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를 대체하는 용어로 '지적장애'가 쓰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07년 10월에 개정된 장애인 복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지적장애'라는 말이 새로운 법적 명칭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신지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정신지체'를 우리가 흔히 쓰는 사회학적 용어 '문화 지체 현상'에 대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물질 문화와 비물질 문화의 변화 속도의 차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치관의 혼란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되는 현상을 '문화 지체 현상'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매년 한 살씩 더해가는 물리적 나이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식이나 판단능력, 상황 대처 능력 등 정신적 성숙도를 나타내는 정신 연령 사이에는 변동 속도의 차이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물리적 나이와 정신 연령 간 변동 속도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은 누구나 겪게 된다. 말하자면 정신 지체 현상은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인 셈이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정신 지체자라고 말할 수 있다. 70대의 노인이 마음은 20대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항상 뒤처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인디언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은 한참을 달린 후에는 항상  멈춰 서서 자신의 영혼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몸이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흐르는 까닭에 우리의 영혼이 미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혹은 우리의 먼 먼 조상이 지구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르는 외계 행성에서 이주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아무튼 우리 모두는 '정신지체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삶이 지속되는 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뉴욕시 브루클린을 무대로 펼쳐진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맘동네'에 가입한 초보 엄마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라고나 할까. 아기를 돌보느라 꼼짝없이 집에 갇힌 신세가 된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브루클린의 공원 버드나무 아래 잔디밭으로 모인다. 때는 바야흐로 초여름, 엄마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며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되었고, 모임의 이름 역시 '5월 맘'으로 정해졌다.

 

"스칼릿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그때 시댁 식구들이 새로 살 집을 보러 올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계획에서 나만 빠지는 건 싫은데. 내가 앞으로 브루클린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럼 5월맘들한테 내가 전부 메일을 보낼게요.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요. 진짜 재미있을 만한 곳을 찾아놓을게요." 넬의 말에 프랜시가 대답했다." (p.40)

 

비슷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들 간의 유대와 친화력도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엄마들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 역시 이런저런 필요성에 의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일반적이다. 마치 남자들의 군대 모임이 단지 군 생활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깨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이미 몰로이의 소설 <퍼펙트 마더> 역시 초보 엄마들의 끈끈한 유대와 육아의 어려움, 엄마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아기에 대한 엄마의 강한 모성애 등 복합적인 시선을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육아휴직, 상급자의 부하 여직원 미투, 낙태 문제 등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들춰낸다.

 

"프랜시는 엄마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난번 모임 이후로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모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기대했던가. 다른 엄마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사이에 자신의 자리가 있고, 서로 조언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 시간이 그리웠다. 이윽고 프랜시는 벤치에서 내려와 카메라 초점을 거리 건너편에 맞추고 위니의 집 앞을 서성거리는 기자 몇 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p.217)

 

사건의 발단은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엄마들이 동네 술집에서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잠시 기분 전환을 하자는 취지였는데 싱글맘인 위니의 아기가 그날 밤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기를 봐주기로 했던 베이비시터가 잠깐 잠든 사이에 아기가 아무도 모르게 증발해버린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취재진이 몰리면서 단순히 공통 관심사였던 육아 외의 다른 사적인 것들이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한다.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가 20년 전 유명 TV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하이틴 스타였다는 사실과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날 밤 엄마들이 술집에서 놀고 있었던 사실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노출되었다.

 

"로웰이 아기를 봐준다면 가게에 가서 소스라도 한 병 살 수 있겠지. 그러자. 울어도 놔두고 조금 쉬어야 한다. 종일 인터넷으로 퍼트리샤 페이스의 사이트를 보고 마이더스 기사를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거기에 달린 끔찍한 댓글도 그만 읽고, 위니를 놓고 대체 그날 밤 어디 있었냐고, 왜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인터뷰도 안 하고, 마이더스를 돌려달라는 소리도 없느냐고 궁금해하는 질문들도 그만 읽자." (p.250)

 

'아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제 엄마들 모두의 공포가 된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와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위니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넬과 프랜시와 콜레트의 비밀과 거짓말도 점차 드러난다. '자격 없는 엄마들'이라는 대중의 비난이 거세지고,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 역시 자책과 회한이 깊어진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단서들이 서서히 모아지고 소설은 끝을 향해 치닫는데...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퍼펙트 마더>에 등장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엄마에게 주어지는 것은 물론 조금만 잘못해도 모든 비난이 엄마에게 쏟아진다는 사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누구에게도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하루 스물네 시간 단 한순간도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조차 없는 육아의 고통과 버거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에 적극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든 부담을 떠안는 엄마의 입장과 단순히 육체적인 힘듦만 견디면 되는 아빠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최근에 있었던 조은누리 양 실종 사건만 보더라도 대중의 비난이 엄마에게 집중되지 않던가. 사정도 모르면서 말이다.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퍼펙트 마더'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그것은 더없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엄마들은 탈출구가 없는 개미지옥으로 느끼지나 않을까. 지나고 나면 금세 그리워지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을 때 또는 시인이 쓴 시를 읽을 때, 단지 우리는 장르가 다른 두 문학 체계만 염두에 둘 뿐 그들 각자가 쓰는 문장이나 언어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설가가 쓴 에세이와 시인이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깨닫게 된다. 집중하는 장르가 서로 다르다는 건 그만큼의 간극이 벌어지게 마련이라는 걸 에세이를 읽는 독자들은 알고 있을까? 예컨대 소설가는 동사 또는 형용사와 같은 서술어에 집중하는 반면 시인은 명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요새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서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서러움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원통하고 슬프다'라는 정의가 나온다. 하지만 이 정의는 부족하다. 나는 서러움을 '상실감에 머물면서 그것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본다. 서러움에 젖어 시를 썼던 파베세와 백석이 부럽기 짝이 없다." (p.179)

