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 성룡 자서전
성룡.주묵 지음, 허유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매일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사는 게 도무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맹숭맹숭하고 재미없어질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땐 정말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 일을 해도 그저 맹물을 마신 듯 밍밍하기만 하고 그보다 정도가 심할 때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팽개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라치면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돌아오곤 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다부진 결심이 재빠르게 내 몸을 재점령하는 건 아니지만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미세한 떨림을 동반한 채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스크린을 한두 시간 응시하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나의 습관은 꽤나 오래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시험이 끝난 다음날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홍콩 영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시험공부로 부족했던 잠 때문에 가물가물 눈은 감기는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성룡의 화려한 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크린 속의 성룡은 내 속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마련이었고, 다시 조명이 켜지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즈음이 되어서야 성룡의 엔지 장면을 겨우 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곤 했었다.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기부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성장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내게 무식한 졸부라고 손가락질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돈을 꼭 써야 하는 곳에 쓰는 법을 알고 있다." (p.83)

 

그렇게 인연이 된 성룡이었기에 최근에 나온 그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무려 623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이상 단체관람의 영화를 볼 수도 없었지만 그는 한동안 명절 연휴를 장식하는 인기 연예인인 양 각 방송사의 특선 영화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홍콩 영화의 쇠락과 함께 그의 인기도 시들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속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긍정의 메신저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영화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 저속하고 저급하고 잔인하고 부정적인 내용은 절대로 내 영화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성가반 형제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최고가 아니라 유일함을 추구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성룡의 영화다." (p.287)

 

성룡이 구술한 것을 공동 저자인 주묵이 받아 적어 정리한 이 책은 슈퍼스타 성룡의 면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성룡에 대해 진솔하게 쓰고 있다. 홍콩 빅토리아피크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의 주방장인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룡은 열네댓 살 때 집을 떠나 희극학원에서 10년 동안의 혹독한 무술수업을 받았고, 학교를 떠난 후에는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단역 무술배우, 프로 스턴트맨, 무술감독, 남자 주인공,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어린 나이에 이미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좌절이나 실패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따거는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고 차츰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 수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그를 응원하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준 것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그의 정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p.307)

 

성룡도 어느덧 그의 나이 62세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그의 팬들도 앞으로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난이도 액션신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오직 영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한 남자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나는 그의 화려한 인생사를 그의 자서전을 통하여 더 많이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과오와 세간의 비난,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들의 대마초 사건, 홍콩 영화 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 등 인생을 살면서 지우고 싶은 과거를 그는 이 책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세상은 넓다고 말하면 또 그리 넓지 않고, 좁다고 말하면 또 그리 좁지 않다. 사람의 인연이란 늘 기묘한 것이다. 이 책은 자료 수집에서 출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나의 인생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 많은 이들과 나의 과거를 공유하기에 적절한 때인 듯하다. 이 책에 실린 잡다한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더 진실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 서문, p.24)

 

