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한 줄 시구가 가슴을 파고드는 날이 있다. 정말이지 생생하게 날 선 시의 이미지가 가슴 깊이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왠지 쓰디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하고, 늦은 밤 실례를 무릅쓰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긴 넋두리를 풀어내고 싶기도 하다. 마치 오래된 슬픔을 새로운 슬픔으로 대체하면서 옛 슬픔을 아주 까맣게 지워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매기 스미스의 시 '좋은 뼈대(Good Bones)'의 시구처럼 생경하거나 전혀 새롭지 않은 시구가 울컥울컥 눈물을 지어내는,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인생은 짧다, 그리고 흘러간 내 삶은 더 짧아졌다

수없이 달콤하고, 어리석은 짓들로 인해,

달콤하고도 어리석은 수많은 행동들

내 아이들에겐 비밀로 할 것이다. 세상은 적어도

오십 퍼센트는 끔찍한 곳, 그조차도 긍정적으로

바라본 평가인 것을, 비록 내 아이들에겐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P.21)

-----------하 략--------------------------------------------

 

영국 출신의 에세이스트 로저 하우스덴은 그의 저서 <힘들 때 시>에서 그가 뽑은 10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시에 내재된 인생의 아픔과 불안, 슬픔과 고뇌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결코 달갑지 않은 그런 감정들을 작가 자신의 설명에 곁들여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시에 내재된 무한한 치유력과 생명력에 대해 설파한다. 역자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자신도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저자가 고른 시와 저자의 정성 어린 해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시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해 물어본다면, 아마 뿌듯한 마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을 말해주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좋은 식재료에 훌륭한 솜씨를 가진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듯, 좋은 시를 고르고 독자가 충분히 즐거움을 누리기 바라는 저자의 정성 어린 해설을 곁들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182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는 이따금 스마트폰이 없던 아주 오래된 과거를 아주 간절한 그리움으로 떠올리곤 한다. 그 시절에 우리는 누군가와의 약속 장소에 나가기 위해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낀 채 집을 나서곤 했다. 희미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낡은 버스 좌석에 앉아, 퀴퀴한 곰팡내가 하루 종일 맴도는 어느 지하 다방의 소파에 앉아, 그리고 갈색으로 물드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우리는 시가 주는 낭만에 흠뻑 취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이 시에게도, 낭만을 갈구하는 청춘에게도 한 번쯤 누릴 수 있는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빛이 어떻게 오는지

당신에게 말해줄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닿기 위해

놀라울 만큼 광대한 곳을 지나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p.103 '빛이 오는 방법'-잔 리처드슨)

------------------하 략----------------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나 아름다움 잘 꾸며지고 각색된 것이 아니다. 그런 허위나 감추어진 진실이 우리를 위로할 것 같으면 우리의 삶도 가짜일 터, 시는 우리에게 우리의 시선 너머에 있는 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다. 시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현실 이전의 현실, 그 적나라한 실재를 거듭 응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깊고 추한 상처와 뒤틀림, 고독, 불안, 피할 수 없는 운명들을 하나하나 꿰뚫어 보며 더한 슬픔에도 과감히 맞설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언제나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돌들이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런 장애물들조차 행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천상의 존재들이 아니므로 오히려 그 장애물들이야 말로 우리 인생을 실체화한다. 그 장애물들이 우리를 먼저 부서뜨리지만 않는다면, 물리적 세계의 거친 모서리에서 우리는 영혼을 평온하게 할 저항력을 기르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문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 윌리엄 스태포드의 시가 튀어나온 세계이다." (p.84)

 

인간의 감정은 대개 역설적이다. 너무나 슬픈 시를 읽으면 우리도 덩달아 슬퍼질 듯하지만, 우리는 잠시 슬픔으로 인해 머뭇거리다가도 그 슬픔으로 인해 용기를 얻고, 지나간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밝은 웃음을 짓곤 한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서 슬픔이란 다신 없을 것처럼... 그러나 멀지 않을 미래에 우리를 쓰러트릴 고통이나 슬픔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짐하듯 되뇌면서도 우리는 현재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고, 작은 희망을 손에 쥐기도 한다.

