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세상을 하나로 엮어 크고 더욱 깊어진 슬픔으로 우리를 이끌다가 질식할 듯한 심연의 슬픔에 이르게 합니다. 공유된 슬픔은 바람에 증발하지 않는 법, 힘겹고 느린 시간을 견디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길고 긴 울음으로 토해내는 듯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운동을 나섰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입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들리던 까치 울음 소리도 오늘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낙엽 밟히는 소리만 새벽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지요. 우리는 종종 슬픔으로 하나되는 슬픔의 연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연대를 마뜩잖아 하는 힘센 자들의 압제 때문만은 아닐 터, 저 벚꽃이 힘없이 지는 것처럼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름하는 팽목항 그 언저리의 어둠이 아릿한 슬픔으로 번져옵니다.

 

싸리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봄인 양 환하게 말입니다. 봄비가 예보된 아침 하늘은 여전히 맑았습니다. 공유된 슬픔은 증발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싸리꽃 환한 아침의 숲을 아이들 웃음인 양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녕 기억된 슬픔을 되살리고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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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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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야구중계가 있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나야 뭐 야구에 목을 매는 사람도 아니고, 내 돈을 내고 야구장을 찾는 사람도 못 되지만 프로야구의 개막은 겨우내 우울했던 기분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야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구가 국민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계절이 바뀐 탓으로 돌리기에도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년시절의 나는 야구에 대한 규칙도 모른 채 동네 아이들 틈에 끼여 이따금 야구를 하곤 했었다. 변변한 배트도 없고, 글러브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신문지로 접은 글러브와 적당한 크기의 나무 몽둥이만 들고도 하루 온종일 야구를 했었다. 땅거미가 지고 '아무개야, 저녁 먹어라' 소리가 온 동네에 메아리칠 때까지. 야구공 대신 사용하던 털 뽑힌 테니스공을 들고 온갖 기묘한 자세로 공을 던지는가 하면 공터를 벗어난 테니스공을 찾아 한참을 헤매곤 했었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청룡기,봉황기, 황금사자기 등 지역과 모교의 명예를 걸고 참가했던 고등부 야구선수들의 꿈과 열정은 프로야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는 내용상으로는 박민규가 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했고,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천명관의 <고래>를 생각나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야마다 오쿠(王求)'의 부모인 야마다 료와 야마다 기리코는 만년 꼴찌팀인 '센다이 킹스'의 열혈팬이다. 오쿠가 태어나던 날 '센다이 킹스'와 '도쿄 자이언츠'의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센다이 킹스'의 감독 '나구모 신페이타'는 파울볼을 피하려다 머리를 다쳐 사망한다. 그 바람에 오쿠의 부모님은 '도쿄 자이언츠'팀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산부인과 침대에 누워 모유를 실컷 먹고 잠이 든 너를 바라보며 어머니의 머릿속에 반짝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활약하는 사내가 될 텐데 왕(王)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이상해." 왕이라는 한자를 쓰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는 게 어떠냐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섭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너의 아버지도 즉시 찬성했다. "그렇지!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원하게 될 존재니까, 왕을 원한다는 뜻으로 '오쿠(王求)'는 어떨까?" 라고 제안했다." (p. 34)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오쿠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초등학교 시절 프로야구 투수의 전력투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방과 후 야구 연습장에서의 배팅 연습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후 불량한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집에 돌아갔던 어느 날 오쿠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선배 한 명을 살해한다. 오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살인죄로 구속되고 비난을 견디지 못한 오쿠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연습을 계속하던 오쿠는 센다이 킹스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다. 프로구단의 선수가 된 오쿠는 투수들의 집중견제 속에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오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도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야구 천재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결국...

 

"그리고 그 말은 너의 부모가 심취했던 선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다시 한번 이름으로 말하자면, 나구모 신페이타가 현역 시절에 남긴 대사와도 겹친다. 잡지 <월간 야구팀>에 실렸던, 정말로 코딱지만 한 인터뷰 기사에 나온 말이다. "주위에서 '너희 팀은 너무 약하다, 최저다' 욕을 하면요, 필사적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요. 플레이를 하는 건 나니까 나는 나의 플레이를, 나의 야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내 인생에 대타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p.167)

 

작가는 마치 야마다 오쿠의 전기문을 쓰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하곤 한다. '그 시점에서 야마다 오쿠의 야구 인생이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p.242)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서도 작가 천명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신파극의 변사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던지는 족족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오쿠와 같은 천재의 출현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단지 걸림돌로 작용할 뿐 그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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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았다.

