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 일은 증오를 사랑으로 갚는 것, 버려진 자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가뜩이나 2013년의 막바지에 이른 요즘의 대한민국 정세를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도노조의 파업과 민주노총 사무실의 강제진입을 보면서, 그리고 얼마 전 개봉한 '변호인'의 흥행을 보면서 마음이 그닥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강경진압을 보면서 저는 8,90년대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장면이 보여지곤 했으니까요.  오죽하면 대학가 주변의 상인들은 민방위 훈련을 하듯 하루에도 몇 번씩 셔터를 여닫아야 했겠습니까.

 

현 정부의 이와 같은 행태는 집권초기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전 정권에서 발생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할 뿐입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물러날 즈음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무슨 신통력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제 의견에 반하는 분도 물론 있겠지요.

 

다들 보셨겠지만 참여정부의 초기에 있었던 평검사와의 대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어느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어쩌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권위주의의 탈피는 그때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에서도 성공과 과오는 있게 마련이지요.  어쩌면 과오가 아홉이라면 성공은 그 중 하나쯤만 되어도 그 사람의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과오를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삶은 더욱 위대한 것이겠지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로 언론을 장악하지 못했던 것과 참여정부와 척을 지는 반대파를 제거하지 못했던 것을 꼽는 분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했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은 자유보다는 오히려 억압과 복종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이들은 그런 환경보다는 오히려 자유와 개성에 더 익숙하겠지요.  그 정점은 역시 참여정부 시절이었구요.

 

민주주의의 기반인 자유와 평화를 누려본 사람들은 억압과 복종을 결코 참아내지 못하는 법이지요.  저처럼 그나마 나이 든 사람들은 억압적인 환경을 여러 번 경험했던지라 지금 그런 환경에 다시 처한다고 할지라도 적당히 견딜 수 있겠지만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어디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참여정부가 잘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가치를 심어준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일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과오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다음 세대의 주인이 될 젊은이들에게 자유의 가치를 심어준 것은 그의 위대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정의에 기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저와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공권력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현 정부를 책임지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요.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히틀러나 뭇솔리니도 자신의 행동이 틀리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곧 전체주의에 다름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그것을 모두 수용할 때 가능한 제도입니다.  불협화음과 시끄러움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요.

 

영화 '변호인'이 흥행몰이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커다란 위협이 엄습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자유를 향유했던 사람들은 억압과 굴종의 시대를 결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현 정부의 성공 여부는 그것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하고,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정답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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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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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자신의 경험담을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들었는데요, 저는 그때마다 '왜 어른들은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로 들어서 재미도 없는데 왜 저렇게 또 침을 튀겨가며 되풀이하는 걸까?  지겹지도 않나?' 하고 생각했었죠.  제가 그때의 동네 어른들 나이쯤 되고 보니 어느 순간 저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뭡니까.  참 우습죠?

 

지구별에서 인간의 삶이 지금까지 영속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지겨운 얘기를 되풀이하여 후손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인간의 DNA에는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하도록 입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때 들었던 얘기가 하나같이 재미없던 것은 아니었어요.  이따금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죠.  어쩌면 제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알게 모르게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아크라 문서>는 제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삶에 필요한 교훈들만 가려 뽑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사실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흐르니까요.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만 있다면 말이죠. 

 

소설은 십자군의 침략이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이 콥트인 현자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서 군중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현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책이 있지요?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세속에 나와 자신의 통찰을 속인들과 이야기하는 문답형식의 책 말입니다.  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입니다.  혹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형식은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러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제가 그렇고, 문체가 그렇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문장이 아름답고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어쩌면 시에 가까운 듯 보이는 반면, <아크라 문서>는 비유나 시적인 운율이 배제된, 강건하고 논리정연한 문체로 쓰여 있습니다.  두 책에서 같은 주제로 쓰인 대목을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싸 안을 땐, 몸을 내어 맡기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예언자' 중 '사랑'에 대하여)

 

"인생의 목표는 사랑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사랑해야 한다.  사랑 때문에 눈물이 호수를 이루는 곳으로,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눈물의 땅으로 가게 되더라도!  눈물은 감출 수 없다.  울 만큼 울었다고 생각될 때도 눈물은 쉼없이 흐른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의 계곡을 오래도록 걸을 운명임을 인전하는 순간, 눈물은 이내 그친다.  고통스럽더라도 마음을 계속 열어두기 때문이다."    (p.91)

 

