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교 동창들과의 조촐한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하루 걸러 송년 모임이 잡혀 있다고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하나둘 늘어만 가고, 그렇게 가입된 모임마다 모두 참석하려면 한 달로는 어림도 없을 듯싶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형편이 좀 나은 편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밝히기 어려운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인지 다들 1, 2차에서 헤어지자는 분위기입니다.

 

아무튼 마지 못해 참석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어제처럼 기꺼이 참석하는 자리도 있게 마련이지요.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속내를 털어놓아도, 술에 취해 조금쯤 실수를 하더라도 다 이해하고 덮어줄 수 있는 자리는 제 경우에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저로서는 송년 모임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그나마 친구들은 저를 위해 매번 술대신 음료수를 시키곤 합니다.

 

친구들도 이제는 중년의 전형적인 아저씨 포스를 닮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주름도 늘고,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그럼에도 나이를 잊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동창 모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의 주제는 일정합니다.  학창시절의 추억과 세상 살기의 어려움과 서로의 건강과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어제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친구의 고민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한번쯤은 듣고 고민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간략하게 옮겨보면 이랬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교육함에 있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남들이 뭐라 하든 끝까지 밀고 나갔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는 물론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맞벌이를 하는 그들 부부는 아이만 행복하면 되는 줄 알았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여간 후회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아이는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다른 수험생들처럼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만하면 아이는 잘 자란 듯 싶은데 말이죠.  대다수의 교육 전문가나 정신과 전문의, 또는 성직자들로부터 흔하게 들어왔고 그렇게 믿고 실천했던 사람들.  그러나 자신의 자식들이 행복하게, 그렇지만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그들의 염원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데서 오는 행복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중학교까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생의 아이는 자신과 친구들의 학습능력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현격한 격차를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아이와 부모는 모두 불행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과에 이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 스스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고, 시간이라는 유한정성을 간과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평가하려면 그 기준과 실천의 근거가 명확해야 합니다.  예컨대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할 것인지, 나는 얼마나 그 목표를 달성하였고 그 발달 정도가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기검증을 위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절대적 평가는 오히려 상대적 평가보다 더 어려운 것도 같습니다.  자기 합리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아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듯 보이더군요.  늘 나태하게 보내면서도 자신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곤 합니다.

 

시간의 유한정성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인생 전체를 계획하는 데는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한정된 단기 목표에 있어서는 잘 들어맞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듯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찍 시동이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늦게 시동이 걸리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내 아이가 공부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가정할 때, 아이는 공부에 몰입하기보다는 허송세월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신보다 앞선 친구들을 보면서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아이들 대부분은 국어 성적이 형편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어는 절대적으로 자기 개관화가 필요한 과목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해야지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요.

 

저는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제 아들 녀석을 보란 듯이 키울 자신도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에 맞춰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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