되는 그만의 인생관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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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힘 -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찰스 두히그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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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곤 한다.

그 나이 또래에는 세상에 대한 편견이 지금의 내 나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는 애기일 수도 있다.  게다가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습관이나 가치관은 아직 형성도 되지 않던 시기였으니 사람에 대한 편견도 있을 리 없었다.  세상은 오직 기분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 맘에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또는 예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몇 가지 범주 안에 다 쑤셔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세상 경험이 늘어나면서 어렸을 때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가려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때에 비하면 세상도 조금쯤 달라졌겠지만 그보다는 내 자신의 변화가 주요 원인이지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아마도 열이면 열 똑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오직 개인의 지식 수준이나 성장 배경 등에서 비롯된 지적 영역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어쩌면 편협하고 단편적인 추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에 자신도 모르게 체득된 습관이야말로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의 호불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습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습관에 대해 쓴 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책은 이소무라 다케시의<이중세뇌>와 최근에 발간된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이다.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은 상호 보완적인 면도 있고, 습관을 주제로 한 다른 어떤 책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중세뇌>는 간단하게 리뷰를 올렸었다.( http://blog.aladin.co.kr/760404134/4875257)  <이중세뇌>가 습관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강박이나 집착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금세 꺾이고 마는 마음의 함정, 즉 의존증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반면 <습관의 힘>은 습관의 형성 과정에 있어 그것이 어떻게 저장되고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책이 서로 상호 보완적이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습관의 힘>이 주로 신체적(주로 뇌)인 면을 다루고 있다면 <이중세뇌>는 주로 의지와 관련된 정신적 측면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 <습관의 힘>을 쓴 찰스 두히그는 하버드 MBA 출신의 뉴욕타임스 심층보도 전문기자라고 한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습관이 형성되고 발현되는 원리를 이해하면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습관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습관은 '신호'와 '반복행동', 그리고 '보상'으로 이루어지며, 이렇게 체득된 행동 덩어리들은 뇌의 기저핵(basal ganglia)에 저장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저장된 행동 덩어리들을 뇌는 단순히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여 주고 실행만 명령할 뿐 행동 과정에서는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습관이 형성되는 이유는 우리 뇌가 활동을 절약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도 주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뇌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거의 모든 일을 무차별적으로 습관으로 전환시키려고 할 것이다.  습관이 뇌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뇌가 활동을 절약하려는 본능은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뇌가 효율적이면 그만큼 뇌에 필요한 공간이 줄어들고, 따라서 머리 크기도 작아질 수 있다."    (p.39)

 

저자는 일련의 습관 고리에서 특히 '반복행동'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신호에 의해 주어진 '반복행동'은 물질적인 보상이나 칭찬, 자기만족 등과 같은 감정적인 대가에 의해 습관으로 고착화하는데 우리가 신호를 의식함으로써 지금까지 길들여진 '반복행동'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로울 때마다 술을 마신 사람이 있다면 '외롭다'는 신호를 인식했을 때 술을 마시던 '반복행동'을 비슷하거나 동일한 보상이 주어지는 다른 '반복행동'을 함으로써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또한 습관 고리에 관여하는 정신적 요소로서 '열망'(craving)을 꼽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집착이나 열망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아무튼 이러한 습관 고리의 순환을 통하여 형성된 패턴화 되고 정형화 된 습관을 '반복행동'만 바꿔줌으로써 습관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미 저장된 행동 덩어리(습관)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든지 다시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저자는 변화에 대한 확신과 습관의 변화가 자신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또한 개인의 습관을 확장하여 기업과 사회에 있어 작은 습관의 변화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습관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먼저 있어야 한다.  습관의 반복행동을 유도하는 신호와 보상을 알아내고, 대안을 찾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통제수단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 통제수단을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습관의 통제가 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p.372)

 

그렇다.  자신이 갖고 있는 나쁜 습관을 인식하고 좋은 습관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그 결심이 없다면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노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과 실패의 이면에는 핵심 습관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도 모르게 체득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운동이나 독서 등 좋은 습관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뇌는 일단 저장된 습관을 어떤 가치 판단에 준하여 실행을 금하거나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원대한 꿈이 없다면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의 구별조차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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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속을 걷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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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항상 현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밀려난다.  마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사이에 두고 그리워하듯이.  어쩌면 우리 의식의 작은 틈일 수도 있는 이 간격을 메울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미래를 바라볼 뿐 아무리 손을 길게 뻗어 잡으려해도 도저히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태어날 때도 그랬고, 죽음에 가까울 때도 그럴 것이다.  결국 미래는 우리 의식 속에서 자라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진 남녀는 환상 속의 미래를 좇는다.  금방이라도 장밋빛 미래를 움켜잡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현재는 너무도 짧은 찰나의 시간이므로.