 

심보선 시인은 '알려해도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그칠 수 없는 인생의 화두들', 말하자면 세 가지 인생의 수수께끼가 있다고 말한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가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총 세 개의 부로 나뉜 책의 구성도 '영혼의 문제'로 시작하는 제1부, '내가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로 시작하는 제2부, '달려라 중학생'으로 시작하는 제3부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과 관계를 맺고 삶을 형성해가는 가족, 이웃,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 소소한 일상과 시인의 사유가 덧붙여져 독자들로 하여금 또다른 사유의 여지를 제공한다.

 

"영혼은 의미와 무의미를 같은 장소로 데려온다. 연혼은 '행복하지만 삶의 의미에 무지한 아이'와 '불행하지만 삶의 의미에 도통한 노인'을 합체시켜서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킨다. 영혼은 오늘 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수렴시켜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한다. 연혼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새로워진다." (p.22)

 

제2부는 시인이 다섯 살이었던 아스라한 과거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몇 살이니?로 시작되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여섯 살, 일곱 살, 그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미리 생각한 미래에 두려움과 기대를 섞고, 그렇게 연속성과 정체성의 감각이 막연하게 형성되었다고 회고한다. 훈련소에서 읽었던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졌고, 대학에 못 간 한을 독서로 풀었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집에는 온갖 교양서적과 오랫동안 수집해온 '사상계' 잡지가 있었고, 시인은 어느 날 책 속에 끼워진 아버지의 육필 메모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것은 영원히 신비로운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시인은 '아버지의 비밀을 계승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그와 같은 지극히 비밀스럽고 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성동혁, 신해욱, 최승자 시인의 시에 대한 단상, 김소연 시인과 함께 진행한 시 창작 워크숍 '퀼티드 포엠', 체사레 파베세, 존 버거, 페르난두 페소아, 백석 등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나는 시사 평범해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시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드물지만 그런 자리가 마련될 때가 있다. 본격적이지 않아도 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가, 당당하진 않아도 자신이 쓰고 외운 시를 사람들 앞에서 읽고 공유할 때가, 전부는 아니라도 비밀의 일부를 서로에게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시가 작업이기에 앞서 하나의 독특한 언어활동, 언어적 쓸모와 경험을 확장하는 소통 양식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P.202)

 

제3부에서 시인은 여러 꼭지에 걸쳐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생자 가족들의 절규에서부터 청문회 현장에서 본 선과 악의 평범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안산 순례길' 공연 등. 고공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들에게 트위터를 통해 소설, 시, 에세이, 혹은 개인적인 지지 메시지를 녹음하여 육성으로 들려주었던 '소리 연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 대해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공동체라는 애틋한 이름에 담긴 시인의 생각들.

 

"우리는 서로의 역량을 냉철하게 인정하고 공평하게 존중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비핵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평화주의자의 레토릭이나 시인의 메타포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의 분석으로 들리기를 바란다. 사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전쟁터로 바뀐 지 오래라는 것을." (P.316)

 

시인의 언어는 산문을 쓰는 소설가와 다르다. 물론 수필을 전문적으로 쓰는 에세이스트와도 다르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산문 역시 소설가나 에세이스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름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공동체를 통해 다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기적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 아베에 의해 발발된 한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으로 인해 같은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느끼게 되는 요즘, 한반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다른 누군가를 향해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안부를 묻게 된다. 지난 열흘 동안 오직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온 국민이 조은누리 양의 안부를 물었던 것처럼. 한반도의 다른  어느 곳에서 나처럼 8월의 더위를 꿋꿋이 견디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종일 어수선한 하루였다. 아베 신조 주재로 열린 각의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미리 예견된 일이기는 했지만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의 발표가 전파를 타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도 극도로 격앙되는 듯했다. 일본의 조치를 규탄하고 우리 정부와 기업에 힘을 실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가 있었고,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서 제외한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발표도 있었다.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정치권의 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몇몇  있었다. 추경에 대한 늦장 심사도 모자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예결위원장의 모습이라든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됐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자유당의 송 모 의원 등 도대체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맞긴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日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본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지만 말이다. 이 마당에 자유당도 무덤을 파고 있는 건 아닌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9-08-0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이들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송 모 의원은 일본 정부에서
세비를 받는 모양입니다.