거저 주어진 볕이건만 허투루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내가 어렸을 때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고, 아까워라. 아이고, 아까워라.' 연발하며 그 좋은 볕에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곤 했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웬 호들갑이람.'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하셨던 어르신들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스레 맘이 바빠지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볕이라도 쪼이고 싶고, 옛친구라도 불러 하루 종일 햇빛 속을 함께 거닐고도 싶다.

 

이상의 수필 <권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記事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나는 봄볕 가득한 오늘의 여백을 앞에 두고 이상처럼 일망무제의 권태를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청명한 하늘과 찬란한 봄볕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욕심이 일었던 것이다. '아깝다'하며 나직이 옛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이상의 <권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런 대목은 정말로 '이상 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올 봄에는 맘에 드는 '한국 단편 소설' 몇 편 골라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봄볕 좋은 날에 나는 '이상'의 수필이 문득 떠올랐다. 이상의 소설과는 달리 그의 수필은 소탈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이상의 시와 소설에 비하면 그의 수필은 찾아 읽는 이가 드문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 쓴 수필은 감칠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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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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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마치 아스라한 절벽 끝에 선 듯 어지럼증이 느껴지곤 한다. 그럴라치면 사는 게 한낱 꿈인 듯 여겨지기도 하고, 그동안 두 주먹에 꽉 움켜쥔 채 사력을 다해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이 그저 덧없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세상 일에 몰두하다 보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만 눈에 띄곤 한다. 나는 금세 욕심 많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자몽을 연상케 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청각장애 하나로도 이제까지 충분히 버겁게 살았는데…. ‘소리가 없어도 예쁜 옷을 사 입는 즐거움, 독특한 소품을 모으는 재미,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소소한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카카오톡 메시지. 겨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됐는데 많은 행복들을 왜, 모두 앗아가는 거야? 내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눈을 왜 가져가려고 하는 거야? 왜 내 것만 자꾸 뺏어가는 거야?’ (p.66~p.67)

 

귀가 유난히 큰 토끼 캐릭터 '베니'를 그린 구경선 작가의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었다.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의 오후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 왠지 나는 구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만개한 벚꽃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도 억울할 텐데 이제 그녀는 눈도 보이지 않게 될 거란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 실명하게 될 수도 있다는 희귀성 질환,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에세이집 <그래도 괜찮은 하루>에서 작가는 30가지 버킷리스트를 쓰고 있다. 그 중 가장 뿌듯했던 건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는 순간 울컥했었다. 장애는커녕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아온 나는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께 흔한 된장국 한 번 끓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한 얘기지만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정작 그 고마움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건강한 사람들이 누리는 이 봄의 풍경이 원통을 눈에 대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는 작가의 점점 오그라드는 눈에는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간절한 것이 아니겟는가.

 

"먼 훗날 ‘이 사람이 네 그림, 베니를 좋아한단다’라고 이야기를 들어도 그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전에 고마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요. 얼굴을 직접 보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운 제 마음을 간절히 전하고 싶어요." (p.185)

 

'아주 작더라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은 지면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작가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슬픔과 어둠으로부터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희망과 행복, 감사와 기쁨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지금 여기, 자신의 욕심으로 향하지 않고, 지금보다 먼 훗날 타인의 가슴에 머물고 있다.

 

"더 이상 제가 볼 수 없어도 제가 봤던 그 시선은 남겨두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제 시선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p.223)

 

작가는 우리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싶다고 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해 본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중국 작가 위지안은 그녀의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소중한 이웃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빚을 지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것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대비해 점자 공부와 지팡이 다루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작가는 ‘소리를 잃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요.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어요. 아직 제겐 많은 감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사람의 인생이란 게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고 긴 터널을 결국 지나오지 않았나. 작가도 언젠가는 많이 아파했던 어느 봄날의 오후에 있었던 얘기를 남의 일인 양 편하게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잊지 않고 지켜야 할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기를.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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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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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면 자주 들르는 도서관이 있다.

몇 년째 하루가 멀다 하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더니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낯이 익어 마주칠 때면 가볍게 인사를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도서관은 일종의 놀이터요, 스트레스 해소처인 셈이다. 엊그제 도서관에 들렀을 때 나는 2층 자료 열람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을 로비에서 만났다. 얼마 전에 출산휴가를 다녀온 까닭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은 또 다시 배가 불러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 물었더니 그게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란다. 그리고 출산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정에도 없는 임신이 되는 바람에 또다시 출산휴가를 써야 할 처지라며 멋적게 웃었다.

