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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소설은 뉴욕시 브루클린을 무대로 펼쳐진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맘동네'에 가입한 초보 엄마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라고나 할까. 아기를 돌보느라 꼼짝없이 집에 갇힌 신세가 된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브루클린의 공원 버드나무 아래 잔디밭으로 모인다. 때는 바야흐로 초여름, 엄마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며 자연스레 모임이 결성되었고, 모임의 이름 역시 '5월 맘'으로 정해졌다.
"스칼릿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그때 시댁 식구들이 새로 살 집을 보러 올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계획에서 나만 빠지는 건 싫은데. 내가 앞으로 브루클린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럼 5월맘들한테 내가 전부 메일을 보낼게요.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요. 진짜 재미있을 만한 곳을 찾아놓을게요." 넬의 말에 프랜시가 대답했다." (p.40)
비슷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들 간의 유대와 친화력도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엄마들의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 역시 이런저런 필요성에 의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일반적이다. 마치 남자들의 군대 모임이 단지 군 생활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깨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이미 몰로이의 소설 <퍼펙트 마더> 역시 초보 엄마들의 끈끈한 유대와 육아의 어려움, 엄마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아기에 대한 엄마의 강한 모성애 등 복합적인 시선을 스릴러 형식의 소설로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육아휴직, 상급자의 부하 여직원 미투, 낙태 문제 등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들춰낸다.
"프랜시는 엄마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난번 모임 이후로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모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기대했던가. 다른 엄마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사이에 자신의 자리가 있고, 서로 조언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 시간이 그리웠다. 이윽고 프랜시는 벤치에서 내려와 카메라 초점을 거리 건너편에 맞추고 위니의 집 앞을 서성거리는 기자 몇 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p.217)
사건의 발단은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엄마들이 동네 술집에서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잠시 기분 전환을 하자는 취지였는데 싱글맘인 위니의 아기가 그날 밤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기를 봐주기로 했던 베이비시터가 잠깐 잠든 사이에 아기가 아무도 모르게 증발해버린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취재진이 몰리면서 단순히 공통 관심사였던 육아 외의 다른 사적인 것들이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한다.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가 20년 전 유명 TV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하이틴 스타였다는 사실과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날 밤 엄마들이 술집에서 놀고 있었던 사실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노출되었다.
"로웰이 아기를 봐준다면 가게에 가서 소스라도 한 병 살 수 있겠지. 그러자. 울어도 놔두고 조금 쉬어야 한다. 종일 인터넷으로 퍼트리샤 페이스의 사이트를 보고 마이더스 기사를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거기에 달린 끔찍한 댓글도 그만 읽고, 위니를 놓고 대체 그날 밤 어디 있었냐고, 왜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인터뷰도 안 하고, 마이더스를 돌려달라는 소리도 없느냐고 궁금해하는 질문들도 그만 읽자." (p.250)
'아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제 엄마들 모두의 공포가 된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와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위니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넬과 프랜시와 콜레트의 비밀과 거짓말도 점차 드러난다. '자격 없는 엄마들'이라는 대중의 비난이 거세지고, 아기를 잃어버린 위니 역시 자책과 회한이 깊어진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단서들이 서서히 모아지고 소설은 끝을 향해 치닫는데...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퍼펙트 마더>에 등장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엄마에게 주어지는 것은 물론 조금만 잘못해도 모든 비난이 엄마에게 쏟아진다는 사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누구에게도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하루 스물네 시간 단 한순간도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조차 없는 육아의 고통과 버거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에 적극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든 부담을 떠안는 엄마의 입장과 단순히 육체적인 힘듦만 견디면 되는 아빠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최근에 있었던 조은누리 양 실종 사건만 보더라도 대중의 비난이 엄마에게 집중되지 않던가. 사정도 모르면서 말이다.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퍼펙트 마더'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그것은 더없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엄마들은 탈출구가 없는 개미지옥으로 느끼지나 않을까. 지나고 나면 금세 그리워지는.