영화배우로서 유명해지는 것은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팬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 깜짝 성공을 거두고 소리도 없이 잊혀지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더욱 절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가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그들이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에 맡겨질 수 없는 인간정신의 발현이다. '우리는 왜냐고 묻지 않는다. 죽기 살기로 할 뿐이다.'는 그의 신념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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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제56주년 4.19혁명 기념일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그가 속했던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자행된 독재정치가 주된 원인이었겠지만 1960년에 치러진 3.15 부정선거는 4.19혁명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반세기도 더 지난 일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저로서는 특별한 감흥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젊은 사람들 또한 다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2016년의 제56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듯합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던 4.19혁명에도 불구하고 1961년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세력에 의한 5.16군사쿠데타는 우리나라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박정희 이후의 대한민국 근대사는 '지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시기였습니다. 그것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북한 사람들에게 세뇌시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뇌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좀체 지울 수 없는 것이지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그의 망령도 함께 사라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심어 놓은 '지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는 선거때마다 유령처럼 떠돌며 박정희 아바타를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 이후 야당 대통령이 두 번이나 나왔지만 그때도 여전히 박정희의 망령은 건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어쩌면 박정희 망령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6년 4월 13일 박정희 망령과도 같은 '지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금이 가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2의 4.19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혁명에 성공했던 영국의 명예혁명에 버금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현 정부를 끝으로 우리들 곁에서 맴돌던 박정희의 망령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국가의 발전은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좌, 우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보수의 아이콘이 덧씌운 망령에 의해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좀비처럼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건전한 보수세력을 키워 진정한 좌,우의 균형을 맞출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박정희 망령의 사라짐과 함께 보수세력의 몰락도 함께 진행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나라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세력의 성장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나라의 번영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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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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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른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반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은 이미 물에 풀어진 해면처럼 흐물흐물 기운을 잃었고 자판기에서 커피와 크림과 물이 일정한 비율로 혼합되어 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시간이 오래 지나 닝닝하게 식은 탓인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예전부터 알던 익숙한 맛이 아니라 설탕과 크림을 탄 느끼한 물에 중간중간 커피의 쓴맛을 풀어놓은 듯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흐린 오후의 풍경에 묻혀 기억도 되지 않을 생각들에 골똘하였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은 느낌은 방금 전에 내가 마신 밀크커피처럼 닝닝하거나 밍밍했다. 박민규는 대개 세모나 네모처럼 비교적 단순한 구조 속에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들을 밀어넣고는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로 채색을 하여 소설이거나 소설과 같은 어떤 것을 뚝딱(까지는 아니겠지만)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기보다는 피카소의 베로니카에 가까운 것으로서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한, 소설이나 그림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암호와 같은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민규는 오히려 단편소설을 쓸 때 더 과감해지곤 하는데 장편소설에서의 그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인지 자신이 가진 빵조각을 조금씩 떼어 길 위에 뿌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그의 발걸음 또한 아주 조심스럽구나, 느껴졌다. 소설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녀의 어설픈 사랑에서 시작하여 세 인물을 축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영화배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함께 버림을 받은 '나'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그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 저항하고자 스스로 마음을 닫은 채 생활하는 '요한'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세 사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세상을 망치는 게 독재자들인 줄 알아? 아냐, 바로 저 넘쳐나는 바보들이야. 독재를 하건 누굴 죽였건... 여당이 돼야 이곳이 삽니다, 제가 나서야 집값이 오릅니다 하면 찍어주는 바보들 때문이지." (p.155)

 

대학을 포기한 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엔 소설을 쓰는 '나'와 백화점 회장의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 '요한'은 지하 주차장 4층에서 함께 일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나'와 '요한'을 형제처럼 묶는다. '그녀'가 '나'의 눈에 띄었던 것도 덩치만 크고 못생겼던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인 듯했다. '요한'의 주선으로 '나'와 '그녀'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켄터키 치킨집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곤 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각자에게 있었던 서로 다른 어둠에 대한 납득이며 이해였다.

 

이듬해 봄에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된다. 입학식이며, 수강신청이며 잡다한 일로 바빴던 '나'는 '요한'과 '그녀'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이 자살 기도를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그녀마저 연락도 없이 백화점을 떠난다. 그리고 대학을 휴학한 '나'는 그녀로부터 긴 편지를 받는다. '나'는 다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해 가을에 그곳에서 일하는 '군만두'와 가까워진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 무렵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끝끝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짧은 시기였지만 그 순간의 빛을 기억하면서, 나는 기나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왔다는 생각이다." (p.328)

 

그리고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나'는 백화점 주임의 서랍에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주소를 생각해냈고, '군만두'를 통하여 그 주소를 손에 쥔다. '나'는 그 주소를 들고 '그녀'를 찾아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정확히 스무 살이 되는 '나'의 생일에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났다.

 

"내가 간직한 추억이란 이름의 상자는 언제나 어김없이 그날 밤의 헤어짐을 끝으로 굳게 뚜껑이 닫힌다. 더는 열 수 없는 상자가 되는 것이고, 열어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준 라벨의 LP를... 나는 그날 밤 잃어버렸다. 그녀를 잃은 것도, 하물며 나 자신의 삶을 잃은 것도 그날 밤의 일이었다." (p.347)

 

어딘가 모르게 수척해진 봄볕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인근 공원을 잠깐 걸었고, 미세먼지가 양념처럼 섞인 봄햇살 몇 알갱이를 옷에 묻힌 채 돌아왔다. 뭐랄까, 툭툭 털어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추억이 양쪽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어제 밤 늦게까지 읽었던 피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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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오후에 들어 한바탕 비를 뿌리더니 바람에 실려 오는 습습한 기운만 남았을 뿐 비는 오지 않는다. 4월 16일! 그 특별한 하루는 흐린 하늘처럼 어둡기만 하다. 우리네 삶의 모습도 저 하늘의 일기처럼 대부분 맑고 이따금 흐리거나 눈,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와는 반대로 대부분 흐리거나 눈,비가 오고 이따금 태풍이 몰아칠 뿐 그 중 맑은 날은 손으로 꼽는 게 우리가 사는 풍경이라는 걸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나 알게 되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세월호 사고!