 

그분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가 문득 떠올랐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모두에게 친절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하는 그녀는 왠지 모르게 <다섯째 아이>의 등장인물 해리엇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88세의 늦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도리스 레싱은 그녀의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간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닥 친숙한 작가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번역된 작품도 많지 않지만 우리 정서와 사뭇 다른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그 중 그녀가 1988년에 선보인 <다섯째 아이>는 1960년대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보수적인 성격의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한다. 그들은 런던 외곽의 소도시에서 빅토리아풍의 다락이 딸린 삼층집을 계약한다. 젊은 두 남녀의 수입으로는 벅찬 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섯 명쯤 아이를 낳고 친척들로 떠들썩한 집안을 상상하며 행복해 한다.

 

루크, 헬렌, 제인, 폴 등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나고 매년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데이비드의 부모님은 이혼 후 각자 재혼을 하였지만 데이비드와 해리엇을 위해 금전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들 양육에 힘들어하는 해리엇을 돕기 위해 과부인 그녀의 친정 어머니 도리스는 그들의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들을 돌본다. 적어도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들이 꿈꾸었던 가정과 행복을 다 얻은 듯했다.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했을 때부터 해리엇은 아이의 극심한 태동 때문에 힘들어했다.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태동이 심했던 아이는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 그러나 미숙아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남다른 신체발육과 엄청난 식욕, 이질적인 소통 양식 때문에 가족들과 동화되지 못한다. 아이는 가족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아이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 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의 화합을 파괴하고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 벤. 결국 벤은 데이비드 어머니인 몰리의 권유로 요양원에 보내지고 해리엇도 이에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리엇은 벤을 포기할 수 없었고, 비가 오는 어느 날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벤이 있는 요양원을 찾아간다. 구속복을 입고 축 늘어져 있는 벤을 차마 요양원에 그대로 두고 올 수가 없어서 해리엇은 벤을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서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p.158)

 

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다른 가족들은 벤을 피해 달아난다. 루크와 헬렌은 기숙사가 딸린 학교로 진학하고, 제인은 외할머니인 도로시에게, 그리고 남편 데이비드는 일 때문에 귀가가 늦거나 종종 집을 비웠다. 어려서부터 충분한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던 폴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급기야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벤이 학교에 입학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벤은 불량배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이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그들이 장만했던 대저택은 벤이 데려온 패거리들의 아지트로 변한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저택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할 결심을 한다.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는 벤을 보며 해리엇의 기대는 절망으로 바뀐다. 그러나 벤의 장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히려 패거리들과 함께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그 갱단은 여전히 도둑질로 먹고 살 것이고 언젠가는 잡힐 것이다. 벤도 잡힐 것이다. 경찰에 잡히면 그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어서 싸우고 고함치고 발길질하고 괴성을 지를 것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약으로 마취시킬 것이며 머지않아 죽어가던 그를 그녀가 발견했을 때 모습처럼 수의를 입고 창백하게 축 늘어진 거대한 굼뱅이 같은 상태가 될 것이다."    (p.178)

 

행복했던 한 가정에 태어난 이질적인 존재 벤. 그것은 어쩌면 현대인의 마음 속에서 자라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집약체이자 가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가족의 품으로 뚝 떨어진 괴물과도 같은 이질적인 존재로부터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그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의 이기심, 그들과 다른 한 아이의 탄생만으로도 영원할 것 같았던 가족의 결속력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가족 공동체의 허술함, 모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인식과 차별의 딜레마. 그것은 어쩌면 갈수록 험악해지는 사회 환경과 그에 반하여 나날이 허약해지는 가족 공동체의 결속력에 대한 도리스 레싱의 경고가 아닐까 싶다.

 

나도 옛날 생각이 난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혹시 우리 아이가 기형은 아닐까? 출산 과정에서 잘못되는 건 아닐까?' 등등 끊이지 않는 의심과 공포가 엄습했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했고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는 까닭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들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해 별 생각없이 지냈었다. 도서관 여직원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에 대한 생각. 한참 전에 읽은 책이지만 리뷰를 통하여 내 생각을 한번쯤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묘하게도 나는 형제자매 중 다섯째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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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08 21:58   좋아요 0 | URL
모성애는 위대하지만, 아이를 데려온게 올바른 판단인건지.... 개인주의 가족에 대한 경고이겠지요.
그저 건강하게 태어난것 만으로도 행복했을때가 있었죠^^

꼼쥐 2015-04-10 18:47   좋아요 0 | URL
저도 아들이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 감사를 느꼈었는데 자라면서 다른 욕심이 하나둘 늘어나는 바람에 오히려 그때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죠.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쯤 이해할 것 같았어요.

낭만가롱 2015-04-08 23:19   좋아요 0 | URL
저한테 최고의 책들 중 하나예요^^ 지나가다 반가워서요 ㅋ

꼼쥐 2015-04-10 18:48   좋아요 0 | URL
아~~그러시군요.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문장 자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지만 그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