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나는 친노(親盧)입니다. 어쩌면 친노(親盧)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전 생애에 걸쳐 특권층이 될 가능성은 아주 없거나, 설령 있다 하여도 매우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특권층을 대변하는, 특권층만을 위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지지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나 7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후 나는 더이상 친노(親盧)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대통령님과 살아 생전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니 어쩌면 나는 애시당초 친노(親盧)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그날부터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사노(思盧)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 되었던 듯합니다.

 

대통령님의 고향 봉하마을에는 오늘 수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간 듯합니다. 지난 주말 휴일부터 이미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었지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또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당신의 참뜻을 부인하거나 당신을 그리워하는 많은 국민들을 '친노 패권'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늘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추모객의 발길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늘어만 간다는 게 그 사실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이미 자신을 친노(親盧)가 아닌 사노(思盧)로 규정하였겠지요. 나처럼 말입니다.

 

하늘도 서러운지 내일은 비가 내린답니다.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도 덩달아 슬퍼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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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5-2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마음이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청문회스타에서 삼당합당을 반대하던 인간 노무현이 그리워지는 하루네요

꼼쥐 2016-05-24 16:37   좋아요 0 | URL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세월은 참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죠? 벌써 7년이라니...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말입니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선물용 특별판)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5월은 역시 장미의 계절이다. 아파트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봄꽃이 막 시작될 무렵의 산수유나 벚꽃에는 무한애정을 보내다가도 화려하게 치장한 봄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면 왠지 모르게 시큰둥해지고 여름을 향해 치닫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도 길가에 핀 조팝나무의 알싸한 향기도 도통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눈과 코가 호사를 누리고는 있지만 정작 배가 불러서인지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 아침에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을 했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싶어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시선을 옮겼더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조팝나무꽃이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꽃의 향기에 한참이나 취해 있었음에도 그 향기에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알싸하다'는 표현은 식상하고 '익숙한 향기'라고 하면 조팝나무꽃 향기를 처음 맡아보는 사람에게는 막막하고...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쓴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는 제목만큼이나 예쁜 책이다. 조팝나무의 꽃향기를 적당한 언어로 표현할 길 없어 막막하기만 했던 나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 또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특별한 낱말들을 가려 뽑고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함께 배치한 귀여운 책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특별한 감정,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벅차오르는 느낌을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는 세계 각국의 언어에서 52개의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낱말을 선별하여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토대로 그 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낱말을 그림과 함께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 화제가 되어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루시드폴의 번역이 이채롭다. 이 책에 우리나라 말은 '눈치'가 실렸다.

 

"때때로 상대방의 겉모습만으로는 그가 불안한지 화가 났는지 다정한지 슬퍼하는지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오래 겪다 보면 미묘한 차이까지도 알아챌 수 있겠지요.

 

책에는 '눈치'(NUNCHI)의 의미에 대해 파도의 골과 마루인 듯한 그림 위에 '눈에 뜨지 않게 다른 이의 기분을 잘 알아채는 미묘한 기술'이라고 쓰고 있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 웨일스어, 그리스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 툴루어, 이디시어, 페르시아어, 프랑스어, 이누이트어, 독일어, 산스크리트어, 일본어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 특별한 낱말을 가려 뽑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어 낱말이 네 개나 실렸다는 점이다. '츤도쿠'(TSUNDOKU)-사다 놓은 책을 펼치지도 않은 채 내버려 두기, '와비-사비'(WABI-SABI)-생사의 윤회를 받아들이고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 '보케토'(BOKETO)-무념무상으로 먼 곳을 바라보기,'코모레비'(KOMOREBI)-나뭇잎 사이로 스며 내리는 햇살, 이 그것인데 책을 읽다가 문득 '보케토'가 우리나라의 '멍 때리기'와 같은 뜻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낱말 중에는 야간(Yaghan)어인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가 있었다. 칠레 남부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야간족 원주민이 쓰는 말이다. 책에서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같은 것을 원하고 생각하는(그러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 인정과 이해'라고 쓰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에게 꼭 필요하지만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이 먼저 자원하여 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인 것이다. 게임이론 중 '자원봉사자의 딜레마'와 관련된 말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기네스북에는 특이하게도 '가장 간단명료한(succint)단어'로 이 단어가 등재돼 있다.