파울로 코엘료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전쟁 직전의 절박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콥트인 현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합니다.  패배, 고독, 변화, 아름다움, 목표, 사랑, 시간, 성교, 믿음, 우아함, 행운, 기적, 불안, 죽음, 충심, 평화, 성령 등에 대하여.  어쩌면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간에야 우리는 가장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에 모여 현자에게 질문을 하는 군중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 현자가 들려주는 답변은 곧 작가 자신이 터득한 성찰의 결과물이자 독자들에게 전해줄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지루하게 읽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깊은 성찰의 결과물은 언제나 재미없고 밋밋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에선가 이미 읽었음직한 문구들, 극적인 장면도, 현란한 수사도 없이 단순하게 이어지는 문장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소설 형식의 자기계발서?  그것도 아니라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제 자신이 남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함 독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행간을 읽는 재주는 제게 없었습니다.  그저 '지루하다' 느꼈을 뿐이지요.  "기쁨의 웃음이 흘러넘치는 그 샘이 다음 순간에는 슬픔의 눈물로 가득 차게 된다"고 `예언자`에서 칼릴 지브란은 말했습니다.  지루함이 흘러넘치는 그 샘이 다음 순간 깨달음의 기쁨으로 가득 차는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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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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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사거리 치하철역에서 서울대 방면으로 빠져나와 조금만 걸으면 옛날 순대골목이 있던 자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른쪽으로 돌면 옛 신림극장이 있던 자리 앞의 보도 한곁에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나는 지금도 어쩌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아련한 추억에 젖곤 한다.  대학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신림교를 건너기 전 천변 건물의 2층에 있던 작은 서점이다.

 

당시에 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매달 강의료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서점에 들르곤 했다.  읽고 싶었던 도서 목록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들고 책을 고를 때면 나는 더없이 행복했었다.  2층의 서점에서 내려다보던 거리 풍경도 그때만큼은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있어 서점은 단순히 책을 거래하는 장소 이상의 공간이었고, 시간과 추억을 쌓아두는 비밀창고와 다르지 않았다.

 

시미즈 레이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읽으며 나는 대학시절의 나와 그때 자주 들르던 서점을 떠올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을 소개하는 이런 종류의 책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추억의 단골서점으로 내 발길이 향하는 것처럼 마음과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까닭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은 종종 종이책의 종말을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주변의 서점에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듯한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들어서는 부부의 모습을 볼 때 나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곤 한다.  책과 서점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건재하고 다음 세대에도 그럴 것이라 믿게 된다.

 

저자인 시미즈 레이나는 지금까지 100여 곳 이상의 서점을 취재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서점 스무 곳을 소개하고 있다.  에게 해의 석양이 아름답게 빛나는 산토리니 섬의 '아틀란티스 북스',  북 잉글랜드의 기차역이었던 곳의 '바터 북스', 이탈리아의 최신 유행을 발신하는 '디에치 꼬르소 꼬모 북숍' 브라질 상파울루의 '빌라 서점' 등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서점들이 큼직큼직한 화보와 함께 등장한다.

 

택배로 이 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백색의 양장본 표지에 우윳빛 띠지가 둘러진 책은 겉모습부터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책은 일반책의 1.5배쯤 될까?  책장을 펼치자 드러나는 화려한 사진들은 마치 이 책이 사진 화보집인 듯 보이게 했다.  손에 잡히는 묵직한 느낌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고, 나는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클릭 한 번으로 책은 살 수 있겠지만 그곳에 이야기는 없다.  서점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서점을 가득 채운 공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탐욕스럽게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점을 찾는지 모른다."    (p.7)

 

우리가 처음으로 서점을 방문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대부분은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그 거대한 책의 세계로 안내되었을 것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나이에 그곳에서 맡았던 책의 내음과 다양하게 빛나던 책의 표지에 감동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평생 동안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계의 편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따뜻한 가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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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3-12-22 22:23   좋아요 0 | URL
꼼쥐님이 말핫는 그 서점이 있는 곳으로 제가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갔는데 말입니다. 음...생각이 나는것도 같고...아닌것도 같고....

동네에 작은 서점들이 모두 사라져서...마음이 아파요.

꼼쥐 2013-12-24 14:19   좋아요 0 | URL
지금은 사라진 신림극장 맞은편에 있던 서점이었어요.
저도 그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곤 했었죠.
 

어제는 고교 동창들과의 조촐한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하루 걸러 송년 모임이 잡혀 있다고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하나둘 늘어만 가고, 그렇게 가입된 모임마다 모두 참석하려면 한 달로는 어림도 없을 듯싶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형편이 좀 나은 편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밝히기 어려운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인지 다들 1, 2차에서 헤어지자는 분위기입니다.

 

아무튼 마지 못해 참석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어제처럼 기꺼이 참석하는 자리도 있게 마련이지요.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속내를 털어놓아도, 술에 취해 조금쯤 실수를 하더라도 다 이해하고 덮어줄 수 있는 자리는 제 경우에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저로서는 송년 모임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그나마 친구들은 저를 위해 매번 술대신 음료수를 시키곤 합니다.