국회의원 소환제의 필요성을
몸소 보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꼼쥐 2019-08-03 13:40   좋아요 0 | URL
그런 자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던 많은 유권자들도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혹여라도 눈에 콩깍지가 씌어 잘못 뽑았다면 국민이 다시 소환하는 게 맞는 일이지요.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기를 쓰고 국민소환제를 반대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듯합니다. 뭔가 켕기는 게 있었던가 보지요.
 
[전자책]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단편집 악몽과 몽상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소설 작가의 능력은 뻔한 스토리를 특별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런 까닭에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허탈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고작 이런 이야기를 읽으려고 밤을 새웠단 말인가, 하는 억울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를테면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인데, 책을 읽는 중간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데 추리소설의 묘미가 있다. 본전 생각은커녕 오히려 쫀득한 스릴과 꽁꽁 숨겨진 힌트, 그리고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대반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여러 번 인정하곤 한다. 적어도 그만한 책이라면 밤을 새울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던 스티븐 킹은 그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 1>에서도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는 스페인 속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첫 소설 <돌런의 캐딜락>은 그의 소설이 늘 그렇듯 경쾌한 리듬을 타며 천천히 출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학교 선생님이다. '나'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역시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7년 전 당시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고, FBI에서 신문을 받고 증언을 하겠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엘리자베스는 돌런의 도주를 목격한 증인이었던 셈인데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고, '나'는 홀아비가 되었다. 증인이 사라지자 돌런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의 집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는 그의 세계로 돌아갔고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세계는 라스베이거스의 펜트하우스였고 나의 세계는 아무도 없는 성냥갑 주택이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모피와 스팽글이 달린 이브닝드레스로 휘감은 미녀들의 행진이 이어졌고 나의 세계에서는 정적이 이어졌다. 그가 회색 캐딜락을 네 대 갈아치우는 동안 나는 점점 망가져가는 뷰익 리비에라를 계속 타고 다녔다. 그의 머리가 은색으로 변하는 동안 내 머리는 그냥 없어졌다." (p.25)

 

'나'는 복수할 기회만 엿보며 돌런의 동선을 수 년째 면밀히 관찰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최종 복수 장소로 결정한 '나'는 네바다 고속도로 관리 공단에 입사 원서를 제출한다. 현장감독 하비 블로커는 40도를 웃도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삽을 들고 펄펄 끓는 역청을 펴는 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예상을 깨고 악착같이 버틴다. 보다 못한 블로커는 '나'에게 굴착기 운전을 연습하라고 말했다. 여름 내내 굴착기를 운전했던 '나'는 학교로 복귀한 후 이듬해 봄에 네바다 주 고속도로 위원회의 우편물 수신을 신청했다. '나'는 도로 재포장 공사를 의미하는 RPAV만 관심이 있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7월 1일부터 7월 22일 사이에 도로 재포장 공사  일정이 확인되었다. '나'는 도로를 차단하고 우회도로 표지판을 세운 후 한밤중에 도로를 파헤쳤다. 달려오는 돌런의 캐딜락을 도로 아래에 묻을 생각이었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포효하는 엔진과 작렬하는 태양으로 뒤덮인, 길고 환한 지옥이었다. 케이스 조던 기사는 기어에 모래 덮개 씌우는 건 깜빡해놓고 양산은 제대로 치웠다. 조물주가 가끔 장난을 칠 때도 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조물주는 특이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2시가 거의 다 됐을 때 아스팔트 조각들을 도랑에 모두 처박을 수 있었다." (p.62)

 

'나'는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체력은 바닥났지만 오직 복수를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 '나'는 돌런이 타고 올 회색 캐딜락을 기다렸다. 돌런이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각이 다가오고 나는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조바심을 냈다.

 

"막힘없이 보이는 이 길의 저쪽 끝에서 커브길을 돌아 나온 캐딜락은 착각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 위 하늘과 같은 회색이었지만 동쪽으로 굽이치는 칙칙한 갈색 땅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도드라져 보였다. 그였다. 돌런이었다. 의구심과 망설임으로 얼룩졌던 기나긴 순간들이 순간, 아득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돌런이었고 나는 그 회색 캐딜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p.77)

 

우리는 한 치 앞에 펼쳐질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코너로 몰거나 해선 안 될 해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명한 사람은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항상 살피고 삼가는 사람일 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터무니없이 순항을 할 때 우리는 종종 분에 넘치게 오만해지거나 '나'의 앞길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 장면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비록 자신의 미래를 낱낱이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만해지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는 있다. 불운을 막기 위해 무당을 찾을 게 아니라 탐욕을 버리고 교만을 억제하는 게 자신의 불운을 막는 유일한 부적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