 

"예술가와 시인은 인류애의 마지막 형체이다. 그들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아마도 인간다움을 유지해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비가 그쳤다. 우리는 또 달라진 세상을 보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읽듯, 어쩌면 한 줌 희망을 손 안에 쥐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회 내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에 있었던 자유당 대표의 종교 편향과 그에 동조하는 한기총 대표 회장의 발언 등으로 인해 한기총의 해체와 빤스 목사(한기총 대표 회장)의 목사직 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빤스 목사의 발언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개신교의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전라도는 빨갱이'라거나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등 기독교 정신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아니지만 하느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와 같은 부적절한 발언이 비단 빤스 목사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과거서부터 꾸준히 지속되었고,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정치권에서 적당히 눈감아주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앞에서 빤스를 내리라고 하면 언제든 서슴없이 빤스를 내릴 수 있는 무식한 신도들이 많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성숙되었고, 목사 한 사람이 빤스를 내리라고 지시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를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지 싶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자유당과 개신교 목사들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보수의 품격을 운운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마치 제정일치의 원시사회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말하자면 과학은 극도로 발전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은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여 제사장이 정치도 관장하는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마치 보수의 표상인 양 선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렇게 칭찬하던 청동기 사회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인 것을 어쩌랴.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낭만인생 2019-06-0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런 인간도 목사라고.. 또 그런 목사를 위해 빤스도 내리는 신도들이라니.. 거참... 참 거시기 합니다.

꼼쥐 2019-06-07 17:5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요지경 속 세상을 살고 있나봅니다. ㅎ
 
리케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마이크 비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에 대해 말한다.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서부터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든 '행복'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온통 '행복'으로 둘러싸인 현실 앞에서 나는 이따금 '행복 멀미'를 한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 콘테스트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고, 콘테스트에서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경쟁하다가 수상 트로피는 구경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게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경쟁해서 당신은 과연 행복에 이르게 되었는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진심으로 말이다.

 

코펜하겐 행복연구소((Happiness Research Institute)의 대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마이크 비킹은 자신의 저서 <리케 LYKKE>에서 행복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행복을 정서적 영역, 인지적 영역, 에우다이모니아 영역으로 나누고, 대규모 그룹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삶의 변화가 그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이렇게 파악된 행복 요소를 통해 수치화된 행복 지수를 측정할 수 있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복지수를 알게 됨으로써 좀 더 행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나는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 이론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머나먼 하늘 위에 뜬 벌겋고 황량한 행성을 보며 어떻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종족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질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행동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 존재한다. 때로는 사소한 데서 엄청난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 (p.41)

 

돌이켜보면 전반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행복이 인지적 영역의 행복이다. 날마다 느끼는 감정의 형태로 분류되는 정서적 행복이나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에서 오는 에우다이모니아 영역과는 차이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총체적인 행복, 즉 인지적 영역의 행복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는 행복한 삶이 가능해지는 요소로 공동체 의식, 돈, 건강, 자유, 신뢰, 친절을 꼽고 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익히 다 알고 있던, 혹은 유추할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요소에 대해 좀 더 깊이 파헤쳐보면 그 의미와 실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으로부터 너무나 쉽게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물론 이것이 타인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일까? 친구, 동료, 친척을 만나는 횟수와 연관해서 살펴보면 분명한 패턴이 있다. 타인과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 하지만 양과 질은 별개의 문제다." (p.74)

 

돈 역시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소비의 형태에 따라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저자는 '돈을 주고 행복을 살 작정이라면 물품이 아니라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라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신적, 육체적 건강 역시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유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요소인 동시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일지도 모른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삶과 일의 균형은 여전히 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즐겁고 유익하게 출퇴근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출퇴근길은 고역이다. 출퇴근 시간에 우리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버스나 자동차 안에 갇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p.203)

 

신뢰와 친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하고 관계를 지속시키는 요소이기도하다.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 타인이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강화하는 기본적인 전제인 까닭이다. 게다가 우리가 친절을 베풀 때 측좌핵이 자극되고  이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모르핀에 살짝 취한 것 같은 호르몬이 나오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의 행복은 나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행복은 오직 타인과의 결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관계의 부산물임을 증명한 셈이다.

 

"신뢰와 협동심과 서로가 서로의 수호자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우리 도시를 재편하고 삶의 질에 따라다니는 가격표를 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이 세상의 좋은 점을 찾아야 할 때다." (p.296)

 

