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역사라는 것도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끊임없이 늘 진보만 거듭하는 게 아니고 붙박인 듯 한자리에서 맴맴 맴을 돌거나
때로는 과거를 향해 무작정 뒷걸음질 치기도 하는가 봅니다. 큰 단위로 살펴 보면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테지만 말입니다.
내일은 제36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사람들은 그 시절의 참상을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요.
태어나기도 전의 아득한 과거로만 여겨질 테니까요. 그 시절을 살아온 저로서도 당시에는 광주의 실상을 뉴스에서조차 접하지 못했었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알게 된 것도 한참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영상으로 처음 보았던 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충격과 죄책감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에 겨웠습니다. 어쩌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울분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유행가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5.18 기념행사의 지정곡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지요. 한 곡조의 노래가 그 시절을 다시 사는 듯 저릿하게 느껴지게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그 역사를
이어받은 죄 많고 반성할 일 많은 정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도, 기념곡 지정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국론 분열을 이유로. 단지 하나의
노래일 뿐인데... 올해도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듯합니다. 민주화 운동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노래를 따라
부르기는커녕 듣는 것조차 싫었던 게지요.
과거로 퇴행하는 답답한 역사의 길목에 한 줄기 바람처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년이 온다>를
더 좋아하지만 작가는 이번에 <채식주의자>로 수상을 했나 봅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싫으면 <소년이 온다>를 기념 서적으로 지정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