생때같은 자식들을 저 바다에 묻은 부모들이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어느 하루인들 맑았던 날 있었으랴. 그 황폐한 가슴에 바람 잦아들던 날 있을 수 있었으랴. 피붙이를 잃은 것도 아닌, 그저 뉴스로만 소식을 전해들었던 나도 문득문득 가슴이 메이고 머릿속이 횅댕그렁해지는데...

 

오후에 '1000원 숍'으로 잘 알려진 한 잡화점을 들렀었다. 노란 리본에 '잊지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플래카드 한 장이 입구의 유리창에 걸려 있었다. 오만한 국가는 스스로 탄생되는 게 아니라 무관심한 국민이 그런 국가를 만들 뿐이다. 단돈 2만 원을 받고 세월호 반대 집회에 나섰던 사람들이 양심을 저버린 비열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오히려 국가의 비호 속에 불법행위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의 무관심이 키워낸 괴물인 셈이다. 무관심했던 독일의 대다수 국민들이 히틀러의 잔당들을 키웠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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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4-1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국정원과의 관계 반드시 규명해야할 과제인 동시에 다시금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해 국민들을 우롱하는 일부 언론인들과 기득권 세력에 분노가 치밀 뿐입니다. 잊지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꼼쥐 2016-04-19 15:14   좋아요 0 | URL
세월호의 진실이 특조위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게 거의 없엇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은폐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인 듯합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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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어야만 욕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할 일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주심이 관할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온갖 반칙이나 눈속임,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거친 몸싸움 등 모든 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서처럼 부당함을 따질 수 있는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규정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옆에서 끼어든 다른 차량에 의해 내 차가 박살나고 그 여파로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건 부당하지 않느냐 한마디 따져묻거나 내 인생에 너무 심한 태클을 걸어온 게 아니냐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나를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구속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p.130)

 

제프 다이어의 산문집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알랭 드 보통도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제프 다이어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독서라는 게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는 행위와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의 기호라는 것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까닭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애호하는 또 다른 작가를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귀결에 이르곤 한다.

 

책의 제목만 보자면 무슨 요가 책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따금 겪는 일이지만 제목만 보아서는 안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라든가 폴 퀸네트의 수필<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등은 좋은 예이다.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로마를 기점으로 리비아, 미국 뉴올리언스, 태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도네시아 발리, 캄보디아,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어지는 여행기이지만 장소의 이동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로마와 리비아에서는 주로 공간적 폐허를,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작가의 심리적 폐허를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필력에 담아 재미있게, 마치 소설처럼 쓰고 있다.

 

"잠깐 빛나는 행복의 표면 아래에는 절망이라는 차가운 지형이(아주 밀도가 높은) 깔려 있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며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저런 일에 맞서며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알 수도 없는 무언가('자아'였을까?)의 중압감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았다. 나의 일부분은 한때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던 희망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끝을 맞이한, 버려지고 슬픈 노인들이 부러웠다. 언제라도 나와 그 노인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라면 또 행동에 옮기지는 못햇을 것이다." (p.263)

 

이 책은 여행 에세이로 분류되는 게 보통이지만 여타의 다른 여행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여행했던 장소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고 다만 그곳에서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느꼈던 내면의 세계, 폐허가 된, 폐허로부터 위안을 받는 그 세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따금 니이체나 보르헤스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찾았던 로마나 렙티스 마그나에서의 고대의 세계나 현대의 도시 디트로이트나 폭력에 짓밟힌 캄보디아나 그 어느 곳이든 작가에게는 다만 자신을 공허한 상태로 이끌 수 있는 외부적 환경으로서의  장소일 뿐 여행 목적지로서의 장소가 중요했던 건 아닌 듯 보였다.

 

대한민국은 요즘 제프 다이어가 세계 각국을 돌며 느꼈음직한 내면적 폐허를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절대 질 수 없었던 선거 구도에서 그야말로 참패를 한 여당의 피폐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그것을 보는 국민들 또한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눈밖에 난 사람이 탈당을 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도 하고, 무자비한 공천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여당의 패배를 자초했던 사람들의 뒤늦은 후회도 있었고, 셀프 공천을 하는 걸로도 부족해 비례대표 순번을 2번으로 정했던 야당의 대표는 총선 결과가 마치 자신의 덕인 양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TV에 등장하는가 하면, 신생 정당을 표방하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제2야당이 호남 일색의 지역주의에 기대어 당선된 걸 무슨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성취인 양 홍보하는 등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정치 혐오증을 심어주고 있다. 제프 다이어의 폐허가 내 마음의 폐허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폐허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래의 폐허'라는 제목으로 멋진 수필 한 편씩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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