곁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제 몸을 움직이는 데서 오는 행복,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행복,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가는 데서 오는 행복, 그런 행복들을 우리는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행복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 행복들은 시나브로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두려워지는 오늘, 탄생과 동시에 행복 콘테스트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혹여라도 답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마이크 비킹의 이 책 <리케 LYKKE>는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에는 요즘 밤꽃이 가득합니다. 산 능선에 위치한 밤 농장에서 비롯된 밤꽃 냄새는 산의 정상으로 또는 산자락으로 퍼지다가 밤이면 급기야 골바람을 타고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까지 닿곤 합니다. 밤꽃 냄새가 온 마을을 점령하는 동안 나는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이따금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면서 추억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해마다 흉폭해지는 여름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궁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치를 피해 다락방으로 숨어들었던 안네 프랑크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계절에 저항한다는 건 참으로 무모한 짓이기에...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엊그제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보았습니다. 예상으로는 전 과목 1등급을 받을 듯한데 아들의 국어 과목 점수를 보면서 조금 웃었습니다. 남들도 다 맞힐 듯한 2점짜리 문제 두 문항을 틀리는 바람에 96점을 받았던 것입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실수. 생각을 너무 깊게 해서 틀렸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거나 강권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행복한 게 우선이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말해줍니다. 학기초에 동아리를 선택할 때도 아들은 은근히 방송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공부와 관련된 동아리를 선택하지 왜 시간도 많이 뺏기는 방송부에 들어갈 생각을 하느냐 마뜩잖아했습니다. 그때도 나는 아들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들의 의견에 따르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바람도 없는 하늘엔 구름이 가득합니다. 높아진 습도와 탁한 대기 탓에 덩달아 기분도 꿀꿀해집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라도 다운로드하여야 할지 생각만 많아집니다. 오늘은 제64회 현충일, 베란다에 조기를 달고 무작정 생각만 많아지는 하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붕붕툐툐 2019-06-0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공부 잘하는 아드님을 두셨네요~ㅎㅎ

꼼쥐 2019-06-06 21:50   좋아요 0 | URL
공부만 잘한다는 게 맞을 듯합니다. 운동은 잘 못하거든요.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이 다르니까 말이죠. ㅎ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어느 작가의 '여행기'를 읽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작가가 방문했던 여행지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쉽게 잊어버리는 까닭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국의 지명은 그만큼 나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타지에서 경험했던 실수담이나 특별한 경험에 매료되는 것도 아니다. 그 경험이 비단 작가의 여행지에서만 발생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행기를 도대체 왜 읽는가? 하는 문제만 남는다. 심심풀이 땅콩도 아니고 말이다. 짧은 인생에서, 더구나 읽어야 할 책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그런 허섭스레기(는 아니지만)에 시간과 열정을 소비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내가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나는 지금 작가의 환상을 읽고 있거나 작가가 여행지에서 가져온 여행지의 잔상을 읽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환상이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은, 이를테면 자신이 방문했던 여행지와 거기서 찍은 사진만 즐비한 여행기를 읽는다는 건 어쩌면 시간 낭비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만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p.66)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는 우리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와 우리가 여행지에서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라는 특수한 직업인으로서 말이다. 집필을 목적으로 떠났던 중국 여행에서 입국 자체가 거부된 채 추방당했던 경험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애초 품었던 목적이 여행 도중에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해 번번이 틀어지고 예상치 않았던 무언가를 목적 대신 얻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여행기가 지닌 이와 같은 기본 구조는 인생의 여정과 흡사하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여행에 대한 사유를 넓혀간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고대 그리스와 달리 이제는 생각을 들고 몸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것은 책으로 묶여 도매상과 서점을 통해 스스로 돌아다닌다." (p.81)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매년, 때로는 한 해에도 여러 번 여행을 떠나는 생활을 20년간 해왔다는 작가는 학창시절에도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말과 풍습이 다른 지역을 마치 방랑하듯, 혹은 여행하듯 지내왔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의 삶은 연속되는 긴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행의 이유는 작가 자신에게는 존재의 이유인 동시에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곳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p.109~p.110)

 

흔한 이야기들은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누군가의 생각에 의해 직접적인 삶의 현장으로 다시 불려 오기도 한다. 여행은 이와 같은 우리 생각의 흐름이나 왕래를 막힘 없이 가능케 한다. 생각의 통로를 열어준다는 건 내 삶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설계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작가가 여행에서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라고 썼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그 시기에 내가 겪은 것이 단순히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가벼운 우울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뉴욕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허리케인을 만났고,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검은 꽃』영어판은 출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 없이 묻혀버렸다." (p.178)

 

작가는 알쓸신잡을 촬영하면서 했던 기묘한 여행을 통해 '비(非)여행'과 '탈(脫)여행'을 설명하기도 하고, 소설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겪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노바디의 여행'을 말하면서 현명한 여행자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적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거나 어느 여행지에서 겪었던 경험 한 토막을 들려주면서 여행에 대한 독자들의 사유를 돕는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한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p.206)

 

작가로서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던 까닭에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저마다가 생각하는 여행은 각자 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여행은 특별한 풍경의 감상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말하는 까닭도 그런 이유이다. 그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잊히거나 다녀온 여행지가 늘어날수록 기억은 혼재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이와는 다르게 이 보 전진을 위한 도움닫기가 필요한 순간 우리는 종종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생각의 통로가 열리는 여행지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선물처럼 영감을 얻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