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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 성룡 자서전
성룡.주묵 지음, 허유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매일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사는 게 도무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맹숭맹숭하고 재미없어질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땐 정말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 일을
해도 그저 맹물을 마신 듯 밍밍하기만 하고 그보다 정도가 심할 때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팽개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라치면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돌아오곤 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다부진 결심이 재빠르게 내
몸을 재점령하는 건
아니지만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미세한 떨림을 동반한 채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스크린을 한두 시간 응시하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나의 습관은 꽤나 오래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시험이 끝난 다음날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홍콩 영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시험공부로 부족했던 잠 때문에
가물가물 눈은 감기는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성룡의 화려한 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크린 속의 성룡은 내 꿈 속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마련이었고, 다시 조명이 켜지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즈음이 되어서야 성룡의 엔지 장면을 겨우
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곤
했었다.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기부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성장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내게 무식한 졸부라고 손가락질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돈을 꼭 써야 하는 곳에 쓰는 법을 알고
있다."
(p.83)
그렇게 인연이 된 성룡이었기에 최근에
나온 그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무려 623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이상 단체관람의
영화를 볼 수도 없었지만 그는 한동안 명절 연휴를 장식하는 인기 연예인인 양 각 방송사의 특선 영화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홍콩 영화의 쇠락과 함께 그의 인기도 시들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속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긍정의 메신저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영화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 저속하고 저급하고 잔인하고 부정적인 내용은 절대로 내 영화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성가반 형제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최고가 아니라 유일함을 추구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성룡의 영화다." (p.287)
성룡이 구술한 것을 공동 저자인 주묵이
받아 적어 정리한 이 책은 슈퍼스타 성룡의 면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성룡에 대해 진솔하게 쓰고 있다. 홍콩 빅토리아피크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의
주방장인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룡은 열네댓 살 때 집을 떠나 희극학원에서 10년 동안의 혹독한 무술수업을 받았고, 학교를 떠난 후에는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단역 무술배우, 프로 스턴트맨,
무술감독, 남자 주인공,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어린 나이에 이미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좌절이나 실패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따거는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고 차츰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 수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그를 응원하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준 것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그의 정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p.307)
성룡도 어느덧 그의 나이 62세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그의 팬들도 앞으로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난이도 액션신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오직 영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한 남자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나는 그의 화려한 인생사를 그의 자서전을 통하여 더 많이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과오와 세간의 비난,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들의 대마초 사건, 홍콩 영화 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 등 인생을 살면서 지우고 싶은 과거를 그는 이 책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세상은 넓다고 말하면 또 그리 넓지
않고, 좁다고 말하면 또 그리 좁지 않다. 사람의 인연이란 늘 기묘한 것이다. 이 책은 자료 수집에서 출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나의 인생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 많은 이들과 나의 과거를 공유하기에 적절한 때인 듯하다. 이 책에 실린 잡다한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더 진실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 서문, p.24)
영화배우로서 유명해지는 것은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팬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 깜짝 성공을 거두고 소리도 없이 잊혀지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더욱 절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가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그들이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에 맡겨질 수 없는 인간정신의 발현이다. '우리는 왜냐고 묻지 않는다. 죽기 살기로 할 뿐이다.'는 그의 신념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