 

클레멘스 베르거라는 오스트리아 극작가는 이 단어를 두고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했다는데 어떻게 '간단명료한 단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을 한 낱말로 요약했으니 간단명료한 단어가 맞긴 맞는 듯하다. 요즘의 새누리당 사정이 '마밀라피나타파이'적 상황이 아닐까 싶다.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들을 다시 복귀시키자니 꺼림칙하고 안 시키자니 당장의 국회 사정이 녹록치 않고...

 

연초에 이사를 하고 내내 미뤄두었던 책을 며칠 전에 정리하다 보니 읽지 않고 내버려 둔 책이 어찌나 많던지... 이 책에 실린 일본어 '츤도쿠'가 쌓여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책을 산다.

 

"단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심각하게 쌓여 있는 책더미일 수도 있는 '츤도쿠'에 대해서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다, 읽지도 않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당신. 그런 당신을 사람들은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책 속 주인공들에게 한 번쯤은 햇빛 구경이라도 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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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TV와 신문을 가리지 않고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의 쾌거'라는 둥 '[문화 강국 코리아] 대중문화 넘어 문학-예술로 확장...세계가 빠져든 新한류 바람' 등 얼핏 보기에도 과하다 싶은 기사들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만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태양의 후예'만 하더라도 '드라마 한류', '한국 드라마 신드롬'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을 연일 쏟아내더니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출연 배우에게 '진짜 청년 애국자'라며 칭찬을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칸 영화제 출품작은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온 게 없는데도 마치 '황금종려상'이라도 받은 양 기사를 쏟아냅니다.

 

과연 이것이 합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한국인의 쾌거에 대해 같은 한국인으로서 기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좋은 결과가 단지 한 개인의 또는 한 단체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일회성의 성과가 아닌, 기사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단단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이제야 빛을 본, 그래서 전국민이 기뻐해야 할 국가적 성과물이라고 해도 좋은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강 작가의 수상은 누가 뭐라 해도 열악한 문화적 토양에서 일궈낸 개인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평균 책 구입비 1만 6천 2백 원인 나라에서 꾸준히 책을 쓰고 출간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지방재정에서 가장 뒷전에 놓인 도서구입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야말로 형편에 따라 늘고 줄어들 수 있는 가장 만만한 항목이지요.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지난 16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직감하고 있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오롯이 시인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적은 소수에 국한될 것입니다.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시집이든 소설책이든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노벨문학상을 욕심내고 콩쿠르상을 탐낸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돌연변이일 뿐 쾌거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나 일부 연예인의 인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건전한 문화적 바탕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대중 문화인들의 성과가 아니라 특출난 개인의 성과, 특별히 잘 쓰인 작품에 의해 탄생된 일시적인 인기를 두고 일희일비 하는 짓을 우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며, 그런 기사에 현혹되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문화 선진국의 지위를 얻은 양 몇 날 며칠 과장되게 떠드는 짓을 우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요? 우리의 문화적 민낯은 유명 시인 하나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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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6-05-19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이라는 작가는 예전부터 있었도 좋은 소설을 썼는데 상수상하잠 이제야 관심이 집중되고
책이 팔리는걸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쓸씁합니다
한국에서 추리 sf 소설은 인정받지 못하고 순문학이나 인전하는 문단의 모습 진정한 작가라는
명제에 대해 묻고 싶네요 이대로 한강이라는 작가가 계속해서 좋은 책을 발매해주었으면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싫네요

꼼쥐 2016-05-22 14:5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한국 문단의 잘못된 행태나 독자들의 무관심도 큰 문제이지요. 술값을 지불하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책을 사는 데는 왜 그렇게 인색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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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도무지 주인 몰래 입에 넣은 포도알처럼 삼키지도 그렇다고 내뱉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면 흐르는 시간에 무작정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흘러흘러 미래의 어떤 순간에 도래하게 되면 지금으로서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마치 시간이라는 판관 앞에서 처분만 기다리는 죄인이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홀연히 찾아 드는 그런 느낌은 때론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낯설거나 생경하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하기만 하다. 예컨대 내일이 시험인데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고 걱정으로 입안은 바싹바싹 타들어가지만 공부는 도통 손에 잡히지 않은 채 한심스레 붓방아만 찧게 되고 급기야 졸음이 밀려올라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시간의 처분에 맡긴 채 잠을 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살찐 게으름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새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p.162)

 

