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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오른손에 들었던 커피잔을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반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은 이미 물에 풀어진 해면처럼 흐물흐물 기운을 잃었고 자판기에서 커피와 크림과 물이 일정한
비율로 혼합되어 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시간이 오래 지나 닝닝하게 식은 탓인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예전부터 알던 익숙한 맛이 아니라 설탕과 크림을
탄 느끼한 물에 중간중간 커피의 쓴맛을 풀어놓은 듯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흐린 오후의 풍경에 묻혀 기억도 되지 않을 생각들에
골똘하였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은
느낌은 방금 전에 내가 마신 밀크커피처럼 닝닝하거나 밍밍했다. 박민규는 대개 세모나 네모처럼 비교적 단순한 구조 속에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들을 밀어넣고는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로 채색을 하여 소설이거나 소설과 같은 어떤 것을 뚝딱(까지는 아니겠지만)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기보다는 피카소의 베로니카에 가까운 것으로서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한, 소설이나 그림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암호와 같은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민규는 오히려 단편소설을 쓸 때 더 과감해지곤 하는데 장편소설에서의 그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인지 자신이 가진 빵조각을 조금씩 떼어 길 위에
뿌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그의 발걸음 또한 아주 조심스럽구나, 느껴졌다. 소설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녀의 어설픈
사랑에서 시작하여 세 인물을 축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영화배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함께 버림을 받은 '나'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그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 저항하고자 스스로 마음을 닫은 채 생활하는 '요한'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세 사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세상을 망치는 게
독재자들인 줄 알아? 아냐, 바로 저 넘쳐나는 바보들이야. 독재를 하건 누굴 죽였건... 여당이 돼야 이곳이 삽니다, 제가 나서야 집값이
오릅니다 하면 찍어주는 바보들 때문이지." (p.155)
대학을 포기한 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엔 소설을 쓰는 '나'와 백화점 회장의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 '요한'은 지하 주차장 4층에서 함께 일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나'와 '요한'을 형제처럼 묶는다. '그녀'가 '나'의 눈에 띄었던 것도 덩치만 크고 못생겼던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인 듯했다. '요한'의 주선으로 '나'와 '그녀'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켄터키
치킨집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곤 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각자에게 있었던
서로 다른 어둠에 대한 납득이며 이해였다.
이듬해 봄에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된다. 입학식이며, 수강신청이며 잡다한 일로 바빴던 '나'는 '요한'과 '그녀'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이 자살
기도를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그녀마저 연락도 없이 백화점을 떠난다. 그리고 대학을 휴학한 '나'는 그녀로부터 긴 편지를 받는다. '나'는 다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해 가을에 그곳에서 일하는 '군만두'와 가까워진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 무렵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끝끝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짧은 시기였지만 그 순간의 빛을 기억하면서, 나는 기나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왔다는 생각이다." (p.328)
그리고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나'는 백화점 주임의 서랍에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주소를 생각해냈고, '군만두'를 통하여 그 주소를
손에 쥔다. '나'는 그 주소를 들고 '그녀'를 찾아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정확히 스무 살이 되는 '나'의 생일에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났다.
"내가 간직한 추억이란 이름의 상자는 언제나 어김없이 그날 밤의 헤어짐을 끝으로 굳게 뚜껑이 닫힌다.
더는 열 수 없는 상자가 되는 것이고, 열어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준 라벨의 LP를... 나는 그날 밤
잃어버렸다. 그녀를 잃은 것도, 하물며 나 자신의 삶을 잃은 것도 그날 밤의 일이었다." (p.347)
어딘가 모르게 수척해진 봄볕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인근 공원을 잠깐 걸었고, 미세먼지가 양념처럼 섞인 봄햇살 몇 알갱이를 옷에 묻힌
채 돌아왔다. 뭐랄까, 툭툭 털어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추억이 양쪽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어제 밤 늦게까지 읽었던 피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