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어야만 욕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할 일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주심이 관할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온갖 반칙이나 눈속임,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거친 몸싸움 등 모든 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서처럼 부당함을 따질 수 있는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규정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옆에서 끼어든 다른 차량에 의해 내 차가 박살나고 그 여파로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건 부당하지 않느냐 한마디 따져묻거나 내 인생에 너무 심한 태클을 걸어온 게 아니냐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나를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구속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p.130)

 

제프 다이어의 산문집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알랭 드 보통도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제프 다이어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독서라는 게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는 행위와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의 기호라는 것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까닭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애호하는 또 다른 작가를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귀결에 이르곤 한다.

 

책의 제목만 보자면 무슨 요가 책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따금 겪는 일이지만 제목만 보아서는 안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라든가 폴 퀸네트의 수필<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등은 좋은 예이다.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로마를 기점으로 리비아, 미국 뉴올리언스, 태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도네시아 발리, 캄보디아,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어지는 여행기이지만 장소의 이동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로마와 리비아에서는 주로 공간적 폐허를,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작가의 심리적 폐허를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필력에 담아 재미있게, 마치 소설처럼 쓰고 있다.

 

"잠깐 빛나는 행복의 표면 아래에는 절망이라는 차가운 지형이(아주 밀도가 높은) 깔려 있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며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저런 일에 맞서며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알 수도 없는 무언가('자아'였을까?)의 중압감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았다. 나의 일부분은 한때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던 희망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끝을 맞이한, 버려지고 슬픈 노인들이 부러웠다. 언제라도 나와 그 노인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라면 또 행동에 옮기지는 못햇을 것이다." (p.263)

 

이 책은 여행 에세이로 분류되는 게 보통이지만 여타의 다른 여행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여행했던 장소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고 다만 그곳에서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느꼈던 내면의 세계, 폐허가 된, 폐허로부터 위안을 받는 그 세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따금 니이체나 보르헤스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찾았던 로마나 렙티스 마그나에서의 고대의 세계나 현대의 도시 디트로이트나 폭력에 짓밟힌 캄보디아나 그 어느 곳이든 작가에게는 다만 자신을 공허한 상태로 이끌 수 있는 외부적 환경으로서의  장소일 뿐 여행 목적지로서의 장소가 중요했던 건 아닌 듯 보였다.

 

대한민국은 요즘 제프 다이어가 세계 각국을 돌며 느꼈음직한 내면적 폐허를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절대 질 수 없었던 선거 구도에서 그야말로 참패를 한 여당의 피폐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그것을 보는 국민들 또한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눈밖에 난 사람이 탈당을 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도 하고, 무자비한 공천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여당의 패배를 자초했던 사람들의 뒤늦은 후회도 있었고, 셀프 공천을 하는 걸로도 부족해 비례대표 순번을 2번으로 정했던 야당의 대표는 총선 결과가 마치 자신의 덕인 양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TV에 등장하는가 하면, 신생 정당을 표방하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제2야당이 호남 일색의 지역주의에 기대어 당선된 걸 무슨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성취인 양 홍보하는 등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정치 혐오증을 심어주고 있다. 제프 다이어의 폐허가 내 마음의 폐허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폐허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래의 폐허'라는 제목으로 멋진 수필 한 편씩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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