김승옥의 단편집 <무진기행>을 읽었던 어제를 돌이켜 보면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흘렀다는 느낌이 든다. 안개가 자욱한 무진의 거리를 헤매는 양 종일 흐리기만 했던 의식과 어둑신하게 내려 앉은 우울이 적당한 속도로 흘러 가는 시간의 경과를 까맣게 잊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무진기행>을 처음 읽었던 학창시절의 어느 날 이후, 성인이라고 불리워지기 시작했던 그 시간 이후 나는 수차례 반복하여 이 책을 읽어왔다. 떨어져나간 양장본의 겉표지를 투명 테이프로 수선하였던 것도 여러 번, 그 반복의 매듭에는 항상 갈수록 희미해지는 과거에 대한 확신이 세월의 대열에 묶여 있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p.191)

 

나달나달 헤질대로 헤져 이제는 책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권위마저 상실한 듯한 이 책은 내 과거로 슬몃 스며든 듯 자연스러웠다. 개인의 과거라는 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시간의 순서대로 잘 정리되지도 않고 목차마저 희미해지게 마련이어서 찾고 싶은 과거를 그때마다 바로바로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때로는 다른 사람의 과거가 내 과거인 양 뒤섞이기도 하고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의 일부가 내것인 양 훅 끼어들기도 한다. 하여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기억은 믿지 못하는 어떤 것이 되고 만다.

 

김승옥 소설전집 1권에 속하는 이 책에는 표제작인 <무진기행>을 비롯하여 총1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쩌면 작가 김승옥의 과거가 될 수도 있는 이 책이 아무런 이물감도 없이 내 과거로 슬몃 끼어든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작가의 글이 2016년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거나 핵심과 의표를 찌르는 작가의 글솜씨가 그만큼 훌륭했다고 나 나름의 평을 이유로 들어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한다. 작가의 글이 내 과거에 슬몃 포개어진 것도 다 그런 이유라고 말이다.

 

"문학은 삶의 불량스러움과 냉소를 연민으로 감싸고 돌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무진의 안개에 홀린 사람이 어찌 나뿐일까. 오랜 세월을 다른 최면에 드신 듯이 김승옥 선생이 소설로 돌아오지 않고 계셔도 과거는 우뚝하다. 힘센 시간이 수많은 소설들을 소멸시키며 흘러갔으나, 선생의 소설들은 가슴에 아로새긴 청춘의 어느 하루처럼 나날이 더 빛나고 있다." ('내가 읽은 김승옥-신경숙' 중에서)

 

누군가의 이야기가 때로는 덧붙여지고 잘려나가기도 하면서 유구한 시간이 신화와 전설을 만드는 동안 수많은 생명이 나고 또 졌을 것이다. 오월도 하순을 향해 가는 지금, 지난 번 내린 비에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떨어지고 아파트 화단에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계절에 맞춰 꽃이 피고 지듯 누군가의 이야기가 또 끝없이 소설로 되살아나고 사라져 갈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이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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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역사라는 것도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끊임없이 늘 진보만 거듭하는 게 아니고 붙박인 듯 한자리에서 맴맴 맴을 돌거나 때로는 과거를 향해 무작정 뒷걸음질 치기도 하는가 봅니다. 큰 단위로 살펴 보면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테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제36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사람들은 그 시절의 참상을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요. 태어나기도 전의 아득한 과거로만 여겨질 테니까요. 그 시절을 살아온 저로서도 당시에는 광주의 실상을 뉴스에서조차 접하지 못했었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알게 된 것도 한참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영상으로 처음 보았던 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충격과 죄책감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에 겨웠습니다. 어쩌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울분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유행가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5.18 기념행사의 지정곡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지요. 한 곡조의 노래가 그 시절을 다시 사는 듯 저릿하게 느껴지게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그 역사를 이어받은 죄 많고 반성할 일 많은 정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도, 기념곡 지정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국론 분열을 이유로. 단지 하나의 노래일 뿐인데... 올해도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듯합니다. 민주화 운동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노래를 따라 부르기는커녕 듣는 것조차 싫었던 게지요.

 

과거로 퇴행하는 답답한 역사의 길목에 한 줄기 바람처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년이 온다>를 더 좋아하지만 작가는 이번에 <채식주의자>로 수상을 했나 봅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싫으면 <소년이 온다>를 기념 서적으로 지정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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