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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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자신의 경험담을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들었는데요, 저는 그때마다 '왜 어른들은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로 들어서 재미도 없는데 왜 저렇게 또 침을 튀겨가며 되풀이하는 걸까?  지겹지도 않나?' 하고 생각했었죠.  제가 그때의 동네 어른들 나이쯤 되고 보니 어느 순간 저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뭡니까.  참 우습죠?

 

지구별에서 인간의 삶이 지금까지 영속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지겨운 얘기를 되풀이하여 후손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인간의 DNA에는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하도록 입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때 들었던 얘기가 하나같이 재미없던 것은 아니었어요.  이따금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죠.  어쩌면 제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때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알게 모르게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아크라 문서>는 제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삶에 필요한 교훈들만 가려 뽑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사실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흐르니까요.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만 있다면 말이죠. 

 

소설은 십자군의 침략이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이 콥트인 현자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서 군중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현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책이 있지요?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세속에 나와 자신의 통찰을 속인들과 이야기하는 문답형식의 책 말입니다.  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입니다.  혹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형식은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러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제가 그렇고, 문체가 그렇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문장이 아름답고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어쩌면 시에 가까운 듯 보이는 반면, <아크라 문서>는 비유나 시적인 운율이 배제된, 강건하고 논리정연한 문체로 쓰여 있습니다.  두 책에서 같은 주제로 쓰인 대목을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싸 안을 땐, 몸을 내어 맡기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예언자' 중 '사랑'에 대하여)

 

"인생의 목표는 사랑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사랑해야 한다.  사랑 때문에 눈물이 호수를 이루는 곳으로,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눈물의 땅으로 가게 되더라도!  눈물은 감출 수 없다.  울 만큼 울었다고 생각될 때도 눈물은 쉼없이 흐른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의 계곡을 오래도록 걸을 운명임을 인전하는 순간, 눈물은 이내 그친다.  고통스럽더라도 마음을 계속 열어두기 때문이다."    (p.91)

 

파울로 코엘료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전쟁 직전의 절박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콥트인 현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합니다.  패배, 고독, 변화, 아름다움, 목표, 사랑, 시간, 성교, 믿음, 우아함, 행운, 기적, 불안, 죽음, 충심, 평화, 성령 등에 대하여.  어쩌면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간에야 우리는 가장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에 모여 현자에게 질문을 하는 군중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 현자가 들려주는 답변은 곧 작가 자신이 터득한 성찰의 결과물이자 독자들에게 전해줄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지루하게 읽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깊은 성찰의 결과물은 언제나 재미없고 밋밋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에선가 이미 읽었음직한 문구들, 극적인 장면도, 현란한 수사도 없이 단순하게 이어지는 문장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소설 형식의 자기계발서?  그것도 아니라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제 자신이 남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함 독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행간을 읽는 재주는 제게 없었습니다.  그저 '지루하다' 느꼈을 뿐이지요.  "기쁨의 웃음이 흘러넘치는 그 샘이 다음 순간에는 슬픔의 눈물로 가득 차게 된다"고 `예언자`에서 칼릴 지브란은 말했습니다.  지루함이 흘러넘치는 그 샘이 다음 순간 깨달음의 기쁨으로 가득 차는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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