 

친구들도 이제는 중년의 전형적인 아저씨 포스를 닮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주름도 늘고,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그럼에도 나이를 잊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동창 모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의 주제는 일정합니다.  학창시절의 추억과 세상 살기의 어려움과 서로의 건강과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어제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친구의 고민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한번쯤은 듣고 고민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간략하게 옮겨보면 이랬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교육함에 있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남들이 뭐라 하든 끝까지 밀고 나갔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는 물론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맞벌이를 하는 그들 부부는 아이만 행복하면 되는 줄 알았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여간 후회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아이는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다른 수험생들처럼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만하면 아이는 잘 자란 듯 싶은데 말이죠.  대다수의 교육 전문가나 정신과 전문의, 또는 성직자들로부터 흔하게 들어왔고 그렇게 믿고 실천했던 사람들.  그러나 자신의 자식들이 행복하게, 그렇지만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그들의 염원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데서 오는 행복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중학교까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생의 아이는 자신과 친구들의 학습능력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현격한 격차를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아이와 부모는 모두 불행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과에 이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 스스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고, 시간이라는 유한정성을 간과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평가하려면 그 기준과 실천의 근거가 명확해야 합니다.  예컨대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할 것인지, 나는 얼마나 그 목표를 달성하였고 그 발달 정도가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기검증을 위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절대적 평가는 오히려 상대적 평가보다 더 어려운 것도 같습니다.  자기 합리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아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듯 보이더군요.  늘 나태하게 보내면서도 자신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곤 합니다.

 

시간의 유한정성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인생 전체를 계획하는 데는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한정된 단기 목표에 있어서는 잘 들어맞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듯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찍 시동이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늦게 시동이 걸리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내 아이가 공부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가정할 때, 아이는 공부에 몰입하기보다는 허송세월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신보다 앞선 친구들을 보면서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아이들 대부분은 국어 성적이 형편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어는 절대적으로 자기 개관화가 필요한 과목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해야지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요.

 

저는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제 아들 녀석을 보란 듯이 키울 자신도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에 맞춰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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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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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시간입니다. 그보다 더 황홀한 순간은 춤추는 나 자신이 사라지고 오직 춤만이 남는 순간이지요.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했던 말이다.  그는 "당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던 것이다.

 

조던 매터의 사진집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니진스키를 떠올렸다.  무용수들의 홍보용 사진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프로젝트는 일상의 공간과 무용수를 결합함으로써 열정으로 가득찬 우리 삶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아들 허드슨이 장난감 버스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 사진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독자들도 크든 작든 매 순간을 즐기고,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에 눈을 떠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듯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러한 열정, 이러한 능력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이러한 천진무구한 경험은 왜 그리도 쉽게 냉소와 권태, 무관심에 자리를 빼앗기는 것일까?  나는 아이와 노는 동안, 내 아들의 눈에 투영된 세상을 보여 주는 사진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작품에 담기로 마음먹었다."    (p.8) 

 

Dreaming, Loving, Playing, Exploring, Grieving, Working, Living 등 일상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에 의해 분류된 사진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에 무용수의 춤동작이 더해져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트램펄린이나 포토샵의 도움 없이 오로지 무용수의 신체만으로 정직하게 만들어진 사진들은 마치 무중력의 우주를 떠올리게도 하고, 하늘로 도약한 무용수들이 혹시 다치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를 아니 할 수 없도록 만든다.  1000분의 1초의 타이밍이 아니면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여러 사진들이 틀에 갇힌 우리의 상상력을 먼 우주까지 확장시키는 듯하다.

 

학창시절 프로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작가는 연습벌레 야구 선수였다고 한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배우가 되려고도 했었던 그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에 매혹되어 결국 사진 작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의 다양한 경험과 지난 날의 꿈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뛰어난 연출과 무한한 상상력은 그의 이력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핑을 즐기러 바다로 향하는 남자, 다이아몬드 야구장에서 신나게 응원을 하는 여자,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 방금 타고 온 지하철에서 내려 기대에 들뜬 채 낯선 곳으로 달려가는 남자, 변기에 얼굴을 박고 괴로워하는 취객, 시계를 보며 횡단보도를 나는 듯 달리는 출근객, 보드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어느 청년 등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찰나의 순간들이 작가에게는 강렬한 에너지로 포착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진과 함께 삶의 이력을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성인인 우리들은 성숙함과 극기심을 혼동하고는 한다.  결국 슬픔을 발산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다.  어른이 놓은 수많은 덫 가운데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것은 슬픔이 우리를 찾아올 때 '기운을 차리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통을 느낄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통을 피해서 달아나려 하지 말고 슬픔에 몸을 내맡기도록 하자."     .(p.134)

 

이 책의 표지에 실린 <빗속의 댄서>, 즉 비 오는 거리에서 빨간 우산을 들고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오른 빨간 외투 차림의 여자는 책이 출간되기 훨씬 전부터 전 세계의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메이시스 백화점Macy's 앞을 촬영 장소로 골랐다.  안마리아는 퍼붓는 빗속에서 하이힐을 신은 채 삼십 분 동안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마흔다섯 번이나 했다.  이 사진은 프로젝트의 첫 작품들 중 하나였고,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촬영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서 점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예상하지 못했다."    (p.223)

 

우리 민족만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라는 말을 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졸업식장에서, 결혼식장에서, 팔순잔치의 연회장에서...  우리가 찍고 간직했던 수많은 사진들이 삶의 열정으로 되살아나기를, 그리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그 사람들이 다들 잘 지내기를 조던 매터의 사진집을 넘기면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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