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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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시간입니다. 그보다 더 황홀한 순간은 춤추는 나 자신이 사라지고 오직 춤만이 남는 순간이지요.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했던 말이다.  그는 "당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던 것이다.

 

조던 매터의 사진집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니진스키를 떠올렸다.  무용수들의 홍보용 사진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프로젝트는 일상의 공간과 무용수를 결합함으로써 열정으로 가득찬 우리 삶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아들 허드슨이 장난감 버스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 사진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독자들도 크든 작든 매 순간을 즐기고,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에 눈을 떠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듯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러한 열정, 이러한 능력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이러한 천진무구한 경험은 왜 그리도 쉽게 냉소와 권태, 무관심에 자리를 빼앗기는 것일까?  나는 아이와 노는 동안, 내 아들의 눈에 투영된 세상을 보여 주는 사진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작품에 담기로 마음먹었다."    (p.8) 

 

Dreaming, Loving, Playing, Exploring, Grieving, Working, Living 등 일상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에 의해 분류된 사진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에 무용수의 춤동작이 더해져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트램펄린이나 포토샵의 도움 없이 오로지 무용수의 신체만으로 정직하게 만들어진 사진들은 마치 무중력의 우주를 떠올리게도 하고, 하늘로 도약한 무용수들이 혹시 다치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를 아니 할 수 없도록 만든다.  1000분의 1초의 타이밍이 아니면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여러 사진들이 틀에 갇힌 우리의 상상력을 먼 우주까지 확장시키는 듯하다.

 

학창시절 프로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작가는 연습벌레 야구 선수였다고 한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배우가 되려고도 했었던 그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에 매혹되어 결국 사진 작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의 다양한 경험과 지난 날의 꿈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뛰어난 연출과 무한한 상상력은 그의 이력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핑을 즐기러 바다로 향하는 남자, 다이아몬드 야구장에서 신나게 응원을 하는 여자,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 방금 타고 온 지하철에서 내려 기대에 들뜬 채 낯선 곳으로 달려가는 남자, 변기에 얼굴을 박고 괴로워하는 취객, 시계를 보며 횡단보도를 나는 듯 달리는 출근객, 보드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어느 청년 등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찰나의 순간들이 작가에게는 강렬한 에너지로 포착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진과 함께 삶의 이력을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성인인 우리들은 성숙함과 극기심을 혼동하고는 한다.  결국 슬픔을 발산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다.  어른이 놓은 수많은 덫 가운데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것은 슬픔이 우리를 찾아올 때 '기운을 차리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통을 느낄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통을 피해서 달아나려 하지 말고 슬픔에 몸을 내맡기도록 하자."     .(p.134)

 

이 책의 표지에 실린 <빗속의 댄서>, 즉 비 오는 거리에서 빨간 우산을 들고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오른 빨간 외투 차림의 여자는 책이 출간되기 훨씬 전부터 전 세계의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메이시스 백화점Macy's 앞을 촬영 장소로 골랐다.  안마리아는 퍼붓는 빗속에서 하이힐을 신은 채 삼십 분 동안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마흔다섯 번이나 했다.  이 사진은 프로젝트의 첫 작품들 중 하나였고,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촬영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서 점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예상하지 못했다."    (p.223)

 

우리 민족만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라는 말을 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졸업식장에서, 결혼식장에서, 팔순잔치의 연회장에서...  우리가 찍고 간직했던 수많은 사진들이 삶의 열정으로 되살아나기를, 그리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그 사람들이 다들 잘 지내기를 조던 매터의 사진집을 넘기면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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