 

결혼 전에 아내와 함께 본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일이라는 핑계로 서로에게 대한 잠깐의 무관심이 그럭저럭 용서되었고, 사는 지역이 달랐으니 만들어낼 핑계도 무궁무진한 것처럼 보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래 이어진 연인이었다.  마치 쾌쾌한 곰팡내가 날 정도의 긴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면 습관처럼 익숙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바심내며 급히 서둘러야 할 이유는 하나 둘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언젠가 아내의 권유로 <비포 선 라이즈>를 함께 보았고, 속편인 <비포 선셋>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는 결혼했다.

 

이동진의 영화 에세이 <필름 속을 걷다>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지금도 멜로 영화 베스트의 순위 안에 들 만한 영화들이 이 책에서는 여러 편 등장한다.  이 책의 1부인 "흔적을 찾다"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러브레터>, <비포 선셋>,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이터널 선샤인>, <러브 액츄얼리>이다.  제목만 들어도 어쩐지 달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2부 "리얼리티를 찾다"에서는 1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들이 소개된다.  <화양연화>, <행잉록의 소풍>,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나니아 연대기>가 그것인데 작가는 영화 촬영지 곳곳을 누비며 몽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곳의 현실과 대면한다.

 

"고통스러운 나날이 아름다운 시절로 부활하는 것은 언제나 '먼 훗날'이다.  현재 시제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과거 시제에서 추억을 발명함으로써 스스로에게도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고 자위한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언제나 과거라는 사실 속에 인간의 근원적인 절망이 있다.  영화 <화양 연화>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간 차우가 오래된 석조건물의 구멍에 대고 뭔가 속삭인 뒤 진흙으로 메우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의 사랑이 안타깝게 끝난 먼 훗날의 일이었다."    (p.121)

 

3부의 "시간을 찾다"는 <글루미 선데이>로 시작된다.  뒤이어 <쉰들러 리스트>, <티벳에서의 7년>, <장국영을 기억하다>, <베니스에서 죽다>가 차례로 소개된다.  작가는 '현실과 영화는 서로 어깨를 겯고 낭만을 희구한다.'고 썼다.  그러나 현실은 알 수 없는 시간대를 만났을 때 소리도 없이 파편처럼 부서진다.  너무도 허무하게.  쇠보다 더 단단하고, 노끈보다 더 질기게만 보였던 현실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모습은 아득하다.  그제서야 우리는 자신이 딛고 있던 현실을 되짚어보곤 한다.  그것은 마치 앞으로만 내달리던 여름 햇살이 건물 기둥의 방해물을 만났을 때 투정을 부리듯 밝게 부서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기둥 뒷면의 그림자는 부서지는 햇살로 인해 비로소 그 형체를 드러낸다.

 

"휑한 축제의 장소들은 그저 축제의 꿈만을 꾸며 시간을 견디는 듯 느껴진다.  어쩌면 아센바흐도 그랬는지 모른다.  여행은 삶에서 축제같은 시기일 테니까.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여행지 베니스에서 아센바흐는 다시금 마음의 축제가 시작될 순간만을 고집스럽게 기다리며 두고 온 일상을 까무룩 잊는다.  그러나 아무리 감미로운 여행도 생활 자체일 수는 없고, 아무리 신나는 축제도 삶 전체일 수는 없다.  그게 아센바흐의 비극이었다."    (p.293)  

 

영화관을 나설 때마다 느꼈던 몽환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는 휴일 저녁의 느낌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몸은 이미 천 근 만 근이다.  그 경계를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하지 않은 일상에 금세 뒤섞이겠지만 말이다.  자신이 본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과거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의 회귀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랑도 내내 그런 것이리라.  사랑 한가운데에 있는 연인은 언제나 미래를 꿈꾸고 사랑을 잃은 연인은 언제나 과거로 회귀한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현재라는 시제가 언제나 빈 자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먼 훗날' 과거와 미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순백의 현재와 조우하는 날이 오면 하루는 마냥 길게 늘어진다.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의 긴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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