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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죽음'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마치 아스라한 절벽 끝에 선 듯 어지럼증이 느껴지곤 한다. 그럴라치면 사는 게 한낱 꿈인 듯 여겨지기도 하고, 그동안 두 주먹에 꽉 움켜쥔 채 사력을 다해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이 그저 덧없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세상 일에 몰두하다 보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만 눈에 띄곤 한다. 나는 금세 욕심 많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자몽을 연상케 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청각장애 하나로도 이제까지 충분히 버겁게 살았는데…. ‘소리가 없어도 예쁜 옷을 사 입는 즐거움, 독특한 소품을 모으는 재미,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소소한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카카오톡 메시지. 겨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됐는데 많은 행복들을 왜, 모두 앗아가는 거야? 내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눈을 왜 가져가려고 하는 거야? 왜 내 것만 자꾸 뺏어가는 거야?’ (p.66~p.67)

 

귀가 유난히 큰 토끼 캐릭터 '베니'를 그린 구경선 작가의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었다.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의 오후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 왠지 나는 구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만개한 벚꽃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도 억울할 텐데 이제 그녀는 눈도 보이지 않게 될 거란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 실명하게 될 수도 있다는 희귀성 질환,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에세이집 <그래도 괜찮은 하루>에서 작가는 30가지 버킷리스트를 쓰고 있다. 그 중 가장 뿌듯했던 건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는 순간 울컥했었다. 장애는커녕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아온 나는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께 흔한 된장국 한 번 끓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한 얘기지만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정작 그 고마움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건강한 사람들이 누리는 이 봄의 풍경이 원통을 눈에 대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는 작가의 점점 오그라드는 눈에는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간절한 것이 아니겟는가.

 

"먼 훗날 ‘이 사람이 네 그림, 베니를 좋아한단다’라고 이야기를 들어도 그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전에 고마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요. 얼굴을 직접 보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운 제 마음을 간절히 전하고 싶어요." (p.185)

 

'아주 작더라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은 지면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작가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슬픔과 어둠으로부터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희망과 행복, 감사와 기쁨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지금 여기, 자신의 욕심으로 향하지 않고, 지금보다 먼 훗날 타인의 가슴에 머물고 있다.

 

"더 이상 제가 볼 수 없어도 제가 봤던 그 시선은 남겨두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제 시선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p.223)

 

작가는 우리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싶다고 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해 본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중국 작가 위지안은 그녀의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소중한 이웃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빚을 지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것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대비해 점자 공부와 지팡이 다루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작가는 ‘소리를 잃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요.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어요. 아직 제겐 많은 감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사람의 인생이란 게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고 긴 터널을 결국 지나오지 않았나. 작가도 언젠가는 많이 아파했던 어느 봄날의 오후에 있었던 얘기를 남의 일인 양 편하게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잊지 않고 지켜야 할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기를.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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